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미를 추구하는 화가들은 무언가 새로운 재료를 꿈꾼다_신항섭(미술평론가) | |
백종환 작품
신항섭(미술평론가)
전통적인 미를 추구하는 화가들은 무언가 새로운 재료를 꿈꾼다. 재료가 달라지면 조형적인 사고 또한 거기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조형세계를 강구하는 데 재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가령 전통적인 생활이나 기물을 소재로 다룰 경우 그에 어울리는 토속적인 향취가 담긴 재료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실제로 소재에 어울리는 재료를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사용하는 작가가 더러 있다. 백종환의 경우가 그렇다. 흙을 도자기 가마에 구운 다음 잘게 부수어 그 분말로 작업한다. 이렇게 얻은 분말을 접착성 물질에 섞어 도포한 뒤 그 위에 물감으로 형상을 묘사한다. 도기 재료인 흙가루는 캔버스를 대체하는 그림의 소지가 되는 셈이다. 800도로 구운 도기용 흙가루는 불에 구운 상태이므로 균질한 물성을 갖게 됨에 따라 자연에서 채취하는 흙과는 그 성질이 완연히 다르다. 초기에는 작은 장방형 형태의 도편을 구워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의 기하학적인 추상작업을 했다. 회화작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도편이 이용되었다는 점토를 회화에 접목시키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도편을 이용한 추상적인 이미지의 캔버스 작업은 내용이나 형식에서 탓할 데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묘사하는 회화적인 표현에 대한 매력에 이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기용 흙을 구워 그 흙으로 소지를 만들고 그 위해 형상을 묘사하는 방식은 여전히 도자기에 대한 애착이 있음을 말해준다. 즉 흙냄새를 캔버스 작업에서 실현해 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최근 작업은 비교적 균질한 화면, 즉 소지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물감을 입혀 형상을 묘사한다. 일련의 도기 흙을 나이프로 바르는 과정은 흙집을 지을 때 흙손으로 벽을 바르는 모양새와 다르지 않다. 흙손 대신 나이프로 그리고 벽 대신 캔버스 위에 바른다는 점만 다를 뿐 집지을 때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 그래서 세부를 보면 지푸라기를 넣는 흙벽작업과 동일하게 지푸라기와 같은 거친 재료를 섞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기성품인 캔버스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역시 흙냄새, 흙만의 질감을 표현적인 이미지의 하나로 제시하는데 있다. 묘사되는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그 이미지를 떠받치는 재료, 즉 흙이라는 물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또 잘 다룰 수 있는 재료를 통해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강구하고자 한다. 물론 흙이라는 재료는 현대회화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재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보다 완벽한 재료로서의 특성을 담보하기 위해 도기를 굽는 흙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에서 채취하는 흙보다 더 안정된 물성을 유지하게 된다. 흙을 이용하는 것은 투박하고 소박한 정서를 수용하려는데 있다. 도회지적인 세련미보다는 순박함이 깃들인 향토적인 아름다움의 한 전형임을 간파한 것이다. 형태미보다는 실용적인 가치를 우선하기에 그 형태에서 느끼는 친근감을 회화적인 미로 변환함으로써 새로운 미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무엇을 재현하겠다는 의도를 배제한 채 흙을 바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추상적인 이미지에다 채색을 입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기에 그 이미지들은 자연스럽다. 짐짓 무엇을 의도하는 이미지가 아닌, 무심결에 피어나는 추상적인 이미지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원색적인 이미지로 치장함으로써 마치 꽃처럼 아름답다. 이런 형식의 작품은 현실적인 시골정경 즉 자연미를 표현한다. 풀꽃과 나비, 청개구리, 새, 구름, 낙하산 등 어린이의 눈에 비친 자연풍경을 깃들인다. 최근에는 꽃을 비롯하여 새, 풀, 물고기, 고양이, 달팽이 등의 형태를 재해석하는 초현실적인 구성작업을 병행한다. 이들 작업은 조형적인 해석에서 아주 세련된 감각을 구사한다. 어쩌면 그동안의 작업에서 다룬 소재들을 보다 명석한 이미지로 재해석함으로써 개별적인 형식미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인상이다. 