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2-03-21 어린시절 좋아하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등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작가노트

어린시절 좋아하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등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인간과 자연은 서로 팽팽한 대치상태에 놓여있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적대 관계에 놓인 인간과 자연의 모습은 자연히 그 둘의 '공존'으로 인한 문제점에 관심이 이어지게 된다.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없는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과제를 얻게 했다. 그 물음에 대한 고민으로 출발해 현재에 이르게 되면서. 나는 인간과 자연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마주치게 된다. 그 물음은 여전히 새로운 시야와 마음으로 자연을 만나게 해준다.

바람 많은 제주엔 퐁나무도 많다. 한쪽으로 바람을 맞아서 기형적으로 치우쳐 서 있는 모습은 웅장한 성과 같이 힘 있고 중후한 느낌이고, 마을 어귀에 자리를 잡고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마을을 감싸 안은 수호신과도 같다. 무엇보다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형상은 신비하기까지 하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마을에 이 나무를 일부러 심었는데 귀신이나 악귀로부터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그렇게 멋진 나무가 주변 곳곳에 존재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자연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나 자신의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했고, 그 속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멋진 대상을 발견 하게했다. 가까웠다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비로서야 만난 퐁나무 이기에. 이번 작업에서 나는 특별한 관심과 소중함을 표했다.

나무의 원래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뭇잎이 없는 가지만 그리고 있다. 나뭇잎은 나무의 일부이나 계절마다 새로 나고 지는 것이 마치 옷과 같아서 마치 사람이 옷을 입으면 원래의 몸매가 감춰지듯 가지를 가리고 있다면 나무의 본 모습을 다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품 속 나무는 짧고 가는 선으로 채워져 있다. 동판 라인에칭은 가는 선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심지어 더 가는 선을 긋기 위해 바느질용 바늘을 숫돌에 갈아 더 뾰족한 니들을 직접 만든다. 짧고 가는 선을 나무가 자라는 수평방향으로 일정한 규칙성이 띄게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그어 채워 나간다. 선 하나하나 긋는 행위는 쉽지 않다. 손가락에 긴장을 주고 일정하게 계속 그리고 있으면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제주 퐁나무는 이전작업에서 그리던 나무보다 훨씬 많은 잔가지와 굵은 가지를 가지고 있다. 선을 가늘고 촘촘하게 채우기에 정성을 많이 쏟을 수 있는 좋은 대상이다. 나무 한그루 가지고 하루 이틀도 아닌 수개월이란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선을 그을 수가 있다. 그러면서 나무와 나는 하나가 된다. 내가 나무의 어머니가 된 느낌이다. 그렇듯 퐁나무의 모습엔 시간의 흔적도 있고, 삶의 모습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진행과정은 인간, 자연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에 표현된 나무는 단순히 나무 하나의 자연물임을 떠나 인간과 자연을 대변하는 대상이다. 인간 자연은 모두 작은 입자들이 모여서 이루어 진 것이고 이루고 있는 형태에 따라 모습이 다를 뿐임을 의미한다. 또한 그 개체는 각 개체마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작품 안에서 보면 짧고 가는 선으로 촘촘히 채워나갔지만 결국 가지 끝으로 가면 각각 따로 떨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생긴 선과 선 사이의 공간 때문에 나무라고 부를 수 있는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각각 개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다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전부 같은 존재이므로 그 어떤 것을 대할 때 나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생겨난다.

