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수런거리는 장소들

2019 <제5회 개인전 ‘기억하다 : 산수’ >에서(산수미술관 초대 개인전)

_ 안나영, 조선대학교 미학미술사학과 박사 수료

 

수런거리는 장소들

 

다양한 매체와 최신기술은 진보가 새로움에 있다고 강조한다. 개발과 결탁한 자본의 관점 역시 오래된 것들을 배척한다. 2010년 광주 학동에서도 재개발이 있었다. 오래된 골목길과 집들은 폐기되어야 할 구시대적 유물로써 쓸려나갔다. 그러나 저 공간들은 수많은 이들이 삶의 의미를 구성했던 곳이다. 거대한 힘 앞에 속절없이 밀려난 사람들의 모습은 기억과 추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쩌면 노여운의 작업도 저 상실의 경험이 만들어낸 산물일지 모른다. 학동은 그의 유년이 살아 있던 곳이다. 2010년 이후 그는 오래된, 변하지 않는 골목길과 집을 화폭에 담아왔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것 혹은 시대착오적인 것에 불과한 행위를 묵묵히 이어온 셈이다. 따라서 이 글은 노여운의 그림이 갖는 의미를 밝히는데 집중한다. 그의 작업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타인의 집을 그리는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통해 느끼는 ‘정겨움’, ‘사람다움’, ‘따스함’, ‘포근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변하는 것과 변하는 않는 것

2012년 이후 제작된 100여점의 그림들에는 미묘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변화들이 있다. 대상을 선택하는 관점, 화면을 분할하는 방식, 이질적인 색을 병치시키는 방식, 붓질의 양태, 그림자의 깊이감, 시점의 선택, 원근법의 사용, 색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지속과 흐름을 표현하는 방법이 그렇다. 그의 그림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소재다. 집의 정면과 골목길, 낮의 풍경은 그의 그림 대부분에 나타난다.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집들의 조형적 요소들에 매료된 듯 노여운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대문, 지붕, 담, 계단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사물들이 조합된 이미지들의 배열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빛에 따른 색의 변화를 포착해보려는 듯, 그는 다양한 색들의 병치를 통해 투명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감을 만들어냈다. 요컨대 노여운은 “인적 없는 골목길에 위치한 집의 정면을 그리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기서 집이라는 장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장소에 대한 고착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애보리진(Aborigin)은 한 아이의 정체성이 ‘기원이 되는 장소’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를 ‘자궁’과 같다고 간주하며, 간혹 거주지에서 추방되거나 강제적으로 이주해야 하는 경우 심각한 고통을 느끼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은 인간과 장소 간의 결속력은 사실 보편적인 현상이다. 오늘날 현대적 삶의 특징으로 지목되곤 하는 ‘상실감’이나 ‘유동성’의 느낌은 개인의 정체성과 장소의 분리 불가능한 연결고리를 시사한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특정한 장소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본질적인 장소를 잃어버리면 심리적 안녕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보존되어야 할 본질적인 장소란 무엇인가?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Otto Friedrich Bollnow)는 ????인간과 공간(Mensch und Raum)????에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논지를 빌어 인간이 본질적으로 유지해야 할 중심이 되는 장소를 ‘집’이라고 주장한다. 볼노와 바슐라르의 공통된 의견에 따르면 집은 인간의 중심이자 삶의 준거가 되는 고정점이다. 또한 집은 인간이 ‘거주하는 곳’, ‘고향으로 간주하는 곳’ 그리고 ‘귀환하는 곳’이다. 제프 말파스(Jeff Mapas)와 바슐라르는 집과 인간과 맺는 관계를 ‘정체성’이라는 차원으로 연결짓는다. 집은 자아가 발견되는 장소이자, 인간의 ‘근본적인 공간’, ‘사랑받는 공간’, ‘행복한 공간’이다. 특히 바슐라르는 상상력을 통해 우리가 과거의 집을 탐험할 경우 우리는 정신분석적 의미에서 ‘고착’을, 다시 말해 집에 대한 ‘행복 고착’을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특정 기억과 결부된 장소는 어느 한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평생에 반복되고 회귀할 경험의 현존이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본질적인 장소인 ‘집’이라는 장소를 통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소설이 바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마르셀은 자신의 삶을 형성했던 장소를 통해 사물, 사람, 사건들을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재경험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관련성을 파악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행복하게 재구성한다. 이것이 노여운의 그림에 나타난 ‘집’과 ‘골목길’의 일차적 의미다. 

