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적 수행성과 한국미의 재발견_안현정 (미술평론가,예술철학박사,성균관대박물관 학예실장) | |
- 천현태 작가평론 조형적 수행성과 한국미의 재발견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실장)
천현태의 작업은 단순한 형상의 창조를 넘어서, 기억과 감각의 실타래를 조형화하는 고요한 수행의 여정이다. 평면과 입체, 과거와 현재, 실과 비움의 언어들이 화면 위에 한 올 한 올 직조되며, 삶의 기록이자 예술의 진언(眞言)으로 피어난다. 작가는 물성으로서의 ‘누에고치’와 형상으로서의 ‘항아리’를 통해, 한국의 전통미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독자적인 조형 어법을 확립한다. 작가는 말한다. “예술은 감동이며, 작가의 일기입니다.” 이 언명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감각과 조형을 수양(修養)의 방식으로 끌어올리는 동양미학적 태도와 맞닿아 있다. 천현태의 조형 세계는 ‘기억의 시간’과 ‘달항아리’라는 두 시리즈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유년기의 기억과 자연의 정서를 실재하는 오브제로 엮어내며, 후자는 전통 항아리의 재해석을 통해 정형화된 미감의 탈구축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 두 시리즈는 본질적으로 ‘시간’과 ‘기억’, ‘수행’과 ‘형식’이라는 공동의 미학적 지반 위에 놓여 있다. 천현태에게 있어 형태는 언어이며, 재료는 수행의 도구이며, 회화는 한 편의 시(詩)와도 같은 존재다.
시간의 직조(織造), 기억의 조형자
천현태의 작업은 단순히 조형적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의 예술은 기억의 편린(片鱗)을 통해 인간 존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적 사유이며, 동시에 물성과 형식을 통해 한국미의 현대적 재정립을 시도하는 조형적 성찰이다. 작가는 한국의 전통미-달항아리의 여백, 수행자의 정적, 자연의 순환-를 캔버스 위에 다시 부활시키면서도, 그것을 정형이 아닌 이야기와 감각, 시간의 흐름으로 풀어낸다. 작가의 작업은 마치 조용한 선시(禪詩)와 같다. 외형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감정, 기억과 수행의 결은 깊고 복잡하다. 한 화면 속에서 평면과 입체, 추상과 구상, 회화와 오브제가 어우러지는 작품 방식은 한국화의 다이내미즘과도 닮아 있다. 더 이상 수묵이나 전통 기법에 국한되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미는, 이러한 새로운 언어와 재료, 서정과 수행의 융합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천현태는 ‘예술은 작가의 일기’라 말하지만, 작가의 일기는 결코 사적인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조용한 공명이며, 시공을 넘어서는 감각의 실타래다. 그가 엮어낸 그 시간의 실들은, 한국미의 오늘을 감싸 안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시간-존재-기억’의 미학적 삼각 구조를 구현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하듯, “인간 존재는 과거를 지닌 현재로서 미래를 향해 열린 존재”이다. 이 말은 천현태의 실타래 작업과 놀라울 정도로 조응한다. 작가의 고치는 과거의 기억을 담고, 현재의 몸짓으로 형성되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움의 형상’으로 미래에 도달한다. 실은 그 모든 시간을 매개하는 촉각적이자 조형적인 통로다. 결국 천현태의 ‘기억의 시간’은 시간의 직선적 흐름에 저항하면서도, 기억의 감각을 동시대 언어로 치환하는 독자적 회화실험이다. 그것은 누에고치라는 살아 있는 시간의 은유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정서를 끌어올리고, 예술이 다시 사유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시적 수행이다. 실을 뽑아낸다는 행위는, 곧 자신을 해체하고 다시 짓는 존재의 윤회이며, 작가의 조형은 그런 반복 속에서 묵묵히 ‘감각의 경전’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실타래의 시간, ‘기억의 시간’ 시리즈
