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작가에 대한 최근 비평문-전시서문중 평론가 박천남
작가에 대한 최근 비평문

백진기는 ‘고고학적 미래’라는 독특한 순환구조를 선보인다. 생의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바람, 우주를 향해 삶을 펼치려는 충만한 의지를 경험할 수 있다. 그 두 가지 욕망 사이에 맴도는 건강한, 역동적 운율과 긴장감을 통해 생의 미래적 충만함과 구원에의 바람, 희구를 노래한다. 매일처럼 깎고 새기고 갈고 다듬은 결과물들은 살아 꿈틀거리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망과 염원을 새기듯 담아낸 진정성 넘치는 땀과 숨의 결정체이자, 흡사 구도적 결과물이다.

작품 속 원심적이면서 구심적인 움직임은 오로지 돌만을 고집하며 지난 시간동안 돌과 동고동락해온 작가의 애정과 고집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백진기는 돌의 숨결과 성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늘 조심스럽다. 어루만지듯 따라 들어가고 그들의 화답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정한 방향성과 함께 맺힘을 보이는 이유다. 때론 칼로 나무를 쳐내듯 단호하게 끊어 치고 내리친다. 마치 흑백의 강렬한 목판화를 보는 듯 칼맛나는 표면질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과 반듯한 사각형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부조작업은 우주의 질서와 기운, 신성과 종교적 절대 미감, 숭고미 등을 연상케 한다.

백진기의 절제된, 다소 금욕적인 작업충동은 태고적 은하계의 흐름을 현재적/미래적으로 풀어내며 삶의 신비한 기운을 경험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는 벽에 걸린 기하학적 형태의 부조작업과 함께 바닥에 놓인 입체 작업도 선보인다. 대체로 물 흐르듯 유려한 부조작업과는 달리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된 듯,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듯 호흡이 제법 칼칼하다. 흡사 산호초를 보는 듯 태고로부터 이어진 시간의 집적과 축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서문 중 발췌.  독립 큐레이터 박천남)

작가의 글 - 작품에 대한 설명
1) Fiat Lux(빛이 있으라)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빛의 출현은 종교적,철학적,문화적,물리적으로 해석되어지는 창조의 근원적 사건이다.
작품 Fiat Lux는 라틴어로 빛이 있으라!는 명령어로 ‘fiat lux et facta est lux(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창세기 1:02)’를 인용한 명제이다.
작품은 빛의 생성과 확산하는 추상적 형상을 통하여 창조와 생성의 근원적 의미와 희망의 빛이 끝없이 퍼져나가길 염원 한다.
이것은 희망의 도래, 회복의 메타포이다.
작품은 대리석 표면에 점을 새겨넣는 것으로 출발하며, 무수한 점의 중첩을 통해 질감과 운동감을 획득한다.
작품에 가하여지는 작가의 예술적 노동행위는 작가의 삶의 의지를 드러내며, 생성 이전의 혼돈(Caos)상태로 작가는 작가와 질료(matter)사이의 상보적 투쟁 행위로 규정한다. 
작가와 질료간의 행위과정 속에서 형태와 질감은 결정되어지며, 작품은 행위의 산물로서 생명력을 얻는다
2) Rushing Wind#3 Portugal matble 2019
작품 Rushing Wind series는 태평양에 불어온 작은 미풍이 아메리카 대륙에 토네이도를 불러 일으키듯이, 삶의 연속된 작은 움직임들이 그 사람 존재의 양태(실존)을 만들어 낸다는 의지를 담았다.
조각가의 중첩되고 반복된 조각적 행위들이 작품의 질감과 굴곡을 만들어내고, 이것들은 작품의 형태가 되어 작품은 그 생명력을 얻는다.

2) Rushing Wind
Rushing wind 5, 6 bianco venus marble 2019
풍화현상(Tafoni)을 겪은 암석이 고유한 형태로 재 탄생되어도 여전히 암석의 본성을 가지고 존재했듯이, 작가의 사유로 부터 시작된 작품이 작가의 손에 의해 그 형태가 결정되어도 대리석은 변하지 않는 본질적 색상과 무늬의 고결함을 은은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작가와 물질간의 상호작용의 흔적이고, 삶에 대한 영향력과 거센 의지를 작업방식에 담고자 한 작가의 의도이다.
(Rushing wind series에 관한 작업노트)

3) Eclipse
거센 파도가 해안가 절벽을 침식해 들어가는 과정은 흡사 달의 표면을 뒤덮는 이클립스를 바라보듯 하였다.
마치 삶이 변화무쌍한 풍파(風波)를 맞닥뜨려도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듯이, 
나는 나로 존재하기 위해, 예컨대 예술가적 희구(希求)를 찾아 내기위한 끊임없는 행위의 흐름을 반복해내는 것이다.
작가노트2021 백진기 Continuous movement

