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1-15 작가노트-나목에서 생명으로

 나목에서 생명으로

 작가의 글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고목은 더불어 숲을 이루는 5월의 신록 속에 여전히 생에 대한 감각으로 부풀어 있다. 

 강렬한 색채를 통해 내면의 세계를 나이프를 사용한 단순 작업으로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 표현한 작품이 지난번 개인전 ‘오랜 침묵과 대화’다. 유화의 끈적거림과 질퍽함 속에 고목을 절제하여 간결하게 표현했었다. 

 최근 준비해온 작업 속 고목은 아크릴 혼합재료와 오브제 사용이다.

화려한 색채와 다채로운 표현에서 주는 서정성이 이번 개인전작품들이다. 고목은 오랜 풍상을 거쳐 오는 동안 숱한 내력을 품게 되고 내 마음의 달과 고고한 학의 자태는 조화롭기를 꿈꾸는 내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는 인생 여정에 있어서 홀로 선 나무가 더불어 숲을 이루듯이 조화롭기를 꿈꾸지만 결코 녹록치 않는 길을 묵묵히 혼자인 채로 걷는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더해갈수록 존재론적인 번뇌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내 인생에는 나를 다스릴 수 있는 학문이 있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캔바스가 있다.

 대학원 전공인 고전시가(한시, 시조)를 연구하다 보면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내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옛 선조들은 자연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인 순수성을 찾고자 하였다. 

 앞으로 전개될 내 작품 세계 또한 자연을 숭배한 동양 사상의 근본 속에 역대 사대부들의 사상과 철학을 현대 회화 속에 접목시켜 표현해 보고자 한다.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준비했던 지난번 개인전은

가슴 속에 큰 무덤이 하나 자리 잡고 있는 듯 답답하고 두려웠다.

2년을 흐른 뒤 준비한 이 작품들 또한 고뇌하고 아파하며 창작된 내 사리들이다.                                             2014. 05   


 

2018-01-15 작가노트-日 月 圖
日 月 圖
                                                  - 작가노트 -

 과거와 현재는 단절된 것이 아니고 현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삶인 것이다. 옛날부터 인간은 항상 해와 달을 우주만물 속에 운행하는 자연물로 생각하지 않고 엄청난 위력을 가진 절대자적 존재로 인식하여 동경과 숭배의 대상을 살아왔다. 해는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강한 빛을 내뿜는 강렬함 때문에 머리를 숙였고, 어두운 밤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달을 보면서는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그래서 일(日), 즉 해는 천상(天上)의 가장 큰 양기(陽氣)이고 월(月), 즉 달은 천상(天上)의 가장 큰 음기(陰氣)로 생각하여 해를 남성에, 달을 여성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도 남성이 들고 있는 해 속에는 고대 동양 신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세 발 달린 까마귀(三足烏)가 들어 있고, 여성이 들고 있는 달 속에는 달의 상징인 두꺼비가 들어 있다. 

 이처럼 우리 삶 속에는 해와 달에 대한 가치와 문화가 깊숙이 침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해와 달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전래되고 있으며 일월설화(日月說話)라고 하여 민속학에서도 많은 연구가 되어 지고 있다. 특히 달은 우리의 생활과 깊이 관련되어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거나 일 년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하였다. 시댁이 시골인 나는 결혼 초에 시어머니께서 하얀 사발에 물을 떠서 장독대 위에 놓아두고 두 손 모아 밤하늘의 달에게 비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그림 일월도(日月圖)는 밝게 빛나는 일월(日月)을 사물화 하여 그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내면적 상상을 바위(돌) 및 나무(古木)와 함께 상징적 의미를 갖는 형태로 구성하였다. 나무와 바위는 토테미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토테미즘이란 민간신앙의 하나로 동물이나 식물 등의 자연물과 장소를 성스러운 공간으로 보고 그것을 집단의 종교적인 대상으로 삼아 숭배하는 사상으로써 초월적인 힘을 가진 대상을 통해 불행과 악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집단의식의 대표적인 상징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을 경영하고 정복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살았지만 너무 나약하여 무엇인가에 항상 의존하며 살아야 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알고 있었고, 이러한 두려움에 대하여 토테미즘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토테미즘은 합리적이거나 도덕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나 절대자에게 자신들의 수호를 기원하고, 자신들이 절대자를 숭배하는 것으로써 나약한 인간은 항상 민간신앙(토템)에 의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 민간신앙에 근거하여 일월도(日月圖)를 표현 하고자 했다. 어린 시절 가슴 조이며 들었던 햇님, 달님 이야기를 일월설화(日月說話)와 연관하여 대학원 수업에서 발표한 적도 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이를 일월도(日月圖)로 표현해 보았다.

2018-01-15 작가노트-한시해석
추야우중
                    
                             신라, 최치원 지음

추풍유고음 
세로소지음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운 마음으로 읊조리니
세상에 나를 아는 사람이 적구나.
창밖에 밤 깊도록 비가 내리고
만리를 향한 마음만이 서성이네.

                  



무상

                     이태백 지음

일생일사세인동
심산유곡붕우처
월백설백천지백
산심야심객수심

한 번 태어나 죽는 것은 모두 같으니
먼저 죽어 깊은 산 속에 묻혀있는 친구따라 나도 묻힌다.
달도 희고 눈도 희니 천지가 하얗구나.
산도 깊고 밤도 깊은 곳에 있는 나의 수심도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