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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Korean [퀸] 우수수 가을비가 내 꿈 깨울 줄 알았더라면
우수수 가을비가 내 꿈 깨울 줄 알았더라면 ···

 북반구의 가을은 빗방울 속으로 잠입한다. 그때부터 작가는 순례라는 이름으로 방황을 시작한다. 빗줄기는 사선으로 영혼의 숨통을 치고 높이 띄운 꿈은 날개도 없이 포물선을 그리며 상심의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비 오는 어느 날, 뱅뱅 사거리 달리는 차창 너머로 피어오르는 회상의 추억들, 내 청춘의 레지스탕스는 빗방울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화가 김영남의 '비의계절' 시리즈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작가의 망막에 어린 사물은 심상에 의해 또 한 번 굴절되면서 내면의 울림을 자아낸다. 영혼의 광기로 귀를 잘라버린 고흐의 눈에 비친 풍경처럼. 가을비의 상념이 길어 올리는 잔상들은 청춘의 색다른 모습이다. 조각난 청춘을 퍼즐로 맞추어가듯 작가는 흠집 가득한 기억의 물상들을 떠올린다. 상처 받은 영혼의 순수는 상실의 깊이만큼 화폭에 드러난다.

 그의 그림은 질퍽거리는 삶의 수렁에서 감정을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서 도피해 화폭에서 관조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림이 고통을 치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통의 심연에 빠지게 하고 비애미의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인물화에서도 그런 회상의 이미지를 통해 삶으로 빠져든다. 
 인물화 속의 여인들은 유물처럼 간직한 사랑에 앙금이 내려앉아도 결코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 없다. 그 사랑의 찬란한 스펙트럼 속에 길게 드리운 이별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을까. 젊은 작가의 인물화는 단순한 미적 대상을 뛰어넘어 불면의 밤을 보낸 갈등과 화해의 기록이다. 세상의 고독과 모순에서 벗어나 순수를 지향하는 미의식은 배경이 되는 장미와 인물의 심성과 일치한다.
 추상화된 배경 속에 등장하는 어떤 여인은 노천명 시인의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보는' 혹은 가을바람 소리에 슬픈 기억에 잠기는 모습이다. 늘 지금처럼 행복을 꿈꾸지만 그 행복은 말풍선처럼 맴돌다가 사라진다. 그런 인간의 모습이 작가에게 수많은 사유와 아포리즘을 제공했다. 회한 서린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우수수 가을비가 내 꿈 깨울 줄 알았더라면/ 창문 앞에 벽오동 나무 심지 않았을 것을...;
                                                      퀸...이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