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2-07 작가노트

순수한 자연물은 비닐 주머니에 담긴 채 우리에게 투명하게 보여지지만 그 얇고 투명한 막은 그 안에 담긴 생명다움을 억압하고 외부세계와 단절시키는 장막(帳幕)으로 표현된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왠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움을 자아내는 유기체(有機體)들을 봉한 비닐 주머니는 생명의 숨을 가로막고 인간과 자연의 진실한 소통을 방해한다. 껍질을 벗기면 단물이 뚝뚝 흐르는 과육이 실은 유일한 진실이겠으나, 우리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백 날의 햇살과 바람, 끈임 없이 흘렀을 구름의 유희를 헤아리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진실이란, 화려하고 세련된 포장지에 따라 그 가치가 간단히 검증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있어 개인의 모든 경험은 하나의 정보체계로 데이터화 되어 사회 속에서 상품화 된다. 개인의 가치는 학벌, 연봉 뿐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의 단편, 진정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 인간을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
마주한 이 갑갑한 현실을 통해, 봉해진 채 세상으로부터 가치 측정되고 있는 생명의 진정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날 것> 그대로의 생명다움을 바로 보기를 원하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 들린다. 자신 안에 도사린 그 소리, 그리고 혁명적인 외침으로써가 아닌 소박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을 통해 세상에 대한 서글픈 유머와 냉소를 담담히 교차시켜 놓는다.
개인적인 역사에 근거한 내적 사유와 고백을 주머니 안에 담고 그것을 외부에서 관조하며 그것들과의 소통과 화해를 나누고자 하는 나의 작업은 세상과 자신 사이에서 진정한 소통을 갈구하는 또 다른 열망의 표현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