 

기억의 영소성

이제 다수의 감상자가 노여운의 그림에서 정겨움이나 따스함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노여운이 그린 다수의 ‘집’과 ‘골목길’ 그림은 단순히 어느 한 개인의 경험을 상징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핵심은 기억의 영소(nested)하는 특성이다. 하나의 글자나 문장이 책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영소 하듯이, 개개인의 경험과 기억은 더 큰 사건과 감정의 경험들 안에 영소한다. 마찬가지로 ‘집’이라는 장소는 더 큰 장소 안에 영소하고, 나아가 하나의 거대한 공간적 망이라는 구조 안에 안착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집은 거대한 사회적·정신적·심리적 망 속에 유기적인 구성물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일한 장소에 친숙해지는 한편 장소들의 더 큰 연결망을 이해하게 된다. 

노여운의 ‘집’과 ‘골목길’ 풍경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그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 함축된 장소들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공통감에서 비롯된다. 그의 집과 골목길들은 바로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삶의 터전의 일부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그의 그림에 사람이 부재하는 것과 연결된다. 노여운은 그림을 보는 이가 그림 속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지중에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거주했던 집에 대한 깊은 애착을 통해 다른 장소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것을 회화적 실천을 통해 보존한다. 우리는 노여운의 그림을 통해 세계 안에 위치하는 자기 자신의 거주성을 깨닫는다. 

 

이번 전시에서 노여운은 산수동 부근의 오래된 점집, 이발소와 세탁소들을 선보인다. 그의 그림들은 오늘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혹은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했던 관람자들에게 유년시절의 기억을 회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 장소들은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연약함을 안고 노여운의 화폭 안에 소중히 담겨 있다. 그가 “골목길은 오랫동안 간직한 물건과 비슷하다. 오래 간직한 물건에는 수많은 사연과 의미가 있고 그 흔적들이 물건에 남아있기에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고 썼던 것처럼, 그리고 “예술이란 경험을 통해 생긴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처럼, 한적하고 고요한 골목길의 풍경과 그 속에서 되살아나는 유년의 감각을 느껴보기 바란다.

사라져 가는 골목길 풍경, 그리움을 그리다

2016 <3회 개인전 “쉼, 쉬어가다”>에서

(광주신세계미술제 수상작가 초대전)

글_광주시립미술관 김희랑 학예사

 

 

사라져 가는 골목길 풍경, 그리움을 그리다.

 

노여운은 시대를 비껴가기라도 한 듯 아직 옛날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풍경을 그린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여유롭고 한적한 골목, 삼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았던 평범한 동네풍경이다. 압축성장의 상징국인 대한민국은 자연, 생태, 산업, 문화 등 사회 환경 전반에 걸쳐 극도로 빠른 변화를 겪어 왔다. 무분별한 개발과 급격한 도시화 속도에 비례하여 엄청난 물질문명의 혜택을 입고 살기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반면, 너무도 많은 것들은 변했고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린 것 또한 많다. 아직까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동네, 그 동네에서 수십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박한 가게들....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남아 있어줘서 고마운 것들의 풍경이 담긴 노여운의 그림이 정겨운 이유이다.

