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미적 자유함을 내재한 빨래판의 명상과 관조-장준석
미적 자유함을 내재한 빨래판의 명상과 관조

장준석(미술평론가)

 최근의 한국 미술은 참으로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나 부산비엔날레와 같은 설치 미술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등 여러 형태의 미술들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미술이 다양하게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염려스러운 것은 한국 현대 미술에 외국의 작품들과 유사한 작품들이 주저 없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작품들은 자신만의 독창성을 지닌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작가들은 세계화를 운운하고 있을지라도 작품의 예술성과 독창성 측면에서 볼 때 일단 작가로서의 함량에 미달된다고 할 수 있다. 
 남의 것을 흉내 내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과의 예술적 싸움이 부단히 전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필자는 작가 오성만의 작품 세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오성만은 빨래판 작가로 알려져 있다. 빨래판은 우리 삶의 향수를 독특한 이미지로 담고 있는 생활필수품이라 하겠다. 오성만은 이 빨래판에 새로운 미적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수년간에 걸쳐 전개시키고 있다. 이는 빨래판에 여러 이미지들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쉽지 않은 까닭은 단단한 나무 재질을 깎고 다듬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성만은 빨래판 하나하나에 많은 시간을 쏟아 새로운 형상과 이미지를 담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힘든 예술적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가적 창작 행위는 적당히 시각적인 효과만을 노리고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는 좋은 대조를 보인다. 
 이처럼 작가가 힘든 작업을 꾸준하게 전개시키고 있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작품 창작에 있어서의 진지함이라고 할 수 있다. 빨래판이라는 쉽지 않은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이미지화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단한 노력에 의한 것이다. 빨래판이 지니는 한국인의 서민적인 삶의 정서가 훼손되지 않고 미적으로 승화되어 어딘지 모르게 우리들의 삶의 일부분인 듯한 공존의 존재감이 드러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기에 오성만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막걸리의 투박한 맛과도 같은 텁텁한 이미지들을 담고 있어서 한국적이며, 거기에는 남다른 순수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조형감이 함께 하고 있다. 빨래판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질을 미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면서도 오브제의 재질감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보는 이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정형과 비정형이 한데 조화를 이루면서도, 반추상적인 형과 기하학적인 형상들이 한국화 되어 물질의 본성을 살리면서도 은근하다. 작품 속에는 마치 온돌방이 주는 듯한 따스함과 평온함, 친밀함, 포근함 등이 담겨져 있으므로 마음 깊숙한 곳에 흐르는 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이러한 미적 감성은 특히 오성만의 기하적인 형태 속에서 잘 드러난다. 빨래판을 바탕으로 구성된 요소들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자유자재로 배열되고 표현된다는 점에서 매우 상황적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정서와 부합된 오방색 계통의 조화를 통해 색다른 회화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빨래판 안에 공존하는 주걱 형태의 이미지는 형상과 비형상의 자연스러운 조화로서, 작가의 손에 의해 무한히 변화가 가능하다. 부드러움과 딱딱함이 조우하기도 하고, 선과 면 그리고 점과 원이 빨래판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이루며 변화되는 상황적인 틀은 순간적이면서도 영원할 수 있는 오메가이자 알파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좀처럼 반복될 수 없을 듯이 나무 사이에 단단하게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또한 무수하게 변화될 수 있는 무한의 운동자가 되기도 한다. 빨래판이 지니는 물결의 일루젼 속에서, 혹은 하나의 붉은 점 속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마음의 환상이자 환영이라 할 수 있다. 
 대화중에 오성만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듯이, 그의 손은 마치 마이더스의 손처럼 닿기만 하면 작품이 되는 듯하며, 그만큼 그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평면과 입체가 따로 없이 그의 삶에 스치는 어떤 것들도 형상화 될 수 있으며 따뜻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늘 새로운 조형언어는 미적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의 진지한 작업태도에서 비롯된다. 빨래판에 한국인의 삶의 이야기를 세월의 흔적과 함께 담아내는 그의 예술세계는 독특하다. 화면 전체에는, 풍부한 감성이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되는 자유로움이 있으면서도 빨래판과 같은 소박함마저 담겨있다. 이는 주변에서 보아왔듯이 단순하면서도 막연한 관념의 작품이 아니라, 빨래판이라는 하나의 틀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새롭게 인식하고 해석하며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기에 오성만의 작품세계는 소박하고 흥미로우며 욕심 없는 자유함을 내재하고 있다. 그의 예술적인 원동력은, 부지런하고 건강한 예술적 삶을 출발점으로 하여 새로움을 찾아 고민하는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