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다시 “검은 산수”_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다시 “검은 산수”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2022.8

 

그림은 아름다움의 다른 말이다. 좋은 자연과 마주치면 사람들이 하는 상투적 말이 있다. “그림처럼 아름답다!”

미술(美術)이란 말이 직접 함축했듯, 화가는 아름다움을 식별하는 특출한 구안(具眼)으로 자연을 읽고선 화폭에 담아내는 사람. 화가가 식별해서 그림으로 보여준 자연의 아름다움에 보통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세뇌되어왔다.

그래 생겨난 말, “그림처럼 아름답다.” “자연 그대로 아름답다”가 아니다.

 

 

여기 추상표현주의 그림이

현대에 들어 “그림=아름다움”의 자동적 등식을 잠깐 유보한 채 그 의미, 그 깊이를 따져 봐야할 경우가 아주 많아졌다. 대상의 형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마음속 구름이라 할 심회(心懷)를 구사한 비구상화(또는 추상화), 유파로 말해 현대화의 주류 추상표현주의 그림을 만나면 마음먹고 독화(讀畫)해야 한다. 그림을 읽으면서 공감 감수성의 나래를 펴야 한다는 말이다. 작가의 화의(畫畫意)에 공감할 틈새를 찾아서다.

2018년 말, 그때 처음 만났던 양규준(楊圭埈, 1956- )의 시리즈가 특히 상상력을 재촉한 그림이었다. 추상표현주의 그림임을 한눈에 알고 그 모티브를 엿보려는데, ‘추상표현’이란 유파 이름이 이미 함축했듯, 그게 쉽게 보일 성질은 아니었다.

전시 제목 말대로, 화면이 검은색 일색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색깔에 대한 느낌의 공통분모 관성이 있다. 검정이라 하면 먼저 갇힘·막힘·암흑·부재도 함축한다. 이 상황에서 양규준의 ‘산수(화)’ 미학은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내게 그런 상념에 빠지게 한 곳은 모처럼 마음먹고 찾았던 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소재 영은 창작스튜디오 11기 입주 작가들의 여럿 개인전이었다. 진작 소문을 들었던 재미 조각가 김청윤(金淸允, 1949- )의 귀국전을 먼저 보았다. 이어 발길이 닿은 곳이 바로 이웃의 회화 전시회였다.

 

 

경관이 검정 일색이라니

전시 주제가 <검은 산수>(2018.12.8-2019.1.6)였다. 경관을 검게 그렸다.

경관은 동서양 그림의 주요 모티브다. 장르로 서양에 풍경화가 있다면 동양은 산수화가 있다. 둘 다 산수 곧 산과 계곡의 물이 대상인 그림인데, 이른바 산수화는 동양 쪽이 훨씬 오래 그리고 열심이었다. 산수화를 두고 와유강산(臥遊江山)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랑했다. “누운 채로도 강산을 유람할 수 있게 해 준 매체” 라는 것. 거동이 불편한 노년은 누워서라도 산수화로 강산의 아름다움을 즐기려 했다.

우리도 포함한 한중일의 전통 산수화는 수묵화(水墨畵, sumie)가 대종이었다. 먹의 짙고 옅고의 깊이를 세심하게 느끼고 가려낸 뒤 그걸 종이 위에 풀었다. 이 전통에 따르면 묵색의 미묘함에 파랑·노랑·빨강·하양·검정 등의 오채(五彩)가, 더해서 새까만 검정·짙은 검정·무거운 검정·엷은 검정·맑은 검정 등 오색(五色)이 있다 했다.

그리고 유명 수묵산수화 이를테면 중국 땅의 미불(米芾, 1051-1107), 일본 땅의 셋슈(雪舟, 1420-1506), 우리의 화성(畫 畫聖) 정선(鄭敾, 1676-1759)이 보여주었듯, 검정 주조의 선묘(線描)다. 견주어 양규준의 산수는, 선은 평면의 교차 수준에서 생겨날 뿐인, 검정 면칠(面漆)임이 이색(異色)이고 특징이다. 그제야 양규준이 ‘그리는(draw)’ 동양화 화법이 아니라 ‘칠하는(paint)’ 서양화 화법‘ 계열임을 실감한다.

