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현상학으로 풀어낸 심미경의 행복이야기_김윤섭(미술평론가)
현상학으로 풀어낸 심미경의 행복이야기
글_김윤섭(미술평론가)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박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열정적인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가?  흔히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행복(幸福)이라고 한다.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불안감이 없어지고 저절로 즐거워져 안심이 되니, ‘행복’이란 단어만큼 인생을 값지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행복! 참으로 ‘살맛나게 하는 말’이다. 누구나 간절히 희망하고 갈구하는 행복이지만, 정답은 없다. 모양도 제각각이다. 심미경 작가도 그림을 통해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과연 그녀가 들려주는 행복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

작품제목의 비밀
심미경의 일관된 작품제목은 <현상학적 행복>이다. 제목만으로 보자면, 행복은 행복인데 ‘현상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았다’는 얘기 같다. 결국 ‘현상학’이란 단어를 이해해야만 ‘심미경의 행복론’을 온전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상학(現象學, phenomenology)’이란 무엇인가? 익숙하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용어다. 사전을 찾아보니 ‘경험한 현상을 인과적으로 설명하거나 어떤 전제를 가정하지 않고, 직접 기술하고 연구하는 것을 제1차적 목표로 삼는 20세기의 철학사조’라고 나온다. 더 헛갈린다. 다시 영문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니, 현상이라는 ‘phenomenon’은 ‘보이다(show)’라는 뜻인 그리스어(語)의 ‘Phainein’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바꿔 말하면 ‘어떤 실체의 외부에 나타나는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 바로 현상학이란 얘기이다.
결국 현상학은 바로 ‘본질도 중요하지만, 외견으로 보여 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섣불리 선입견을 가지고 미리 짐작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마치 괄호를 쳐서 공란으로 남겨 놓듯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자’는 얘기가 된다. 아마도 이런 면에서 보자면, 심미경 작가의 <현상학적 행복>이란 작품제목엔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써의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메시지로 담겨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신만의 행복론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고 있을까?

“본인의 작품 <현상학적 행복> 시리즈에선 배경의 소재로 주로 꽃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전엔 꽃의 형상을 캔버스 가득 그리는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식물형태 속에 나타나는 곡선으로 자연의 생명력 혹은 생명의 에너지를 암시하거나, 그것의 부드럽고 자유로운 형태들을 통해 서로 동화될 수 있는 울림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꽃의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은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촉매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자연의 유기적인 현상을 가장 부드럽고 은유적으로 설명하는 소재가 됩니다.”

칼라 & 론 반 돈겐
그녀의 작업실엔 온통 꽃그림으로 가득했다. 알록달록 어여쁜 꽃들이 아니다. 전부 하얀 색조의 꽃이었다. 흰 눈이 가득 쌓인 평원을 닮은 바탕화면과 그 위에 큼지막하게 활짝 핀 하얀 꽃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 흰색이라기보다는 쌀의 색깔에 가까운 부드러운 미색(米色)이거나, 달빛을 머금은 창호지(窓戶紙) 혹은 담백하고 은은함이 돋보이는 달항아리 색깔 등 다양한 표정의 흰색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번 전시에 선보이려 주력했다는 칼라(일명 카라) 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굴곡 없이 곧게 뻗은 줄기와 흰 꽃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운 꽃 칼라(Calla). 처녀자리의 순수하고 티 없는 사랑과 순결, 청초함과 고상한 기품, 심플하고 깨끗한 이미지 등의 꽃말이 있다. 하지만 여러 꽃들 중에 심미경이 특별히 칼라 꽃을 선택한 것은 남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우아하고 다이나믹한 이 꽃의 자태는 당돌함마저 발산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특히 칼라 꽃의 실루엣 형상이 직선과 곡선으로 어우러져 환상적인 연출력을 발휘한다. 평소 화려함 보다는 조용한 색조를 선호하는 심 작가의 조형어법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또한 그 묘한 조형적 하모니는 동양과 서양의 감성을 적절하게 자극하기도 한다.
심미경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네델란드 사진가 론 반 돈겐(1961~, Ron van dongen)이라고 한다. 론 반 돈겐은 다양한 꽃을 독특한 시각과 색감으로 담아낸 세계적인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너무나 요염하고 노골적인 꽃의 숨겨진 표정까지 찾아낸 그의 사진은, 꽃을 단지 피사체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론 반 돈겐의 이런 사진방식은 다소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심미경의 회화작품을 이해하는데 좋은 본보기가 된다.
잎이나 줄기가 거의 보이지 않게 꽃봉오리만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꽃이 지닌 절정의 아름다움을 능숙한 솜씨로 낚아채는 것은 두 작가의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그리고 꽃의 윤곽선을 최대한 부드럽게 처리해서 공간과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한 점 역시 비교할 만하다. 이는 꽃의 흰 피부에 자연광을 반사시켜 단아한 빛의 흔적을 보여주는 효과로도 이해된다. 심 작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칼라 꽃잎의 앞쪽 가장자리를 뾰족하게 강조했다. 이로써 마치 꽃술을 품고 있는 여성적인 이미지와 꽃대나 꽃잎 끝의 촉수 형상으로 남성적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 주는 듯하다. 물론 칼라 꽃이 지닌 날렵한 몸매를 화면의 여백을 충분히 살려 배치함으로써, 명상적이고 동양적인 미감을 전하는 것은 보너스다.
 