 

노여운은 대학시절 광주 학동 백화마을 재개발 소식을 듣고 골목길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백화마을은 해방직후 전재민을 돕고자 백범 김구 선생이 기증한 물품을 팔아 백가구를 지어서 형성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동네이다. 또한 노여운이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도시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한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동네, 그것은 단순한 공간적 상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물질적 풍요 이면에 정신적 상실과 소외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유년기의 추억이나 향수와 같은 경제적 목적성 혹은 치열한 생존 목적성이 배제된 정서들이다. 백화마을 재개발에서 받은 충격은 노여운에게 정서적 상실감을 경험하게 하였고 이는 구도심 동네의 기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그 후 그는 도시의 역사와 개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거공간으로서 광주의 골목길을 아카이빙하고 있다. 

 

노여운의 골목길 풍경에는 서민들의 삶의 흔적과 추억이 담겨 있다. 도시의 길들은 사람들의 통행을 위한 길이라기보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서 존재의미가 커져버렸다. 하지만 골목은 좁고 비탈져서 자동차 보다는 사람을 위한 길로서 기능한다. 도심에서는 낡은 것은 쓸어버리고 반듯한 건물을 뚝딱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가난한 골목의 집들은 필요한 부분만 고치기 때문에 이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수없이 뜯어내고 덧대어 겹겹이 남아있는 자국은 그 집과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수많은 날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있는 주택의 구조는 공간의 공유를 넘어 긴밀한 공동체적 소통과 삶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였다. 노여운의 그림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사람냄새가 난다. 알록달록 꽃을 피운 화분과 빨랫줄에 나부끼는 빨래, 방금 전에 세워두었음직한 자전거, 주인을 기다리는 누렁이, 집 안팎에 놓여 진 손때 묻은 살림살이가 사람의 존재를 대신한다. 그것들은 서민들의 일상적 삶의 흔적과 무게를 가늠 해 볼 수 있게 한다. 사람이 없는 풍경은 구도심 공동화 현상의 일면이기도 하지만 아직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어 묘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그의 그림은 규격화되고 딱딱한 조형미를 지닌 건물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두터운 유화물감의 칠이 아닌 투명감이 살아있는 파스텔 톤의 색 처리가 특징적이다. 유난히 붉은 기운이 감도는 감성적 색감표현은 낡고 허름하고 삭막한 골목의 실제적 풍경을 따뜻하고 정겨운 풍경으로 바꿔 놓는다. “멀어지다”, “지나가다”, “남겨지다”, “흘러가다”, “기다리다” 등 작품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골목길 풍경에 담긴 그리움을 그린다. 따라서 노여운의 골목길 풍경은 특정장소를 재현한 사실적 풍경이라기보다 유년기의 추억과 삶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골목길의 기억에 관한 심상적 풍경이라 할 수 있다.

 

특정장소를 시기별 혹은 시간대를 달리해 수차례 방문과 관찰, 사진촬영의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 노여운의 그림은 기법과 형식상 인상주의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빛이나 날씨, 공기의 흐름에 따른 변화 그 자체를 기록하기 보다는 경제논리나 행정적 필요에 의해 바뀌는 동네 환경의 변화를 기록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욱 크다. 골목길은 무생물적 공간이지만 빛이나 자연환경에 의해 다양한 얼굴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변화를 거듭한다. 사라져가는 주거문화의 대표성을 띤 골목에 관한 보존과 재생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와 필름 기록들은 많다. 사진으로 기록된 골목길 풍경은 낙후된 구도심의 현실을 과감 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반면 미술이라는 영역을 통해 보여 진 노여운의 골목길 풍경은 도심 어느 한편에 존재하는 현실의 풍경이자, 사람마다 기억의 조각을 재구성하게 하고, 이를 통해 보존과 재생에 대한 다양한 미래 전망을 유도하게 한다. 사건 사고를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뉴스나 시사프로그램보다 서사적 스토리를 덧입힌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가 더 큰 감동을 주는 것과 유사하다. 

