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그 일상으로부터의 미학_홍경한(미술평론가) | |
삶의 단상, 그 일상으로부터의 미학 홍경한(미술평론가) 거친 듯 조밀한 면과 면이 조우하는 조각가 박민정의 인체작품에선 침묵이 앞서지만 파동은 크다. 작업 전반에 걸친 재료의 묵직한 양감, 응결되거나 해체되고 파각된 폼(form)은 때로 중압감마저 전달한다. 가끔 정형의 동세를 하고 있지만 재현을 넘어선 미완인 듯한 볼륨과 분산은 공허 속에 그려진 허상을 비추듯 하고, 꿈틀거리는 일상이 잔잔하게 솟아오름을 감지하도록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심리적 트임이 있으면서도 비정형적 여울이 짙다. 특히 거대한 부조나 꽃잎이 층을 이룬 일부 근작들에서 엿보이는 자유로운 해체와 공간 점유력은 인체조각의 범주를 벗어나 조각적 확장의 양태를 가감 없이 내보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그의 인체 작품은 지속적으로 주요 주제가 되어 온 ‘삶의 결’의 종류만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주의 조각과는 한참 떨어져 있음을 증거 한다. 작가의 노동집약적 과정은 명확하지만 오히려 실험적인 태도가 보다 두드러지는 몇몇의 대형 작품에선 작자와 타자 사이를 가로지르는 묘한 공간감을 유발하고,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수반한다. 이와 같은 여운은 비교적 정적인 이전 작품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일견 도식화되고 규칙적인 것 같지만 파편화된 양태를 보이는 작가 박민정의 인체 작품들과 꽃잎 형상을 한 거대한 작품은 적어도 조각이 지닌 특질에 대한 변화를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단단하여 흐트러지지 않는 모든 것을 이용해 일상의 풍경에 자문의 신호를 보내고, 한편으론 정형적인 틀의 거부라는 개념으로 관람자들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염소, 꽃, 나무, 사람 등을 등장시켜 작품 전반에 변함없이 흐르는 일상의 호흡을 간접적으로 유추케 함은 소박함마저 작업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으로 이해 가능하다. 일상의 메타포(Metaphor)를 근간으로 낯설지 않은 사물과 섞이며 교통하는 박민정의 작품들은 조각 고유의 특질들을 무마한다. 실제로도 작가는 돌과 금속을 흙 주무르듯 뭉쳤다가 펼치고, 입체와 부조를 오가며 흩트려 놓았다가 집합시킨다. 그리곤 흥미롭게도 작가는 그곳에 재료의 물리적 특성 대신 인간 감성과 서사를 대입한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 중요한 건 이성적이고 냉정한 성질을 지니는 재료들이 메시지보다 지향적이지 않다는 점이며, 그 메시지는 재료의 강도와 유연성, 여운과 교합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확장하는 데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거론해야 할 부분은 재료와 형태를 거푸집 삼는 두 가지 조형언어이다. 그건 바로 균제미와 심리적 파각인데, 일례로 그의 <풍경> 시리즈와 남녀 혹은 아이와 엄마가 등장하는 인체 작품(Mother and Baby)들은 미학적 맥락에서 조각의 본질인 균제미를 생성한다. 하나가 아닌 둘, 중심과 주변, 사람과 동물 등과 같이 수(數)와 론(論)의 등치이자 합리의 통로로서의 이것은 가장 적합한 조각 표현요건이고, 오랜 시간 고수해온 작가 조각의 중심적 맥락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하지만 심리적 파각의 흔적 역시 박민정 인체 작업의 특징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삶의 규칙을 나열하는데 멈추지 않고, 심상이 수용한 일상의 감정을 작품 곳곳에 투영하는 방식에서 이러한 해석은 합당하다. 이곳엔 고통과 행복을 비롯한 소소한 일상의 모든 것이 담긴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 박민정의 작업유형인 추상과 구상, 전통과 현대, 현실과 이상, 드러남과 감춰짐, 타자와 나, 내면과 외면 등은 동시적이며, 창의를 구동하는 연료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작금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주요 조형적 알고리즘(algorism)에 해당함은 재고의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전통조각의 궤적 안에 있는 인체의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나 일상에서의 ‘감정’을 투사하고 이를 자신만의 언어로 치환해 자연스럽게 승화해 내고 있다는 사실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꽃을 연상시키는 작금의 조각에 이르면 오히려 내면의 파각의 다층성에 무게 중심이 걸려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형식적으로 공간과 실체화 된 오브제 사이를 오가는 듯이 보이지만 또 다른 각과 마주하거나 직선에 내재된 곡선의 형태를 갖는 이것은 커다란 판을 접어 높은 듯 무한한 공간자체를 꼭짓점으로 바닥을 지지대 삼아 또 다른 집합을 이뤄 하나의 수목형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변별점이라면 의미적 여백이 매우 두드러지면서도 군더더기가 희석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포괄적으로 절제된 구성력을 완성하는 원인이다. 이처럼 근작들은 관념의 표출로 형식과 구조를 선점한다. 