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몽현주기화의 창안자 - 벽강 류창희

<몽현주기화의 창안자 - 벽강 류창희>
  벽강 류창희 화백은 ‘몽현주기화(夢顯宙氣畵)’의 창안자이다. 몽현주기화란 꿈을 형상화하여 우주의 기를 조화롭게 화폭에 담아내는 방식을 말한다. 또한 벽강은 복식(服飾)문화에서 따온 ‘배래기법(한복의 저고리 배래부분에 은은하게 비치는 속살의 모습)’으로 스며듦과 배어듦을 통해 독특한 원근법을 개발하였다. 배래기법은 그의 작품에 골조격으로 등장한다. 벽강의 작품들은 한국의 고유색이자 음양오행을 나타내는 오방색을 활용하여 그만의 독특한 색채 감각으로 토속과 전통의 미감을 자아내고 있다.
 
  벽강 류창희 화백은 정형화된 고정된 세계를 거부하고 대상물을 재구성하고 변형시켜왔다. 강렬하고 독특한 색채를 거리낌 없이 쓰면서 활달하고 섬세한 붓놀림으로 강함과 부드러움을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하는 벽강의 작품 세계는 그동안 변신과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 동안 벽강이 추구해왔던 작품 세계는 대략 다음의 일곱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 정신적인 내면의 세계를 뜻으로 나타내고자 사고의 전환과 의식의 변화를 시작하였던 ‘탈피’의 시기이다. 두 번째, ‘꿈’ 단계부터는 주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왔다. 즉, 해와 달이 동시에 등장하고 근경(近景)과 원경(遠景)이 한데 어우러진다. 세 번째, ‘상생’ 단계에서는 색채를 개발하고 보완하면서 조화를 이뤄내는데 중점을 두었다. 네 번째, ‘윤회’ 단계부터 벽강은 삼층석탑을 등장시켜 삼생(전생, 현생, 후생)이라는 불교적 시간의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특히 핵심적인 표현요소들을 화면 위에 입체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다섯 번째, ‘우담바라’ 단계는 자연풍광을 독특한 꽃으로 형상화하여 재구성한 시기였다. 여섯 번째, ‘우담화'단계에서는 호분(胡粉: 조개가루로 만든 흰색 가루)을 활용해서 벽화의 느낌이 나도록 하여 그가 창안한 배래기법을 확장시켜 나갔다. 일곱 번째로 최근의 ‘수미산’ 단계는 작품의 구성 요소가 더 치밀해지고 색채가 화려해지면서 감각의 다차원적인 접근을 꾀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벽강의 작품에서 꿈은 영감을 내며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림의 주가 되는 것은 우주의 에너지이다. 영혼과 육체가 회복되고 치유되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함과 행복의 상태가 되고, 더 나아가 일을 할 수 있는 힘이나 능력을 되찾으면서 이로써 결국 삶의 기쁨을 온전히 즐기고 누리고 나누는 것이 바로 21세기가 지향해야 할 건강의 새로운 개념일 것이다. 벽강의 그림은 바로 이러한 건강의 개념을 지니고 치유적 그림을 짜 올리고 있다. 꿈을 통해 광활하고 원대한 우주적 치유의 에너지를 끌어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이 바로 ‘몽현주기화(夢顯宙氣畵)’이며, 그리는 이나 보는 이에게 모두 작품 속에 담긴 강한 기의 흐름이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미산에서 무궁으로 - 시아 박정혜(문학치료학 박사)

수미산에서 무궁으로 - 시아 박정혜(문학치료학 박사)

소란스러운 고요, 정제된 혼용, 검은 백색, 밝은 어둠, 날카로운 부드러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원들은 팽팽한 대립 속에서 융화를, 융합 속에서 대치를 꿈꾼다. 마치 달이 차고 이울듯이 온갖 대극들은 한데 어우러지는 반전을 향해 가슴을 내민다. 이런 섭리들은 사실 낯설지 않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안고 살아나가고 있다. 이 모순들을 비집고 들어가 보면, 경계를 초월한 세계를 만난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있는 텅 빈 곳, 그 비어있는 채움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벽강(碧江) 류창희(柳昌熙)의 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경계 안의 차원으로 진입하고 있다. 해와 달, 산과 물, 근경과 원경,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자리에서 절대 고요의 기운이 어린다.  

