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 우주의 힘찬 숨결- 조성구의 현자의 돌과 연금술_김종길(미술평론가) | |
현무, 우주의 힘찬 숨결 - 조성구의 현자의 돌과 연금술 김종길 | 미술평론가 현자의 돌은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라 불려진다. 황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중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돌로 황금을 만들 순 없었다. 그리고 이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전설은 잊혀졌다. 예술은 현자의 돌과 다르지 않다. 조각가는 돌과 청동으로 인간을 새겼다. 아니 무수한 형상을 탄생시켰다. 예술의 역사는 불가능한 것에 도전한 사람들의 역사이며, 신의 조형성에 다가서기 위한 역사였다. 돌이 황금이 되는 연금술이 아니라 돌이 생명이 되는 연금술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얼마나 황당무계한가. 철학자의 돌이 인류의 과학적 진보를 앞당겨 왔듯이 예술가에게 이 돌은 창조를 향한 열망과 다르지 않다. 『장자』의 「천하天下」편에 '황당지언荒唐之言'이 나온다. 거기에 "황홀하고 적막하여 아무 형체도 없고, 변화는 일정하지 않다.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천지와 함께 나란히 존재하고 신명에 따라 움직인다. 망연히 어디로 가는 것인가? 홀연히 어디로 가는 것인가? 만물을 망라하고 있지만 족히 귀일 할 곳이 없다"고 하면서 "그는 아득한 이론에 황당한 말과 종잡을 수 없는 말"을 논했다고 적혀있다. 사실 이 구절이 아니더라도 『장자』의 구절을 흐르는 의미의 샛강은 터무니없고 허황된 것이 많다. 그럼에도 시대와 상관없이 『장자』를 읽고, 그 안에서 삶의 진리를 찾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조각가 조성구는 조각을 시작한 이래 돌을 놓지 않았다. 그의 돌은 생명이 아니라 기억을 새기는 쪽에 가까웠다. 기억은 한 인간을 형성한 지층이며, 삶의 지반이다. 기억이 없는 삶이란 죽은 삶과 같다. 한데 그의 기억은 자신의 삶을 넘어 역사를 향해 달려갔다. 이 땅의 선인들이 새겨 놓은 숱한 조각적 형상을 탐구하고 사유하면서 기억의 형상을 재구성해 낸 것이다. 때로 그의 조각들이 옛 돌 조각의 맛을 취하거나 운주사의 불상을 닮고, 백제의 미소에 까지 가 닿으려 한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때로 예술가는 그의 예술보다 마음을 다듬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조성구가 그렇다. 그의 조각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창조적 격정에 차 있거나 대가적 삶을 지향하면서 자신을 채근하지 않는다. 그는 느리게 걷는 소처럼 세상의 이치를 즐기면서 예술 창의의 기운을 얻는다. 그 마음이 조각에 온전히 새겨졌는지는 의문이지만, 많은 작품들에서 '불각不刻'적 면모를 보이거나 무작위의 손길을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선택한 돌은 이전과 전혀 다른 돌이다. 그의 돌은 현무玄武巖다. 현무는 불의 숯이며, 불의 뼈라 할 수 있다. 그가 이 돌에 다가서는 방식은 그런 사유에서 비롯된다. 여타의 돌처럼 정질의 타격이 가져다주는 손맛이 아니라 본래적 성질이 그러하듯 불의 힘으로 새겨야 한다는 정직의 사유. 하여, 그는 20여 년 동안 해 오던 정과 망치를 놓고 그 돌의 숨결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대지의 응결체인 일반적 돌은 불과 상극이다. 돌은 고열과 맞붙어 이기지 못한다. 마치 씨알 터지듯 툭 하고 부서져 내린다. 돌은 불과 만나 대지의 성질로 다시 돌아가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현무암은 다르다. 시커먼 응어리로 굳어 있는 이것은 이미 그 안에 불을 안고 있다. 숯은 불과 만나 불이 된다. 현무도 불과 만나 불이된다. 불이 닿으면 현무는 저 깊은 대지의 심장에서 고동치는 혈맥처럼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제 몸을 녹여 뜨거운 피가 되는 것이다. 조성구가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현무의 혈맥이 대지 속을 흐르면서 거대한 강이 되고, 호수가 되고, 우주가 되는 것을 본 것이다. 현무玄武는 힘찬 우주의 숨결이지 않겠는가. 그는 현무를 넓은 대지와 하늘로 상정하고, 그 위에 투명한 유리를 녹여 색을 입힌다. 불은 현무와 유리를 녹여 하나의 성질로 만든다. 현무위에 한 몸으로 안착한 유리는 인공의 물감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오묘한 색을 발산하게 된다. 특히 유리성질인 이것들은 빛과 부딪히면서 리트머스의 색색풍경을 뿜어내는데, 이 황홀경은 장자가 황당지언이라 말했을 때의 황홀감과 다르지 않을 터이다. 작품은 두 개의 개념에서 형상성을 구축한다. 현무와 기억이다. 현무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玄武'의 의미에서 찾아진다. 즉 현무는 우주의 숨결이면서 대지이고 하늘이다. 쉽게 말해 이것은 판이다. 그는 현무를 넓게 잘라 판을 만들고 그 판에 형상을 그린다. 그러나 판은 회화적 평면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판은 중부조(저부조, 고부자가 아닌)에 속하는 조각어법을 취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딱히 무엇이라 할 구체적 형상을 새기거나 혹은 새기는 것을 과하게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판은 드넓은 대지로 드러나거나 무한한 하늘, 아니 우주로 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판의 의미가 새로운 것은 그것이다. 