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부드러운 집 - 천만번의 거주
부드러운 집 - 천만번의 거주

<부드러운 집>는 3196장의 캔퍼스천에 내 모습을 새긴 후 서로 이어 붙인 것으로, 하나하나가 나 자신이자 내 몸이며 집이고 방이다.  강하지 않지만 찢어지지 않는 캔퍼스 천를 붙여 나가는 긴 시간의 공정은 결코 쉽지 않은 치유의 시간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 관객을 초대하여 함께 공감하고 이 느낌을 공유하고자 한다. 인간의 존재를 회복하고 서로를 보듬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객들은 내 모습이 새겨진 3196장의 캔퍼스천을 제치고 부드러운 집 안에 들어가 앉아 자신만의 시간으로 느끼며 내가 나를 치유했듯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기회가 되기를 원한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많은 부분을 앗아가는 지금 이 부드러운 집은 인간의 존재성을 회복하고 서로를 보듬는 공간으로서의 치유의 공간이 되고자 한다.
 
김예경
김정연이 <부드러운 집>은 아이러니한 작업이다. ‘집’ 작업을 시작한 시기, 그녀의 집, 김정연은 이것을 나의 자연이라 부른다, 그 집에는 ‘폭풍우’가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녀의 집에 폭풍우는 늘 불고 있었다. 그녀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생겨난 오랜 내적 갈등, 혼인한 여인, 아이를 가진 여성이 새로운 가족과 마주한 또 다른 난관. 그것의 간난신고(艱難辛苦, 몹시 고되고, 어렵고, 맵고, 쓰다).1)  이 고어는 단순한 좌불안석이 아닌, 감각의 총체를 통해 김정연이 느낀 고통의 중량을 표출하기 위해 저자가 빌어온 표현인데, 그 어떤 표현도 작가의 맘을 깊이 파고들지는 못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자면, ‘고통’이란 그런 것이다. 결코, 소통할 수 없는 것, 더구나 말로는 안되는 것. 이것을 김정연은 예술로 표현코자 하며, 여기에 묵언의 ‘집’을 세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작가가 세운 것이 폭풍의 집이 아닌, ‘부드러운’ + ‘집’이라는 것이다. 두 단어가 조합된 것은 분명 무의식적인 발로이다. 즉, 스스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 절로 툭 튀어나온 것이고, 거칠고, 찌르는 듯한 삶 너머의, 작가 기원해 마지않는 부드러움을 담은 것이다. ‘부드러움’을 김정연에게 상상만으로도 ‘치유’를 연상하게 하는 단어다. <부드러운 집>에는 산산이 부서진 자신, 잃어버린 ‘나’를 회복하기 위한 긴 인고의 시간이 담겼고, 이 과정은 3196개의 자화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제 관객은 누구나 천을 들고 <부드러운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내부는 치유의 공간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모두의 타인을 ‘맞이하기 위한’ 그녀 삶의 ‘축제’의 공간이다. 축제가 단순한 환희의 장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일면만을 떠올린 것이다. 축제의(festival)의 원형은 카니발(carnival)이다. 바흐친에 따르면 죽음과 삶이 순환하는 곳, 존재론적인 재생의 장이 카니발이다. ‘닫힌 공간’이기에 ‘열린 공간’. 인과론적으로 엮인 모순의 사유 형태를 그로테스크를 이 작업에 담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내적 싸움을 + 처음의 재료는 고무라텍스가 물질적인 상상력과 신체적인 긴장감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였다면, 2020년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를 보낸 이 시점, 완숙한 나이에 들어선 작가에겐 그것이 강목으로 변화되었다.
 
김정연의 Installation <부드러운 집>
김정연의 Installation <부드러운 집>

여러 번의 작품 활동을 지켜보았고 <2019 SEOUL ART EXPO>(2019.4.26.-4.28/코엑스) 전시에서 작가를 조우한 후 서울특별시 전시기획 공모당선작 작가로 선정되어 개최하게 된 <돈의문-풍경 속을 거닐다> 展에서 작가를 다시 만나 작품에 대해 질문하였다.

