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1-11 작업노트-종손 며느리이셨던 어머니는..
작업노트... ...

종손 며느리이셨던 어머니는 명절이나 집안 잔치가 있으면 허드렛일이 많으셔서 항상 먼저 가서 일을 하셔야하는 터라 날 곱게 단장해주질 않으셨다.
고까옷 곱게 한복을 입고 아얌까지 쓰고 다음 날 온 사촌들 틈에서 나는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때론 때를 쓰고 울기까지 했으나 친척들이 많은 터라 아무도 내게 맘을 써주질 않았다.
나는 그때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골무나 복주머니, 전통보자기를 가까이 두고 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작업실에서 백일몽을 꿨다. 전날 나는 아버지를 땅에 묻고 왔었다.

그때 나는 자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눈을 뜬 채 꿈을 꿨다 
그 순간 작업실 바닥에 놓여 있는 작은 골무 하나를 발견했고 
지평선 위에서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처럼 
오로라 같은 기운을 뿜어내며 솟아있는 붉은 골무 하나에 마법에 홀린 듯 얄궂게도 빠져있었다.
 
그때 태양은 창문 틈사이로 내려앉고 있었고 알싸한 공기는 을씨년스러움과 적막감으로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일 년이 흘렀다. 죽을 것 같던 그리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화선지에 쉼 없이 발림을 해야 온전히 그 색을 발현하는 수행과 같은 채색 작업. 
반복적인 덧 칠 작업에 눈물이 나서 할 수가 없었다.
 
불현 듯 백일몽이 생각났다.
아름다운 것... ... 
화려하고 고운 색들... ...
손끝으로 만져지는 촉감들... ..
사각 사각 가위소리... ..
사각 사각 가위소리... ...작업이 즐겁고 행복하였다. 
슬픔도 잘려나가는 듯... ...
수없이 가위질을 하고, 수없이 붙이고, 
내 기억의 조각들도 가위질로 도려내어 
새롭게 배열되는 듯 착각마저 들었다 ..
 
공간과 공간을 생각하며... ...
때론 빗소리를 들으며... ...
때론 바람소리를 들으며... ...
음악의 공명 현상에 마음이 내려앉는 날도 많았지만, 차분하게 마음을 담을 수가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이렇게 작업을 통해서 마음의 치유를 찾았고, 나의 마음에도 골무 하나쯤 간직되어 아픔에도 요령이 생겼다.
나의 그림은 ...
화가의 삶이 어땠는지 몰라도 그저 참 예쁜 그래서 그 작품을 온전히 소화했다는 안도감이 드는 작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