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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7 Korean [아름다운 휴休]나무에 구름이 듯, 먹빛에 담은 숨결 오견규 화백
나무에 구름이 듯, 먹빛에 담은 숨결 오견규 화백

한유진(아름다운휴[休] 디자인&공연예술)

"안녕하세요? 오견규 선생님!"
"안녕하세요? 유진씨!"
담장을 타고 인사가 오간다, 화가는 가끔 하늘을 보러 장독대가 있는 손바닥만한 옥상에 올랐다가 옆집 디자이너와 인사를 한다. 디자이너 역시 몇 집 건너에 있는 사직곤원의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으러 뒷문을 열고 나왔다가 화가를 보고 인사한다. 광주천 변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옛날 집들에 나란히 사는 이웃인 까닭이다.
오견규 화백 아내 되시는 분의 태를 묻었다는 양림동의 구불구불 오래된 골목들은, 도심 속의 시골 동네 같다. '밤이면 별처럼 꿈을 쏟아내며 작은 그릇 생생히 숨쉬는 삶을 채워나가기'에 더없이 좋은 동네라서일까?
화백은 짤랑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골목 골목을 건너서 화실에 간다. 
가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금방 자전거를 세우고 안부라도 묻고, 
40년이 넘게 바뀐 적이 없는 골목들도 점빵들도 선 낯 하는 곳이 없다.
76년도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선생을 찾아가 그림을 하겠다고 떼를 쓰다시피 했을 때, 선생은 이랬다고 한다.
"문 열고 들어오는 것 보고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한 후 입대하여 월남에 파병되었던, 그의 곤궁하고 황폐한 행적이 몸 언저리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아산 선생은, "마음을 희게 비우고 수행하는 자세로 그림을 시작할수 있겠느냐?"고 거듭 물은 후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 후 그의 삶은 동양화의 여백처럼 비워나가는 작업이었다.
그는 낮게 나는 새이다. 낮은 산, 낮은 언덕, 뒤꼍 언덕배기 대나무 밭 위를 나는 평범하고 오래된 텃새이다. 그의 그림 '비상을 위하여'에서처럼거칠고 고단한 논바닥을, 삶의 터를, 조용하고 묵묵하게 날며 아침을 맞는다. 축축한 새벽 안개에 젖은 대지는 그의 오랜 구도의 스승이자 화답자였다.
그는 스승처럼 깊어지는 먹색과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닮았으되, 이제 나무에 걸린 한 점 구름처럼 자유롭다. 꺼릴 것 없는 분방한색과 형태는 이미 그의 세계가 구축되었음을 말해 준다. '예술가는 자신의 조형원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해 왔던 것처럼, 산은 옛 산이고 물은 옛 물이되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 남도의 붉은 황토 흙과 5월의 연두빛으로 짙어가는 초원은 눈부신 색채감을 띄며, 둥글고 못생긴 낮은 산들과 어울려 진한 먹의 향기 속으로 뛰어 든다. 때로는 강한 대비를 이루며, 때로는 담채로 수수하게 스며들며, 이제 화가는 조용하게 숨어 자적하는 삶만이 아니라, 오히려 즐겁게 뛰노는 삶을 가르쳐줄 양이다.
스승을 모시고 일주일에 한번가는 목욕과, 여덟살 터울의 아내를 열심히 사랑하는 일과, 그저 묵묵히 그림 그리는 일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오견규 화백, 그의 그림이, 긔의 삶의 여백이, 사람들에게 
' 오랜 쉼 ' 이 되기를 염원한다.


