ARTIST Criticism
老巨樹讚 _나무는 自然이면서 生命이다. 自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면서
老巨樹讚 

八旬靑鼓撰而書

나무는 自然이면서 生命이다. 自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면서, 生命이라 生老病死를 겪는다. 나무 가운데 으뜸인 老巨樹는 죽음이 가까이 오면 더욱 偉大하다. 오랜 歲月과 함께 속이 파이고 겉이 갈라지고 가지가 꺾기면서, 存在의 核心, 理致의 窮極을 깨달아 知慧로 삼기 때문이다. 老巨樹에게 險峻한 世上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자리를 여기 마련한다. 아무도 없고 새 한 마리도 날지 않아 안팎이 열려 있는 그림을 모아놓고, 누구든지 내 領域이라고 여기고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한다. 老巨樹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마음을 한껏 넓히면, 宿世의 소망인 大悟覺醒이 어떤 境地인지 斟酌은 할 수 있으리라. 


>>전시를 어떻게 했는가? 
위의 글을 맨 앞에 써 붙여 어떤 전시회를 하는가 알렸다. 八旬 기념 전시회라고  알리려고 하다가 위의 글에서 한 마디 하기만 했다.
표구하지 않은 그림이어서 이어서 붙일 수 있었다. 전시한 그림 전체가 커다란 작품을 이룰 수 있었다. (가)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을 그린 그림에서 계절과는 무관한 그림으로, (나) 눈으로 보는 그림에서 마음으로 보는 그림으로, (다) 이해하기 쉬운 그림에서 어려운 그림으로, (라) 畵題가 덜 중요한 그림에서 더 중요한 그림으로 나아가는 순서로 전시했다. 100점을 전시하니 공간이 많아 200점쯤 전시했다. 반출된 작품이 모두 90점이어서 다른 작품 90점을 그 대신 등장시켜 전시가 계속 달라졌다. 작품이 반출되지 않아도 교체한 것들도, 위치를 바꾼 것들도 있었다. 이런 전시는 전에 없었다.
관람자가 많이 왔으나 숫자를 헤아리지는 않았다. 번거로움을 줄이려고 방명록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누가 왔는가를 네 경우로 나누워 말할 수 있다. (갑) 안내장을 보내고  오리라고 기대했는데 온 사람, (을) 친분이 있는 분인데 이메일 주소를 몰라 안내장을 보내지 못했는데 온 사람, (병) 모르고 있었는데 온 사람, (정) 안내장을 보내고 오리라고 기대했는데 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  
(갑)에는 작품을 구입한 사람이 많다. 김헌선 교수 6점, 강진옥 교수 5점, 이복규 교수 3점, 류준경 교수 2점, 이수자 교수 2점, 노중국 교수 2점을 구입했다. 김헌선 교수와 최귀묵 교수는 대학원생을 많이 데리고 와서 작품을 장기후불로 구입하도록 했다.
(을)에 특기할 분들이 있다. 한문학자 송준호 교수는 지나가다가 현수막을 우연히 보고 들렸다. 화제를 차근차근 보고 과분한 찬사를 늘어놓더니 <靑梅暗香>이라는 것을 구입해 갔다. 고고학자 강인구 교수, 중국문학자 이장우 교수, 중국어학자 공재석 교수, 이 세분은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하면서 모두 부인을 동반하고 와서 그림을 열심히 보고 작품을 한 점씩 사갔다. 동양철학자 곽신환 교수는 이복규 교수와 함께 와서 <隱士無處>를 골랐다. 
(병)에 해당한 분들이 오면 그림을 보는 것을 보고, 좋아하면 나도 좋아했다. 오래 보 아주 좋아하면 앉으라고 하고, 마실 것을 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정매라는 분은 한 거의 두 시간 동안 그림을 보면서 찬탄해 마지않았으며, 작품 앞에서 나와 함께 사진을 여러 장 찍자고 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니 국악을 하는 분이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예술을 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 고르기 어려운 고민을 토로하다가 <兩儀互根>을 택했다. 제목은 난삽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나무의 큰 가지는 온통 검고, 작은 가지에는 노란 단충이 가득 달려 있는 것이 둘이면서 하나인 그림이다.
조인숙이라는 분도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니 한 번 왔다가 다시 왔다고 했다. 화가라고 하고 자기 그림 사진을 보여주었다. 꽃이 잔뜩 피어 있는 모습을 아크릴로 그린 것이다. 내 작품을 가지고 싶어 대금 일부를 선금으로 가지고 왔으니 받아달라고 했다. 선금은 필요하지 않고 나중에 입금하면 된다고 했다. 어느 그림을 고를까 하고 오래 고심하다가 <絲絲餘情>에 낙점을 찍었다. 
(정)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왜 오지 않았는지 알 수 없으나, 몇 가지 추측을 할 수 있다. 메일을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잊었거나 바빠서 오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작품을 100만원에 판다고 한 것이 길을 막은 이유일 수 있다. 작품은 사지 않고 구경만 하면 미안하다고 생각해 오지 않았을 수 있다. 작품을 판다고 액수까지 밝혀 알린 것이 적절한 처사라고 여겨 오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잘못 했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작품은 그냥 줄 수 없고 팔아야 한다. 얼마를 받고 어떻게 판다고 알려야 사고 싶은 사람이 살 용기를 낸다. 입금을 확인하고 준 것은 단 한 점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전에 모르던 사람이 샀어도 후불로 했다. 입금 안내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림을 손상하지 않고 잘 간직해달라고 부탁하려고 보증금을 받는다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나누어 주셔도 됩니다. 
오래 기다려야 수입이 있을 대학원 학생들은, 나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빈소에 찾아와 그림 값을 부조 대신 전해도 됩니다.   