 

노여운이 골목길 풍경에 전념해 온 지 5년여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의 그림은 아련하고 애틋한 지난날의 추억을 건드려 그때 그 시절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 데는 일단 성공한 듯하다.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해 삭막한 시대에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과 함께 도시재개발의 문제와 사라져 가는 것들의 기록에 대한 고민을 더욱 체계화함으로써 보다 의미 있는 작업으로 확장시켜 나가길 기대해 본다.


예술가여, 형상하라

 2010 <강산이 변하면 빛이 되리>에서 (2019 workshop)

글: 박명지

 

예술가여, 형상하라

 

<머무르다>와 <멈춰가다> 속 펼쳐진 장소는 언젠가 마주쳤던 곳 같다. 이런 익숙함 때문일까 괜히 한 번 더 살피게 된다. 그림은 바라볼수록 친숙하고 포근한 느낌을 제공하고 종국에는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이들은 바로 노여운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낡은 것은 허물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지금, 아직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골목길을 담아내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젊은 작가들은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장르를 모두 보여주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러나 이런 도전은 작가만의 강점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기에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여운 작가는 여느 작가들과 달리 '유년시절 함께한 공간의 물리적 소멸'이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강점을 토대로 화폭에 풀어낸 점에서 충분히 주목 받을 만 하다. 바로 감상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노여운만의 표현 방법'이다.

 

그는 하나의 색으로 담벼락을 채색하는 것 대신 오묘한 색의 연속적 사용을 통해 골목길이 가지고 있는 세월의 축적성을 제시하려 했다.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점을 이끌어 내기 위해 표현법을 개발한 것이다. 이는 폴 세잔의 새로운 양식의 탄생과 유사하다. 그는 자연을 단순화된 형태로 집약하고, 색채와 붓 터치로 입체감과 원근법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법을 통해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노여운 작가의 방법은 감상자가 골목길에 대한 의미를 한 눈에 알아보게 만들어줌으로서 그 목적을 이룩했다. 그리고 화폭에 전체적으로 그만의 따뜻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작가의 그림임을 알아보게 한다.

 

노여운 작가는 적절한 소재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그만의 표현방식을 통해 감상자를 작품 안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새로움이 주목받는 상황임에도 '꾸준함'을 보인다는 점에서 작가의 넓은 포부를 엿볼 수 있다. 확고한 목적과 이를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재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첫 작업만으로 동시대 회화 작품의 주요 목표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사고의 확장을 선보인 노여운 작가의 향후 행보가 어떤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 지 기대된다.

축적된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가 노여운_‘나’를 찾아가는 과정

2018 <“광주아트가이드 2018.05” 작가탐방>에서 

글_ 소나영 편집위원

 

 

‘나’를 찾아가는 과정

축적된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가 노여운

 

 몇 년 전,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 관심을 가지고 젊은 작가들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노여운 작가의 작품을 보고 궁금증을 가졌던 기억이 있었다. 왜 이 작가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주 오래전에 많이 봤을 법한 골목길을 그리는 걸까? 그 궁금증은 노여운이란 사람을 알게 되면서 풀리게 되었다. 한 물건을 오래 쓴다거나, 책을 읽더라도 마음에 남는 구절은 책을 접어놓고 메모를 남긴다거나,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소설’이나 함축된 언어를 사용하는 ‘시’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그의 성향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했다.

 작업실은 얼마 전 새로 옮겨 본인이 페인트를 칠하고 보수 했다고 했다. 네 번째 작업실인 그곳에서 그는, 같은 장소지만 다른 시기에 그린 그림 골목길 작품 세 점을 리터칭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세 점을 동시에 들여다보니, 화분이 놓인 위치나 천막 색깔의 변화 등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삶의 흔적들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골목길에서 과거의 나를 마주하다

 

 그가 그리는 골목길은 시골의 골목길이 아니라, 도시 안의 골목길이다. 정확히 말하면 골목길을 그린다기 보다는 그 골목에 있는 어느 집, 그리고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그린다.