‘기억의 시간’ 시리즈는 천현태의 작업세계 가운데 가장 서정적이면서도 존재론적인 깊이를 드러낸다. 누에고치라는 재료는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서, 유년의 기억과 자연의 순환, 노동과 기다림, 생명의 생성이라는 복합적 의미망을 짊어진 존재로 재탄생한다. 그는 그것을 그저 붙이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의 시간과 감정을 실처럼 뽑아내며 ‘기억의 조형화’를 실현한다. 한 올 한 올의 고치에는 사라진 시간이 다시 묶이고, 존재의 흔적이 재조립된다. 실을 뽑는 행위는 조형이 아니라 성찰이며, 그것은 곧 수행이다. 천현태는 캔버스 위에 실제 누에고치를 콜라주한 뒤, 수천 번의 와이어 브러시 작업을 통해 그것을 깎고 문질러 실을 뽑아 올린다. 이는 단순한 재료의 처리법이 아니라 ‘시간을 긁어내는 행위’이며, 기억을 실로 환원하는 노동이다. 그가 말하는 “고요한 밤,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는 마치 비 내리는 소리처럼 아름다웠다”는 회상은, 유년의 감각적 기억이 어떻게 시적 감성과 존재적 명상으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천현태의 회화는 말 그대로 시간의 실타래를 직조하는 예술이며, 작가의 실은 단지 누에고치의 부산물이 아닌 ‘살아 있는 시간의 선(線)’이다.
기억은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소환되고 반추되며 반복되는 다층적 구조를 가진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물질과 기억』에서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기능이 아니라, 현재를 다시 살아가는 창조적 힘"이라 했다. 천현태는 그 창조적 힘을 고치의 실로 시각화한다. 실의 직조는 곧 기억의 다시 쓰기이며, 캔버스는 단순한 표면이 아닌 감각의 심층, 시간의 레이어다. 이러한 작업은 동양미학의 깊은 맥과도 닿아 있다. 장자의 ‘좌망(坐忘)’은 자기 몸과 지식을 잊고 존재 자체로 귀속하는 명상 상태이며, 불교의 ‘수행’은 반복과 인내를 통해 무상(無常)한 세계 속에서 자아를 비우는 길이다. 누에고치라는 존재는 자연의 질서에 따라 고독 속에서 실을 뽑아내고, 스스로를 고치 속에 가두었다가 결국 껍질을 벗는다. 이 모든 과정은 천현태의 작업 속에서 삶의 은유로 탈바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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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기획의도, 작품설명] 자연과 인간의 공존 | |
작품 기획의도 - 자연과 인간의 공존..... 추억으로의 회귀 - 유년기시절 기억속에 아름다운 영화의 한장면처름 서정적인 풍경을 닮은 추억의 이야기를 평면회화로 표현하고자 한다. 지금것 작업하면서 한국의 미를 주제로 캔브스 평면에 입체(오브제)를 사용한 꼴라쥬가 주된 작업이다. 산골에 초여름이 시작되면은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고 뽕나무에 오디 열매가 한창일때 어머니는 토담방(흙집)에 양잠을 하셨다. 누에는 긴 시간 동안 온갖 몸부림을 치며 가늘고 고운 비단실을 토해낸다. 깊은밤이면 사각사각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는 영락없는 빗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자연과 인간.... 공존의 생명은 고독과 기다림이 중첩되어진 운명의 업에서 솟아나오는 스스로를 가두고 스스로를 옭아매어, 수행하는 스님과 같아 경이롭기까지 하다. 시절인연에 따른 재회와 이별..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삶도 누에고치와 일맥 상통하다. 아름다웠던 그해 여름.. 백옥처름 하얀 누에고치에 대한 기억은, 조형의 미 회화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운 기억은 작가의 예술성으로 재탄생되어진 작품은, 사라져가는 자연과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작품설명 - 평면과 입체를 공유하는 조형언어 - 지금것 한국의 미를 주제로 캔브스 평면에 달항아리를 표현, 폼보드를 사용한 꼴라쥬가주된 작업이다. 최근신작은 사라져가는 자연과 고향의 향수 어머니, 그리움에 대한 기억을 표현하였다. 실제 누에고치를 오브제로 사용하여 작업의 진정성에 심도를 높였다. 꼴라쥬 작업은 조형의 형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형태의 반복적인 구도는 수직과 수평을이루며 화면 외곽을 둘러싸고 서브적인 부제의 차용은 단색이 펼쳐진 평면에서 입체적 구성범위로 확장시키고자 하였다. 이 같은 주제와 부제의 혼용적 표현은 질서있고 안정적인 차별성을 보여주고자 하였으며, 먹작업과 모노크롬의 단색 사용은, 절제와 내면의 깊이 벽을 바라보며 참선, 수행하는 수도승의 의미를 두고 있다. 또한 형식과 재료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표출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는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연구하고자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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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美_김효선 (독립 큐레이터) | |
