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어른 동화를 꿈꾸는 작가(Artist dreaming an adult-fairy tale)

◎ 2019-2020년  몽상가 “눈먼자들의 도시” - 夢 (광주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어른 동화를 꿈꾸는 작가

(Artist dreaming an adult-fairy tale)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봤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았을 수도 있을 어린 시절. 그 시절이 좋았든 좋지 않았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며 말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바탕에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마주쳐야 할 그 어떤 불안이나 걱정도 없이 자유롭게 꿈을 꾸던 시절이 그때 그 시절이라고 느끼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존재했을 ‘그 시절 그때’에 아이들은 온갖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의 아이들에게도 나아가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아이들은 언제나 꿈을 꾸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TV나 영화 속의 영웅들처럼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사람을 꿈꾸기도 하고 때로는 우주선을 만들어서 온 세상을 날아다니는 과학자를 꿈꾸기도 한다. 때로는 동네 친구들과 세상을 떠돌며 모험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온갖 만화 속으로 들어가 좋아하는 캐릭터에 빙의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우리는 자유롭고 즐겁게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었다.                

 

 위재환 작가도 우리처럼 어린 시절에 많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고달픈 현실에 적응하면서 차츰 어린 시절의 꿈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그저 짧은 회상에 그치는 데 반하여,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더욱 발전시켜서 이루고자 한다. 

나아가 그는 각종 문제들이 즐비한 현실 속에서도 마치 어린 시절에서처럼 계속해서 꿈을 꾸며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일반인과 그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의 작업장은 그가 꿈을 만들어 나가는 곳답게 온갖 공구들과 함께 전시되었던 그리고 곧 전시될 예정인 각종 창작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창작물들은 하나 같이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을 띠고 있다. 한편으로는 익살스럽기도 한 그것들의 생김새는 같은 세계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할 만큼 어떤 공통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모습의 건물들과 인물들, 동물들, 그리고 바이크와 같은 운송수단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들어 낸 모든 형태들은 어떤 일관성을 갖고 있으며, 이 일관성으로 인해 모두가 하나의 세계관에서 존재하는 존재들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존재하는 세계는, 마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스타워즈의 세계처럼, 현실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이다.  이 세계 속의 존재들은 사물이건 생명체건 어떤 것이든 간에 날카롭거나 뾰족하기보다는, 심지어 뽀족한 모습의 창작물조차도, 일종의 부드러운 느낌을 우리에게 준다.   이것이 그러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 그 주된 이유는 그것들이 지닌 ‘동화적인 속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속성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고 있으며 있을 어린 시절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어떤 위해나 걱정, 근심, 불안도 없는 것과도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마치 그때 그 시절에 동화를 읽는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부드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리라. 비록 그의 작품들이 동화적인 속성으로 인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는 있지만, 그것에만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익살스러운 인물들이나 동물들은 모두 그의 세계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으며 한 인물과 함께 있는 구름 위의 건물들은 회색빛을 띠고 있다. 이것은 현재 지구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되고 있는 환경문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재생 가능한 커피 포대를 걸친 인물들이나 천 조각으로 만들어진 동물들의 모습 등을 통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위재환 작가는 문제가 많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항상 어린 시절에 꾸었던 ‘동화적인 세계’를 아직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현실을 결코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상상 속 세상에 존재하는 익살스러운 모습들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꿈꾸는 세상 속의 친구들이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장난꾸러기 같고 익살스럽게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모험을 떠나보지 않을래요?’

 

그가 던지는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작가가 만든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 세계에 들어가려면 그때 그 시절처럼 우리 모두  먼저 꿈을 꾸어야만 할 테지만 말이다.

 

 

김병헌 (소촌아트펙토리 센터장) 

몽상가의 도전과 희망 Dreamer’s Challenge and hope

◎2010년 “City of Dreamers” 주제전 - 몽상가들의 도시 (광주 무등갤러리) 

 

 

몽상가의 도전과 희망

Dreamer’s Challenge and hope

 

 

 

