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작품에서 드러나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슴, 새, 물고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슴, 새, 물고기

강창열- 진실이 시간의 흔적 속에 각인될 때

“어둠과 빛을 두고, 하늘을 만들고, 땅과 바다를 만들어 꽃피는 씨 맺는 풀과 나무를 만들고, 하늘엔 새가 날고 물고기는 물에서 번성하고, 땅에는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모든 것을 주시니라.(창세기)” 이제 막 토분과 흰색 그리고 약간의 색소혼합으로 만들어진 사슴 한 마리가 나무, 수탉, 꽃, 하늘, 바다를 곁에 두고 빛을 기다린다. 빛을 받아야만 호흡하며 온전한 생명체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에 애타게 빛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슴에겐 아직 시간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오직 정지된 시간에서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먼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는 것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온기가 자신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줄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기다림에 익숙해 있으며, 어쩌면 기다림 그 자체가 버틸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가끔 그를 찾은 고독이 너무나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자신을 닮은 그림자가 항상 함께 하고 꽃과 나비, 새가 주위에 있기에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간혹 자연의 모습을 빌어 만든 의미 문자로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급변하기에 순간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노천명 시인이 자신을 빗대어 그리고 있는 “사슴”이란 시이다. 
강창열의 예술세계-호제 부이오
강창열의 예술세계

아주 오래 전, 25~30년 전, 나는 이렇게 표명했다. “진정으로 예술분야에서 끊임없이 움직임이 있는 곳이 동양이다”라고.

백남준의 세상을 압도하는 독창적인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특히 한국이 그러하다고.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얼마 전 강창열이라는 어느 장르에도 분류할 수 없는 한 독창적인 한국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은 두말할 것 없이 현대적이지만 태곳적 한국의 깊은 뿌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 문양, 장식적 모티브, 돌 또는 왕궁의 기왓장에 새겨진 상징적인 도안, 과거역사적 기념물 안에 새겨진 꽃들과 동물들의 문양, 옛날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샤머니즘(역주: 원시종교의 한 형태)의 한 장면, 등등에서부터 그의 그림은 시작된다.

캔버스로 옮겨지기 이전에 우선 컴퓨터로 다듬어 지는듯한 강창열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모든 형태의 법칙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의 진행과정을 보면, 달리(Dali) 또는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것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 안에서 드러나는 조형적 세계는 이상스럽기도, 비논리적이기도, 뜻밖이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매혹적인 그의 지적 요소들이 이웃해서 절묘하게 조합되어있다. 우리들은 그 소재들의 조합, 파괴, 재조합이 얼마나 수없이 반복되어진 것인가를 간과해선 안 된다.

시간(역사)속에서 발견되는 영적이고 심미학적인 것이 모두 집결되어 그의 그림에서 다시 재현된다. 인간적인 지상에서의 삶이 그대로 묻어서 흘러온 역사, 즉 3차원적인 인간의 공간의 개념에 4차원적인 시간의 개념을 더한 것이다.

영혼이 담긴 이미지 혹은 몽상적인 그의 그림 안에는 열려진 창문이 있고, 그 창문 밖으로 아주 가까이 닿을 듯 느껴지지만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듯한 작가의 세계가 보인다. 

문학의 장르 중 시에서만 표현되어 이해가 가능한 단어들처럼 그의 그림은 마치 우리인간의 현실의 삶과 닮아 있는 듯하다.

강창열의 작업 안에서 소재들의 필연적인 구성은 거의 투시력의 경지에 오른 작업과정이 요구되며, 그렇게 완성되어진 그의 작품은 비로서 시의 구조를 파헤치듯 조금씩 음미된다.

‘시인’ 강창열, 그의 작업과정은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위한 하나의 기념적 행위라 볼 수 있다. 그의 기억 속에 은닉된 이미지들의 베일들을 하나씩 벗겨가면서, 몽상적 이미지들을 하나의 형태로 재현하면서, 그리고 그의 영혼 안에서 그의 유년시절과 기꺼이 재회하면서.

꿈의 영역과 강창열의 작품은 굉장히 비범하고 독특하다. 한국인의 뿌리가 그대로 묻어있다. 그리고 노자의 사상과 닮은 이 한 예술가의 영혼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호제 부이오, 파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