 작가는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걸어 나와서 도시의 큰 길을 마주하게 되었던 기억은 작품을 제작하는데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에게 도심 속의 골목길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송에서 어떤 보호막으로 느껴졌다고 말할 만큼 편안한고 돌아가고 싶은 공간이다.

 어린 시절, 골목 안에서 밖을 보던 작가는 이제 밖에서 안을 본다. 그가 처음 골목길을 그리게 된 것도 골목길에서 과거의 시간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어릴 적 살았던 동네가 재개발로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상실감을 느껴, 사라져가는 골목길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골목 안에서 밖을 보던 작가는 이제 밖에서 안을 본다. 그가 처음 골목길을 그리게 된 것도 골목길에서 과거의 시간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릴 적 살았던 동네가 재개발로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상실감을 느껴, 사라져가는 골목길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의 세월을 겪으며 변화하는 삶의 풍경들을 관찰하고, 그렇게 쌓인 흔적들을 담아낸다. 금이 간 벽에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들, 담이 무너져서 임시방편으로 감아놓은 철사로 보수한 흔적들 녹이 슨 문, 집 앞에 놓인 자전거, 널어놓은 빨래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축적된 삶의 모습들이다.

 나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은유적 장치로서 골목길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골목길 연작은 몇 년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첫 번째 개인전(갤러리 그리다, 2013)에서 보여주었던 골목길은 재개발에 대한 반발감과 상실감 때문이었는지 명암대비를 강조한 어두운 색조로 그린 반면, 두 번째 개인전(무각사 로터스갤러리, 2014)에서 선보인 골목길은 밝은 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 개인전(신세계갤러리, 2016)에서 보여준 최근의 골목길 연작은 화폭 안에서 세월의 흔적들을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 디테일을 살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더욱 명확하게 대중에게 전달하고, 공감 받는 것에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든 꽃, 이 시대의 자화상

 

골목길 연작이 유년 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시선으로 담아낸 나의 이야기라면, 그가 최근에 시도한 시든 꽃 작업은 이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아름다운 꽃을 그리지 않고,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 아름다움이 지나간 그 이후의 꽃에 주목한다. 사용 목적을 다하면 버려지는 ‘화훼'라고 불리는 관상용 꽃에서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본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꿈이 있었는데, 그 시절 우리의 꿈은 돈을 만이 버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사회의 기준과 틀에 맞춰지기를 요구받으며, 그러한 요구에 의해 소모되고 버려진다. 시든 꽃 작업에서도 골목길 연작에서 보여준 작가 특유의 시선과 어두운 파스텔 색조는 여전하다

'골목길'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시든 꽃' 작업 외에도 몇 가지 소재를 더 찾으며 여전히 작품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전시 일정이 잡히면 초시계까지 맞춰가며 자신이 하고자하는 바를 하고야 마는 성실함과 추진력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듯하다. 전업 작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고민을 통한보다 확장된 작품세계와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상실과 기억의 에세이

상실과 기억의 에세이 

 

  생활의 번잡스러움 때문인지, 가끔 선잠에 들 때 꿈을 꾸고는 한다.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는 그 찰나에도 오만가지 일상의 단편들이 교차되지만, 유년시절과 같은 과거의 시간과 오래된 기억 속 장소들이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집에 관한 쓰라린 마음 그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을 반영한 듯, 안타까운 사건들과 행복한 순간이 마치 현재의 일처럼 펼쳐진다. 당연하게도 내가 살았던 공간은 곧 내 생이 축적된 곳이기에, 일종의 회귀본능처럼 일상의 어느 시점에서 기억 속 그 공간과 재회하게 된다. 