평면, 입체, 설치 등 전시 형태에 따라 작품이 개별적이다. <부드러운 집>을 제목으로 공유하는 작품 내에서도 다양한 영역의 작품들이 존재한다. 이 작품들을 꿰뚫는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내 작품은 나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진행되었기 때문에 모두 내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대의 돌 조각에는 세상을 향해 열정에 넘치는 젊은 날의 모습을, 30대의 돌 조각에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느낀 내 몸과 마음이 담겨 있다.

재료나 전시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내 몸과 마음을 통해 기억되는 결과물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집은 내 작업에 어떤 형태로든 일관되게 등장하는 소재로, 2-30대의 돌 조각이나 최근의 브론즈 작업에도 등장한다. <부드러운 집>은 결혼 후 살아온 10년 세월의 집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집-시간 속에서의 거주>는 3312일을 상징하는 3312장의 라텍스 천에 내 모습을 새긴 후 서로 이어 붙인 것으로, 하나하나가 나 자신이자 내 몸이며 집이고 방이다. 강하지 않지만 찢어지지 않는 재질의 고무 라텍스를 붙여 나가는 긴 시간의 공정은 결코 쉽지 않았던 고난의 10년을 치유하는 시간으로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일상에 대한 은유로서 부드러운 집 속에서 내 삶의 시간들에 대한 치유와 숨 고르기가 내 작품들을 꿰뚫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관객들은 내 모습이 새겨진 3312장의 라텍스 천을 제치고 부드러운 집 안에 들어가 앉아 3312일을 자신만의 시간으로 느끼며 내가 나를 치유했듯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기회가 되기를 원했다. <부드러운 집> 제목의 다른 작품들은 조금씩 다양한 모습들의 작품들이 일상에 대한 자전적 서사를 표상하듯 개별성을 지니나 이들이 또 하나의 거대 작품을 이루는 데 반하여, 이 작품의 경우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 관객을 초대하여 함께 공감하고 이 느낌을 공유하고자 하였다. 또한 가족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거주하는 집의 의미나 형태가 무너져 가는 현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를 회복하고 서로를 보듬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부드러운 집> 시리즈 중 평면 작업들은 서로 다른 재질의 물질이 한 공간 안에 서로를 경계하는 듯한 팽팽한 균형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런 긴장감이 좋아 눈여겨보았다. 이런 일련의 경향들과 다르게 위의 작품은 다른 특징을 뿜어내고 있다. 집을 구성하는 상징적 형태와 집의 의미,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평면으로 입체로 또 설치작업으로 펼쳐지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나의 집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디지만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것 같다. 현재는 치유의 힘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 자신에서 가족으로, 다시 치유를 통한 공생을 꿈꾸는 작가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자궁의 질의 여성성, 모성적 이미지의 공유 - 삶과 예술의 유토피아
자궁의 질의 여성성, 모성적 이미지의 공유 -  삶과 예술의 유토피아

‘여자는 사람의 삶을 지탱해주는 대지와 풍요로운 생간과 온갖 문화 창조의 표상으로 ’생명‘의 동의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김지하

김정연은 삶과 예술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녀는 여성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고 동시에 한남자의 부인이며, 교사이며 조각가인 아이덴티를 가지고 있다. 김정연은 가장 자신에게 근접된 소재로부터 작업한다.                                                                                                                                                                                                               자궁과 질…작가는 그 모든 정체성을 내포한 여성적이면서 모성적인 작업을 통하여 타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작가가 추구하는 모성적 여성성은 절망과 아픔을 감싸 안고 희망을 가지며 건강하게 새로운 생명과 세계를 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여성성은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 여성의 육체는 더욱 탈 외설화되고, 탈식민지화된다.작가는 여성으로서만이 경험할 수 있는 임신과 출산이 금기가 아닌 당당한 표현임을 알린다. 그녀의 이미지들은 대상화되거나 상품화되지 않고 건강한 감각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욕망의 신체, 쾌락으로서의 육체, 억압적 관계로서의 여성성으로 등장되는 페미니즘적 시각이 아니라 딸아이를 키우며 
그 아이의 질을 닦아주면서 모성적 여성관을 깨닫게 되는 김정연의 일상적 삶의 정체성을 말한다.

