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2-07-18 가시나(Gashina)_작가노트

작가노트

 

‘가시나’

 

 

 

어릴 적 어머니가 불러대던 이름 아닌 이름 ‘가시나’

지금은 그리움만 남은 이름이다.

경상도 토박이였던 어머니는 평생 부지런하게 사셨고, 

그 많은 집안일을 홀로 하시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

큰 딸아이였던 나를 그리 부르시곤 하셨다.   

 

‘가시나’는 신라시대부터 쓰였던 순수한 우리말로, ‘가시’는 꽃을, ‘나’는 무리를 뜻한다. 어여쁜 처녀들을 뽑아 각종 기예를 익히게 하던 조직으로, ‘꽃의 무리’라는 의미로 쓰이다가, 지금은 경상도 지역에서 방언으로 남아 있다. 

 

나의 작업에서 인물의 왜곡된 표현과 인물을 감싸고 있는 실타래에서 뽑아 나오는 실처럼 질질 끄는 가는 선은 사랑을 갈구하거나, 그리움의 표현 방법이다. 이러한 작업 방법은 의상 디자이너였던 내게는 회화를 넘어선 패션 스타일화의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머리 위에 분청사기와 발레리나, 꽃등으로 인물을 치장했다. 예로부터 여인들은 머리치장에 정성을 다했다.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거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한껏 멋을 부릴 수 있는 특별한 호사였다. 특히, 작품<가시나_樂 2212>을 살펴보면 머리에 장식된 물고기 문양의 분청사기는 친근함을 의미하는 조선시대의 도자기로 국보 제178호이다. 생활의 여유와 즐거움을 기원하는 의미로, 장자는 물속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는 물고기 모습을 漁樂이라 하였다. 아크릴의 화려한 색상과 담담한 표정의 인물을 반어법적으로 사용하여, 리듬감 있는 배경과 여백의 공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머니의 그리움에서 시작된 나의 작업은 베개 문양과 민화, 분청사기, 은장도 등 한국 고유의 정서가 깃든 옛것이 ‘가시나’와 어우러져 새롭게 다가가는 작품이다 .

2022-01-06 꽃순이 (kkot sooni)
작가노트

꽃순이 (kkot sooni)
  
꽃다발을 전해주는 여자, 행복을 기원하고, 
고향의 동경과 정겨움이 담겨 있는 이름 꽃순이. 
소꿉친구의 이쁜 모습이나 고향의 동생뻘 되는 여자를 부르는 애칭이다.
꽃순이를 통해 과거의 삶이 남겨준 재료들에서 사랑과 순수를 배워보자. 
세상은 가슴 뛰는 일들로 한껏 열려있으니. 
  
이전 작업이 엘리트 여성인 알파 걸을 통해 우리 모두의 욕망을 대변했다면, 
이번 작업은 꽃순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서정을 이해하고, 삶에 대한 겸손한 성찰의 자세를 배우려는 데 그 의미를 둔다. 이러한 접근은 상실의 시대에서 꽃순이는 우리의 손을 맞잡고 있는 고마운 존재이며, 그 안에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행복한 내일을 노래하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꽃순이가 나의 작품을 통해  한국고유의 정서와 연결시키는 조각보의 조형성과 더불어 행복을 기원하는 새로운 아이콘이 되길 기대 해 본다. 

작업 방법은 모시 조각보 위에 선묘법으로 인물이나 사물들을 단순하게 처리하거나, 어느 부분은 공을 들여 세밀하게 표현했다. 
작품 속 인물은 일종의 패션 스타일화에 가까운 작업이다. 의상 디자이너였던 내게는 익숙하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작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유롭고 순수한 모시 조각보의 색채와 인물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했고,
한국 고유의 정서가 담긴 꽃신, 노리개, 옛 글씨, 원앙 등은 먹과 아크릴을 사용해 표현했다.
  
한 땀 한 땀 옛 여인들의 공을 들인 바느질은 복(福)을 짓는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보는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싸두고 보관하거나 정성스럽게 귀한 물건을 싸서 선물로 보내기도 하는 등 그 쓰임새가 다양했다. 조각보는 조각이라는 의미보다 조각보가 주는 효용의 극대화를 통해 감각적으로 표면을 느끼게 하는 예술작품이다. 색색의 남겨진 조각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여인들의 능숙한 솜씨가 조각보를 예술작품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2018-01-17 작가노트-Touching Collabo
<Touching Collabo>  

작가노트 

 나는 감성을 덧입힌 마네킹을 비닐 랩으로 포장하거나, 사각의 쇼윈도에 가두어 두었다. 이것은 욕망과 억제가 공존하고, 현대의 언어로 과거와 미래의 언어를 건드리는 융합에 대한 나의 표현방법이었다.

 화면에 바느질된 버선이나 사물들은 무의식적으로 몰입을 부추기고, 감성을 자극하는 전략적 재료들이다. 나는 이 재료들의 드러내기를 통해 긍정적인 호기심을 불러들이길 바라고, 단순노출의 효과를 기대한다. 내게 있어서 이러한 바램들은 예측 불가능한 느낌으로 함께 가기위한 배려이며, 마네킹의 몸을 통해 자코메티의 가벼움으로 다가가려는 속셈이 숨어있다.  

 나는 디자이너가 직업이었고, 마네킹과의 대화는 차갑게 되돌아오는 독백이었다. 그러나 기계복제품과의 독백 같은 대화는 예상치 못한 묘한 쾌감을 갖게 되었고, 나는 감성을 덧입힌 마네킹을 건드려 현실을 벗어난 연극무대를 은밀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작업대의 섬유퍼즐조각들을 걷어 올려 화면으로 옮기고, 실타래를 연상하는 질질 끄는 선으로 드로잉을 시작했다. 마치 에공실레의 드로잉들이 나의 공간으로 잠시 넘어온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몹시 흥분했었고, 다시 차분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나의 몸은 노동이 필요했다. 나는 한지를 겹겹 올려 지지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지의 치밀한 공간들은 바느질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리고 외과용 수술바늘로 한지위에 느리고 흐릿하게 바느질을 시작했다. 바느질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거나 과거를 현재로 또 미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그리고 욕망의 끈을 늦추는 행위이기도 하고, 여성의 노력과 느림의 미학이 곁들인 용서와 치유의 행위임을 작업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2018-01-17 작가노트-Touching Essay
<Touching Essay>

작가노트

느리게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욕망의 끈을 늦추는 행위로 화면 한 모퉁이를 바느질 한다. 바느질은 여성의 노력과 느림의 미학이 곁들인 용서와 치유의 작업이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무수한 숙고의 경험과 반추, 욕망과 사랑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화면 위에 올려놓고, 풀고 엮는 에세이다. 

작품에 보이는 여인은 생물학적 여성을 벗어난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장치인 동시에 만져지는 감성의 돌파구다. 그리고 화면에 놓인 이미지들은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불러들이는 재료들이다. 나는 그 재료들로 시간의 층을 만들고, 한지 위에 아크릴로 채색하거나 바느질과 꼴라쥬 방법을 병행하여 작업하였다. 

나는 스타일화의 선들을 동양화의 질질 끄는 둔필로, 섬유조각들의 퍼즐을 색의 조각으로 화면에 옮기고 있다. 이런 행위의 이면에는 의상디자이너로서의 이전 작업과도 연장선상에 있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리고 외과용 수술바늘로 느리고 흐릿하게 바느질 한다. 흐릿한 것이 오래 머문다는 위로와 격려를 스스로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