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자연의 조화(調和) 그리고 회화적 세계의 조화(造化)_최재혁(전시기획자)
자연의 조화(調和) 그리고 회화적 세계의 조화(造化)
- 최재혁(전시기획자)

조현동은 ‘조화(調和)’의 작가다. 서로 상반되거나 다른 세계의 요소들을 그림으로 어우르고 조화시킨다. 풍경과 정물의 조화, 동양적 기법과 서양적 색채의 조화, 구상과 비구상의 조화, 전통과 현대의 조화, 평면적 묘사와 입체적 화면 및 오브제의 조화 등이다. 물론 이와 같은 다방면에서의 조화가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작가는 1987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20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작품활동을 해왔다. 삶과 자연에 대한 관찰과 그림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들이 다양한 상징물이 되어 캔버스 안에 집적되었다. 그림 속에 항시 등장하는 꽃을 비롯한 식물, 나비와 새는 각자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존재성을 극대화 하고 있다. 또한 기하학적 요소들이 공간과 차원을 분할시키며 현대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들이 상징하는 자연의 질서와 조형적 언어를 작가는 화면 안에서 조율하고, 절충하고, 경영해 왔다. 그리고 근작 〈자연-경계〉는 자연의 질서를 넘어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확장으로 까지 나아갔다. 때문에 〈자연-경계〉작업의 숨겨진 의미들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전작부터 지속된 주재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초현실 세계의 구성 〈자연-순환-이야기〉
2001년부터 시작된 〈자연-순환-이야기〉는 순환하는 자연속의 질서를 다루고 있다. 그림에는 크게 3개의 주인공이 있다. 꽃과 나무 등 식물, 나비와 새 등 공중을 부양하는 동물 그리고 고둥 및 소라 등 어패류다. 그리고 원형의 자개 조각들이 배열된다. 나비는 주로 꽃 주변을 맴돌며 미(美)를 한껏 탐하고 있다. 소라는 그림의 여백에 조용히 존재한다. 자개는 오브제이면서도 그림과 이질감이 없이 세련됨을 더한다. 모든 조합이 자연스럽다. 평범한 풍경의 한 장면 같지만 현실세계가 아니다. 땅에서, 하늘에서,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이 한 화면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람이 멎은 듯 흔들리지 않는 풀과 꽃, 원색과 파스텔톤의 강렬한 배경은 초현실적 분위기를 더한다. 작가의 상상 속 세계이자 환상의 세계인 것이다. 작가는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생명의 요소들을 조화시켜 자연속의 질서를 그렸다. 그리고 초현실적 화면을 통해 자연의 순리를 미적 방법으로 전달한다. 이는 향후 〈자연-경계〉작업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순환하는 시간 속 현재 〈공감-채집〉
자연과 생명의 ‘순환’에 대한 메시지는 오히려 〈공감-채집〉시리즈에서 더 강해진다. 〈공감-채집〉에서는 온전히 화병에 담긴 꽃이 정물화 형태로 표현되었다. 정물은 역사적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크게 유행했다. 네덜란드의 화가 얀 브뤼겔(Jan Brueghel), 발타자르 판 데어 에스크(Balthasar van Ask)는 다양한 정물들 중에서도 특히 꽃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꽃이 만개한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곧 시들어버릴 미래를 안타까워하기도, 자연의 이치를 인정하기도 했다. 조현동 작가가 〈공감-채집〉에서 그린 화병과 꽃 또한 ‘지금’과 ‘현재’를 상징한다. 때문에 현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했다. 조현동의 작업은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 즉 윤회(輪廻)의 동양적 세계관에 기초하지만, 이는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라는 서양적 상징성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공감-채집〉작업의 배경에는 바닥 경계가 없고 그림자 도 배제되어 있다. 앞선 〈자연-순환-이야기〉연작과 연결하여 초현실적 세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조현동의 꽃은 단지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를 넘어 동양적 세계관과 서양 철학의 조화 사이에 있다. 

차원의 확장 〈자연-경계〉
작가는 2014년부터 〈자연-경계〉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욱 확장시킨다. 〈자연-경계〉는 앞선 〈자연-순환-이야기〉 그리고 〈공감-채집〉의 요소를 집대성하면서도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시리즈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차이점은 도형 형태를 한 기하학적 요소의 등장이다. 투명한 듯 보이는 다각형은 작가의 초현실 공간 속에 또 다른 가상공간을 설정한다. 선이 만나 면을 만들고, 면이 모여 공간을 만드는 것은 조형원리의 기본이다. 하지만 조현동의 작업에서는 면이 조합돼 완성된 다면체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각각의 면들이 보유한 세계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면 위에는 꽃이 피어나고 사라진다. 또 어떤 면은 동그란 자개들이 경계선에서 연속성을 잃고 끊어진다. 최근 작업에서는 격자무늬로 표현되거나 수묵화의 풍경이 면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했다. 각 면은 도형을 이루기 위한 파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각각 다른 세계의 일면들인 것이다. 또한 차원을 넘나드는 경계로 기능한다. 다면체뿐만 아니다. 배경에 무늬처럼 존재하는 원색의 원에도 새와 나비가 드나든다. 마치 차원 이동이 가능한 웜홀(Wormhole) 같다. 이로써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캔버스 화면 안에 가두기보다 원과 사각의 면을 통해 외부로 확장시킨다. 다면체는 단지 조형 요소의 추가가 아닌 미적이고 철학적인 시선의 확장이자 조형적 확장의 시도다. 

조현동은 ‘조화(調和)’의 작가일 뿐만 아니라 ‘조화(造化)’를 만드는 작가다. 후자인 조화(造化)의 사전적 의미는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다. 작가는 초기 작품에서부터 꽃과 생명을 중심으로 자연속의 다양한 이야기, 우리의 삶과 시간 속에 담긴 의미들을 조화(調和)시켜 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삶의 이치, 우주 만물의 질서를 읽었다. 그 질서 안에서의 미의식을 탐구하고 차원을 확장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결국 조현동의 작업에서 모든 창조물은 미(美)를 위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그래서 자연과 조화(調和)하고, 회화적 세계를 조화(造化)하는 작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