위재환의 조각에는 드라마가 있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웃음과 살기 위하여 몸으로 뛰지만 현실  적으로는 항상 낙오하는 남자의 허탈함 그러나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의  자를 둘러싸고 치열하지만 비현실적인 경쟁과 알기 어려운 게임이 벌여지는 국면들이 눈에 들어  온다. 매스와 조형적 결과로 매듭 지워지기 쉬운 조각에 왜 드라마를 주입하려는지, 아니 드라마  자체가 조각을 압도하는 형태를 갖게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의 시도는 유니크 하고 천성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그는 조각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싶고, 조각으로 하여금 인간  적이게끔 하고 싶다. 살아 있을 때의 감동을 조각이 표현해 주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서 살아 있  는 감동 자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는 통 돌을 깎아 길고 맵시있는 의자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권력, 권위, 지위, 계급을 의미한  다. 그 의자 주위로 천둥 벌거숭이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좋은 의자를  차지하고 싶거나 그 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 은밀하게 자리를 엿보는 자, 쇠고리로 연결  된 채찍을 들고 물고기로부터 의자를 지키려는 여성, 아기처럼 작은 인물들의 보호를 필요로 하  는 표정들…. 그 드라마는 기승전결을 갖고 있지 않다. 즉 잘 구성된 시나리오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분위기는 혼선스럽지만 현실의 비현실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현실의 이면에  는 동화 같은 본능과 인간의 서정적 해학이 숨어 있고, 꿈을 꾸는 자에게 있어서 현실은 드라마  를 가속시키는 무대라는 뜻이다.

 

위재환은 얼마 전 결혼을 했고 지금 아기 연우가 있다. 이것이 그의 몽상가적 기질을 더욱 자극  하는 것 같다. 현실에 지치고 힘들 때에도 그는 각성하듯이 꿈과 유사한 드라마에로 방향을 전환  한다. 그에게 있어서 진실은 인간적인 상상, 희망, 무조건적인 긍정 같은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조각 예술은 차갑고 형식적이며 장식적 속성으로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요즘처럼 옥션이 발달하면서부터는 구매 욕구를 자극하지 않  으면 가치를 상실한다는 듯한 추세가 비등하면서 예술적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 예술은 예술  이고 조각은 조각일 뿐이다. 가치의 전락이나 조작은 상업적 거래를 유도하는 자들의 문제일 뿐 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 도시를 살면서 꿈을 잃지 않으려는 비상한 노력이 헛되어 보인다면,  도시적 현실에 무력해진것이 아닌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간적이려고 노력하는 자들  의 아픔과 고통을 느낄 수 없다면, 기계적 냉정함에 길들여진 것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술의 가치는 잊혀지기 쉬운 진정한 가치를 상기시키고, 인간 본연의 자리를 되찾게 하는 역할  에 있어서도 중요성이 발견된다.

 

 

동명동 작업실 주변의 닭곰탕 집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그는 다음을 기약했지만, 그렇게  소탈하게 인간적인 자리를 마련했던 그가 더욱 그 답게 느껴진다. 그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인간  적으로 부딪쳐서 해결하려는 성정을 보여주고 있고,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역시 그렇  게 부딪치고 있다는 점에서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장 석 원 (미술평론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공상적 시선

◎2009년 GRAY CITY (광주 롯데화랑)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공상적 시선

 

 

 


미술인이 자기 안의 움직임을 밖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각각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다. 냉철한 개념이 먼저인지, 근원적인 감성이 우선인지의 여부를 놓고 무엇이 낫다 단정할 수 없지만, 창작을 경험해본 이라면 이 두 흐름 사이에서 무던히도 고민 했을 것이다.


조각가 위재환은 후자의 방식에 더 비중을 두는 듯 하다. 조소는 여느 장르보다 고된 작업이다. 그만큼 동일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다작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재환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이를 극복하려 한다. 그의 감성은 때로는 글로 풀기 좋아하는 말 많은 이들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곤 한다.


 


그를 처음 대면했을 때 정신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호들갑스레 사람들을 웃게 하는 그의 때 아닌 능력이 제법 유쾌했었다. 욕심이 많은 듯한 인상에 사람 욕심도 많으려니, 당연지사 모든 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작가는 매사에 계획적이다. 그러나 작품에 임하는 그의 태도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매체의 순수성을 지키려한다. 작품의 용도가 어떠하든 완성작이 나올 때까지 깎고 빚어내는 작업 과정은 그의 감성적 시선과 맞물려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번 개인전도 그의 풍부한 감성이 돋보이는 자리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보다는 개인이 우선인 지금, 헛헛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대다수의 현대인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은 고작 TV 앞 정도이다. 연예인들의 시시껄렁한 농담과 유머를 대하며, 알맹이 없는 웃음을 짓는 우리의 삶에서 그야말로 알맹이 없는 행복을 느꼈 다는 그는, 지금의 모습을 허구 세계 속 인물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빛을 잃어버린 회색도시의 자그마한 시민들은 저마다 기묘한 표정을 띠고 있다. 웃는 듯 무표정하기도 한 그들의 모습은 둔하기 짝이 없다. 디테일한 피상적 느낌보다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는 서사적 구조를 중요시하는 위재환의 작품 성향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날을 세우지 않고 그저 그렇게 묻혀가는 시민들의 몸짓과 표정에서 오히려 ‘자기’란 없어 보인다. 개개인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점차 퇴색되어가고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회색 도시 안의 인물들은 메시아를 간구하듯 어떠한 절실함을 필요로 한다.


