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미묘한 어긋남으로 비롯된 감성의 나무 - 큐레이터 신경아
미묘한 어긋남으로 비롯된 감성의 나무
- 큐레이터 신경아

판화의 매력은 판이라는 제 삼의 가변적 소재위에 작가의 주관을 개입시키고 불확정적인 요소들의 변화를 넘어 보다 미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판을 이용해 같지만 다른 복제가 가능해지고, 동일하지만 미묘한 어긋남 속에서의 느껴지는 섬세한 자극을 간과 할 수는 없다.
잉크나 종이에 의한 미묘한 어긋남, 판형의 마모됨에 따른 미세한 변화는 같다고 해도 완전히 일치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회화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재료와 압력의 공정을 거치는 동안 예기치 못했던 요소들이 작용하는 것이 판화의 매력이라 할까?
긁고, 새기면서 만들어지는 에칭의 섬세하고 정교한 선은 부식 의해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킴에 따라 예상치 못한 미묘함과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에칭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만들어 내는 정밀하고 섬세한 형상의 미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데 김민호의 전통적인 에칭 기법은 정밀한 노동의 과정과 함께 개체와 여백간의 미묘한 어긋남과 간극을 통해 고즈넉한 명상적 느낌의 자연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미학사에서 끊임없이 지속되어온 것 중에 하나는 예술이 자연을 재현한다는 것이며 미적 가치 역시 자연에 따르는 것을 이상으로 보고 있다. 예술은 자연의 재현을 통해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표현해 내고  인간의 삶이 예술과 분리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작품은 작가의 형상을 입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일 것이다. 김민호는 이러한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존, 교감, 대립되고 상응하는 존재임을 나무라는 메타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김민호에게 있어 나무는 어머니의 품을 대신하는 평온함과 안도감의 상징적 소재이며, 어머니와 같이 항상 곁에 있어서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는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포괄적 의미를 담은 대상이다. 오랜 시간 무심하게 지나쳐 온 것들 이지만 어느 순간 대상과의 눈길이 조응하는 순간 비로써 소중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동판위에 새겨진 짧은 선들의 반복과 노동의 시간들은 지나온 오랜 시간을 담고 있으며 외로운 풍경속에 관조적 나무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나무라는 하나의 개체는 화면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화면의 중심에는 나무기둥이 중심축을 이루고  앙상한 줄기와 가지들이 화면 가득 뻗어 있다. 일정 하게 반복되는 선의 길이, 두께, 기울기, 겹침 등의 정도에 따라 나무의 기둥과 나뭇가지가 구분되며 화면의 명암 또한 선의밀도와 정교함에 의해 좌우 된다. 선 과 여백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선의 밀도와 집적에 따라 굵은 나뭇가지로부터 잔가지로 흐려지며 결국에는 공기로 흡수되어 버린다. 선으로 시작된 개체는 기둥으로부터 벗어날수록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호한 공기의 흐름 속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다. 최근의 작업들에서는 공기 속으로 흐려지는 선들의 느낌들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 여리지만 강한 버드나무의 생명력은 기존의 빽빽한 구성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묘사를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버드나무가 담고 있는 풍류적 성격과 함께 여백에서 오는 공간의 힘을 더욱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연에서 생성되는 모든 것들은 최소단위의 결합과 변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는데 인간과 자연, 예술의 과정을 일치된 삶으로 보고 나무의 형상을 통해 존재와 소멸이라는 순환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나무의 재현에서 시작된 김민호의 일련의 작업들은 이제 자연의 사실적 묘사와 더불어 관조적 관점에서서 내면의 감성과 인상이 담긴 새로운 시각으로서 변화 되고 있다. 
흑백의 공간속에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의 모습은 화려한 색을 사용하지도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지도 않지만 인간의 감각기관을 자극하고 내면에 숨겨져 있는 지각적 사고와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표현, 새로운 양식, 새로운 매체에 관심을 갖고 흥미롭고 낮선 것들에 귀 기울인다.
거듭되어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공급해줄 뿐 아니라 자극적인 변화에 따른 새로운 예술형식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고 있다. 과학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의 영향에서 인간을 차단시키고 격리시킴으로써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들로 유혹한다. 그러나 디지털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전통적인 것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것은 새로운 것이 등장 하더라도 본질과 가치,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인간관계 속에 인간됨이 스며들어 있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민호의 나무들은 자연을 재현하거나 모방하는 테크닉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을 동등한 시각으로 봄으로써 나무라는 개체를 통해 나를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잠재되어 있는 감성을 잔잔하게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