그리곤 왜 그러한 작품형식이 도출될 수밖에 없느냐로 귀결된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변 자연에 대한 감상을 비롯해 가족, 사랑, 행복, 평화, 고통, 번뇌, 고독 등을 머금은 일상이라는 낮은 곳에, 가까운 곳에 눈길을 머무는 작가 자신의 잠정적 자아로의 접근방법임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존재성을 투사하여 무한한 의문과 나름의 해답을 채워 넣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작업을 물리적 대립을 강조하고 공간에 매끈하고 이질적인 기하학적 물성을 대입함으로써 현실과의 역설적 교합을 꾀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일상을 텃밭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내재된 존재성, 그로 인한 공명내지는 사유를 부여하려 한다는 것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생활의 단상에 관한 의식과 무의식의 변주에 있다. 이러한 개념이 그의 작업에선 ‘대상의 공간차지’라는 조각적 공리로 나타나는 것이며, 실험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형식적·개념적으로 조각의 층위와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yh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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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생활의 단상_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 |
박민정, 생활의 단상
조각가 박미정의 근래 행보가 두드러진다. 이탈리아 카라라 국힙미술아카데미를 수학하고 국내에 돌아온 이래, 해외전을 포함하여 총 13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니 말이다. 이것은 매해 개인전을 가졌다는 것을 뜻하는데, 특히나 인내와 산통을 요구하는 조각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작품이력은 더욱 값져 보인다. 그가 올해도 어김없이 개인전을 갖는다. 갤러리 아트링크를 통해 발표될 그의 작품은 그 동안의 작품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한자리에서 작가의 작품을 익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예장이다. 이번 작품전의 유형을 알아보면, 가족상을 비롯하여 풍경 연작과 계절 감각을 주제로 한 작품을 들 수 있다....<중략> <가족상>은 공통적으로 큼직한 면으로 구성되어 시원시원하고, 크고 작으 면이 촘촘히 얼개 지어진 형식을 띠고 있다. 크고 작은 면들로 조합했다는 것은 그만큼 구조가 탄탄한 장점이 있지만, 세부묘사의 생략으로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내면을 헤아리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점을 보완하려는 듯 작가는 작품 속에 슬픔과 애수, 행복과 같은 ‘감정의 맥박’을 뛰게 하고 있다. 즉, 조형의 구축성을 유지하면서도 실재감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풍경>연작에서는 자연석의 재질감을 최대화시키는 효과를 앞세웠다. 다시 말해 원석의 거친 텍스처와 재료적 성질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 주의를 기울이면, 마치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의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잔잔한 시정이 흐르는 공감각적인 작품이다. <봄의 대지>는 유기적 패턴의 리듬을 강조한 작품이다.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자그마한 매스가 뭉쳐져 점차 덩어리를 이루며 하나의 온전한 형체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각 매스는 공통적으로 곡면을 띠어 구름이나 새싹, 물결과 같은 ‘생태적 패턴’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어디로 흘러가거나 자라나거나 맥박 치는 생명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이미지들이다. 하나도 똑같은게 없는 모양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봄을 맞아 꿈틀거리는 대지의 생동감을 압축해서 보여줌으로써 계절에 대한 설렘을 부추긴다. 실물도 그렇지만, 특히 빛의 조명에 의해 이미지가 서로 겹쳐지고 강약과 선명도가 갈리는 그림자의 시각효과도 눈여겨 볼만하다. 작가는 가족이든 풍경이든 계절의 변화든 자신의 진솔한 느낌을 작품에 담는다. 그에게 시간은 양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 중요하다. 작가는 우리가 삶의 옂어 속에서 가치는 생생한 경험들을 조명하고 있기에 그의 작품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게 아닐까?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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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리얼리티에 대한 비전으로서의 인체_박숙영(이화여대교수, 조형예술학) | |
일상의 리얼리티에 대한 비전으로서의 인체