“나에게 작품이란 인생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와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서 출발합니다.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꽃에서 특별한 조형성을 찾아내고, 다시 나만의 감성이 묻어나는 색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제작과정에서 자연을 차용하는 이미지는 서양적 관점이기 보다는, 절제된 동양적 감성의 표현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여백은 정(靜)과 동(動)의 조화로움은 물론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영위한다는 뜻을 내포하게 됩니다.”   

심미경 작가가 선보이는 <현상학적 행복> 시리즈 칼라 꽃 작품들은 비록 단색으로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그 안에선 무수히 많은 움직임이 감지된다. 예를 들어 작게는 버선코의 날렵한 선(線)적인 요소부터 크게는 살풀이춤이나 승무(僧舞)처럼 우아한 동세까지 엿보인다. 이처럼 심미경 작가는 뚜렷한 주제의식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작품으로 그녀가 추구하는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써의 행복’을 제대로 보여주진 못할 것이다. 인생은 삶 그 자체로써 존재의 의미가 있듯, 행복도 찾아가는 과정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미경의 ‘현상학적 행복’에 대한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심미경의 꽃, 삶의 빛과 그늘로 짠 행복_박정구(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심미경의 꽃, 삶의 빛과 그늘로 짠 행복

동양의 화조화나 서양의 정물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꽃은 전통적으로 가장 친근한 자연미의 상징인 동시에 미적 표현의 대표적인 주제가 되어 왔다.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이 꽃을 소재로 삼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화가가 자신의 조형적·미적 관점을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매우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꽃이라는 소재의 특성과 그것의 사실적 재현이라는 방식은 경우에 따라서는 화사하기만 하여 가볍고 안일해 보이기까지 할 위험성도 있다. 그러한 점에서 굳이 꽃이라는 소재를 택해 ‘재현’하는 것에 관해 작가의 조형적 신념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작업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오랜 시간 꽃을 대상으로 해온 작가들의 작품은 표현의 완결성과 같은 외형적 성과만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회화가 고민해온 미술 내적인 문제들이 암시되거나 드러나고 있을 것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도록 해준다.
심미경 또한 오랜 시간 꽃을 소재로 작업해온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러한 그의 그림을 특징짓는 것은 클로즈업한 꽃송이들로 구성된 유백색, 혹은 상아색이 주조를 이루는 단색조의 화면이다. 꽃이라는 것이 대개 그러하듯 붉거나 노랗거나 희거나 한 단색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는 그러한 꽃들을 자신의 감성을 통해 백색조의 유려하고 세련된 화면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세련된 색감과 화려하지 않지만 장식성이 두드러진 자신 특유의 꽃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찾는 단서의 하나를 변함없이 그림의 제목이 되고 있는 ‘현상학적 행복’이라는 문구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보는 이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줄 가장 큰 열쇠의 하나인 작품 명제를 ‘현상학적 행복’으로 삼고 변함없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삶 자체에 대한 긍정, 그리고 그 삶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많은 만남과 사건, 수시로 부닥치는 이러저러한 상황에 대해 가지는 감사와 긍정의 태도가 그림을 그리는 원천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면 그의 인생관이자 세계관의 표현이라 할 것이며, 그것은 또한 예술관으로 직결되는 것이라 하겠다.
자연과 생명, 나아가 번다한 일상에 대해 느끼는 감사와 긍정은 삶을 따뜻하고 밝은 것을 만들어 주며 행복한 것으로 이끌어주게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그에 의해 그려지는 꽃은 자연과 생명의 무수한 개별적 현상들을 파악하는 작가의 상징체이며 동시에 그 현상들의 양태이다. 그리고 그 양태는 행복이다. 그는 꽃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삶을 긍정하고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무수히 다양한 꽃들 그 하나하나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형태를 부분적으로는 단순화시키고 색채 또한 단색조로 환원하는 방식 역시 이해가 가능해진다. 자연 속 꽃들은 제각기 다양한 양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핵심이자 본질은 생명의 절정이며, 그것이 결국 삶의 행복이라 여기는 그의 시각이 환원적인 방식으로 화폭에 담겼다는 것이다.
꽃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자연물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모든 꽃을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지는 않다. 색은 물론이고 꽃잎이나 수술의 갯수, 꽃받침이나 암술의 모양 등등 제각기 천차만별인 것이 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려한 색의 이파리에 암술과 수술을 그려 넣으면 무슨 꽃인지는 확인하지 못해도 우리는 그것을 꽃으로 받아들인다. 상상의 존재도 아니면서 포괄적이고 느슨한 관념으로서 꽃은 어찌 보면 이렇게 관습적으로 용인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심미경이 그리고 있는 현상학적 행복으로서의 꽃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꽃 그림은 단순화된 외관과는 역설적으로 삶과 그 삶이 추구하는 가치와 행복이 동일하거나 획일적이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나아가 그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 이치이듯이 열흘 붉은 꽃은 없음이다. 그것은 밝음 속에 깃든 어두움을 보는 것이며, 생명 혹은 삶의 양면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작가가 이야기하는 ‘현상학적 행복’의 또 다른 일면이다. 어찌 삶이 밝음과 행복만으로 가능하겠는가. 밝음으로 해서 생겨나는 그늘조차 행복이라는 보다 큰 삶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고자 하는 태도가 그림 안에 배어 있음이다.
밝음과 화려함에 마냥 도취하지 않고 그것이 배태하고 있는 이면을 인식하되, 그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밝음과 어두움을 하나로 포괄하여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긍정이고 행복이며 그의 꽃들이 시사하고 있는 바라고 할 것이다.

