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1-19 작가노트-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이 다르지 아니하여
가지려고 보면 가질 것이 없고
그리려 하면 그릴 것이 없다.
흑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에 백이 보이고
청을 바라보면 그 속에 적이 보인다.
흑과 백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며
청과 적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에게 밀접한 하나인 것이다.
내 그림은 자연에서 주어지는 규칙과 질서 속에서 그 대상을 단순, 평면화하여
사물에 있어서의 원초적, 추상적 이미지를 끌어내려고 노력하였다.
자연이 주는 최소한의 형태를 이용하여 균형적 조화로움을 이끌어 내려고 시도했으며,
때로는 사실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버리고 색채와 조형원리를 이용하여 
무의식속의 내면적인 풍경과 사유의 공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내 그림 속에서는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내 얼굴이 나타나고 있다.
표정과 색깔과 감정이 그림을 통하여 분신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예전보다는 좀 더 편해진 듯 하다.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그것이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부터인 것으로 생각된다.
不惑之年이란 말이 그저 만들어 진 것은 아닌 듯 싶다.

                                     2005. 4.     이상봉

2018-01-19 작가노트-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작품 속에 나의 경험, 색깔, 삶의 이야기들을 바탕으 로 나름대로 단순화, 추상화된 표현을 나의 방식으로 추구해 왔다. 
 어릴 때부터 보아 왔던 고향의 황토빛, 들녘과 노을, 검푸르던 산과 호수, 눈이 시리게 반짝이던 하늘과 바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시생활과 기억의 단편들, 우리의 생활공간의 모습, 가슴속의 색깔들을 구조적 공간설정과 색면의 대비를 이용해 나만의 환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 
 내 그림의 근본은 사실적인 구조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견고한 조형성에 근거하여 사실적 형태를 단순화시키거나 함축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써왔다. 
 내 작품속 일련의 소재들은 주로 풍경이다. 
 농촌의 서정적이거나 전원적 풍경이 아닌 도시의 빌딩 숲과 창문, 간판 등 우리 생활의 낯익은 모습들이 그것이다. 주위에서 늘 접하는 것이 도심의 회색 빛 콘크리트인데 그림의 소재를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데서 찾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따라서 내 그림의 소재는 생활속의 한 가운데서 찾는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수직과 수평이라 요소는 도시풍경 즉, 현대건물의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1990년 이후부터 꾸준히 다루어 온 소재이기도 하다. 건축물의 구성요소인 수직과 수평은 제한된 사각형의 캔버스를 크게 또는 작게 분할하고 색채를 평면 속에 구성해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들을 이용하여 주어진 규칙과 질서속에서 기하학적 구조와 단순 색면들이 화면에 중복되는 가운데 대상을 단순화, 간결화된 형상의 이미지로 구성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형상에서 감정의 느낌으로 나타나는 추상적 이미지를 끌어내려 했다.
 흔히들 추상작업을 우연성과 즉흥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작업하는 경향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으나, 내 작업에서는 치밀한 드로잉과 계획에 의해 자연의 형태에서 단순화한 이미지로서 구성해 내고자 했다. 
 미술은 비논리적인 감성세계에만 머물러서는 균형적 조화로움을 이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논리적인 정신활동에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방법론이 포함되어야 한 다고 보는 것이 나의 시각이다. 
 최근 나는 색에 대해 매료되어 있다. 
 색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라 느껴진다. 
 근간의 그림들에 있어서 색상은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단아하게 사용하려 했다. 
 나는 그림 속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의 색면들을 많이 사용했다. 신비로움에 쌓인 푸른색, 그리고 푸른색의 바탕 위에 놓인 열정적인 붉은색, 그 중간에는 보라와 초록등, 간색도 조금씩 사용했다. 
 나는 붉은색을 좋아한다. 
 그러나 붉은색을 잘 나타내기 위해서는 푸른색을 잘 써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 전면은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여 있고 서로 반대인 듯 보이는 이 두 색은  마치 손바닥의 위아래처럼 가장 가깝게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듯 한 이미지로 나타내려고 시도해 왔다. 
 최근에는 더욱 더 색채를 선명하게 사용하고 그 대비를 강조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형상은 가능한 감추어 간다. 이로 인해 그림 속의 색채와 형상들을 대응관계로서가 아닌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조화된 원초적 이미지로 표출하고자 했다. 
 내 작업시간은 매우 긴 편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반복되고 중첩된 터치를 이용하여 나 자신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 속에 나의 영혼, 정신, 내면적 풍경등을 녹여내는 것이다. 
 예술은 결코 특별하거나 따로 독립된 영역이 아니다.
 삶 그 자체가 예술의 주제이며 생활자체가 예술적 표현인 것이다. 
 보지 않고, 느끼지 않고서는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수없이 많은 시각적 경험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실에서 작업만 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었는데 요즈음은 시 
간 나는 대로 내가 가보지 못한 곳, 경험치 못한 것을 찾아다닌다. 
 그 속에서 나름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고 있다. 
 그 동안 작품에 있어서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시도해온 방법과 또 다른 화면의 구성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작품에서 즐겨 사용한 기하학적인 대비는 자칫 작품 전체가 경직됨을 가져올 수 있었고, 한때 즐겨 사용한 마티에르는 그 자체로서 깊이감을 주기보다는 색채와 형태의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요소로 작용함을 발견하고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고민했다. 그 결과 여태까지 시도해 오던 면 분할 방법에서 사선과 곡선의 요소를 도입하여 보다 생기있고 자유로운 화면을 구사해 보고자 시도해 보기도 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조형방법에서 응용하여 우리 생활공간에서 느끼는 편안한 정서를 화폭에 담아내어 보려 한다.


                                              2003년 4월 화실에서      이  상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