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플라스틱 메커니즘의 미래적 상상_김성호 미술평론가
플라스틱 메커니즘의 미래적 상상 
김성호(미술평론가)

이익렬의 이번 전시 주제, ‘자본주의의 시스템(Systems of Capitalism)’은 묵직하다. 마치 사회학 총서의 제목처럼 들리는 이 주제는 미술가의 전시 제목으로 내세우기에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주제는 도시 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모색해 온 그의 회화를 설명하는데 있어 제격이다. 무겁고도 진지한 이 주제는 그의 이전까지의 개인전 주제들을 한꺼번에 아우른다. 기계 문명과 관련된 용어들(Machine begins , 1987 / Phantom of machine, 1989 / Machine smoke, 1990)뿐만 아니라 도시 풍경과 연관된 주제들(Cityscapes NY, 2013 / Cityscapes SEOUL, 2013) 그리고 인간과 자본주의 사회와 관련된 키워드들(Memories of Systems, 2014 / Personality vs Sociality, 2015 / BLUE PLANET, 2015)은 이익렬의 회화들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맞물리게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에고이스트 예술가 
보라! 속도감 가득한 포뮬러 원(F1)자동차 경주 장면들과 질주하는 레이서들, 운전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대의 도시 풍광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인들 그리고 현실의 건축물로부터 상상의 옷을 입은 가상 도시와 그곳에 거주하는 마래인들은 화가 이익렬이 만드는 ‘자본주의의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거듭한다. 

그렇다! 그의 회화에서 발견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도시적, 기계적 그리고 가상적인 풍경들과 뒤섞여 있는 인간을 주목하면서 더욱 명징해진다. 그 인간은 공동체의 의무로부터 탈주하는 ‘자본주의 인간’이자, 사회 공동체를 위한다는 목표 아래 이전 시대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제는 개인의 유익을 위해 긴급히 소환되는 ‘개인주의적 인간’이다. 아인 랜드(Ayn Rand)는 “자본주의란 모든 재산이 개인에게 귀속되는 소유권을 포함하는 개인권이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는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인 랜드의 자유주의 사회철학적 관점의 자본주의란 결국 인간으로부터 도출되는 권리론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이타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이기주의를 표방한다. 즉 자신의 신체와 지적 능력을 소유할 권리인 ‘자기소유권’과 더불어 자발적으로 재산을 습득할 권리인 ‘재산권’과 같은 이기적인 목적을 정정당당하고도 자신감 있게 드러낸다. 

“예술가는.. 세상 사람들 중 가장 에고이스트이고 나르시시스트이며, 자신만의 유희를 즐길 줄 아는 마니아, 오타쿠, 히끼꼬모리들이기도 하죠. 이는 세상을 바꾼 많은 난 사람들과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이익렬의 이러한 진술은 아인 랜드가 자기소유권과 재산권을 행사하는 권리론과 개인주의적 인간을 주창하면서 자본주의를 옹호했던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이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 담론은 상업자본주의(16세기), 산업자본주의(18세기 후반), 독점자본주의(19세기), 수정자본주의(20세기 후반)를 거쳐 오늘날 ‘다국적 자본주의’ 혹은 더 나아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터널로 변화무쌍하게 변모한지 오래되었다. 우리는 이 전개 기간 동안 대자본의 횡포, 중소기업의 도태, 실업자 증대와 같은 독점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를 반면교사로 삼는 사회주의가 등장했던 사실 또한 기억한다. 이익렬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시스템’은 근대적 자본주의 개념으로부터 오늘날 수정자본주의 개념으로까지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달리 말해 그의 회화는  ‘지독한 자유주의적 회화 개념’으로부터 ‘소수의 자본 수익을 견제하는 집단적 회화 개념’에 이르기까지 개인주의와 사회주의 개념을 오가면서도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거시적 테마를 일관되게 유지한다고 하겠다: “내 그림에서의 시각적 복잡성은, (중략) 거대한 룰에 의해 유기체로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System)으로서, 인간의 절대적인 신뢰와 완벽한 유토피아를 상징합니다.”

기계 역학적 회화와 플라스틱 메커니즘
이익렬의 회화는 개념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시스템’, 조형적으로는 ‘유기체로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를 복잡다단하게 그러나 ‘자유로운 표현’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가장 빠르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그리기’라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 찾아내고 그것에 무한 신뢰를 보낸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그리기의 속성을 유지하는 일을 “마치 한계로 달리며 슬립(Slip)하기 직전의 가장 빠른 상태를 유지하는 자동차”와 비유하면서 “표현방법으로서의 조절의 미학”을 탐구하는 중이다.  