평평한 붓으로 문인화의 일회적인 운필을 원용한 동적인 이미지의 작업도 있다. 원형 또는 나선형 형태의 속도감 넘치는 운필이 화면을 장악하는 가운데 동화적인 이미지의 풍경을 곁들이는 작업이다. 현실적인 공간감을 초월한 동화적인 조형미가 돋보인다. 크고 넉넉하며 느긋한 모양새는 그대로 자연미를 상징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작위적인 흔적을 덜어냄으로써 자연미에 필적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 느끼는 자연미와 더불어 탈속한 이미지를 얻는데 의미를 둔다. 삿된 욕심을 거두어들였을 때 느끼는 홀가분함을 미적 가치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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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of Objects_김용권(문학박사/겸재정선미술관 관장) | |
백종환 개인전에 부쳐. 2019.7.25
Song of Objects
김용권(문학박사/겸재정선미술관 관장)
백종환 작가(1955년생〜)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0년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비장한 마음, 뜨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전념해 오고 있다. 그 동안 그는 여주에 어우실 작업실에서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그는 이에 대한 물음을 밤낮 없이 해가면서 실험적인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그런 노력의 결과, 그는 토속적인 향취가 담긴 ‘구운흙’을 재료로 선택,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타 작가와 크게 차별되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캔버스와 구운흙 그리고 물감의 만남, 그는 평면인 캔버스에 구운흙과 물감을 사용, 표현함으로써 아주 독특한 회화적 멋을 보여 주게 된 것이다. 이른바 그는 옹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흙을 분말화 시켜 도자기 가마에 구운 다음, 그 분말을 접착성 물질에 섞어 캔버스에 바른 뒤 그 위에 물감으로 여러 조형요소나 형상을 묘사해내는 방식을 선택,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나의 작업은 테라코타 점토를 1000도의 온도로 도자 가마에서 소성한 후 한지와 켄버스에 올려지고 채색되면 조각 망치로 쪼아 내어 완성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와 같은 구운 흙 작업으로 제작한 작품을 1990년 서울갤러리에서 발표한 이후, 줄곧 백종환의 〈흙 그림〉전이라 칭하며 전시해 왔다.(작업노트 중에서)
이렇게 그는 전공분야의 주재료인 옹기토분을 접착성 물질에 섞어 캔버스에 두툼하게 바른 뒤에 물감으로 형상을 묘사하고 쪼아내는 작업 방식을 계속 고수해 오고 있다. 1990년, 그는 ‘흙그림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흙의 아름다움을 회화로 접목시킨 캔버스형 도자벽화전’,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흙그림전’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물론 흙은 도자공예 작가와 순수 작가들의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이기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도기용 흙가루는 불에 구운 상태이므로 보통 흙과는 성질이 다르며, 그와 같이 구운흙을 캔버스에 붙여 조각 망치로 쪼아 내는 방식에 의한 결과물이기에, 일반 한국화나 서양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조형세계를 드러낸다. 나아가 그의 작업은 기존의 고정된 도자벽화를 회화로 접목, 이동이 자유로운 회화 도자벽화로 발전시킨 것이기에 또 다른 관점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기존의 도자벽화는 고정되어 이동할 수가 없고, 과도한 무게로 인한 위험성과 쉽게 깨진다는 단점이 있으며, 표현을 하는 데에도 극히 제한적이다. 백종환 작가는 이와 같은 단점을 일거에 해소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다양한 방향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기에 성공적인 작업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그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옛 작업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오고 있으며 이와 같은 그의 노력을 모두가 인정, 화단의 일급화가의 대열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2019년 가을에 개인전을 ‘Song of Objects’ 테마아래 신작 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개인전은 서울과 여주 두 곳에서 연이어 개최된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구운흙, 아크릭물감 등의 재료사용과 캔버스에 두툼하게 바른 흙 바탕위에 기하학적 선과 자유곡선, 반타원형 등을 배치하면서 완성한 방식이라 앞선 제작 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욱 깊어진 그의 내공에 의한 표출, 이를테면 정신성이 더욱 깊게 침투되어 있고 조형성 역시 완숙미가 넘쳐흐르고 있기에 앞선 그의 작품들과는 분명하게 차별된다고 하겠다. 