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꽃 그리고 여자-장 루이 뿌와뜨뱅
꽃 그리고 여자

류일지는 그녀의 회화 작업의 모체로 장미를 표현 하였다.
몇 개의 작업이 이 꽃의 마법에서 벗어 났다면, 그의 작품 속 세계의 비밀을 더 밝혀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류일지는 화가이기에, 화가로서 화폭에 접근한다. 화가로서, 화폭에 지층을 만들고, 색깔을 덧 입히며, 식물의 형태와 나비를 만들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가장 아름다운 형태는 영혼의 형상을 허락한다. 여기 모든 구성 요소들은 마치 강렬하고 불규칙한 춤 속의 살아 있는 모자이크와도 같다.

류일지의 꽃의 특징은 줄기가 없이 표현된 것이다. 이 꽃들은 웅대하지만 다듬어 지지 않은 보석과 같고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으나, 위대한 자연을 구현함이 행복을 표현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류일지는 켄버스의 밑 바탕을 컬러풀한 패치 워크로 구성하여, 각 작품마다, 마치 술에 취한 듯한 움직임을 주고 있는데, 가끔은 흐르는 물처럼, 한 여름에 바람이 부는 벌판처럼, 또 가끔은 숲의 그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거장 클림트, 예를 들어 그의 작품 물뱀, 의 영향이 느껴진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몇 개의 작품에서 꽃이 가장 자리로 옮겨 지거나 찢어진 상처에 자리를 내어 주고 혹은 꽃 자체가 작품의 창이 되어 주면서, 유연하게 굽은 선의 매력적인 여자의 몸이 나타나게 된다.
여자의 몸은 꽃의 복제이거나 메아리이며, 꽃은 류일지 작품의 진정한 주제인 여자의 몸을 감싸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서 여자의 몸은 여자 그 자체인 것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얘기 하자면, 모든 요소는 새로운 의미가 아닌 더 커다란 울림을 가지고 있다. 결국, 나비 와 풀, 태양과 얽혀진 색깔들은, 여자의 영혼이 불러 들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창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중앙의 꽃이 사라지고 색깔이 희미해 지는 방식을 이해 하게 된다.

저기, 순수한 빛의 세계에서 풍경의 펼쳐지고 암흑의 형태가 나타난다. 여자의 뒷 모습이다.
여자는 꽃으로 덮힌 원피스를 입고 있다.
이제 밝혀진 미스터리는 류일지 작품의 비밀을 말 해주 듯, 이 작품에 이끌려 여자의 상처를 알려 주고 있다.
고독한 여자의 먼 풍경을 바라 보는 모습은 명상 혹은 꿈을 꾸는 듯 하며 그녀는 우주 앞에 혼자이며 운명 앞에 혼자이다.
류일지는 기억의 스크린을 스치 듯 인생의 파도를 그린다. 감춰지거나 보여지는 여자의 존재가 꽃을 만들기도 하고 꽃의 숨겨진 부분을 보여 주기도 한다.

생생한, 색의 세계에서, 우리는 류일지가 한국의 여성, 오늘의 한국 여성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분명한 사실 앞에, 그녀의 새로운 작품을 볼 때면, 각기 다른 생명력과 희망의 반짝임을 이해하게 된다.