그곳은 존재와 비존재를 뛰어넘는 곳이어서 단언하자면, ‘근원의 곳’, ‘에너지의 발원지’가 된다.  

 사상가 켄 윌버(Ken Wilber)는 진실하고 참된 미술 곧 가장 높은 차원의 미술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첫째, 미술가의 영혼의 성장 혹은 성숙은 그것이 우주적 영혼과 합일화가 되고,  

분리된 자아 또는 개별적 에고를 초월하는 바로 그 지점까지 도달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영적 측면에 대한 미술적 묘사 또는 표현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그와 유사한 영적인 통찰력을 일깨울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벽강은 자기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영혼의 성장을 꿈꾸는 작가다. 그것은 작품 세계의 변모를 통해 알 수 있다. 벽강의 작품은 1986년부터 시작하여 대략 3~4년을 주기로 해서 변화를 추구해왔다.  

구상에 충실해 오던 이전의 작품에서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사의하고자 했던 ‘탈피’단계, 시공간의 초월을 추구했던 ‘꿈’단계, 삼생(전생, 현생, 후생)과 삼시(어제, 오늘, 내일 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의미와 함께 오방색으로 새로운 채색의 바람을 불어넣던 ‘윤회’단계, 색채를 개발하고 보완하면서 오방색을 더 활발하게 원용했던 ‘상생’단계, 자연과 만물을 포함한 우주의 기운과 각 개체들을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뤄내는 ‘우담바라’단계, 배래기법(벽강이 개발한 독특한 기법으로 우리나라 전통 복식(服飾) 문화에서 따왔다.

우리 전통 한복의 저고리 배래 부분에서 느껴지는 은은함을 화풍 속에 옮긴 기법으로 스며듦과 배어듦을 통해 작품에 골조 격으로 등장함)을 적극 활용한 ‘우담화’단계, 색채가 화려하면서 감각의 다차원적 접근을 꾀한 ‘수미산’단계, 입체적이고 조형적인 작품이 등장한 ‘무궁’단계를 거쳐 최근에는 파격적으로 모든 형상들을 단순화하고 추상화시켜서 원초적인 표현 형태인 원과 선이 구심력이 되어 구성해나가는 ‘소리-옴(태초, 근원의 소리 기운을 뜻함)‘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벽강의 화풍은 ‘몽현주기화(夢現宙氣畵; 우주의 기운을 조화롭게 화폭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벽강이 창안함)이며, 꿈의 계시를 화폭에 옮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꿈과 초월’은 내면세계의 자유를 원하는 작가들의 통로이며,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은 ‘꿈과 무의식’을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발로로 보았다. 벽강의 작품에서는 내면의 이끌림을 받고 이를 표출해낸다는 점에서 무의식의 발동과 표출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바로, 영적인 측면의 미술적 묘사와 표현이 이뤄져 있기에 감상자에게 영적인 통찰력을 자극하고 있다. 따라서 높은 차원의 참된 미술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최근의 작품 단계인 ‘수미산’부터 ‘무궁-소리(옴)’단계까지 차원 높은 작품 세계를 펼쳐놓았다. 태극과 무극, 황극과 음양오행, 점과 끈 같은 다차원적이고 과학의 양자역학적인 원리를 벽강 작품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인간이 소우주라는 점을 볼 때, 벽강은 거대한 우주와 ‘나’를 연결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미시와 거시의 세계가 일치되는 순간이고, 환한 모순들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 시아 박정혜(문학치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