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3-10-18 1층 -One sided love 2023년, 2층 2022년 작품설명

1층 -One sided love- 2023년 작품설명

 우리는 주어진 삶 속에서 다양한 상황과 갈등을 접하며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간다.

그중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바라만 봐도 설레고 두근거리는 신비로운 느낌이며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

나이가 들어도 사랑하는 감정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복잡하며 특별한 감정일 것이다.

 

 그동안 인간 내면을 모티브로 하여 입술을 주로 디테일하게 표현했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입술의 주름처럼 우리들의 내면 안에 기인하는 다양한 감정, 혼란, 갈등을 연상해보면 우리들의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를 떠 올리게 된다.

이렇듯 명확히 정의하기 힘든 모호한 내면의 감정들을 연상하고 상상해보기를 바라며 작업을 하였다.

 

대표작 One sided love, Ehco to Narcissus 작품은 신화에서 요정 에코가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에 빠져서 다가가는 모습과 나르키소스를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에코와 동굴 그리고 물에 빠진 나르키소스가 변하여 핀 수선화를 상상하여 표현해보았다.

 (신화의 이야기처럼 에코는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에코는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끝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저주를 받아 나르키소스에게 다가갔지만, 외면을 받은 아픔으로 동굴로 들어가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로 남는다. 그로인해 나르키소스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저주를 받아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빠져 죽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사랑에 빠져서 설레이는 감정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숨기기 힘든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 자신의 내면에 가둬둔 본연의 감정을 꺼내어 거울에 비춰보듯 바라본다면 어떤 아름다움으로 보여질까...

 ‘아름다움’이라는 말의 어원 중에는 ‘나답다’라는 뜻으로 ‘나다움’을 사랑한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은 소중하다는 뜻을 담고 나르시시즘으로 다시 한 번 ‘나다움’을 찾아보기를 바랬다,

 

2층 - 2022년 작품설명

기존의 작품들은 입술과 여성의 피부를 모티브로 하여 섬세한 표현을 하였다. 보여지는 입술은 속살이 겉으로 삐져나온 구조와 같이 내면에는 보여지는 것으로는 알아차리기에 부족하거나 전혀 다른 감정을 숨기고 있음을 뜻하고 있다. 이처럼  뒤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감정이나 욕망과 갈등을 다양하게 표현해왔었다.

가리거나 드러내기 위해 치장을 하는 행위로서 여성의 화장은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슬픔이나 우울함을 가리기 위해서 더욱더 도발적인 붉은 립스틱을 바르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본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소통을 하고 알아가는 과정들도 결국 단편적인 것에 그치는 것 일뿐 그 사람의 내면 전체를 이해하기는 여렵고 많은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 드러내기 힘든 내면의 다양한 감정들을 입술을 통해서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었다.

-식물을 소재로 한 작품 설명-

식물의 성장 과정을 보면 우리의 삶에서 비추어 볼 때 지금까지의 성장을 의미한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정지됨은 죽음을 뜻하며, 작품을 보면서 그 순간을 기록해 주는 것처럼 회상되고 연상되길 바란다. 

성장한 식물은 오래된 나무처럼 계속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여 진다.

잘 가꾸는 만큼 잘 자라던 식물도 시들면 잎이 떨어지고 생장을 멈추기도 하고 또 어떤 식물은 다시 다른 싹을 피우거나 뿌리를 내리며 생장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제한된 시간이 좀 더 지속되기를 바라고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과 염원이 있듯이...

 

  식물을 정하고 화분에 담고 그 식물을 키워 보았다. 이렇게 조화롭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식물이 사실은 자연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 인공적안 공간과 환경에서 자라나는 인위적인 자연이라는 것을 토대로 시작했다.

작은 잎 하나에 주목을 하여 기존의 작품에서처럼 다양한  입술을 크고 자세하게 표현해왔듯이 거대한 입술 작품처럼 잎을 크게 확대하거나 인위적인 색채와 공간을 표현함으로서 사실은 익숙하고 인위적이며 인공적인 자연이 인간이 사회화되고 익숙해지는 것을 뜻한다.

 

화분을 집에 들여놓으면서 문득 이 공간이 어색하거나 낮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다운 것,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서 보는 식물들과 매일같이 물을 주고 성장을 지켜보고 관찰하면서 그들의 삶이 나에게는 내가 관리를 해야만 하는 것으로만 식물이 자라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연 속의 식물들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그들만의 삶을  자유롭게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사람으로 인해 사회화되고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공간에서 익숙해지고 낮선 공간에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여인의 입술을 모티브로 작업을 해오면서 

인간은 다양하게 자신도 모르게 연출하고 개성을 추구해왔고 자신을 꾸미는 인간의 행위는 자신만의 모습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감추기도 한다는 것에 기인하여 

 최근에 작품 중에서 Stranger  작품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의 인위적인 조명이나 환경에 의해 내 모습이 다르게 보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내가 늘 바라보고 마주하는 이 식물들도 어색하고 낮선 이 공간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 자연스럽고 본 모습일까? 식물의 부분을 크게 확대하여 전체를 가리고 부분에 집중한 것은 

늘 새밀하게 관찰하고 들여다보면서 이 부분이 전체를 상징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전체의 이미지와 다를 수도 있다는 것 산과 나무가 다르듯이 

 주변의 인위적인 조명으로 달리 보이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종전의 Stranger 작품의 내용과 같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