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적 이미지의 다층적 심리구조-윤우학 | |
회화적 이미지의 다층적 심리구조 _이희정의 개인전에 부쳐 이희정의 작업에 있어서 특징은 한마디로 색의 발현을 통한 회화적 이미지의 강조라 할 수 있다. 회화를 두고 회화적이라는 동어반복적인 표현을 하는 이유는 회화 속에서도 이미지를 추구하는 서로 다른 두 방향, 예컨대 대상의 존재적 입체성을 강조하려는 경향과, 대상의 인식관계에 있어서의 시각적 요소의 강조, 곧 조형적 요소로서의 색을 강조하려는 두 경향을 염두에 둔 것이며 이것을 이른바 고전적(촉각상-조소적), 낭만적(시각상-회화적)으로 나누었던 뵐프린 류의 미술사적 대립개념을 따라 필자가 임의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사실 이희정의 작업은 채색화 특유의 밀도표현을 중심으로 색의 적극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작업이어서 필연적으로 실제물의 객관적 표현 보다는 조형의 자율성과 사유적 공간성에 따른 주관적 이미지의 강조라는 보다 열린 회화적 형식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이희정은 자신의 기억과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미지들을 화면에 전개시키고 있는데 이때의 이미지들은 대상의 실제 형태로서의 구상적 이미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철저하게 비대상화 된 추상적 이미지도 역시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미지 특유의 유동성을 하나의 시간성속에 연계시킨, 보다 복잡한 이미지의 존립방식과 함께 화면에 중립적으로 머무는 그러한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들은 작가 본인의 인식적인 감성에 따라 새롭게 단장된 꾸며진 이미지들이지만 보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단편화 내지 부분화의 과정을 거쳐 이미지의 연상 작용을 고도로 확대하는 자기증식적인 구조를 만들며 보는 자로 하여금 다층적인 이미지의 전개를 스스로 뚜렷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기실 작가 본인도 이러한 작용을 ‘희미한 형상의 기억과 영혼의 추억’이라는 사뭇 시적인 테마를 활용하여 이야기하며 그것이 ‘자신만을 통과한 걸러진 기억으로서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화면은 대단히 상징적이며 초현실적이다. 이미지 자체가 언제나 화면으로부터 부유하며 정착적인 단순 이미지의 발생을 경계하고도 있다. 다층적인 이미지의 발생을 위한 그의 의도는 일단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영상을 보는듯한 일루전은 물론, 결코 만질 수 없는 실체로서의 허상, 아니 어쩌면 허상으로서의 실체가 거기에 생생하게 기립하는 모순율로서의 회화가 거기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갈등과 해소의 전이를 통한 불안정한 고독감이 그의 그림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별나게 느껴지는 형태의 반복과 색의 중층성, 그리고 색의 순환 구조는 그러한 심리적 해석의 증인이 되어 곁에 웅얼거리고도 있다. 한국화의 새로운 도약에 목말라하는 젊은 화가들의 끝없는 실험과 탐험이 외연적인 구조에만 빠져드는 것을 새삼스럽게 감시해야 할 이 시점에서 이희정의 이러한 심리적 조형성의 추구는 바람직한 면이 있다. 다만 그것이 초현실주의의 한국화적 이입이 아닌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색의 자율적 구조의 강조와 함께(그는 이미 분채와 아교, 그리고 석채 사이의 상호관계를 구조적으로 관찰하고 강조하고 있다.) 회화적 심리주의가 새롭게 조율, 융합될 수 있게 훨씬 대담한 구상을 필요로 할 것이다. 젊은 작가의 보다 열려진 세계로 향한 의지가 돋보이며 기대를 갖게 한다. 윤우학(미술평론가 충북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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