공기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자유롭게 숨을 쉬듯 자연이 주변에 당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았다. 작업을 하면서 피부에 와 닿는 자연의 존재를 다시 보게 되고, 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면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다. 나는 이제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그 ‘당연한’ 이야기들을 정성들여 말하려한다.
2022-03-21 작가노트 - 기다리는 집
작가노트
- 기다리는 집

 ‘이제는 거의 다 떠나 빈집들만 보이고 고요한 가운데 한쪽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사진을 찍던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깜짝 놀랐다. 멀리서 누군가 살기 어린 눈매로 노려보며 빨리 나가라고 한다. 당황한 나는 재빨리 자리를 뜬다. 계속 사진 찍고 돌아다녔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이대 앞 아현동부터 염리동으로 이어지는 동네에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수십 년간 살아온 동네사람들은 거의 다 떠났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 몇몇이 남아 생존을 투쟁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사실 훨씬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일 들이다.  2002년부터 서울시와 경기도에는 시내 곳곳이 뉴타운 지구로 급격하게 지정되면서 재개발, 재건축 바람이 일었다. 나의 20대 부터 오늘날까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한 때 거주하던 북아현동도 그렇고 내가 서울 생활을 하게 된 이후 겪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다.
 대학 졸업 후 나의 작업실은 북아현동이었다. 재개발로 인해 노고산동으로 옮겼고, 심지어 그곳도 몇 년 뒤 건물주가 바뀌면서 재건축을 이유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심지어 최근 정착한 갈현동 또한 작업실 맞은편이 재개발이 시작된다고 한다. 현재는 북아현동에 있던 곳은 흔적조차 없다. 노고산동은 건물은 남아있으나 주변이 재개발 진행 중이다. 지금 있는 곳도 언젠가는 재개발이 되어 없어질 것이다. 재개발이라는 것이 되기 시작하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건물, 가로수, 화초들, 전신주에 얽힌 전선들, 좁은 골목길, 중턱의 작은 정자, 가파르고 좁은 계단 등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겉모습 뿐 아니라, 동네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마저 남겨지는 것 하나 없이 사라져 무척이나 쓰라리고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작업에는 자연스럽게 재개발이라는 현실이 스며들게 되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이사를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음으로 가장먼저 돈이 될 만한 창호나 대문 같은 금속류 등이 뜯어져 없어지기 시작하고 쓰레기 등 폐기물도 쌓여나간다. 그러면 동네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못해 전쟁이 나서 폐허가 된 것 같이 보여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데 신기한일이 벌어진다. 예부터 사람이 집을 떠나면 마당이나 집터에 개망초나 대나무가 마구 번식한다고 들었다. 사람이 살고 있을 때는 식물이 생활영역에 침범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떠난 빈 건물은 식물들이 어떻게 알고 그런지 경계를 넘어 집을 점령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등장하는 지구의 환경은 독이 가득한 곰팡이들 때문에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있는데, 결국에는 곰팡이들이 정화작용을 하고 깨끗한 환경을 다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는 나에게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식물들의 역할은 수많은 삶의 이야기와 흔적들에 핀 곰팡이 같이 느껴진다. 건물의 시점에서 보면 이제 마지막 손님을 들인 것이기도 하다. 이제 앞으로 다시 볼 수 없을 동네의 구석구석 가장 마지막 모습을 담은 것이 이번 작품이다.

 기다리는 집 작품에서는 곧 먼지같이 사라질 집들과 식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짧고 가는 선들을 조합하였다. 이는 이전 나무를 그리는 작업에서의 짧고 가는 선들이 가지고 있던 입자의 의미와 맥락을 같이 했다. 화면 안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단단한 조합이 아닌 부슬부슬하고 먼지 같은 느낌이 나도록 표현했다. 넓은 면적을 선들로 꽉 채우는데 비록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곳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는 차원에서는 오히려 부족함을 느꼈다.
 재개발이라는 것이 인간사에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동네 몇 개가 모인 드넓은 지역을 완전히 지우고 새로 만드는 일은 우리 역사를 통틀어 전쟁 이외에 흔한 일은 아닐 듯하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현재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벌어지고 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바꾸는 일이고 커다란 움직임에는 틀림이 없다.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충돌과 파괴적인 행위들, 그 거대한 흐름에 여리고 미미한 것들은 어느 순간 새로운 아파트 단지에 파묻혀 잠들어 버렸다. 지금 나의 작업들은 그 미미한 이야기들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