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0-07-27 작가노트_ 허문정 작가
작가노트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시골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 보다는 작은 텃밭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야채를 키운다. 그러면서 틈틈이 꽃을 가꾸고 그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원래 시골 태생인 나는 꽃이나 식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작품의 소재로 여기지 않았다. 식물을 키우면서 작고 여린 새싹과 오동통한 봉우리,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꽃들, 꽃잎의 사그라들음, 사그라든 곳에서 생명을 이어갈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 몇 가지 없던 꽃은 많은 종류로 늘어나고 어느 틈엔가 이름모를 풀들이 자라 나비와 새들, 곤충들도 모여들었다. 그렇게 풍성해진 나의 정원 속 자연은 사색의 대상으로서 교감되어짐을 통해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번에 선보이는 나의 정원 ‘my garden’ 시리즈는 나비와 새를 키우고 나와 아이도 커가는 성장의 의미기도 하다. 마당에 나와 자연을 관찰하고 사색한 드로잉 작업들을 바탕으로 동판화 기법인 에칭, 아쿼틴트, 소프트 그라운드, 쉰꼴레를 사용하였다. 특히 소프트 그라운드 기법으로 실재 나뭇잎에 잉킹하여 프레스로 찍어내어 실재감 있는 잎맥을 표현 할 수 있었다.  
 드로잉, 페인팅, 판화 작업을 하면서 판화의 복수성을 이용한 에디션없는 작품을 하고자 많은 시도를 하였다. 얇은 한지에 수채화로 그림을 그려 꼴라쥬하거나 그림 위에 판화를 찍어 이미지의 중첩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단색 판화가 아닌 페인팅처럼 판 하나에 많은 색을 사용하여 자연의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한 화면에 많은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어 다소 산만하지만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행성들처럼 서로 공존하면서도 자유롭게 속박되지 않는 자연의 사물들을 표현하려 하였다.

 자연 속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찢겨진 나비의 날개, 죽어있는 곤충, 죽은 새 등 상처나고 찢김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삶 또한 유한한 존재로 불안하고 외로운 존재이다. 작품을 통해 생태학적으로 사실적인 부분과 이질적인 부분이 함께 존재하는데, 나비가 꿀을 찾는데 꽃에 꿀이 없거나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나비와의 관계 등을 통해 아이러니 또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였다. 나의 작품 속에 간간히 보여 지는 인물과 눈동자는 자연 속으로 침투한 자아의 모습이다.  
 꽃잎 작업은 모든 작품 곳곳에 나타나는 주요 모티브이다. 자연물을 드로잉하고 꽃잎과 나뭇잎을 채취하여 작업에 사용한다.
드로잉은 나의 의지와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지만 자연에서 얻어온 식물은 그자체로 자연이 그려준 그림이 된다. 자연의 아름다운 색에 빠져 봉선화, 장미, 메리골드 등의 식물을 채취하여 그라인더에 갈아 자연의 아름다운 순수한 색을 얻고자 했으나 자연 속에서 채취한 식물의 즙으로 찍어낸 자연의 형상들은 색채의 아름다움은 탈색되고 식물의 죽음의 색, 갈색으로 변해 간신히 자연물의 흔적만을 간직하고 있다.  퇴색되고 사라지는 우리의 인생사와 닮아 있다.
  나의 작품은 자연물을 직접 사용하여 작업된 판들과 드로잉 작품을 자유롭게 응용하였다.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과 인생사와의 관계, 삶속에서 쌓여진 감성들을 묵묵히 쌓아감이 나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