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김성진의 ‘생각하는 입술’_이주헌(미술평론가)

김성진의 ‘생각하는 입술’

 

 

이주헌(미술평론가)

 

김성진은 오랫동안 사람의 입술을 그려왔다. 지금도 계속 입술을 그리고 있다. 아직도 그려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그린 입술 그림만 120점이 넘는다. 그 정도면 그릴 만큼 그린 게 아닐까. 더 그릴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그에게 입술은 아직 탐구해야 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여전히 매력적인 주제다. 

김성진이 입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부터다. 당시 오브제 작업을 주로 했는데, 전시가 끝나고 나니 설치했던 것들을 죄다 버려야 하는 현실이 착잡했다. 그래서 다시 캔버스 앞에 섰다. 그리는 즐거움을 되찾고 싶었다. 소재는 재미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인물 쪽으로 잡았다. 때마침 척 클로스의 전시가 열려, 사람이 실제보다 크게 확대되어 그려졌을 때 압도해오는 느낌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척 클로스 같은 포토리얼리스트나 하이퍼리얼리스트들처럼 사람의 얼굴에만 집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다 미시적으로 나아갔다. 얼굴 전체가 아닌, 얼굴의 일부를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해 보았다. 그렇게 눈, 코, 입을 오가다가 결국 입술에 안착했다.

입술은 우리의 신체 가운데서 가장 미묘하고도 복잡하며 풍부한 표정을 보여주는 기관이다. 물론 손이나 눈 같은 부위가 보여주는 표정도 매우 다채롭다. 하지만 입술만큼은 아니다. 특히 눈의 경우, 우리는 타자의 눈을 관찰함으로써 많은 것을 엿볼 수 있지만, 그 눈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까닭에 상호간에 경계와 긴장의 양상을 초래하기 쉽다. 반면 입술에는 그런 경계막이 없다.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하면 깊은 속생각뿐 아니라 무의식적인 흐름까지 세밀히 추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이만큼 매력적인 주제도 드물다 하겠다.

김성진이 입술에 매달린 초기에는 자연스레 감정의 표현에 집중했다. 속마음이 잘 드러나는 입술의 특징을 중점적으로 살린 것이다. 프러포즈를 하거나 키스를 하는 입술은 사랑의 정서로 충만하다. 모세혈관이 밀집해 색채마저 빨간 입술은 신경 말단이 많이 모여 있어 뜨거움이나 차가움, 아픔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낀다. 감정은 그 모든 감각의 경험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입술은 그 섬세한 감각의 표정으로 갖가지 감정의 양상들을 드러낸다. 화가 스스로 그리면서 흥미를 느낀 부분이고, 그의 그림 앞에 선 관객들 또한 바로 그 이유로 그의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다.

김성진에게 입술이 매력적인 소재인 또 하나의 이유는, 다양한 컬러의 립스틱이 이 감정의 표정들을 보다 무궁무진하게 증폭시키기도 하고 실제의 감정을 철저히 감추거나 변조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형태적 측면의 아름다움 탓도 있겠지만, 김성진이 남성의 입술보다는 여성의 입술에 집중하게 된 까닭에는 바로 화장을 통해 입술이 전하는 메시지가 매우 복잡해하고 다층적인 양태로 변한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그가 입술을 그리던 초기에 사람들과 인터뷰해 보니 여성들이 입술을 빨갛게 칠하면 대부분 ‘도발적이다’, ‘에로틱하다’ 등등 성적인 측면과 연관된 반응을 보였는데, 이런 통념과는 다른 한 여성의 이야기에 그는 ‘메이크업’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여성이 ‘립스틱을 짙게 바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 곧 심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도발적이고 에로틱한 표현을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이나 성적인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그런 표피로 돌려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리 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이용한 일종의 ‘성동격서’였던 셈이다. 

