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30 | FIRE-ALCHEMY |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설악면 산중 작업실에 둥지를 튼 지 30여 년 비, 바람, 눈, 햇살이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기운을 몸소 겪으며 살았다. 오랜 시간 직관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명상하면서 주변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억해왔다. 바람은 그 허허로움과 자유로움 때문에 20여 년간 내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2016년 개인전은 ‘바람’ 작업의 마지막 전시가 되었다. 그 후 새로운 작업을 실험하던 어느 한겨울 작업실 난로의 타닥타닥 타고 있는 장작의 불꽃을 바라보면서 그 불꽃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불을 나의 작업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작품들을 실험하는 긴 시간을 보내면서 마침내 새로운 불꽃 작품이 탄생되었다. 내 작품의 주제는 세상을 이루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에서 비롯됩니다. 흙과 물, 불과 바람이 대자연을 이루고, 이로 인해 생명체가 존재가 가능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나의 작품 주제였던 ‘바람(風)’을 뒤로하고, ‘불(火)’을 모티브로 삼아 자연에서 발산되는 기운과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불과 불꽃을 통해 생명체의 호흡과 혼 같은 에너지를 시각화하며 탄생 된다. 캔버스에 돌가루를 엷게 바른 후 아크릴 물감으로 밑 작업을 한다. 밑 작업은 나의 어떤 심연, 무의식 세계의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완성된 밑그림 위에 한지를 구겨서 전체를 덮는다. 그 위에 물 붓으로 자유로운 선을 그으면, 한지의 질긴 특성으로 인하여 물그림 드로잉은 밑그림과 합쳐진다. 한지를 완전히 건조시킨후 불로 태워나간다. 불꽃은 캔버스 전체를 너울너울 흘러 다니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불꽃 작업은 경이로웠다. 그것은 스스로 소멸 되어지고 생성되어가는 세계, 이른바 자연처럼, 생명체처럼 스스로 완성되어가는 세계이다. 캔버스는 불꽃 사이로 문득 문득 새로운 풍경이 다가오고 사라진다. 그것은 땅, 하늘, 물, 구름의 자취이기도 하다. 캔버스는 우주 삼라만상의 형상들로 나타나 스스로 존재한다. 최근 작업에서는 한지에 염색 후 긴 띠로 자르고, 하나하나 불의 흔적을 만드는 정교한 과정을 통해 한지와 불 사이의 극한 관계를 조율해 나간다. 그 결과 무수한 한지 띠를 만들고, 이를 캔버스에 한 줄 한 줄 붙여나가며 재구성하는 긴 노동의 시간은 삶과 존재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선(Line)은 자연과 인간의 삶을 하나로 연결하는 존재다. 선은 경계선으로서 각각을 구분하는 동시에, 서로를 소통하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들은 자연과 하나 되어 호흡하며 율동하는 생명의 선입니다. 무수히 많은 선들이 모여 시각적 감동을 만들어내며, 때로는 예기치 않은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2025, 추경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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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