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1-11 작가노트-보자기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한 소통방법
보자기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한 소통방법

  예술 언어는 문자언어나 음성언어가 표현하기 힘든 심미적이고 미묘한 인간  내부의 감성이나 사고 등을 전달하고 소통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특별히 회화와 같은 시각예술을 살펴보면 선이나 색 혹은 명암과 같은 조형요소뿐만 아니라 그러한 조형요소가 만들어내는 형태나 이미지가 상징하거나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회적 의미나 심리적 정서까지 환기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 것을 많은 미술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본인은 이러한 이미지의 상징 작용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미지의 상징 작용을 통한 시각예술 언어의 소통 가능성에 대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때 다른 언어체계와 달리 이 시각예술 언어만이 갖는 차별화된 소통영역이 무엇일까에 대해 범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이 배태하고 있는 감성이나 정서 혹은 의미, 가치와 같은 비언어적 범주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이에 본인 자신이 지역적, 민족적으로 한국인이라는 것과 생물학적, 성적으로 여성이라는 것이 본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는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주요한 검토 대상으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를 함축하는 상징적 이미지를 찾는 과정에서 보자기 혹은 보따리로 불리 울 수 있는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 보자기라는 것은 그 자체가 보관수단이자 전달수단이기에 언어에 있어서 정보의 저장수단이자 전달수단이 문자인 것처럼 보자기는 소통 그 자체를 상징하는 물체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보자기의 상징적 의미의 껍질들을 읽어나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 이미지가 상징하는 정서 혹은 의미의 영역을 중심으로 이 상징적 이미지가 갖는 예술언어적 소통의 내용과 범위를 고찰하는 것을 주제로 하여 연구를 수행 하게 되었다.
  보자기는 본래 단순한 실용도구에만 그치지 않고 종교적 염원과 바램을 위한 주술적 도구이자 예절과 격식을 갖추기 위한 의례용 도구이기도 하다. 보자기를 살펴보면 천위에 복(福)이나 수(壽)와 같은 글을 넣어 행복과 장수를 비는 주술적인 소망을 담기도 하고 십장생, 용, 봉황 등과 같은 품위와 격 그리고 멋을 위한 소재로 여러 가지 색채와 문양을 넣기도 한다. 그러므로 보자기 그 자체가 기호와 상징 그리고 색채와 장식으로 구성된 예술품이자 주술적 도구이며 예를 갖춘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살펴보면 선물을 보낼 때 선물에는 보내는 사람의 마음까지 담아 보냈던 것처럼 보자기라는 물건은 운반을 위한 수단이자 동시에 마음의 소통 도구였던 것이다. 

- 작가노트 <본인 석사논문 국문초록 발췌> 2010 -

2018-01-11 작가노트-본인의 회화 작업에 관하여
본인의 회화 작업에 관하여...

 회화는 예술가가 직접 체험한 세계, 또는 간접적으로 체험한 기억들과 관련하여 현실과 이상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예술이라고 할 때, 본인이 연작으로 다루고 있는 작업의  테마인 ‘The Precious Message'라는 명제를 선택하게 된 것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적 정서를 배경으로 한 사물을 주목하고 이를 접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는데 특별히 보자기를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보자기에 담긴 의미를 상상하게 되면서 이 명제를 사용하게 된다. 이 시대는 글로벌라이제이션화 되어있고 빠른 현대문명의 사회에서 동서양 문화의 경계가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작업의 근간은 오리엔탈적이고 한국적인 요소에 그 뿌리가 있다. 옛 선인들의 공예품, 도예, 자수, 민화 등 동양미의 탐구를 통해 우리의 아름다운 우리문화를 사랑하고 발전 시켜왔다. 세계적인 것을 따라 가는 것보다는 우리 고유의 것이 세계적일 수 있기에 본인은 이러한 소재로 작품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디지털 기반의 현대사회에서 옛 우리 물건의 아날로그적인 생활의 도구들이 지금은 오히려 소수화 되었지만 다른 한편 그렇게 소수화 되었기에 귀한 것이 되고 명품으로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산업문명이 발달하면서 대량생산 체제가 되고, 1회용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간은 자연에 가해자가 되고 있는 시대이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 정성으로 빚어내던 시절의 것들은 이제 추억의 물건으로만 남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물건들은 여전히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한다. 본인의 작품 소재로 등장하는 보자기 또한 그러한 감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령은 이 보자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준 바 있다. 