실제로 그는 캔버스 화면 위에 자동차를 그린다. 구체적으로 F1과 드라이버, 랠리카들의 이미지들을 표현주의의 빠른 붓질로 속도감 있게 화면 위에 밀어 올리면서 역동적인 화면의 가능성들을 다양하게 탐구한다. 스포츠카들이나 레이서들의 외형은 붓의 스트로크나 물감의 중첩을 통해서 배경과 한데 뒤섞이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유령처럼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뿐인가? 자동차의 야간 조명과 도로의 주변 풍경이, 헬멧을 쓴 레이서와 흙먼지가 흩날리는 주변 풍경이 수시로 오버랩되면서 사물과 배경뿐 아니라 공간과 시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즉발적인 상황들을 연출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러한 창작 태도에 근간한 그의 회화를 ‘기계적 회화’ 혹은 ‘기계 역학적 회화’(Mechanical Painting)로 부르고자 한다. ‘기계적’이란 용어를 움직임과 운동성을 탐구하는 ‘기계 역학(力學)적’이라는 용어로 살피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의 회화가 정밀한 기계 부속들의 연결과 정합한 네트워킹을 설계도면처럼 건조하고 차가운 방식으로 탐구하기보다 마치 기계의 몸체에 수혈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기계를 나아가 기계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한 때의 청년기의 경험이 야기한 인간 불신(不信)이 인간 대신에 이와 같은 기계 역학적 회화에 천착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에 대한 본원적인 관심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동차나 비행기 등 플라스틱 모델을 꾸준히 조립해 오면서 SF 영화나 만화를 그려온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이와 같은 기계 역학적 회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이익렬은 최근 회화에서 어린 시절의 공상과학적 몽상과 가상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소환하여 자신의 작업으로 소화한다. 로봇의 몸을 입은 사이보그 자화상, 우주에 떠 있는 미래 도시, 최첨단 과학 기지와 같은 건축물 등 공상과 상상은 성인이 된 지 오래인 작가의 마음을 언제나 설레게 한다. 가히 ‘플라스틱 메커니즘(Plastic Mechanism)’이라 부를 만하다. 번역어로 ‘소성(塑性) 원리’로 불리는 이것은 “고체가 외부에서 탄성 한계 이상의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이 없어져도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이러한 플라스틱과 같은 합성수지 매체가 견지한 물리적인 ‘비가역성(非可逆性, Irreversibility)’은 그의 회화를 미래 지향적 상상으로 지속적으로 이끈다. 
더불어 플라스틱이 의미하는 ‘가짜 또는 인조 같은’ 의미는 결국 보드리야르의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허구로서의 시뮬라크르(Simulacre)”의 미학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유념할 것은 어린 시절의 유희였던 상상놀이가 자신의 작품 정신으로 연동되는 이러한 미래적 상상이란 이익렬의 작업에서 비교적 최근에 펼쳐졌다는 점이다. 또한 그의 최근의 상상놀이가 지니는 이중 함의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의 회화가 견지하는 이중적 함의, 즉 도시 풍경과 자동차 사이에서 정주(定住)와 이주(移住)의 본성을, 또한 도시 풍경에서 개인성과 사회성을 그리고 상상의 미래 도시에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견인하는 역설적인 조화와 대립의 메시지를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러한 이중 함의가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발현하면서 미래적 상상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부언할 것이 있다면, 이러한 이중 함의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접점에서 아직까지는 유토피아의 분위기를 더 많이 전해주는 까닭은 작가 이익렬이 풍경 디자이너, 카 레이서, 모터 칼럼니스트라는 다양한 직업을 아우르면서도 본업을 평소의 ‘잉여(剩餘)’에 관점에서 미술가로 정초한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_최철주 평론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