작가는 이러한 무색의 세계에 빛을 선물하고 그 빛으로 인해 우리의 감성이 다시 피어오르길 바란다. 제법 드라마틱한 구성을 시도한 위재환은 직접적 제시 대신 공상적 흐름 을 중심으로 자신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한다.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 또는 상투적이다 비판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잔존하지만, 공상과 실제의 대비를 통해 극명한 진실을 드러내 고자 하는 그의 순수한 열정은 되새겨볼 만하다. 개념이나 이성에 의해 잠식당하는 현대미술의 현학적 허세와 비교해볼 때, 그의 섬세하며 자유로운 감수성은 사라져가는 것들 에 대한 향수이자 회고이다.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작가들이 있다. 여러 일을 전전하며 작업실을 꾸려가는 그들의 일상은 사회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비현실적인 현상으로 다가온다. 켜켜이 꽃잎이 포개지듯 고된 시간을 감내해야하는 창작자들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그 고통을 묵묵히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한다. 범인( 凡 人 )의 사유방식에서는 이 해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유유히 걸어가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새삼 의식의 자유로움을 느껴보라 간청하고 싶다.


덩치에 맞지 않게 몽상하길 좋아하는 한 미술가의 감성을 통해서 말이다.


고 영 재 (롯데화랑 광주점 큐레이터)


꿈꾸는 조각가

◎2008년 “GATE” 주제전 (서울 관훈갤러리)

 

 

 

꿈꾸는 조각가

 

 

조각가 위재환은 언제나 용의주도하다. 이곳저곳 관심도 많다. 자주 사라졌다가 번쩍 나타나 뜬금없이 안부를 묻고는 또 한동안 안보이곤 한다. 항상 일거리를 안고 다니는 것 같으며 얼굴표정은  약간 굳고 몸은 우람하다. 한 십 오년쯤 보고 살려니 이제 그의 본래 자태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도 같은데, 실은 매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다. 아닌 듯하면서도 상대방의 말 한마디를 주의 깊게  경청하며 그 의미를 유추하고 오래 기억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한때 확신 없는 표정으로 찾아온 노총각 그를 보며 혹시 그의 청년시절도 그 옛날의 나처럼 그리 애매하고 혼란스러울까 걱  정했던 적이 있었다.

 

그의 몇몇 작업들을 보노라면 그의 평소 외모와는 다르게 매우 사색적이며 정적인 고요함을 우선 느끼게 되는데, 나름의 짐을 지고 세상과 꿈의 경계에 선 한 작가의 베갯머리 뒤척임이 그대로  전달되어 진다. 불가능한 것 같은 탈출을 갈구하며 허공에 세우는 사다리, 중세의 성채를 닮은 환상의 신기루에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 그리고 속을 알 수없는 눈 감은 자아상들...조형적인 세밀한  배려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어차피 예술가는 몽환을 그려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비현실적인 환상은 언제나 바깥의 비정한 현실과 충돌한다.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는 그 싸움에서 몽환의 승리를 이룬 사  람들이다. 아마도 위재환은 자신이 이미 그길로 접어들었음을 부인 하지 않으려나 보다. 그 어떤 고독과도 담담히 대면할 자신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가든지 평생 한두 번은 자신의 창작에 영감을 주는 선구자를 만나게 마련인데, 위재환은 자신의 그 사람으로 벨기에 태생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를 지목한다. 독특한 화면구  성과 상황설정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르네 마그리트는 ‘나의 작품에 감추어진 신비로움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소 생경한 대비에 상상력의 깊이를 가미하려는 관객  의 의도를 차단하여 자신의 작품에 담겨있는 비현실감을 실존적으로 고착화 시키려는 의도로 읽혀지기도 하지만, 위재환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조각이라는 경  직된 틀 속에 갇힌 자신에 대한 가벼운 해방감으로 받아들인 듯싶다. 이는 한동안 그의 작품 활동에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이며, 또한 그의 작품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창작의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능력은 모든 예술가들이 선망하는 기예이다. 그러나 갈애와 좌절이 없는 작품은 매끄러우나 심심하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빛을 향하는 예술의 행로에서 오  늘, 자신의 버거운 삶의 짐을 지고도 괘념치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어깨 넓은 또 하나의 젊은 조각가를 바라본다.

 

 

 

김 인 경 ( 조각가, 조선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