2010年 9月
장 루이 뿌와뜨뱅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시선의 변증법-구혜경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시선의 변증법
                                류일지 작품에 대한 소고
예술의 다양성은 무한성과 일맥상통한다. 예술가와 작품 사이에서 교류되는 수없이 많은 구조물들은 고유하게 개별적 성격을 가지며,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볼 때 화엄경의 핵심사상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예술가에 대한 나름의 해석으로 같은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세상사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의미에서처럼 예술가는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내면세계가 중요하게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예술가는 눈을 통해 투영되는 모든 만물이 사람의 내면을 통과하면서 제각각 다른 색조로 발산하는 예술의 양식(樣式)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그만큼 여러 갈래의 다면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세계를 바꾸어 밖으로 표출된다. 이는 사람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것’에 해당되며, 보편적으로 사물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예술가에게 있어서 보는 것은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예술가는 무엇을 볼 것인가부터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보통의 사람과 다른 ‘보는 것’을 인지한다. 예술가의 삶과 사고, 경험 등과 결합한 사물은 그것이 대상으로서 해석의 차이를 갖게 되는 ‘보이는 것’으로 전환시킨다. 예술가에 의해 보이는 것은 자유로운 개성적 표현으로 연결되어 예술성으로 완성된다.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한 시선의 변증법적 시각은 예술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데, 류일지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꽃, 나비, 나무, 식물과 같은 자연물과 사람, 집, 그리고 기하학적 조형성은 보는 것에 대한 대상으로서 존재한다. 이 작가는 실존적 사물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형상의 실루엣으로 드러내며 절제된 선으로 거칠게 속도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배경에 깔려있는 색면(色面)의 조합으로 강렬하게 사물을 뒷받침하고 있어서 사물에 대한 존재감은 더욱 드러난다. 이를 볼 때, 작가의 내면을 통과한 ‘보는 것’은 동일하면서도 다른 감성으로 표출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궁금증을 주는 것은 작가가 보는 실존적 사물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실존적 사물이 작가에게는 평범함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보이는 것’에 대한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서 예술성으로 전환되는 것을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작가의 작품에서 강조되어 나타나는 꽃은 형상에 대한 얽매임이 아닌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은밀함과 여성성으로 대변되고 있으며, 행위자의 사고에 존재하는 기억의 파편들이 아우라(Aura)를 형성하여 작가를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은밀함과 여성성은 꽃을 젠더(Gender)의 상징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여성의 작가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꽃에 대한 상징적 요소는 화면 안에서 확대되어 중심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과 꽃술이 꽃잎 안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활짝 드러내놓고 있다는 것에서 감지할 수 있는 사실이다. 또한 꽃을 둘러싸고 있는 기하학적 조형물과 꽃을 향한 나비의 설정이 더욱 젠더로서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커다란 꽃을 통해서 외부와 소통하는 통로로 삼고 있는 듯하다. 이는 꽃을 강조함으로써 신디넴서(Cindy Nemser)가 ‘클로즈업 시각’에 대해 말한 것처럼 작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강한 충동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작동되는 예술적 연상과 연결하여 타자를 향한 작가의 짙은 호소를 내뱉고 있는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약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방어와 위상의 회복을 주제로 하지만 여성작가가 체득하고 경험하는 여성성은 예술로 인한 다층적인 내면을 형성하여 그 속에서 표출된 예술적 여성성으로 나타난다. 이는 작가가 사물을 통해 자신과 동화시키는 자기화(自己化)와 동시에 대상으로서의 타자화(他者化)에 대한 이중적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화에 대한 표현은 기억의 조각들을 형상화시키는 에세이와 같은 스토리를 작가의 직접적 화술로 구체성을 띠게 하는데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자신을 타자화 된 위치에서 예술 밖으로 빠져나와 상징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을 병행한다. 이와 같이 자기화와 타자화는 작가와 예술성의 관계에서 구조적인 이중성을 드러낸다. 작품 안에 존재하는 누드 여인은 작가의 실체를 대변하는 자기화에 대한 중심 매체의 역할을 담당하고, 화면 속에 존재함으로 인해 타자의 시선과 타자화 된 작가의 시선이 공존하는 주체의 복합성을 의미한다. 즉, 화면 속에 존재하는 상징적 모티브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보는 것이면서 보이는 것이고, 자기화이면서 타자화인 중층적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의미는 자신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요소와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그러나 다양한 표현은 결국 작가를 향해 결집되어 있는 것이기에 일방적인 소유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작가가 화면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에 대한 의미도 자신을 통해 응축된 결과물의 표출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자기 자신의 실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와 대상, 그리고 예술은 균등한 힘을 발산하는 동반자인 것이다. 류일지 작가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균형적인 세 영역의 힘을 감지할 수 있어 부드럽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구 혜 경 (미술사)