·그러면서 구두로 전했다. “그림 값을 갚지 못해도 나는 알지 못하고,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 파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해도 이렇게도 말했다. “작품을 보고 즐기다가 자식에게 물려줄 때 비싸게 샀다고 해야 잘 간직한다. 많은 시간이 경과하면 값이 오를 터이니 팔아도 된다.”   


>>전시장에서 문답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과 전시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묻고 답한 중요한 말을 정리한다.
문: 그림을 누구에게서 배웠나?
답: 배운 적 없이 스스로 그렸다. 그림은 배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 배우지 않은 탓에 기교가 부족하고, 글씨도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답: 좋은 선생에게 오랫동안 배우면 잘 그리고 잘 쓸 수 있으나, 좋은 그림이나 좋은 글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은 다르다. 배워서 연마하는 기교는  개성을 해치고 천진함을 없앤다. 스스로 판단하고 노력해 전례가 없는 독자적인 시도를 하면서 천진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서툰 그림이 좋은 그림이다. 글씨 또한 그렇다.    
문: 언제부터 그렸나?
답: 고등학교 때 그리다가 60년 동안 눌러둔 그림이 교수 노릇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하자 폭발했다. 오랜 욕구와 축적된 식견이 남다른 그림을 만들어냈다.

문: 무슨 물감을 사용하는가? 
답: 구아슈(gouache)라고 하는 것이다. 구아슈로 그린 그림을 불투명수채화라고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구아슈와 함께 먹도 사용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구아슈로만 그렸다. 수요가 적어 과슈는 국산이 나온 적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에는 일본제, 근래에는 이탈리아제나 스위스제를 인사동에 있는 미술자료상에서 수입해놓는 대로 쓴다. 구아슈 그림은 수채화와 유화의 중간이고, 동양화 같기도 하고 서양화 같기도 한 장점이 있다. 수채화는 한 번 그리면 더 손대지 않아야 한다. 유화는 덧칠해서 그리는 것이 예사이다. 구아슈 그림은 한 번 그리고 손을 더 대지 않을 수도 있고, 덧칠해서 그릴 수도 있다. 덧칠하면 밑의 생과 위의 색이 섞여 묘한 효과가 나는 것이 위의 색만 보이는 유화와 다르다. 유화는 기름 냄새가 나서 별도의 화실에서 그려야 한다. 과슈는 기름이 아닌 물을 섞어 그리기 때문에 생활공간에서 그려도 지장이 없다.  

문: 한자로 글을 써넣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답: 그림에 畵題를 써넣는 것이 동아시아문명의 오랜 전통이다. 다른 문명권의 그림에는 그런 것이 없다. 유럽의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어디서 그렸는지 밝히는 것을 제목으로 하고. 그림에다 적어 넣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話題는 문학 창작이며 그림 창작과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두 예술이 하나가 되게 한다. 옛 사람들은 한시를 한 수 지어 화제로 삼는 것이 예사인데 너무 길고 선뜩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흔히 쓰는 글 자 넷으로 화제를 압축해 화제가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오늘날 동양화니 한국화니 하는 그림이 화제를 잃었다. 화제의 가치를 망각했거나 지을 능력이 없는 탓이다. 한문학을 하는 제자들이 말했다. 화제를 지어달라고 하는 화가가 더러 있다고. 화제를 지어달라는 것은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과 같다. 화제 창작은 이은 것이 이 전시회의 커다한 의의라고 생각한다.    
문: 그림을 먼저 그리는가, 화제를 먼저 짓는가?
답: 그림을 그리다가 화제가 생각나서 써넣고 계속 그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경우이다. 그림을 그려놓고 화제를 짓지 못해 한참 동안 고생하기도 한다. 화제를 먼저 정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士자나 人자가 들어간 연작에서 이런저런 선비, 제 각기 다른 사람을 보여주는 작품이 이런 경우이다.ㅣ 
답: 화제를 국문으로 쓰면 이해하기 쉬워 좋지 않은가? 국문 번역을 곁들이는 것은 어떤가?
문: 화제를 국문으로 쓰면 집약된 의미가 없고, 깊이가 모자란다. 화제를 국문으로 번역하면 얼음을 대신하는 얼음 녹은 물이 된다.  

문: 학문을 하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답: 교수로 재직할 때에도 더러 그림을 그렸으나 몰두하게 되어 본업에 지장이 있으므로 그만두었다. 정년 후 근래에는 오전과 밤에는 학문을 하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표준 일과로 삼았다. 이렇게 하면서 깨달았다. 좌뇌에서 관장하는 학문과 우뇌의 소관인 예술은 둘을 동시에 진행해 서로 도와야 둘 다 잘 된다. 학문이 예술의 창조력을 얻고, 예술이 학문의 깊이를 갖춘다. 내 경우에 畵題는 학문의 소산이면서 예술로 빛나야 하고, 그림은 예술이기만 하지 않고 학문 못지않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예술하는 사람들도 학문을 해야 예술의 수준을 높인다. 학문하는 사람들도 예술을 해야 창조력이 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