이처럼 우리의 입술이 드러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매우 복잡하고 ‘델리케이트’하며 모호하기까지 하다. 심층심리가 선명히 드러나는가 하면 분명해 보였던 감정조차 오리무중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그의 입술은, 우리가 보는 게 다가 아닐 뿐 아니라 보이는 것이 그 자체로 진실을 말해주는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런 그의 그림은 자연스레 우리로 하여금 보이는 것 너머를 바라보게 하고, 인간 존재의 가려진 심연에 대해 깊이 숙고해 들어가게 만든다.

김성진의 최근작들은 바로 입술의 이런 복잡 미묘한 표정들을 하나의 상황극처럼 펼쳐 보이는 그림들이다. 상황극적 연출이 강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입술들이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는 언어의 기능을 갖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입술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표출된 바로 그 메시지 자체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같은 문장이라도 언어라는 게 맥락에 따라 그 얼마나 의미가 달라지는가. 그러므로 그의 이번 전시는, 인간의 입술이 얼마나 다양한 표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가를 확인하게 하는 시각적 놀이의 마당임과 동시에 그 표정과 메시지 뒤로 얼마나 많은 해석의 미로가 있는지를 더듬어보게 하는 사유의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수줍음>을 보면, 찢어진 순백의 종이 사이로 입술이 살짝 드러나 있다. 마치 곤충이 탈피를 하듯 은근히 입술을 드러낸 모습이 수줍음이라는 타이틀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다문 듯 살짝 열린 입술은 여인의 은근한 자신감 또한 드러낸다. 여인은 자신의 매력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수줍음과 자신감이 교차하는 그 표정에서 우리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달콤한 유혹>은 수줍음과는 대비되는 적극적인 욕망의 표출을 보여준다. 종이가 아니라 은박지를 비집고 나온 입술에는 꿀이 묻어 있어 그 꿀물이 입술 아래로 방울져 흐른다. 에로틱한 감성이 강조된 이 그림에서 꿀은 여인의 욕망의 상징이자 남성으로 상정된 이 그림을 보는 관객의 욕망의 상징이다. 남성과 여성의 키스는 바로 그 꿀, 곧 욕망을 쟁취하고자 하는 저돌적인 투쟁에 다름 아니다.

키스를 주제로 했지만, 남녀의 키스가 아니라 주체 자신과의 키스를 주제로 한 그림도 그렸다.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입술과 키스하는 입술.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동안 보다 매력적으로 변화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빠져드는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이 그림은, 단순히 화장의 수준을 넘어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가 하면 <낯선 이>는 본질이 바뀌지 않아도 환경과 상황이 바뀌면 주체 자체가 변한 듯 보이는 현상을 포착한 그림이다. 빨간 조명이 여인의 입술을 감싸면 여인은 스스로를 관능적으로 꾸미지 않았어도 매우 관능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조명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꾼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만큼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우리의 의식이나 욕망이 항용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히 입술을 그린 그림으로 설핏 보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김성진의 입술 그림은 볼수록 그 장면을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씹는다는 것은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입이 행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음식물을 많이 씹을수록 영양분을 섭취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그의 그림은 그렇게 곱씹게 만드는 매력으로 입술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나아가 인간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풍성하게 사유할 정신의 영양분을 제공한다. 이런 그의 그림을 보는 당신의 입술은 지금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느 순간, 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무언가 생각거리가 있을 때 나타나는 나의 입술 표정이다. 김성진의 그림은 이처럼 보는 즐거움과 생각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게 한다. 곱씹을수록 찰지고 맛깔나는 그림이다.

아트뮤제 전시서문_Mindfulness

전시 소제목 : Mindfulness

 

-  간단한 작품 설명 -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사회적인 인위적인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에서부터 흥미롭게 생각하여 연상되는 상황들을 바탕으로 시작했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거나 돋보이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알리는 것, 그리고 단점이나 부족함은 감추어 세련되게 만들어내는 노력을 하는 현상들을 정지되고 극대화 된 입술이란 소재로 색다르고 다양하게 또는 은연히 부각하고 진중한 표현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현대인들은 사회적 동물로서 현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나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꾸미고 자신을 소개하거나 어필합니다. 요즘은 과학과 인터넷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sns 나 각종 어플등에서 가상과 현실이 모호해 질만큼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즐비하게 뉴스거리로 등장 하곤 합니다.