박정구(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심미경의 <현상학적 행복>시리즈
심미경의 <현상학적 행복>시리즈

박기웅 (홍익대교수, 미술학박사)

1. 작은 변화로부터

심미경이 주로 표현하였던 이전의 방식들은 주로 식물의 줄기나 꽃의 부분 혹은 전체 이미지를 그리는 방식이었으며, 이를 통해서 여성성과 자연의 서정성을 아주 순박하게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도한 기법에 있어서 작은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 파장은 실로 대단한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작품에 등장하는 기존의 이미지를 포기하고 바탕 혹은 배경으로 여긴 뒤, 선으로 이루어진 이미지 혹은 가벼운 그림이 가미되면서부터 어느 순간 의미심장한 하나의 파롤(parole)로서의 표현체가 되어버렸고, 그것으로 인해서 이룩된 파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2. 이미지의 차용과 오버랩

이러한 방식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개척한 ‘데이비드 살르’의 방법론을 들 수가 있는데, 그의 작품들은 주로 일상생활의 편린들과 이전의 이미지들과의 교잡형식으로서, 고전과 현실의 혼합, 혹은 과거와 현대의 대구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섹슈얼리티를 강화하여 포르노그래피적인 표현방식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심미경의 경우와 비교해본다면, 살르의 경우는 매우 냉소적인 현실성을 들추어내며 물질성이 강화되어 있는 반면에 심미경의 경우는 물질성을 소거하여 문학적인 서정성과 투명성이 강화되는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해석해 본 결과, 두 작가가 현대미술의 특성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각각의 작가가 살아온 장소성과 시대성, 그리고 남성적인 시각에서의 (male gaze) 표현법과 여성적인 시각 (female gaze)에서의 표현법 상의 차이점이 매우 특징적으로 드러남을 확인하였다. 즉, 살르의 경우는 남성적인 시각에서의 sexuality 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소 거칠게 표현된다) 반하여, 심미경의 경우는 이와는 매우 다른 부드러운 여성적인 sexuality적 속성이 매우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소녀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살르’의 회화가 취한 세속적인 사진 이미지나 글자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매우 노골적이라고 한다면, 심미경의 경우는 소박하고 섬세하게 선을 사용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치로 일관된다.  또한, 살르의 경우는 그 내용의 상징성과 상관이 없거나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이질적인 흔적을 자유롭게 배열한다. 이러한 흔적화의 방식은 하나의 시간과 공간의 고정 점이 아닌, 마구잡이 식 상황의 설명으로 해체주의의 이념을 다른 시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심미경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계산된 방식에 의해 매우 단순한 이미지가 이전의 그림 위에 포개진다. 그래서, 작품의 배경에 등장하는 일시적인 순간, 즉 현상계의 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에 더하여 피카소, 모네 등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모티브들을 차용하여 이미지들을 오버랩 하는데, 그 이미지 또한 완성체가 아니라, 가상적으로 그려진 드로잉적인 윤곽선이나 가볍게 그려진 내용인 것이다.

