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1-02-01 작가노트_정인희
 몇 해 전 사는 곳을 제주로 이사하면서 나의 생활에는 크고 미세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도시에서 섬으로 거처를 옮겨왔으니 생각도 감정도 작업도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려고 하는 대상은 이전보다 명확해졌고 나는 그 대상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자연의 모습이든 사물의 모습이든 그것들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아내기 보다는 어떠한 해답도 감정의 동요도 얻으려 하지 않고 바라보기. 섣부른 판단은 뒤로하고 일단 바라보기. 그것이 최근 내가 작업하는 방식에 있어 가장 크게 바뀐 지점이다. 나의 존재를 간구하기보다는 경유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으로, 어떤 참다운 느낌이 오기를 기다리는 개념이다.
 다음은 환기하기. 지금 내 주변에 널린 것이 책과 베개, 귤과 바다, 숲과 구름인 탓에 나는 그것들을 그린다. 특히 내게 자연의 모습은 묘사할 대상이기보다는 말을 건네고 싶은 말 상대다. 그 말을 나는 그리기를 통해 실행한다. 내 자신의 감정과 진폭을 자연에 보태고 싶은 욕구, 그런 것이 내 마음속에 있음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작업은 ‘관성적인 묘사’ 보다는 ‘내가 바라는 꿈의 환기’에 가깝다. 환기를 통해 대상의 심층에 접하고 파열을 꾀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인간이다. 사물에서 인간의 뉘앙스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여파에 실어 자연에 연결된 혹은 유대하는 관계적 자아를 경험하는 인간. 그러한 열망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쓰기. 이것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다. 긴장하고 깨어 있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그것이 감각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것 같다. 어떤 형식에 ‘갇히지’ 않고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는’ 게 지금 내 작업의 목표다.


2020년 제주에서

2021-11-20 작가노트_환상 정원
환상 정원


마당은 그냥 마당이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갖가지 빛과 그늘들이 모여 나름대로 움직이고 사라지고 변신한다.   빛물기 머금은 아침의 풀밭, 마당의 징검돌, 기지개 켜는 고양이, 뒤집어진 우산, 연못 위에 떨어지는 빗물, 담팔수 잎과 하얀 눈으로 뒤덮인 뜰. 제주의 정원 풍경이다. 안아주고 싶은 이런 풍경들을 날마다 계절마다 누리며 살아간다. 삶이 어려워질수록 내 눈은 자연을 좇아간다. 너무나 아름다워 같은 방향으로 달리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내 생각은 가다 멈추다 한다. 
이번 작업의 키워드는 정원, 적막과 고요, 환상이다. 그  속에서 느끼지 못 했던 것들이 점점 다가와 뚜렷해진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