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장생(長生)으로 나타난 삶-고충환
장생(長生)으로 나타난 삶

고충환 (미술평론가)

 김영선의 그림은 캔버스나 종이 등의 바탕 위에 바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바탕화면을 충분히 조성한 연후에 그리는 식의 이중과정을 거친다. 이는 보기에 따라 바탕화면만으로도 그 자체가 완결된 추상회화를 연상시킨다. 이로써 그림은 바탕화면으로 나타난 추상적인 면 구성과 그 위에 덧 그려진 구상적인 그림이 서로 어우러져 유기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띠는 점은 일상성이란 주제의식을 들 수 있다. 즉 근작에 와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 주변 풍경으로부터 소재를 취한다. 주변 호수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공원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음으로 인해, 근작은 다소간 추상적이고 양식화된 화면으로 나타난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삶의 현장성에 밀착돼 있다. 그림 속에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적인 풍경과, 건강한 삶을 염원하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수와 벽사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풍속화와 민화의 동시대적인 한 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를 장생타령이라고 부른다. 즉 그림 속에 일정한 염원과 기원을 함축하고 있는 작가의 그림은 순수한 형식논리와는 비교되는 의미론적이고 서사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내용이 있는 그림, 메시지가 있는 그림인 것이다. 인물, 거북이, 해, 산, 물, 오리, 거위, 닭, 새, 개, 소나무, 괴석, 꽃 등의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실재하는 것들로부터 취해온 것이면서, 이와 동시에 그 자체 장생에 대한 염원을 그 속에 함축하고 있는 상징의 한 형태로서 도입된 것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화면 속에 일정한 구역이나 구획된 장이 나타나는데, 이는 대개 원형의 형태로 현상한다. 그림 속에서의 원형은 달이나 호수와 같은 실경을 위한 공간이면서(실제의 풍경으로부터 소재를 취해 와서 이를 재구성한), 이와 동시에 작가의 관념, 즉 세계관이나 가치관 등의 작가가 세계를 보는 관점이 투영된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서 작가는 달이나 호수 속에 다 여타의 기원을 암시하거나 소망을 상징하는 자연 소재를 담아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호수나 달 역시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다른 소재들과 마찬가지로 장생타령의 주제에 접맥된 친근한 소재로서 도입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영선의 근작은 면과 면이 어우러진 콤포지션과 다중적인 면 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사물의 특징을 최소한의 선으로만 축약 표현한 선 그림이 그 위에 덧 그려진다. 이는 전통적인 서예에서의 필법과도 통하며, 그 자체 대상의 특징적인 면만을 개략적으로 표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치한 묘사를 통한 대상보다도 더 생생한 실재감을 준다. 이로써 작가의 그림은 추상적인 화면구성과 모필 사생에 의한 구상적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는데 , 이와 함께 근작에서는 적묵과 발묵 (선염법)과 같은 수묵기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렇게 그려진 작가의 그림 속에는 원근이 없다.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들은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고, 선후도 없고, 경중의 차이도 없다. 대신 소재들은 평면적으로 나열되거나, 열거되며, 그 모두가 등가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거북이 속에 삶의 정경이 들어와 있고, 꽃잎은 그대로 호수가 된다. 이처럼 작가가 그려 보이는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세상, 주와 객의 차별이 없는 세상은 그대로 김영선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인 윤(輪), 공생, 그리고 장생과 통한다. 돌고 도는 삶, 더불어 사는 삶, 건강한 삶이 별개의 것일 수 없음을 말해준다.

                                                                             
                                                                   개인전 서문 중에서
휴(休)를 넘어 직지인심(直指人心) - 최동춘

휴(休)를 넘어 직지인심(直指人心) - 최동춘

 김영선(金榮善) 작가는 18번째 작품전을 갖는다. 그 동안 ‘장생’을 주제로 작품을 해왔으나 이번에는 관조를 통한 ‘휴(休)를 넘어 직지인심(直指人心)‘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의미하는 휴(休)의 범주는 피로한 심신의 회복을 위한 휴식 또는 어느 한 생각을 전환하기 위한 사색이 아니며, 마음이 고요하고 허정한 가운데 자연을 관조하며 자신의 마음을 곧바로 보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사유관을 말한다.    
작품의 주요 소재는 그 동안의 작품에서 일관성 있게 등장하고 있는 소, 강아지, 닭, 오리, 새, 거북이를 비롯하여 인물, 구름, 달, 바위, 산, 소나무, 꽃, 자전거 등이다. 이러한 소재는 작가의 일상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의 작업실 창가에는 소나무가 드리워져 운치를 더하고, 조석으로 새들이 지저귀며 때로는 열린 창문으로 작업실에 들어와 그림속의 새에게 부리를 조아리며 이리저리 유희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새가 입에 물고 있던 꽃잎을 푸른 바위 앞에 떨어 뜨렸네” 라는 선혜 선사의 게송에서 또는 하루 일과처럼 산책하는 길목에서 작품의 소재를 만난다.

 

 

그의 창작의 중심은 무엇보다 산책과 사색 그리고 작업, 이 세 가지가 반복 연결되어 원을 형성하는 서클(순환)의 일상이 원형적 조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원형구도의 작품이 특이하게 역동적 힘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소재의 형태를 변형 왜곡하여 그리는 데포르메(deformer)기법을 사용한 표현이다.  

즉 화면에서 한 조각의 구름을 확대하거나 산. 바위. 오리 등의 형태를 한 획으로 화면에 가득히 극대화 및 축소하여 변형 왜곡한 형태의 표현을 볼 수 있는 해학적 미감이다.  

이 특징을 더욱 확장시킨 점은 선묘 표현의 운필법에 의한 전통서예의 강약과 완급의 장법에 기인한다. 또 다른 해학적 미감은 화면의 인물표현이 새와 함께 어우러져 한결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표정이다.  

여기서 새는 시간과 공간의 상보적 전달자로써 작가의 메신저와 같은 상징적 매개체로 대부분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오랫동안 작가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으로는 전통재료인 모시베와 삼베를 이용한 실뜸 기법이다. 그 모시삼베 기법은 바탕하면을 조성할 때 삼베와 모시베를 무작위로 잘라서 조형을 안배하여 배접지 위에 붙인 다음 다시 한지를 밀착시켜 삼베조각과 성긴 올의 질감이 드러나고 이중 삼중 겹쳐진 다중적인 면구성과 깊이를 느끼게 한다. 색채는 삼베의 적절한 중간색을 사용하여 왔으나 이번에는 밝고 강렬하면서 서정적인 색감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미감은 역대 고승들의 선어록을 통한 사유관에 기저를 두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가끔 『육조단경』, 『벽암록』 등 선승들의 법어를 보고 들으며 대자연과 하나 되어 고요히 관조하는 휴(休)와 공감을 한다.  

이 때 그의 마음은 담백하고 간결하며 자연스러움이 충만하여 ‘본성의 참 모습’인 청정심이 생동한 기운으로 화면 위에 유동한다.
그는 산책 중 창공에 떠 있는 한 점의 구름 밖의 구름, 달 밖의 달을 바라보면서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청정심이 작품에 천품(天品)으로 더욱 발현되길 기대한다.

 

최동춘 (예술철학전공,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