3. 기호학적인 분석

우선 기호학적으로 살펴볼 때,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내용이 상관관계를 이루게 되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왜, 이러한 이미지들이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렇게 그려진 배경에는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가? … 등의 매우 복잡한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여기에 대한 몇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로, 작가는 작품의 배경과 라인으로 그려진 이미지에서 주어진 상징성을 의미 있게 연결 짓는 과정을 연구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신작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그것은 전술한 바처럼 여러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며, 그것은 21세기의 시대적인 상황을 상술하는 조형언어이기를 갈망하는 바램에서 기인한 조형어법인 것이다.

둘째로, 작가가 보여주는 기표는 단순한 연기(延期) 혹은 차연(差延)의 방식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나열형이 아니라 오버랩을 통해서 이미지를 투과하는 방식이며, 이전에 그려진 이미지가 다시 그려진 선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에 포개져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 그려진 이미지 속에서 과거에 그려진 이미지가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며, 그것이 절묘하게 뚜렷한 상징성을 가지면서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다.

셋째로, 선묘로 그려진 이미지가 이전의 이미지를 감싸거나 포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둘 간의 미묘한 상관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다. 동일한 이미지라 하더라도 그것이 오버랩 되는 지점이 어디인가; 예를 들면, 가장자리인가 아니면 중간부분인가, 어두운 부분인가 아니면 밝은 부분인가 등을 면밀하게 생각하면서 작가는 이미지들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점이 작가가 지향하는 매우 민감하고도 중요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로, 여기서 사용된 이미지들은 단순히 작가가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도 면밀한 계획하에 차용된 것인데, 잘 알려진 피카소의 작품인 청색시대에 등장하는 인물에서부터, 일반인들이 쉽게 파악하기 힘든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소박한 담론에서 추출한 이미지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다섯째로, 두 가지의 이미지가 포개지면서 실재와 부재가 만나는데, 그것은 부재하는 이미지에서 실재하는 이미지에로 연결되어 일정한 연출을 이룩하게 되며, 그것은 전체적인 담론을 구성하는 기표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들을 차용하는 방식은 포스트모던 이론 혹은 해체주의(deconstruction) 이론이 뒤에 숨어 있는 데, 그것은 화가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특권과도 같은 것으로서, 다만 작가가 어떤 의도를 지니고 행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며 그 종류 또한 다양하게 번져 나아가고 있다.

4. 제목의 차연성

나아가, 그것은 <현상학적 행복>이라는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결단코 간단하지 않은 뉘앙스를 강하게 품고 있다. 그것은 실재로 현대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연출된 제목이며, 하나의 복선을 깔아놓고 그것에 준하여 미묘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며, 보다 나은 이미지 혹은 보다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단순하면서도 대구적인 이야기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현상학>이라는 의미는 매우 긴 장시간에 걸친 현실이 아니라 일시적이며 찰나적인 순간 혹은 현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현세에서의 만족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현세에서의 불만족한 상황을 반어법적으로 구사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며; 필자의 의견으로는,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서, 작가는 다소 심각한 문제들을 심각하지 않아 보이도록 위장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경로라 풀이할 수 있다. 그것은 다소 염세적이라 할 수 있는 담론들을 엮어 나아가면서, 이 시대의 문제점들을 들추어내는 과정에서 연출한 것이며, 사회의 비판적인 발언을 숨겨 오히려 사회성 증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하겠다.  부조리, 빈부의 격차, 자연훼손, 등을 문제삼고 발언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숨겨 오히려 사회성 증진의 의미를 부여하는것이라 하겠다.

5.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

심미경의 작품의 장르적 특성을 굳이 따지자면, 드로잉적 요소로 선묘 이미지를 도입하였는데 ‘선’이 주는 의미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회화와 드로잉의 사이에서 이룩한 독특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이러한 선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하여 작품이 이룩되는 방향은 일반적인 회화의 경향이 아닌 것으로, 한국화와 서양화의 접목 혹은 드로잉적인 필치와 이미지의 경계를 탐구하는 유형이라 하겠다.

사용되는 색채는 부드러운 코발트 블루에서 바이올렛, 그레이, 등이 배경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에 더하여 다크 그린으로 제한된다. 선으로 그려지는 색상은 배경과 하모니를 이루는 측면에서 명도대비나 채도 대비가 강하게 이루어지는 색상들을 선호한다.

6. 결어

심미경의 신작 <현상학적 행복> 시리즈의 작품들은, 이처럼 서두에서 이야기한 바처럼, 어쩌면 아주 단순한 변화에 의해서 이룩한 최대한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복잡하고 과도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보다도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의미를 생각나게 하는 시도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미지 오버랩을 꾀하여 많은 변화를 이룩하였던 이전의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매우 색다른 개성이 연출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방식들은 이제 하나의 시발점에 불과하며, 향후 많은 연구를 통해 보다 진보된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