- 최철주 평론가

이 그림의 구조는 섬세한 형태의 세밀한 차이를 구별하는 체계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지로 반복되었던 전체적인 이미지와 질서의 이미지이다.
따라서, 그림의 체계는 이미지의 구조적 관계의 집합이지만, 정해진 원칙에 따라 틀에 박힌 순서의 전체적인 형태이다. 
시스템에 있는 별도의 형태의 그림은 구조를 형성하는 그림을 형성하는 서브 시스템이다.
조직화된 조직의 구조로 구성된 조직화된 사회적 영역을 구성한다. 지난 시대에 남긴 구조물은 도시이다.
이것은 건축 구조에 형태를 남긴다. 
이 공간은 그 시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시대의 배경은 시스템에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어진 도시의 모습은 도시의 현상을 보여 주지만, 그것은 인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익렬 씨는 회화 체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이것은 질서의 형태를 형성하기 위해 구조 회의에서 시작된다. 
그는 컴퓨터와 같은 도시에서 그림을 그린다. 
이익렬 씨는 도시의 복잡한 구조를 회화 체계로 표현함으로써 도시 구조의 구조를 체계화한다.
도시의 이미지를 구조의 형태로 전달하기 위해, 그는 예술 구조에 접근하기 위해 도시의 풍경을 그립니다.
이것은 관계적인 그림으로 구조된 구조물에 연동되어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 전시회에서 이익열 씨는 도시 내에서 건축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회화 체계의 구조가 구조를 형성하고 도시를 형성하는 그림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 시스템은 회화 시스템의 구조에 있어 가시적인 구조의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그림은 실제적인 화법으로 사라지고, 그 도시는 상징적인 이미지의 인상에 걸려 있다.다시 말해, 인상적인 도시의 이미지는 그의 욕구를 표현하는 듯한 인상적인 도시 이미지로 해석된다.
그는 빛과 그늘의 무대를 보여 주는 현실주의와 전통적인 인상의 범주에 남아 있다.따라서, 그는 도시 인상의 영향을 회화 시스템의 관계와 관계가 있는 주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그림의 목적이 아니라, 도시 인상으로서의 그림의 대상이다. 따라서, 그는 과거의 인상적인 인상을 뒤집어 놓았을 때 인상적인 도시 인상을 그릴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도시 인상에 대한 도시의 인상을 동등하게 표현한 건물 이미지의 구조를 말한다.
그는 전통적인 인상의 틀을 뛰어넘는 상징적 구조를 초월한다는 개념에 따라 그림 시스템의 그림을 그렸다.그리고 그의 인상은 도시의 현실을 둘러싼 구조화된 건물을 칠하고 있다.
이익렬의 작품세계_하늘에서 본 New York 의 이야기는 화려한 색채의 기표로 뒤 덮혀 있다
하늘에서 본 New York 의 이야기는 화려한 색채의 기표로 뒤 덮혀 있다. 도시는 거대한 벽이며 개인소외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가상과 실재가 모호해진 동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익렬 작가는 열정적 감성체계를 도시공간 속으로 드러내며, 타자의 개념으로 채색된 평면 속에서, 침묵의 도시를 심리적 공간으로 대체시키며 미적 향수자로 우리를 초대한다.
화려한 영혼의 빛깔로 탈주하는 이익렬작가의 유목적 기질은 물질문명을 가로지르며, 거대욕망의 도시를 몽환적 실화로 기록한다. 동시에 현대인의 현주소를 확인하고자 하며, 자기존재에 대한 장소적 개념으로서의 실존을 지시하고 있다.
도시의 문맥 속에서 인간주체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미학적 구원을 꿈꾸며 문명의 그늘을 탈주하고자 하며, 여명과 황혼을 동시에 노래하는 구조적 모순세계를 시대적 감수성으로 회복시키고 재구성하려는 성숙된 문명의 낭만주의자다.

김문기 - 화가, 미학자
작품세계_Systems of Capitalism 에 부쳐
이익렬의 작품세계.
Systems of Capitalism 에 부쳐.

2016, 2 김문기 - 화가, 미학자

하늘에서 본 New York 의 이야기는 화려한 색채의 기표로 뒤 덮혀 있다. 도시는 거대한 벽이며 개인소외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가상과 실재가 모호해진 동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익렬 작가는 열정적 감성체계를 도시공간속으로 드러내며, 타자의 개념으로 채색된 평면 속에서, 침묵의 도시를 심리적 공간으로 대체시키며 미적 향수자로 우리를 초대한다.
화려한 영혼의 빛깔로 탈주하는 이익렬작가의 유목적 기질은 물질문명을 가로지르며, 거대욕망의 도시를 몽환적 실화로 기록한다. 동시에 현대인의 현주소를 확인하고자 하며, 자기존재에 대한 장소적 개념으로서의 실존을 지시하고 있다.
도시의 문맥속에서 인간주체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미학적 구원을 꿈꾸며 문명의 그늘을 탈주하고자 하며, 여명과 황혼을 동시에 노래하는 구조적 모순세계를 시대적 감수성으로 회복시키고 재구성하려는 성숙된 문명의 낭만주의자다.
.이익렬은 카 레이서다운 몸짓으로 도시의 중심에서 탈 영토화 하는 우주적 감성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질주(탈주)하고자 하며, 세계정복의 미학과 무한우주를 향한 새로운 영적공간을 확장하고자 한다. 도시의 이미지가 긍정적 정감속에 포섭되고있으며, 현대문명의 소용돌이 속에 침전되어 있는 유년의 유토피아를 끌어올려, 작가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모더니즘 이후의 도시적 삶을 기억의 저편으로 이동시키며 이상향의 도시를 무의식적 향기로 창조하고자 한다. 도시를 품는 이익렬 작가의 감성은, 서정적이라기 보다는 완성한 내면의 에너지를 화려한 색채로 환원하여 분출시키고 있으며, 문명의 기호를 새롭게 배치하고자 한다.
자기 지시적 현실주의자로서 기존 문화개념을 해체시키며 허무적 관객으로서 시각이 아닌 충만된 도시의 내재율을 표면화시키고 있다. 정치권력과 경제사회적 도시코드를 시각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예술가다. 시대 방관자로서의 문화코드가 아닌 적극적 문화게임으로서 자동차 경주를 하듯 새로운 휴머니즘의 차이를 화면에 구축시키며 도시의 실존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한다.
.익명의 시선으로 자본주의의 메카니즘 속에서 새로운 역할놀이에 빠져있으며 긍정적 기후를 창출하는 작가의 정체성은, 무한한 빛의 변주를 스케치하는 순발력을 보이고 있다.
모던사회의 자기중심적 자아를 넘어서, 상생의 자기증식과 접속을 꿈꾸며 새로운 도시의 상징을 기호화 하는 낭만적 색채들의 이야기를 위해, 자동차.. 우주선등.. 보이지 않는 타임머신을 그의 작품 속에 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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