근대이래 조각가들은 인체를 자연의 원리, 또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담는 하나의 표현 소재로 삼아왔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인체 조각은 더 이상 기념비적 인물처럼 특정한 목적에 봉사하는 구체적인 인간상이 아닌 것이 되었다. 대신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 즉 리얼리티에 대한 비전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현존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박민정 역시 정신의 발현으로서 인체 조각을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의 체험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살아가듯 박민정도 삶 속에ㅐ서 의미있게 여겨지는 특별한 감정들로 자신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체에 담아 표현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드러낸다. 작가로서는 그 감정이 독특한 개인사적인 것일 테지만, 박민정은 그것을 한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감정들로 보편화시킨다. 그의 작품은 관람자의 상상의 비약에 호소하지 않는다. 격렬한 동작이나 표정, 과장된 수사법을 피하면서 내면의 감정을 전달한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포즈 속에서 감정 상태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얼굴에 정신의 움직임과 영혼의 에너지 등이 드러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특별한 표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그의 얼굴은 의도적으로 덜 강조되고 덜 개인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익명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얼굴이 된다. 박민정은 전체적인 신체 동작으로의 번안 속에서, 그리고 작품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이름 속에서 자신의 감정은 담아낸다. 그녀가 실제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로서 고통 속에서 자택하는 조용히 가슴을 뜯는 모습이나, 분노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우뚝 서 있는 자세, 하루의 일을 마친 후 동료와 함께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돌아오는 모습, 안온한 마음으로 긴장을 푼 채 누워있는 자세 등에서 느껴지는 운율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불필요한 세부 묘사를 접고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하나의 조각적인 덩어리 속에서 전반적인 분위로 표현한다. 감정이 있다는 것이 생명의 증거이듯이, 구체적인 감정의 동요는 기본적인 해부학적 특질 하에 돌을 깎아가며 만들어내는 근육 조직의 조화로운 비례, 그 표면에서 서로 부딪히는 크고 작은 면들의 유희, 그 위에 펼쳐지는 빛과 그림자를 통한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한편 우리는 그의 조각에서 손이 다른 신체의 부분에 비해 특별히 강조된 것을 주목한다. 노작(勞作)으로 삶을 사는 그에게 손은 자아의 마음 상태와 정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물이다. 암시나 본질적인 의미와 상징적인 가치로서 전체의 감정을 일깨우는 표현적인 손인 것이다. 박민정의 작업에서 특히 의미있는 것은 관람자가 조각 형태에 시선을 주자마자, 그리고는 그것이 은유하는 감정의 상태를 읽자마자, 곧바로 관람자로 하여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작품의 제작 과정과 작가의 수고와 도구의 조건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와 물질 사이의 고투, 한번 깎거나 쳐내면 다시 원상태로 돌릴 수 없는 재료 앞에서의 작가의 긴장, 정을 댈 때마다 저항하는 무생물 덩어리, 그렇기 때문에 매순간 요구되는 예민한 감각으로 생명을 부여해야 하는 작가와 도구와의 갈등 등이 그것이다. 특히 미완성의 완성을 알리는 도구의 터치의 시각적 실현과 같은 것은 커다란 강도와 폭을 지닌 표현성을 획득한다. 이는 조각을 작가의 정신이나 감정이 담긴 인간의 재현물로 삼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각을 하나의 순수한 조형적인 구조물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드러낸다. 이로써 관람자는 인체를 통해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넘어서 형태 자체가 주는 효과에 집중하게 된다. 이와 같이 표혀 매체와 제작 기술 자체가 미적 대상이 됨으로써 조각의 자족적 독립성을 성취된다. 그리고 이것은 형태가 말하는 힘과 의미와 소통하는 길을 열어준다. 박민정의 인체에는 무수한 살아있는 면들이 있다. 그것들은 그가 어디에서나 삶을 포착하는 정신의 총체를 이루는 것들이다. 삶의 어느 한 구석도 의미가 없는 것이 없듯, 우리의 삶 전체가 그렇게 이루어지듯, 조각 본연의 면들로 이루어진 박민정의 작품들은 조각이라는 절대적 요구 아래 본질적 정신과 자연의 감정으로 우리의 존재를 일깨우는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박숙영_이화여대교수, 조형예술학 |
ARTIST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