그리고 이 판은 생명의 근원인 물의 모티프와 밀접하게 상관한다. 김유정의 소설 『영혼의 물고기』는 조성구의 작품과 비교해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의 작품도 물을 모티프로 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어느 때보다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메마른 삶을 비판하듯 김유정은 작품 속에서 물을 생명의 근원이자 죽음의 은유로써 강조하고 있다. 그는, 반복되는 기계화 문명 속에서 차갑고 메마른 기계인형처럼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통찰하고, 그 대안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물, 즉 현대인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줄 뿐만 아니라 유연하고 따뜻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물을 그리고 있다. 조성구의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물의 상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샘>과 <하늘 물고기>라는 제목에서 이미 드러내고 있듯이 모든 작품의 풍경을 물의 결과 이미지에서 찾고 있다. <샘> 연작은 일종의 '하늘 못'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의 샘은 어떤 장소 지형을 설명하지 않은 채 문득 거기에 있다. 어느 것은 항아리와 같은 우주이고, 바람결이 이는 하늘이며, 마른 대지다.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의 판에서 우주와 하늘, 대지의 결이 일렁이는 작품 속 샘은 맑고 청아하며, 그 자체로 청록의 숲이다. <하늘 물고기> 연작도 마찬가지다. 상감으로 새긴 구리 빛 물고기들이 자유로이 헤엄치는 곳은 그 하늘이며 우주이기 때문이다. 저 숱한 결의 다름이 만들어 내는 판의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억의 개념은 그동안 표현해 온 형상과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유년에의 몰입이 만들어 낸 서정성과 해학, 향토적 정취가 있었다면, 이번 작품의 기억은 한 개인의 특정한 삶의 기억이라기보다 숲의 기억, 나무의 기억, 물고기의 기억으로 보이는 자연의 기억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자연과 인간의 합일적 사유에서 오는 신령함의 체득이랄 수 있겠다. 그의 삶이 자연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보고 듣고 숨 쉬는 것이 그 안에 있으니 자연에서 체험되는 수많은 일상이 기억의 그릇으로 용해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의 작품들이 시적 성취로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의 작품들은 그의 삶이 터득한 만큼의 의미와 상징을 닮고 있다. 그의 작품들이 추상으로 치닫는 형국에서도 리얼리티를 상실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돌은 그에게 현자의 돌과 같다. 파울로 코엘류는 『연금술사』에서 철학자의 돌을 찾아 떠나는 것은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말했다. 조성구의 조각을 비유하자면, 작품 속 풍경은 그 여정의 풍경이며 신화라 할 수 있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는 비밀스런 언어가 아니라 명징한 말로써 생명의 근원이 어디인지 낮게 속삭인다. '우리다움'의 성질을 회복할 수 있는 자연의 심리풍경이 거기 있다. 하늘 물고기가 유영하며 찾아가는 곳은 어디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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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_ 현무암은 용암이다 | |
현무암 용접조각 기법 현무암은 용암이다. 용암이 쇳물처럼 넘쳐흐르는 장면에서 돌이 녹을수 있다는 발상이 현무암 돌 용접 조각의 시작이다. 산소 절단기로 1200도에서 1300도로 가열하면 현무암이 녹아내리는데 녹임과 동시에 금속 및 유리등을 같이 녹여 돌이 가진 고유한 색에 다양한 색을 연출 할 수 있는 기법이다. 불은 현무암과 유리를 녹여 하나의 성질로 만든다. 현무위에 한 몸으로 안착한 유리는 인공의 물감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오묘한 색을 발산하게 된다. 특히 유리성질인 이것들은 빛과 부딪히면서 리트머스의 색색풍경을 뿜어내는데, 색을 만드는 재료가 광물질이기 때문에 내부나 외부에서 날씨, 계절, 온도, 탈색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동과 철은 산소절단기로 작업하기 용이하지 않고 유리를 용접하는데 주로 사용한다. 금속은 프라즈마를 이용하여 고온고압으로 현무암 표면을 녹이면서 동시에 금속을 입자로 분사시켜 녹은 현무암과 섞이게 한다. 작품에따라 부분적으로 철과 동, 유리등으로 회화적인 돌조각을 다양하게 표현 할 수있다. - 현무암으로 조각한 다음 현무암과 색유리를 산소로녹여 용접하는과정- |
ARTIST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