韓國의 美 - 천현태의 作品論 – 이성(理性)을 토대로 하는 예술(藝術)이란 무엇일까? 이성은 서구 사회를 지배해온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예술 역시 이 이성을 외면할 수 없다. 회화에서의 이성이란 원근법이나 병치법과 같은 과학적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외에 회화의 제목에서 비롯되는 이성이 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다음 질문을 던져본다. 회화와 그 회화의 제목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또는 사물과 그 사물의 이름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이는 실재와 정보 사이의 차이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흔히 “무제(Untitled)”라는 제목으로 회화에서의 문학성을 배제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의 간극을 줄이려 한다. 이것은 회화와 제목과의 관계에 어떤 일치점이나 차이점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사고의 주체인 작가(作家)에 의해 매개된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 세계인 예술은 작가의 현실적 경험세계가 투영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천현태의 회화에서, 그가 그린 대상과 그 대상의 이름에서 비롯되는 제목들에 의해,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의 미”이다. “한국의 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달항아리일 것이다. 달항아리는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사용했던 그릇으로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천현태의 근작(近作)에서도 우리는 달항아리를 만날 수 있다. 그의 달항아리는 순수한 백색의 빛깔, 너그러운 형태미, 부정형의 정형이 보여주는 어질고 선한 멋과 넉넉함, 그 모두가 어우러지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만날 수 있다. 달항아리의 특징은 장식적인 기교가 없고 담백하면서 조선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심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검약과 내면의 정신세계를 추구하였던 고결한 학자의 기품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천현태의 달항아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백색은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순백, 유백, 설백, 회백과 같은 어감에서 알 수 있듯이 같은 흰색이지만 조금씩 다른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백색은 색이 바래고 화려한 감을 잃어 특징 없는 무채색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우리에게 백색은 소박하고 검소하며 세련된 색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백색은 모든 색의 출발점인 동시에 완성된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을 버리고 자연으로 회귀하며 본래의 색을 추구하여 지나친 위엄이나 허세의 틈이 없고 자연 앞에서 겸손함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백색 지향성은 자연 앞에 고개 숙이는 겸허한 한국인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백색의 정신성은 자국민의 절개의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민족성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바로 더러워지기 쉬운 흰 옷에 여러 물감을 들여도 좋으련만 물감을 들이지 않는, 그런 우리 민족은 티 없이 깨끗한 마음과 행동, 굳은 의지와 같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흰색은 우리 국민의 심성과 우리 자연의 감각에 조응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이유로 우리 민족의 고유색인 백색의 달항아리는 화려하진 않지만 어딘가 정감이 가고, 어수룩한 모습이 무게와 깊이를 동반함으로 “한국의 미”를 보여주는 고유의 성격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의 흔적, 자연스러움의 흔적은 한국 자연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간주된다. 