특히 조형적인 측면에서, 이번 신작들은 평면이지만 입체적 공간 미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과, 흙의 원초적인 색감에 오방색을 조화롭게 입혀 색채미를 돋보이게 한 것은 더욱 신선하고 새롭고 매력적으로 보여 진다. 물론 그의 신작들은 선사시대의 유물에 표현된 묘법과 20세기 추상작가들의 표현 수단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예컨대 그의 어떤 작품은 주술적 상징을 담은 신석기 시대 토기문양이나 청동기시대의 암각화 등의 표현양식과 닮아 있다. 또한 그의 어떤 작품들은 20세기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방식과 정신적 혼의 표현을 한 칸딘스키 그리고 근본적 조형원리를 탐구한 몬드리안의 추상회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신작들은 독창적인 작품으로 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작품의 조형요소는 앞선 시대의 그 어떤 전통 표현양식, 추상화 작가들보다도 은은한 조화를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파격적인 형상을 드러내고 있어서 아주 인상적이다. 말하자면 그의 신작은 자연스럽고 순수하고 서정적, 향토성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장엄함과 오색찬란한 화려함까지도 품고 있어서 회화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백종환 작가의 작업성과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알다시피 새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데는 사상, 장소, 재료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로써 본다면 그의 작업성과는, 아마도1992년 서울에서 여주로 내려와 2005년 어우실 작업실에 안착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는 여주 어우실 동네에 안착하면서부터 모든 것에 대한 홀가분함과 마음을 비우는 대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작업은 곧 삶이고 삶은 즐거워야 한다는 필연성이 내 안에 함께하고 있다. 2005년, 동막골과 거의 비슷한 여주 어우실 동네로 이사와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아무런 방해 없이 볼두 하고 있다. 이곳 산 아래 어우실 동네에 위치한 나의 작업실은 하루가 거의 진공상태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이와 같은 진공상태 같은 무 잡음의 공간이지만, 소리가 소멸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제된 사물의 소리가 각자의 색을 띈 채 또렷하게 들려온다. 바람, 새, 물, 산, 들짐승, 바위 등이 중복되지 않은 순수한 소리로 들려오면 나는 거기에 색을 입히는 회화작업을 하고 있다.(작업노트 중에서)
이렇게 백종환 작가는 여주 어우실 동네에 안착하면서부터 내면에 좋은 에너지를 생성, 격 높은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출발하는 것, 그는 그것이 창작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자연에서 만나는 수많은 objects의 특성을 소재로 삼으면서 그들의 소리를 찾아 켄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백종환 작가는 도자과를 졸업한 작가답게 그가 가장 잘 이해하고 또 잘 다룰 수 있는 테라코타 점토의 원초적 색과 질감에서 입체적인 공간과 회화적 미를 찾는 방식을 선택하여 모두에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30여점의 신작들은 공예 개념과 순수 미술 개념의 중간 지점에서 일반 공예나 일반 순수회화에서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독특한 회화성을 보여주고 있기에 모든 관람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백종환 작가의 삶과 예술의 결정체이기도 한 이번 ‘Song of Objects’ 전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순수, 사랑, 희망, 평화 등이 보다 깊게 전달되어 소통, 공감대가 형성되는 뜻 깊은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ARTIST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