작품 'Continuous Movement : 머무르지 않는 움직임'시리즈는 자연 요소들의 끊임없는 순환과 변화의 흔적들을 작가 고유의 조각기법으로 추상적으로 구현한 조각 작품이다.
‘머무르지 않는 움직임’은 ‘생동하는 힘(vitality)’이자 ‘생명의 힘(life power)’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빛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을 구성하는 환경요소의 정체되지 않는 움직임은 인간사회를 포함한 생태계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 속에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움직임이다.
작가의 주된 관심사는 삶의 실존적 형태와 미래적 충만함, 구원에의 바람(desire)과 같은 것이다. 작가의 작가적,예술가적 바람(desire)을 이루어 내기 위해 끊임없는 행위의 흐름을 반복해내는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끝없이 뻗어나가는 한줄기의 빛의 출현과 같이(Fiat Lux Series)
태평양 한가운데서 불어온 작은 미풍이 변모하여, 대륙에 토네이도가 휘몰아치듯이(Rushing Wind Series) 
협곡의 수면을 튀어 오르는 작은 물방울이 흐르고 흘러 대양(Ocean)을 이루듯이
혹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천체의 공전(revolution)과 같이(Eclipse Series) 
멈추지 않는 시간의 역사 속의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작가의 작업은, 멈추지 않는 조각적 움직임이 작가의 삶이라는 시간을 거쳐 작가의 생명력이 된다. 그리고 작품은 그것에 대한 기록으로 남는다.
작가의 작품은 다소 즉흥적이며 자유롭다. 작품속의 유기적인 형태의 변화와 질감의 흐름은 작가의 신체가 관여하는 범위 내에서, 작가의 사유체계 안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새겨지고 변화한다. 또한 끊임없이 흐름을 이루고 있거나 방사형의 속도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매일 다른 듯 보이는 하루가 한사람의 생을 이루듯이, 다양한 비정형화된 변화들도 형(form)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의 질서를 이루어, 작품은 여전히 기하학적인 형태의 질서를 보여준다.  

작가는 조각예술의 본고장인 이태리에서부터 주로 다루어온 대리석과의 교감을 통해 이러한 작가적 바람과 움직임을 표현해 내고 있다. 
긴 세월의 조각의 질료(matter)로서 사용되어진 대리석은 물질적으로 고유한 빛깔과 무늬를 드러나며 사물로서의 특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물질이다.
작가는 작가의 조각적 움직임으로 대리석을 종속시키기거나, 재료의 물성을 과도하게 부각하려하지 않고 작가의 조각과정에서 발생하는 질료와 작가 행위 간의 서로 본성을 잃지 않으려는 상호보완적 투쟁과정의 흔적 속에서 작품은 과정으로서의 생명력을 얻는다는 개념 하에 작가는 그것(-과정의 흔적)의 결과를 작품으로 드러낸다.

작가노트 2021. Continuous Movement.
Either / or( 이것인가 저것인가)
Either / or( 이것인가 저것인가)

“진정한 영원성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배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있기 때문이다” - 키르케고르

내 존재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어떤 만족없이 결핍되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욕망한다.
최근의 나는 ‘내 삶은 어떤것인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수없이 질문하며 스스로 답하기 위하여 대리석에 무수히 많은 흔적을 새기고 있다. 돌에 새긴 상처의 흔적들은 제각기 다르고 고유하지만 큰틀에서 질서와 규칙성이 존재한다. 

나는 내 삶 속, 불확실한 진행에서 오는 불안을 카오스(Caos)로 규정했다. 다만 절망으로 폄하하지 않고, 불완전한 내 존재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사고하며, 불안감은 결국 현존하는 나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풀이하였다.

나는 대리석이라는 강한 물성을 가진 재료와 대면한다. 조각을 한다는 행위- 긁고 파고, 새기며 갈아내는 조각적 행위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대리석의 본질과 부딪혀 규정되거나 계획한 형태가 아닌 충돌과정에서 남겨진 행위의 흔적과 잔재만을 드러낸다.이것은 규정된 형태로의 완성보단 과정의 산물을 보여준다. 무질서한 공격적 행위들이 무수히 반복될 때 생겨나는 일련의 규칙들과 질서의 중첩은 과정 중 생겨난 우연적인 패턴(pattern)을 보여준다. 이러한 나의 꾸준한 움직임은 현재의 삶에 대한 나의 노력이 아직 오지않은 현재인 ‘미래’로 안내해 주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입체작과 평면 부조작으로 구성되며,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er out of Chaos),  이클립스(Eclipse) 그리고  
불완전의 가능성(The possibilities of Imperfection)으로 키워드를 압축한다.

첫째, 혼돈으로부터의 질서(La Nouvelle Alliance)는 카오스 이론에 대한 담론이 담긴 1979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자연과학서의 명제를 인용한 키워드이다. 대리석이라는 재료에 새기거나(Carving) 갈아내는(Grinding)는 행위의 불규칙적이고 무수한 반복은  작가가 예측가능한 범주이거나 혹은 예상 하지 못한 상처를 표면에 남기게 된다. 이 행위를 통해 본 작가는 조각적 행위에 집중하게되고 재료의 입자와 형태의 불규칙적인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과정이 지난후, 새겨지고 남겨진 흔적들은 꽤나 일정한 질감과 패턴으로 보여진다. 형태를 재현해내는 것이 아닌 조각적 행위의 과정이 결과가 되어지는 작업이다. 


둘째로 내 작업속에서 이클립스(Eclipse)는 월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빛이 잃게 되는 것. 즉, 중요성 혹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것들이 빛을 잃거나 권한을 잃게 됨을 지칭하였다. 혼란과 두려움으로 대변되는 이클립스를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 그것은 이미 규정 되어져 고정된 관념과 속박에 대한 종말. 예컨대  새벽이 오기전(Before dawn)의 짙은 어둠과 같으며, 새로움 혹은 시작이 도래함을 알리는 전조이자 희망의 메타포이다. 

마지막으로 불완전의 가능성(The possibilities of Imperfection)이다.
30대 중반의 현재를 보내는 본 작가의 작품관은 결핍되고 불완전한며 구축되지 않은 세계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 것 인가’ 라는 질문 속에는 “나는 ‘작가로서의 삶’이라는 과업(課業)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당연히 늘 포함되어있다. 어쩌면 나의 이런 조각적 행위은 질문 속의 답을 찾기 위한 부단한 연구과정이다. 지금 작가로써 보여주는 행위들, 사고를 선행하는 손의 움직임들과 재료와의 상보적(相補的) 투쟁들이 자기실현을 위한 과정이길 스스로 기대 해본다.
 
artist statement. written by Baek Jin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