자궁과 질은 주로 가장 은밀한 깊숙한 곳으로 드러내거나 보여지기 터부시된 것들이나 김정연은 당당히 자궁과 질을 드러내어 보여준다. 자궁이란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곳이며 질은 타자의 세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생명잉태의 진입로로서의 역할을 한다. 김정연은 돌기와 축축함, 주름으로 된 그러나 총제적으로 부드러운 질감의 촉각적 느낌을 질을 무겁고 딱딱하지만 동시에 부드럽게 표현될 수 있는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표현한다. 작가는 돌의 질감을 이해하고 2, 3톤의 무게를 지닌 돌의 거친 외관 안에 숨겨진 부드러운 내면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며 잠재된 생명력의 속성을 내보낸다. 그것은 돌과 작가의 일체감을 말하며 작가의 지각과 느낌과 표현이 돌이라는 자연적 사물에 전달되고 공유되어 이미지라는 또 다른 생명체가 탄생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조각가들은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돌을 고르는데 김정연은 돌의 내면적 속성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충주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선택하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돌과 작가가 일관성과 일체감을 가지며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작가와 자연의 물질인 돌 사이에는 진정한 일관성이 존재하여 그들이 합일해서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발견하는 것이다. 
돌과 작가의 상호소통은 모든 사물과 인간들이 다른 다양한 차이를 통해 파편화 된 부분이 아니라 전체 가운데 일체 됨이라는 속성과 성질임을 일깨워준다. 

넓이 250cm, 120cm의 분홍색 대리석의 질 이미지는 자연석이 반으로 잘려져 옆 부분은 그대로 두고 위에서부터  자르고 다듬어져 만들어졌다.이 질은 잎맥처럼 묘사되어 주름 잡혀있고 돌출된 융기의 부분들은 섬세한 점으로 묘사되었다. 거칠게 돌을 파고 부드럽게 깎아내 수많은 수작업의 사포질과 정질을 거쳐 완성한 질은 조각가와 돌이 함께 한 공동생명체의 결과로 강하고, 거칠고,부드럽고, 온화한 에너지들이 조화롭게 교류된 것이다.
흰색 충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자궁은 야외에 설치되어 햇빛과 함께 당당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자궁은 질의 형태보다 조금 더 넓고 완만하게 표현되어 분홍빛 어린 질에서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주름 역시 더욱 깊고, 부드럽게 처리되어 중앙에 놓인 둥근 태아를 풍요롭게 감싸고 있다.
 주름의 융기를 햇빛으로 그 모습 하나 하나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중앙의 둥근형태로 된 태아는 빛을 발하고 있어 작품은 자연의 생명만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의 일체 됨인 영혼의 빛과 같은 내면적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주름의 유기적 형태는 드러나는 세계, 숨어있는 세계와의 경계를 말하며 유동적으로 움직여 다른 밖의 세계나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응축하기도 하며 보호한다.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뿐만 아니라 내면의 감정으로도 주름은 변하며 반응을 보인다. 미워하거나 증오하면 수축하고 굳어지며 외부세계에 강력한 경계를 표시하고 친절하거나 사랑 받는 것을 느낄 때 주름은 느슨해지며 완만하고 부드럽게 변한다.
 식물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자궁의 주름은 생명체처럼살아있어 인간생명잉태를 뛰어넘어 생성과 소멸이라는 총체적 유동 세계를 암시한다.