자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국의 미는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때론 단순하여 어수룩한 듯 보이나 전체적으로 원만하여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한국의 미”에 대한 의식은 화면상의 공간 표현을 순수하게 연구한 것으로 직관과 상상력을 통해 자연의 기운과 본인의 마음을 강조함으로써 신미함을 드러낸다. 천현태의 작품은 여백으로 둘러싸인 중심의 달항아리를 그리고 있다. 그의 여백은 줄무늬로 표현되었지만 자연의 이미지를 생략한 것으로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여백은 고요함 속에 “한국의 미”를 추구하게 한다. 그리고 그 여백에 의해 중심의 달항아리는 보다 돋보이며 힘찬 생명력을 발산한다. 이 여백의 미는 불교의 공(空) 사상에서 비롯된 것인데, 불교에서 공 사상은 진공(眞空)을 의미한다. 이는 허(虛)와 같은 것으로 여백이 담고 있는 의미와 일치하는 것이다. 천현태는 오늘도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비우고 진공의 득도에 이르고자 고군분투(孤軍奮鬪)한다. 김효선 (독립 큐레이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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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작품설명서 | |
한국의 미 작품설명서 달에게 소원을 빌면서 가졌던 어머니의 꿈에 대한 염원을 달항아리 에 담아 한국의미 회화로 표현하였다.조형구성원리에 따른 비례, 균형, 조화 등은 수직과 수평적 구도에서 형성된 균형과 질서,안정된 통일감을 느낄수 있게 하는 요소이다. 조형구도의 절제미, 조형적 구성 상의 여백의 미는 공간의 비움을 나타내며 공(空)은 수행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평면 회화의 경계를 넘어 순수페인팅에서 표현되는 일상적인 기법의 무미 건조함을 극복하기위해 오브제를 사용하고 현대미술의 다양함을 연구하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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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시리즈와 비움의 조형 시학 | |
‘달항아리’ 시리즈와 비움의 조형 시학
천현태의 ‘달항아리’ 시리즈는 한국 전통의 대표적 조형물인 ‘백자항아리’를 변형하고 해체하는 실험에서 출발한다. 항아리는 조선백자의 상징적 이미지로, 여백의 미와 절제의 형식미, 중도의 철학을 아우르는 전통적 기호였다. 그러나 작가는 이 ‘정형의 아름다움’을 오히려 탈주하고자 한다. 그것은 과거의 미(美)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자기화한 채 현재의 조형언어로 다시 말하려는 시도이다. 항아리의 매끄러운 표면은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 해체되고,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부조(浮彫)로 확장된다. 폼보드와 누에고치, 와이어 브러쉬와 같은 낯선 재료들은 항아리의 정제된 곡선을 해석하는 새로운 조형적 언어가 된다. 이 실험은 단순한 조형의 왜곡이 아니라, ‘비움’과 ‘얽힘’이라는 동양적 존재론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동양의 형이상학이 말하듯, 실재는 항상 공(空)을 배경으로 피어난다. 천현태의 항아리는 그 ‘비움의 공간’을 다르게 빚어내며, 전통 형식의 미학을 오늘의 감각으로 갱신한다.
형태는 이제 고정된 그릇이 아니라, 이야기의 그릇이 된다. 단색의 평면 위에 반복되는 실의 흔적, 수직과 수평으로 정렬된 구성, 세심한 질감의 부조적 구현은 모두 기억과 감각의 축적된 층위를 담고 있다. 이는 단색의 정신성과도 상통한다. 단색의 평면이 더 깊은 내면의 사유를 호출하듯, 천현태의 항아리는 더 상 담는 그릇이 아니라, ‘비어 있음으로써 담기는’ 존재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이며, 기억이 쌓여가는 침묵의 그릇이다.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항아리는 이제 더 이상 고정된 전통의 유물이 아니라, 삶의 서사와 감각의 무늬를 입은 시적 형상으로 피어난다. 그것은 정적인 형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는 생의 맥박이며, 응시하는 이로 하여금 질문케 하는 형상이다. 작가는 “무엇이 나를 담고, 무엇을 비워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이러한 항아리는 형태 이전의 감정이며, 재료 너머의 시간이고, 시(詩)처럼 응축된 생의 무게가 아닐까. |
ARTIST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