연가(戀歌) 같은 서정의 아름다움-김선태
유일지 평론

                   연가(戀歌) 같은 서정의 아름다움

1.
  자연은 항상 모두에게 열려있으며, 저마다의 형태적인 특징과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과 현대 산업사회의 고단함과 피폐함에 지친 인간에게 안식과 휴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인간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범신론적인 사유를 제공함과 동시에, 생명으로서의 자연이 인간에게는 언제나 경이의 대상이고 도달하고자하는 염원이며 재현하고자 싶은 간절한 욕망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자연물 중에서 꽃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대상이기도 하다.    
  화가 유일지 예술의 결정축을 이루는 것은 자연물 중에서도 꽃에 대한 사실적인 관찰이 아니라 꽃을 바라보는 소박한 심성의 애정 어린 감지라 볼 수 있다.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접근 방식이 철저하게 객관성을 내세우는 묘사적인 기법과는 다르게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아우르는 조화를 추구하는 화풍에 도달해 있다. 꽃의 이미지는 남아 있으되, 현실적인 형태를 복원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단순화되거나 생략된 채로 우리의 시선과 마주치는 것이다.    이 같은 형태 변형은 그 자신의 표현감정이 우선하는 조형어법에 기인한다. 구체적인 형상보다는 추상적인 형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회화적인 환영을 추적해 들어간다. 화면을 분할하여 기하학적인 패턴의 구성을 보여주는가 하면,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순수 추상을 즐기기도 한다. 순수추상과 평면이 중첩되어 색면에 의해 형태가 허물어지기도 한다. 또한 무한공간의 추상적인 이미지속에서 구체적인 식물의 형상이 살아나기도 하다. 

2.
  조형적 탐구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식물성을 기본으로 한 식물의 잎과 꽃잎, 해바라기, 노랑장미, 국화, 구절초,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 갈대 등이다. 그런데 그의 손을 빌어 표현되어 나온 이미지들은 환상적이고 시적이며 은빛 이슬처럼 맑은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굴절되고 변형되었으면서도 정감을 느끼게 하는 선, 은밀하게 조화된 색상의 전개가 사람을 아주 편하고 따뜻하게 해준다. 
  이들 소재를 표현하는데, 일차적으로 밀도 있는 바탕을 끄집어내기 위해 나이프가 갖고 있는 표현적인 특징을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는데 붓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축적된 밀도를 유지하고 있다. 마치 오랜 비바람에 씻기고 풍화작용에 의해 박락되고 퇴락한 벽면을 연상케 하면서 동시에 세월의 흔적을 게워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와 같이 그의 작품은 크게 면 분할과 번질거리지 않는 화면의 밀도 위에 선과 면과 색채로 조심스럽게 피어난 꽃의 형태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작품 전체적인 인상은 이지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이 강하며, 종래의 고식적이며 진부한 사실주의 양식의 틀을 벗어나 구상의 새로운 활로를 탐구하기 위한 작업이다.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접근 방식이 철저히 객관성에 의한 원근법적인 시각을 배제한 채, 작품 속에 작가의 감정이입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마음의 그림인 것이다.       
  두터운 질감에서 느껴지는 부피감 때문에 번질거리지 않는 화면의 시각적 변이에서 공간의 여유와 재미가 긴장감을 없애주어 친근감을 유발하며, 작가의 소탈한 인간미와 내면세계가 은유적인 표현으로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3.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주로 8호 미만의 소품이다. 본래 소품이 지닌 매력은 세부적인 수식이 생략되고 단순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소품이라고 해서 자연이 가지고 있는 힘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는 간략한 형태 이미지 속에 자연에 내재된 힘과 리얼리티를 응축시키고자 한다. 이렇듯 소품은 시각적으로 사실적인 묘사의 생략과 단순화하는 가운데 표현주의적인 이미지에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사실성의 압축이고 응축임은 분명하나 시각적으로 이해되는 사실은 작가적인 표현감각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그 자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포괄하는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세련된 색채감각과 무기교적인 형태와 변형과 왜곡은 한 작가로서의 신뢰할만한 조형감각이 돋보이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작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화가 유일지의 꽃과 꽃잎의 이미지는 마치 어떤 유기체가 생명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에너지의 신진대사인 생성과 소멸의 자연의 순환적인 작용을 느끼게 되며 거기에서 우리는 신비한 생명의 숨결을 마주치는 듯 여겨진다. 문득 어느 날 책갈피에 꽂아둔 꽃잎에서 추억과 서정과 우수가 배어나오면서도 맑은 연가 같은 서정의 아름다움을 맛보는 것과 같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작가와 꽃의 대화와 교감은 곧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 자신까지 전달되며, 이러한 교감의 울타리 내에서 우리들은 모두 하나로 합일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에게서 인생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의 조형들이 더욱 격조 높게 나오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2003. 12  
               
                     (김선태: 미술평론가. 예원예술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