2018-01-17 Korean [광주매일]인간 우선의 철학에서 빛나는 고요
인간 우선의 철학에서 빛나는 고요,

평범의 미학_김영순기자

수묵화가 오견규씨
"백년하청". 황하의 물은 백년이 지나도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누군가'가 왜 백년하청이냐고를 묻는다. 황하는 흙탕물이라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그때서야 고개를 갸웃하며 왜냐고 되뇌이게 된다.
왜 황하는 백년이 지나도 맑아질 수가 없을까. 그 누군가인 수묵화가 목운 오견규씨는 고요하면 맑아질 수 있는데 계속해서 출렁거리기 때문이라고 선문답을 한다. 정말, 그 간단한 답을 미처 찾지 못하는, 범인일 수밖에 없는 기자에게 선생은 말을 잇는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사람이 엮어가는 인생사도 같은 원리라며 잔잔잔 미소를 얼굴 가득 담아낸다.
고요하면 깨끗해진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불변의 사실 만큼이나 진리다
그러나 고요해지고자 하면 고요해질 수 있는가가 문제다. 고요해지고자 하는 마음 조차 일지 않은 사람들은 평생 탁하게 보내야 하는가. 그런 엉뚱하고 잡스런 생각을 애써 몰아내며 선생의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쓸쓸할 정도로 고요하기 짝이 없다. 화면 가운데로 난 들길을 따라 등을 보이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들판에서 스산한 바람을 버티며 타고 있는 모닥불, 하물며 풍경소리에 화들짝 잠이 깨는 홍매화조차도 정적미를 발한다. 그 고요가 단순히 고요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
할 말은 무수히 많은데 그 잔가지를 다 쳐버리고 단순하게 쓱 들이미는 함축된 시어다. 이를 두고 모 컬렉터는 철학이 배어나는 그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목운은 철학의 빈곤, 아니 부재시대에 철학을 뭉근하게 작품화시키는 작가다.물질이 판 치는 현대에 오롯이 삶의 정신적 가치를 높이 치켜세우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덴 정작 본인은 행복했다. 마치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장미를 운명처럼 사랑하는 어린왕자처럼. 그리고 자신 때문에 힘들었을 주위 사람에게 자신의 철학과 인생관을 전염시키고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버린 마법사이기도 하다.
다시보니, 악한 기운이라곤 티끌도 없는 그의 사람 좋은 얼굴이 그림과 동치된다. 그림 여기저기서 스멀 스멀 흘러 나오는 그 맑고 고운 기운은 결코 계산된 것이아니다. 홍진에 묻혀 살면서도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 그의 정갈함이 그림에 반영됐을 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고 철학의 무게감이 더욱 크게 다가든다.
지난 해 그는 큰 사고를 당했다. 월남전에 투입됐던 장교출신인 그는 스포츠맨. 평소 먹을 갈고 장대붓 휘둘러 희디 흰 화선지에 문자향이 그윽한 수묵화가완 얼른 연결되지 않지만 알고보면 그는 다이내믹한 부분이 강하다.
수십년간 즐겨온 등산길에 암벽에서 추락한 탓에 허리를 크게 다쳤고 몸이 망가졌다. 옴쭉달싹 못하고 입과 두 손만 쓸 수 있는 상황이 돼버렸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누구보다도 깊이있게 이해해주고 좋아해주는.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한 딸애가 울며 몇번이고 확인했던 말은 "그래도 작품은 할 수 있죠?" 였다. 목운은 '당연하다'며 웃었다. 제스처가 아니라 정말 그랬다. 실망은 커녕 오히려 이제 꼼짝하지 말고 작품만 하라는 뜻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후 거짓말처럼 그는 회복을 거듭해 다시 걷게 되고 조금은 불편하나마 일상생활을 거뜬히 하고 있다. 예전처럼 변함없이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 일상으로의 복귀에 성공했다. 사고와 회복기간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 해찰을 하며 살아왔지만 더욱 더 많은 해찰을 해야겠다고. 풀어헤쳐 살핀다는 뜻의 해찰(解察)철학의 심화를 다짐한다. 산을 오를 때도 달랑 산만을 오른다는데 집착하지 않는다. 골짜기에 내려가 두손으로 달디 단 물을 퍼서 마셔보기도 하고 바위에 걸터 앉아 바람의 간지러움을 즐기는가 하면 바위나 나무 등걸에 소소롭게 싹을 틔운 가녀린 풀들의 소리없는 아우성도 들어본다. 물론 예전에도 그렇게 했지만 그 증세의 악화를 은근히 즐긴다.
자연과의 친화 놀이에 온통 마음을 뺏긴 목운은 툭 던진다.'포정해우'고사다. 포씨란 백정이 소를 잡는데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어 미행을 나온 제왕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잘 하느냐고. 얼마전까진 칼을 부러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나 지금은 칼을 갈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비결은 고기의 결을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인위가 아닌 무위자연이 최고다. 어찌 사람이 하는 일이 자연의 순리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있다. 무엇을 하건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인 아산선생은 늘 말씀하시곤 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람이 되면 무엇이건 다 보인다는 걸 이순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며 목운은 허허로운 웃음을 날린다.
"그림은 손이 아니라 마음과 철학으로 그려야 한다" "문인화는 소재에 앞서 그리는 이의 정신세계가 중요하다""그러면서도 부단히 관념의 벽을 허물고 현대적 리얼리티를 지녀야한다" 등등이 작화태도에 대한 그의 변이다.
편안함도 그의 작품이 내보이는 맛깔중 하나다. 평범한 것 속에서 작품을 잡아내기 때문에 그러리라. 들꽃처럼 살겠다는 그의 칼칼한 의지가 번잡스럽기 그지 없는 이 시대에 그만의 독특하고도 청아한 수묵의 세계를 열어가는 에너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글=김영순기자yskim@kjdaily.com
2006년 5월 18일 목요일 광주매일 GWANGJU ARTIST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