“자본주의는 물건의 소유형태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자, 장롱, 창고 등은 자본주의가 낳은 알들이다. 소유할수록 그 상자는 커진다. 집도 커다란 상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본주의의 발달은 움직이는 상자를 만들려는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단순한 소유의 축적이 아니라 그것을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밖으로 운반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시장의 원리가 생겨난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가방을 만들었고 한국인(동양인)들은 보자기를 탄생시켰다. 가방의 원형은 상자다. 그러니까 들고 다닐 수 있는 상자가 곧 가방인 것이다. 즉 가방의 원형은 궤짝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손잡이를 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을 많이 넣었을 때나 적게 넣었을 때나 혹은 아예 물건을 넣지 않았을 때라 할지라도 가방 자체의 크기와 형태는 변하지 않는다. 들어있는 것과 관계없이 가방은 어디까지나 가방인 것이다.
 하지만 보자기는 그 싸는 물건의 부피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또 물건의 성질에 따라 그 형태도 달라진다. 때로는 보자기 밖으로 북어 대가리 같은 것이 삐져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사주단자처럼 반듯하고 단정하게 아름다운 균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풀어버리면, 그리고 쌀 것이 없으면 3차원의 형태가 2차원의 평면으로 돌아간다. 가방과는 달리 싸는 물건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네모난 것을 싸면 네모꼴이 되고 둥근것을 싸면 둥글어진다.
 가방과 보자기의 차이는 단일성과 다의성(多義性)이라는 기능면에서도 드러난다. 가방에 걸리는 동사(전문용어로는 촉매작용이라고 한다)는 ‘넣다’이지만 보자기는 ‘싸다’, ‘쓰다’, ‘두르다’, ‘덮다’, ‘씌우다’, ‘가리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도둑이 ‘쓰고’ 들어와서 ‘싸 가지고’ 가는 것이 보자기이다. 그러다가 철조망에 긁혀 피가 흐르면 이번에는 그것을 끌러 ‘매’면 되는 것이다. 복면도 되고 가방도 되고 붕대도 된다. 
 이 융통성과 다기능. 만약에 모든 인간의 도구가 보자기와 같은 신축자재의 기능과 컨셉으로 변하게 된다면 현대의 문명은 좀더 융통성 있게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도구, 모든 시설들이 가방이 아니라 보자기처럼 디자인되어 유무상통(有無相通)의 그 철학을 담게 된다면 앞으로의 인류 문명은 좀더 인간적이고 좀더 편하지 않겠는가. 보자기에는 탈큰대화의 발상이 숨어 있다.”

 본인은 작업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의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형태의 안정성, 시각적 집중성, 그리고 주제의 의도를 잘 전달 할 수 있는 색채의 혼합이 어우러져 나타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빛과 어둠의 묘사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화면을 눈부시게 장악한 빛의 느낌은 그만큼 대상이 가진 색상을 밝고 화려하게 만들기에 이에 집중하여 표현하였다.
 본인의 회화작업 중에서 일부 비정형 캔버스를 사용하여 작업하게 된 것은 사각의 틀을 벗어나 본인의 의도에 따라 새로이 작품의 경계를 임의적으로 편집함으로써 고정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려 했다. 규정지어 지지 않은 대상형태의 실루엣을 그대로 사용하여 작품을 배경화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제작 기법을 통해 작품의 다양성을 주고자 하였으며 명료하게 묘사되는 보자기라는 재현적 주제가 전시공간과 교감하며 더 큰 화면으로 융화되도록 만든 것이다.
 본인이 선택한 “The Precious Message" 라는 주제는 전시 공간 속에 던져진 하나의 메시지일 수 있으며 보자기로 덮여서 직접 볼 수 없으나 눈앞에 제시된 관객과 대화를 위해 준비된 메시지인 것이다. 이렇게 표현된 작업은 한국적 감성과 극사실적인 표현의 조합을 통하여 서양적 회화 재료 위에 동양의 정신적 신비로움을 표출하고자 한 것이며 작가의 내적, 외적 상황을 동시대 미술의 형식과 조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조형적인 면에서 보면 정신적 내면의 세계가 작업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가를 표현방법에서도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본인은 진정한 한국적 조형미를 찾기 위해 다양한 표현방법을 끊임없는 연구하고 작업해 나가면서 그 과정을 통해 한국 고유의 회화적 조형성을 찾아나가고 이를 견고하게 키워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이것은 작가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며 동시대 미술 흐름에 민감하면서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거리두기를 하며 본인의 고유한 창작 이념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회화를 하는 작가로서 동시에 한국의 예술가로서 회화에 대한 본질적 문제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2007년. 작가노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