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1-10 작가노트-사색의 정원

 

사색의 정원 

 

그림을 그린다는 것 ... 그것은 때로는 환희일수도 때로는 절망일수도 있다.풍경이나 정물을 바라보고 그곳에서 꼭 나의 것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은 때로는 나만을 위해 준비된 거대한 식탁에 무한히 맛있는 음식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으로 고르면서 음미하며 먹는 것과도 같고.. 어떨 때는 군대의 훈련장에서 지급된 전투식량을 보고 배는 고프지만 이것을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다 우걱우걱 딱딱한 쌀의 촉감을 온몸으로 받아드리는 모습이기도 하다. 창을 바라보다.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저멀리 안개... 또는 아지랑이...자연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인간상의 모습들.그래서 숲으로 대변되는 저멀리 풍경이 미상속에 사르르 녹이는듯 희미해져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들..눈을 감고 꿈을 꾸면 가슴시리게 예뻐보이던 어느 이름모를 숲 한자락의 모퉁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하늘은 어쩐지 (내 꿈을 그대로 담아 낼 거 같은 구름들이 ) 나로 하여금 무엇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내 마음의 형상이 움직이는 대로 시시각각 꿈꾸듯 변화하는 구름은.. 하늘은...내가 표현해내고자 하는 그 무엇을 항상 닮아있다.강하게 쬐어오는 볕에 눈부셔 이모든 광경들이 한줌의 꿈인듯 보여지는 이 풍경을 보면서 비로소 나는 현실로 깨어나게 된다.우리는 언제나 모든 사물에 대중적인 관심을 부여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들을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가지려 하고 모두의 생각하는 것들을 내 생각인양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걸 알면서도 할수없지 뭐.. 라고 채념하며 따라가는 우리들이 아닌가..자.. 사색을 통해 만들어진 창밖을 보자.내가 꿈을 그리면 하늘은 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비록 현실은 창문안의 세상에 있지만 창문 밖은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피난처요 안식처인 유토피아가 펼쳐지지 않을까?사각틀에서 벗어난 누구의 꿈이라도 넉넉하게 담을만한 무한성...꿈꾸는 사색의 정원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2018-01-10 작가노트-투영

투영

탈피를 꿈꾸다번데기의 변태. 탈피..일상또 다른 세상 속으로의 날개..짓!번데기의 편안함 또한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굳이 하늘을....탈출 하다껍질을 버린다.. 알몸으로 돌아 간 다는 것=선택된 순간과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용기모든 고정관념을 깨져야 하는 것인가?고정관념은 항상 깨여져야만 한다는 고정관념!탈피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흐르긴 싫다..탈피의 선택!! 투영 되다.유리속의 투영된 굴곡지고 일그러진 형상들바로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투영된 모든 것들이 본질을 보여 주지 않듯이 다른 이의 시선에 의한 내 삶은 정당화 되어 설명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다.사진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는가?그림은 원형의 것을 재현하는 것에 충실하고 있는가?유리잔에 놓여 진 사물들 다소 인위적 배치. 이러한 상황에 가장 직접적이고 설명적인 순간의 보존 사진.그 위의 작은 변화..작은 것들의 꿈틀거림..작가! 그림을 그리다.

2018-01-10 작가노트-공주의 눈물
공주의 눈물..

사과를 생각하면 우린 먼저 세계를 움직인 3대 사과를 떠올리게 된다. 아담과 이브가 따먹었다는 금단의 과일이었던 원죄를 상징하는 [이브의 사과].. 근대 초기 스위스의 독립운동 시 윌리엄 텔이 독일인 관리의 강제 하에 아들의 머리위에 사과를 얹은 후 화살로 맞춰 스위스 독립운동에 불을 당겼따 해서 혁명과 자유를 상징하는 [윌리암 텔의 사과].. 근대 과학의 선구를 이룬 뉴튼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했다 해서 과학을 상징하는 [뉴턴의 사과].. 여기에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 한 개를 사람의 여신 아프로티테에게 줌으로써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해서 분쟁을 상징하는 [파리스의 사과]도 있다.이렇듯 단순한 과일하나에도 많은 역사가 있고 의미가 부여된다. 나는 이런 현실론적 역사적 매개체의 한 분야가 아닌 상상속의 사과를 말하고자 한다.즉 [백설 공주의 사과]라는 다소 비 현실성에 근거를 둔다. 소설의 허구라는 바탕에 나의 상상력을 더한다. 어릴적 누구나 한번쯤 읽었을 법한 소설 백설공주,,,!!!모든 역경을 이겨낸 사랑스런 존재,,, 그러나 그 소설 어디에도 남성의 부도덕함은 나타나지 않은다. 공주를 돌봐 줘야 할 왕의 존재감 없는 무기력함은 소설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공주는 모든 것을 운명처럼 여기고 견뎌내는 길뿐.. 아무런 자발적 행동을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소설은 왕의 무능력함을 철저히 숨긴체 여성이 여성을 비방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그려내게 된다. 불행한자도 여성이고 불행을 조성하는 자도 여성인 것이다.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이런 소설을 읽고 성장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어릴적 동심을 잃어서?? 아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그것이 여성의 삶이라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모든 역경을 견뎌야만 하는 여성..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왕자님이 나타나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거라는 믿음!! 신데렐라가 그러하며 콩쥐팥쥐가 그러하며 또 다른 많은 소설들이 이와 다르지 않다.. 여성의 적은 여성으로...이 어리석고도 끝없는 불행의 매개체는 [독이든 사과]이며 나의 상상력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는 페미니즘에 기인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사과의 표피만을 정확하게 그릴 뿐이다.얇은 붓질을 반복함으로써 사과의 표피를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표현한 뒤 의미를 부여한다.단 그 사과에 맺힌 물방울이 독인지 아니면 공주의 눈물인지 단지 사과의 싱그러움만을 더 해주는 이슬의 맺힘인지는 관객의 판단에 달려있다. 더더욱 그 사과의 표피 속에는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는 표현도 되어있지 않을뿐더러 ‘이속은 이렇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벌레를 품었는지 달콤함을 품고 있는지...아무것도...작가는 표피만을 그릴뿐이다.우리는 이러한 표피만을 가지고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를 둔다. 사람의 외모, 집, 소설의 해피엔딩, 화려한 옷차림...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화려한 겉과 속.. 이런 보이지 않는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판단의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다. 단지 사과의 싱그러움과 현실적인 색감만을 보고 잘 그려졌다는 판단도 표피속의 물방울의 의미도 모두 관객의 몫이며 이런 이중성은 나의 자유이며 방종이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중에서 하나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대중의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즉 관객들로 하여금 자율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문을 살짝 열어 두고 그 많은 해석중 작가가 원하는 바를 살포시 더 해 줄뿐이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커뮤니케이션이며 그림에 대한 작가의 작은 방종이며 또한 단순히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의미를 공유 할 수 있는 한 방법인 것이다..작가는 표피만을 그릴 뿐이다..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