  오래된 골목길 풍경을 담아내는 노여운의 작업은 그러한 재회의 과정이다. 광주 학동 백화마을의 재개발로부터 시작된 작가의 골목길 풍경은 햇수로 벌써 9년째에 접어들었다. 해남에서 태어난 노여운은 여덟 살 되던 해 광주 학동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유년시절을 줄곧 백화마을과 학동 팔거리에서 보냈다. 1936년에 조성된 학동 팔거리는 일제가 광주천 조성사업과 함께 천변 주변의 토막집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키면서 형성된 곳이다. 갱생부락으로 불리며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팔거리는 중앙에 공터를 중심으로 여덟 개의 좁은 길이 뻗어나가는 독특한 구조를 띠었지만, 해방 이후엔 오롯이 주민들의 삶터가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전재민(戰災民)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백화마을 또한 우리의 아픈 현대사가 깃든 곳이다. 지금은 모두 고층아파트 단지에 밀려 사라져버렸고, 역사공원과 기념관의 형식으로만 그 때를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는 정도이다. 노여운이 사라진 주택가를 보며 느꼈을 상실감은 물리적 공간의 소멸에서 오는 충격 너머의 자신만이 인지하는 그 곳의 특수한 장소성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과거의 시간을 송두리째 들어낸 듯, 내가 살아온 날들이 일순간에 사라진 느낌은 실향민의 상실감과 유사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 상실감은 오래된 동네의 기록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광주의 중흥동, 우산동, 계림동, 학동, 운림동 등 주로 구도심의 골목길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노여운의 골목길 풍경에는 사람살이의 애틋한 정이 묻어있다. 어두운 색조의 초기 작업에서는 오래된 동네를 들어설 때 마주하는 쓸쓸함과 적적함이 배어나온다. 여러 개의 캔버스에 이어 붙인 파노라마 형식의 조망에선 더 많은 이야기를 기록하려 하는 작가적 욕심이 엿보이고 구도심 뒤로 보이는 고층빌딩, 시멘트 벽면의 벗겨진 페인트칠, 무너져가는 담벼락과 슬레이트 지붕 등에서 재개발과 난개발로 인해 쇠락해가는 삶터의 현재를 유추할 수 있다. 기상 여건에 의해 드로잉과 사진 촬영을 병행하며 장소를 포착해내는 작가는 시간대별 현장 방문을 통해 지속적인 관찰을 도모한다. 이후 꾸준한 관찰에서 체감한 구도심의 기운, 예를 들어 장소가 내포하는 추억, 그리움, 안타까움 등의 정서를 골목길에 투영하며 보다 구체적 서사를 만들어 낸다. 건조하고 비판적이었던 초기 성향을 다소 주정적 태도로 변화시키며 다양한 감성을 화폭에 축적시켜 왔다. 더불어, 익숙한 남도의 인상주의 화풍을 기반으로 색채는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변화를 주었고 붓 터치 또한 더욱 과감해졌다. 단순히 현상의 기록이 아닌 그 현상이 담보하는 내적 심상에 주안점을 두어 장소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왔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간의 노여운의 근작에서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애수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코 묻은 돈으로도 풍족했을 구멍가게 앞에는 여전히 너른 평상이 자리하고,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의자는 동네 술꾼들을 기다린다. 차가운 시멘트벽 앞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고무대야와 스티로폼 박스는 화분으로 분해 파릇함을 뽐내고, 어느 노인의 장바구니로 쓰였을 유모차는 대문 앞에 귀히 모셔져 있다. 다 큰 자식의 공부방에서 그 용도를 다한 회전의자, 지나가는 이들의 피로를 달래주는 커피 자판기까지 그림 안에는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우리네 일상이 빼곡히 들어 차있다. 이 또한 한 순간에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들이지만 관람자는 사람 하나 없는 그 풍경 안에서 사람냄새를 맡고 지나간 시간들과 재회한다. 동사형이 대부분인 작품의 명제에서도 현재를 기록하고 지켜내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처럼, 노여운은 작품을 접하는 이들에게 함께 이 시간 이 장소들을 기억하기를, 나아가 소중했던 그 때를 상기하며 평안해지기를 권유한다.

