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3-12-09 이상하 작가노트

세상에는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신을 찾아 표현하는 작가도 있고, 생활하는 가운데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서 표현의 대상을 찾는 작가도 있지만 나는 단호하게 어느 쪽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스스로가 잘 익어 원숙하지 못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뭐 어떻든 간에 어깨에 힘을 빼고 천천히 느긋하게 그러나 굳건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로 가능한 많은 양의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만은 확고(確固)하다. 

이런 생각과 태도로 세상을 향한 관심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새를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살펴서 얻은 것들을 양분(養分)으로 글을 쓰고 이미지를 생산하는 생활로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하고 있지만, 나는 작품으로 예술가를 자처하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바람직한 쪽으로 삶을 실천하자고 말하는 평범한 이웃이다. 

많은 작가가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시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할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은 그림그리기(작업)일 것이고,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동시에 자신을 발현(發現)하며 확장(擴張)시키는 일일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작가라는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온전한 자신을 만들어가고, 그림으로 온전하게 살아가며 그렇게 온전한 자신을 세상에 내놓아 세상에 한 축에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이다. 

2023-12-09 기지와 유희로 가득 찬 유쾌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나는 지난 개인전에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마주치고, 소비되는 호박, 사과, 브로콜리 등의 평범한 채소와 과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확대 재생산하는 작업을 보였다. 이러한 대상의 확대는 작업을 하는 나는 물론이고, 관객들에게 즐겁고 유쾌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작품의 유쾌함을 증폭시키기 위해 밝은 색상의 유리 타일을 작품의 표면에 접착하는데, 이로써 작품은 단순히 대상을 모방하는 조각에서 멈추지 않고, 일상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유희와 행복을 표현했다. 

 

선보이는 양 시리즈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작품들은 기지와 유희로 가득 찬 유쾌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당나라 때 시인 두보의 '春夜喜雨(춘야희우)'라는 시에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이란 구절이 있다.

 

좋은 비는 계절을 알고 내린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내 작품들이 두보 시에 호우(好雨)처럼 좋은 비로 세상과 만나게 하고 싶다.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도 좋고, 우리네 고단한 삶을 노래하고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작품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작품들이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 안에서 사람들에게 조그만 위안과 휴식을 주고 행복한 느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진실하고 좋은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들이 모여서 세상을 움직이고, 그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좋은 세상이 만들어 질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는 오늘도 작업실로 간다. 

- 이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