 김정연의 주름은 자궁과 질뿐만 아니라 작품 전반적인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인간과 우주, 무생물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를 연결하고 우주의 전체가 어느 부분 요소와도 연결된다는 프랙털처럼 구체적인 소재를 감싸며 전체를 환기시킨다. 주름은 자궁, 질, 눈, 유방, 서랍, 집이라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와 연결되어 부분을 전체로의 연결로 유도한다. 이 요소들은 주름의 틈 사이로 구상적이거나 기하학적인 형태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차갑고 딱딱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구상적 형태는 주름의 구멍과 틈을 통한 외부와 소통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된 관습, 관념의 실체로 명백하게 드러난 형체의 자립만큼이나 독립된 부분으로 존재됨을 말한다.
 근대 이후를 지배한 기계의 존립방식과 같이 외부에 의해 강요된 집합 조직으로서 암시된 구체적 형태는 스스로 움직여 관계 맺는 생명의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김정연이 구상적으로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부분 개체들은 주름을 통해, 주름의 틈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주름은 더욱 최대한 내부와 바깥과의 많은 접촉과 완전한 관계소통을 위해 울퉁불퉁한 구조와 무수한 숨구멍으로 표현되었다.
김정연의 작업은 유기체적 생명체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본질과 다름 세계가 소통하여 희망적으로 변화되는 세계를 말한다. 여성의 가장 구체적인 아이덴티의 부분을 통해 거대한 우주와 자연관과 맥을 닫게 하여 우리세계는 하나의 유기체로 굴러간다는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질이 상징하는 부드러움, 섬세함, 따뜻함의 모성적 본능은 거칠고 험난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삭막한 세상을 여행하며 관계를 맺음으로 결국 여성적, 모성적 본능과 더불어 승화된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 김미진

시적사유로 찾아낸 삶의 결 - 김정연
시적사유로 찾아낸 삶의 결 - 김정연

- 글/김가현(미술공간 現 기획실장, 성균관대 겸임교수)

 작가 김정연은 동시대의 조각에서 전개 되고 있는 재료와 형태의 통상적인 규율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편안하게 시도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작품 안에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무리한 비약 없이 안정적이고 평온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집'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완성시킨다. 
   80년대 후반부터 그녀의 조각에서 꾸준히 보이고 있는 ‘집’ 형태는 작가의 작품과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집이란 모티브가 가지고 있는 장소의 내러티브가 극대화 되고, 꽃, 나무, 별과 같은 정적인 요소들이 김정연의 리품에서 등장한다.

  근래의 그녀의 작업들은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담담하고 소박하면서 서정적 균형감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한 힘이 느껴진다 

현재 김정연 작가의 화두는 자연이다. 자연을 닮은 산수화, 자연을 닮은 사람, 자연스러운 삶을 담아내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작품 형태와 방식도 다양해 졌다. 특히, 크고 작은 송판들을 마치 모자이크 하듯 하나의 전체 화면으로 조합해 그 표면을 일정하게 처리한 다음, 그 위에다 우리의 산수화, 풍속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기는 부조 작업과 동화적 스토리텔링이  강하게 느껴지는 「풍경 속을 거닐다」 시리즈가 눈에 띈다. 「풍경 속을 거닐다. 사람과 자연을 잡다한 이야기와 관련 짓지 않고 순정(純正)의 요소들로만 환원시키는 솜씨는 궁극의 지점에서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좋은 작가는 물질과 자기 마음을 따로 이야기 하는 법이 없다.
 그녀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은 재료의 선정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작가는 시간이 되면 황학동 시장을 돌고 돌아 낡은 목재들을 구해온다. 작가가 선택한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소재들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 보다는 어떤 기억의 기록들이다. 사람의 손이 백만 번 어루만져진 질박한 목재들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세월의 두께만큼 닳은 결들은 소멸이 아니라 채워진 시간으로 변신한다. 

   조각가의 힘은 자연을 단순히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닌 생명력울 지닌 별개의 것을 만드는 것에 있다. 
   평이한 일상 속에 삶의 결을 찾아내는 그녀의 정교한 손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의 내적인 진동을 포착하게 해준다. 
   작가는 시적 사유와 단단한 정신으로 그에 걸맞은 작가적 성취를 일구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