  모든 게 쉽게 버려지고 소모되는 사회, 심지어는 사람도 수단으로 전락하는 지금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은 아날로그의 감성을 뒤적거리고 인간성을 그리워한다. 노여운이 간간이 그려온 <시든 꽃> 시리즈의 ‘죽은’ 식물은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쉬이 소모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았다. 일정한 형식 없이 써내려가는 수필처럼 스러져가는 일상의 면면을 담담히 기록해나가는 노여운의 작업은, 반성의 과정 없이 소모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사회에 가하는 일련의 기억 행위이다. “우리가 말하는 고향이나 추억의 장소는 지리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공간에 쌓여진 기억들과 남겨진 흔적이다. 자신이 가장 오래 사용한 물건에는 사연과 흔적들이 깃들어 있듯이 공간도 그러하다. 지금도 골목길을 다니며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흔적을 발견하고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골목길 작업은 이어갈 것이고 그 안에서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에 대한 술회에서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던 쟁점을 돌아보며 좀 더 날 선 시각을 고민해봄도 좋지 않을까 싶다. 에세이가 상징적인 시로 응축될 수도 있고, 평면에서의 풍경만이 아닌 다루지 않은 형식으로도 실험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심히 돌고 도는 계절에도 저마다 바람 냄새가 있고, 대기의 기운이 다르다. 가을은 어느 이웃집의 장작 타는 냄새로 기억되기도 하고, 시커먼 아궁이에서 화드득 타오르던 들깨대와 콩깍지로 겨울을 소환하기도 한다. 하물며 내가 살았던 그 집, 그 동네는 어떠하겠는가. 

사후 약방문식의 형식적 기억 행위가 아닌 개발의 소용돌이에서 잊혀져가는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노여운의 작업에서 그 가치를 발견해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_ 롯데갤러리 광주점 큐레이터 고영재

오래된 골목길 이미지가 들려주는 애틋한 이야기

오래된 골목길 이미지가 들려주는 애틋한 이야기

 

산수미술관은 이번에 노여운 작가 초대전을 개최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우리시대 미술은 이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오늘날 미술은 우리 현재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위안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수행하는 동시대 작가들은 이전 시대 작가들보다도 훨씬 많은  열정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통찰과 위안을 제시하려면 작가들은 자신의 더듬이를 한껏 세워서 우리 삶을 새롭게 보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 부지런히 공부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은 그 답을 알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커다란 용기와 열의가 없으면 동시대미술의 요구에 부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노여운 작가는 10여 년 동안 세상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시선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도시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오래된 골목길 풍경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풍경화라는 전통적인 회화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변형을 통한 주제의 구현이라는 동시대미술 제작 방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사용하여 이미지의 기본 틀을 잡지만, 색채나 세부 소재들은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골목길의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세심하게 재구성되었습니다. 증명사진과 같은 화면 배치, 회색과 파스텔 톤 색채의 혼합 구성, 그러면서도 윤곽선의 강조를 통한 이미지의 주관화 등 다양한 방식의 이미지 조작을 통해 관람객들과 여러 감정들을 공유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앞서 언급했던 열의와 공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는 이번 산수미술관 전시를 위해 산수동 인근 골목길 풍경을 새롭게 그렸습니다. 이번 작품들은 색채나 이미지 구현 방식에 있어서 다소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점을 통해 이전 작업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전의 골목길 이미지가 작가의 상실감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번 작품들은 소재의 선명도와 형태를 강조함으로써 그 대상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객관화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산수미술관은 미술이 여전히 세상을 새롭게 보고, 우리를 위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오늘날 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이것을 세상에 전파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여운 작가의 회화 작업은 우리 미술관이 추구하는 목표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세상을 새롭게 보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관장 장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