 

처음에 입술을 소재로 작업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이 다른 점은 보편적으로 특정 남성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성인 여성들은 make up ‘화장’을 한다는 것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화장이나 분장을 통해서 본연의 모습을 가리거나 아름답게 더 돋보이게 하여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내듯이 우리들은 본모습을 감추고 꾸며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해져왔습니다. 

 

본연의 겉모습과 내면에 감정, 진솔함은 연출된 자신의 모습 뒤에 숨기곤 합니다. 때론 그 익숙함에 혼돈하여 무엇이 진실인지 혼돈하고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 외모지상주의란 말이 자주 들려오고 떠오를 정도로 우린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개성 있는 외모나 인상, 이미지에 신경을 쓰며 공을 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울을 통하지 않으면 자신의 신체 중 얼굴은 볼 수가 없기에 

바쁜 일상 중에 자신의 감정에 따른 표정은 거울과 같은 반사체가 없다면 내 표정은 추측할 뿐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거울 표면에 비추어진 자신의 얼굴은 내가 늘 그리는 그림과 같이 실체의 입체와 다른 평면인 캔바스에  잘 그려진 그림처럼 평면거울일 뿐입니다. 

 스스로 팔과 다리를 보듯 인지하는 것이 아닌 비추어 보는 도구, 다른 물체죠  스스로 직접 볼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코 끝이 퍼져서 보이는 정도와 그 아래로 겨우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면 보이는, 아니면 아랫입술을 힘껏 내밀었을 때 내려다 보이는 부위가 얼굴의  전부일 것입니다.

 

때론 삶에서 지친 업무나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서 일탈할 때,  자신을 위해서 멋지게 표현하거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개성있고 자유로운 표현들로 자신을 내보일 때 그러한 잠재된 내면에서의 억제되었던 내면이 드러나고 보여지 듯, 인간은 자신이 처한 사회 안에서 여러상황들에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에 부합하도록 적절한 표현을 추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상황들에 맞춰서 마치 스스로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은 어쩌면 스스로를 각자의 기준으로 정도에 맞게 표현하고 있었고, 그 표현이 과하면 능력이 있고 자신감이 강하거나 자아도취 허언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족하거나 모자르면 수수하고 검소하고 소박한 사람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거나 부정적으로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누군지 모를 익명의 여성의 입술을 우리들의 공감대 안에서 공감하며 자신을 이입하고 각자의 삶에서 자신의 정도를 가늠하거나 연상하고 소통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기존의 작업들은 사람들마다 다양한 미안함을 연상시키고자 한 so sorry, 사랑이란 감정을 사랑의 시작으로 본 ‘키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과 같이 우리들의 내면에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고 mildcontrol 가림과 드러냄  편견과 선입견들 오해  위선 거짖 과 진실 기타 등등  내용들에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며 의도가 없이 낮선 공간이나 외부의 상황에 노출된 내 자신이 그런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르게 보여 지는 상황을 연출하고 공감하려고 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네온사인의 조명이나 낮선 공간에 우연히 서 있었을 뿐인데 내 얼굴을 스스로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 얼굴이 주변의 상황에 다르게 보여 지고 있는 상황으로 본질과 달라짐을 뜻하며 기존보다 더 타인이 나를 보는 의식적이고 시각적인 것에 힘들 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영택 평론글_김성진의 작품세계

박영택 

 

김성진은 인간의 입술을 크게 확대해서 그렸다. 특정인의 얼굴은 부재하고 배제된 체 오로지 입술이 위치한 부위만이 거대한 풍경을 이루고 있는 그림이다. 눈길을 잡아 끄는 이 매혹적인 소재는 입술이란 친근한 소재를 더없이 관능적으로 보여주다가도 이내 무척이나 낯설게 제시한다. 자세히 보면 징그러울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된 그 부분을 들여다보노라면 흡사 의학도서에 실린 도판을 보는 듯도 하다. 병원에서 지독하게 까발려진 인체의 내부를 확인하고 앉아있을 때의 체험이 생각난다. 근작은 단독으로 설정한 입술이 좀더 극적인 상황성을 드러내고 있고 모종의 내러티브, 장면연출을 만들어내는 편이다. 단독으로 설정된 입술과 남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지만 둘 다 무언가의 매개에 힘입어 입술의 관능성과 성애적 분위기를 고조하는 편이다. 키스란 고대 이전부터 존재해온 의사소통방식이다. 그러니까 키스와 성행위는 언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다. 두 사람이 입을 바짝 대고 혀를 상대의 입에 집어넣어 교감하는 것은 그 입이 영적인 기운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입맞춤은 서로의 영혼이 깊게 결합하는 것을 상징해왔다. 매우 빨간 입술과 하얀 치아, 양귀비꽃이나 뱀과 같은 혓바닥이 보는 이의 시선을 막아 선다. 동양에서는 미인의 조건으로 '단순호치'(丹脣晧齒)를 꼽았는데 이 그림은 그 두 개의 극명한 대비를 도발적으로 보여주는 편이다. 그래서 장면은 일상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포르노이미지와 겹쳐진다. 동시에 입술로 이루어진 풍경화이자 입술로 쓰여진 문장, 수화가 아닌 '순화'(脣話)인 셈이다. 이 입술은 그림의 소재이자 주제이고 이미지이자 상징적 언어로서 기능한다.

 

인간이 거느린 신체 가운데서도 가장 바쁜 입은 '얼굴의 싸움터'이다. 물고 핥고 빨고 맛보고 씹고 삼키고 말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신음하고 쾌락의 교성을 지른다. 하품과 기침을 하고 침을 뱉고 노래를 부르고 미소 짓고 웃고 울고 키스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입은 몸 속과 연결되어 있고 입을 벌리면 내장의 온기와 소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신경종말을 가장 풍부하게 갖춘 부위라 그만큼 예민하다. 그래서 입술은 단연 촉각의 기관이다. 음식물처리와 의사소통의 기관이지만 그것보다는 미용의 초점이기도 하다.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사춘기에 이르면 소녀들의 입술은 붉어지고 도톰해진다. 가슴과 엉덩이 주위로 점점 축적되는 지방과 더불어 다산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시각적 신호가 그 입술에 자리한다. 따라서 여자의 입술은 일생 동안 성적 광고의 주요 터전이다. 따라서 실리콘이나 콜라겐이나 지방이식 등을 통해서라도 도톰한 입술을 유지하려 한다.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도 립스틱만은 바른다. 할머니들도 외출할 때면 어김없이 붉은 색 루즈를 바른다. 주름이 얼굴을 덮어도 자신이 여성임을 증거하는 마지막 수단, 거점인 입술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여성의 삶이 다하는 날은 입술에서 립스틱이 사라진 날이다. 립스틱을 칠한 마릴린 먼로의 입술만을 연속적으로 구성한 워홀은 여자에게 입술과 립스틱이 어떤 것인지를 예리하게 간파한 작가다.

 

김성진의 그림 속 배경은 하얗게 지워지고 입술만을 보여준다. 타액과 땀, 물기, 투명한 막 같은 것으로 흥건하게 적셔진 몸의 한 부위에 집중되어있다. 코와 입술에 고드름처럼 맺힌 물기, 물속에 잠겼다 떠오르는 듯한 입술, 서로의 입술과 혀의 질감과 촉감, 침을 교환하는 키스 장면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에로티시즘을 보여준다. 남자의 혀와 여자의 입술은 각자의 부푼 성기를 연상시키고 그 혀들의 교호는 탐닉과 삽입을 대체하면서 실재 성행위를 시뮬레이션 한다. 누군가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그 육체 안으로 삽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키스를 한다는 것은 자기 몸과 마음을 기꺼이 허용하겠다는 제스처다. 따라서 그림 속 입술은 한결같이 열려있다. 그 벌어짐은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위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단단하고 날카로운 혀와 침으로 적셔진 이빨이 보이고 누군가의 입술을 맞대고 있거나 혀와 입술로 식물의 성기인 꽃과 접촉하는 있는 장면들이다. 여성의 입술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입술은 한결같이 립스틱에 의해 붉게 장식되어 있다. 화장에 의해 아름답게 보이는 입술이지만 가까이 다가간 시선에 의해 확대된 입술과 입술 주변, 혀 등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다소 공포스러울 정도로 징그러움을 안기기도 한다. 모순적인 이미지인 셈이다.

 

혀가 과장되게 위치해있고 이를 통해 우리가 늘상 보고 접하는 누군가의 입술이미지이지만 무척 생소하고 다소 괴이하거나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신체의 어느 한 부위가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눈앞에 자리할 때 순간 그것으로부터 피하고 싶다. 내 몸이 저렇게 생겼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운 것이다. 극대화된 입술은 관능성, 성적인 의미를 강하게 부추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처럼 혐오스럽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키스는 달콤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와의 입맞춤은 죽기 보디 싫은 일이다. 창녀들은 성기를 내주지만 입술만큼은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거대한 입술을 보는 순간 관람자들은 그것이 누구나 달고 있는 얼굴의 한 소중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체 혐오스럽거나 괴기스럽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와 동시에 입술의 생김새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알다시피 입술은 드러난 점막이다. 구조적으로 인간의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신체의 일부인 것이다. 입술은 인간의 욕망과 가식, 위선을 가지는 상징성을 지닌다. 입을 통해 말을 함으로써 내면의 자아와 밖으로 표출되는 자아가 동시에 열려있다. '내면과 외면을 연결하는 자아의 통로'인 셈이다. 작가는 입술이 지닌 그 독특한 성격에 주목, 가려진 인간의 이중성을 입술이라는 기관을 매개로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중성이 이 입술그림에 스며들어있다.

 

이른바 포토리얼리즘 기법에 입각한 이 그림은 사진과 회화의 사이에서 진동한다. 작가는 모델의 입술 부근을 사진 촬영한 후 이를 기본으로 해서 그 위에 자신의 상상력을 얹혀 입술풍경을 만들었다. 여러 모델의 다양한 입술 모양을 렌즈 가득히 클로즈 업 했는데 극대화된 이 대상은 작가 내면의 표현으로 감상하는 이와 작가를 연결하는 기호가 된다. 실감나게 그려진 입술의 형태(이미지)는 작가에게 일종의 상징이자 시각 언어다. 작가는 화면상에 주제와 상징의 징후가 되는 극대화된 입술 이미지만을 나타내고 나머지는 생략하여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이는 시각을 통해서 얻는 형에 머물지 말고 빈 공간을 통해 상상력을 통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다. 여기서 사진은 작가에 의해 선택된 하나의 이미지다. 그는 사진을 이용하되 주관적인 감성에 의해 사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자연광 아래서 촬영한 사진을 이용해 사진을 전사하되 묘사 단계에서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자연광에 의한 색채를 구사하고 있다. 아울러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인지되는 피부의 감각을 정밀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만져질 듯한, 촉각적인 피부의 느낌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이다. 그것은 사진의 표피성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김성진의 이 입술그림은 최근의 몸의 담론, 성과 욕망,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담론과 최근 극 사실주의, 사진과 회화, 팝적인 이미지 등과 관련된 상당히 풍성한 의미를 지니고 매혹적으로, 기이하게 자리하고 있다. ■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