 

 

양규준의 화의는 어디에?

‘검은 산수’라 했으니 그 족보를 찾자면 우리 전통에서 진경(眞景)산수 대 사경(寫景)산수의 대비 또는 서양 전통에서 자연주의 풍경화 대 낭만주의 풍경화의 구분을 먼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 관련으로 아주 좋은 설명 하나를 만났다. 대비(對比)의 2분법 보다는 대비의 양쪽 끝을 상정한 연후 그 사이 연장선의 어느 지점에 작가가 서 있는가를 살피는 노릇이 중요하다했다.(윤철규, 『산수와 풍경의 세계』, 미진사, 2022, 311쪽)

 

중국의 웅장한 산과 변화무쌍한 자연은 고대부터 영감의 원천이었다. 한편으로 그 자체가 위대한 영혼으로 인식됐다. 사람들은 영적인 존재인 자연을 위안과 자유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리고 천지만물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정신과 객관적인 자연세계를 그림 위에 구현시키고자 했다. 그것이 산수화의 탄생이다. 산수화에서는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인 세계 사이의 균형이 늘 추구됐다. 그것은 시대마다 발전을 자극했다. 때에 따라 균형추는 한쪽으로 기울기도 했다.

 

이 대치(對峙) 관점이 아닌 연결선 관점은 먼저 서양의 풍경화에 적용 가능했다. 이를테면 영국의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은 관찰과 사실에 바탕을 둔 자연주의 풍경화라면 동시대 사람이던 터너(William Turner, 1775-1851)는 소박한 감정을 중시해서 자연의 숭고함이나 영웅적 사건을 함께 담으려던 낭만주의 풍경화였다.

같은 논점은 동양 쪽 산수화에도 해당한다. 한쪽 끝은 그림 속에 단순한 형사(形似) 곧 외면적인 형상의 진경산수이고, 또 다른 한쪽 끝은 심의(心意)와 철리(哲理)를 담은 사경산수 또는 문인화를 대비한 뒤 그 둘의 연장선 어느 사이라 할 것이다.

 

 

동서양화의 검정색 선호

그럼 양규준의 검은 산수 저울추는 사실 대 심의의 연장선 위에서 어디쯤일까. 내 파악은 연장선의 아주 한쪽 끝자락, 곧 심의 쪽이다. 언뜻 그의 심의는 일단 검은 장막이 드리워져있다. 검은 장막 뒤에 블랙홀이 자리한 지도 모르겠다.

찾아가 볼 도리 밖에 없다. “그림을 본다는 건 형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목도하는 일 일뿐 아니라 형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에 참여하는 일이기도 하다”(제임스 폭스, 강경이 옮김, 『컬러의 시간』, 윌북, 2022, 64쪽). 그림 읽기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림이라면 대 체로 울긋불긋의 다채로운 유채색의 향연이기 일쑤임에 견주어 양규준 그림은 검정 바탕에 어쩌다 흰색이 비치는 무채색 단색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그림의 검정색 주조(主調)는 동양의 산수화에선 다반사였지만 서양화의 검정색은 아주 조심스러울 정도로 한정 사용이었다. 윤곽과 그림자에만 적용하는 수준이었다.

그랬던 것이 19세기 특히 인상파화가들에 이르러 검정색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를 맞았다. “검정이 색이 아니라고요? 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거죠? 검정은 색의 여왕입니다.”라 했던 르누아르에 이어 피카소는 “유일하게 진정한 색”, 마티스는 “물감이 아니라 힘”이라 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마네(Eduard Manet, 1832-1883)는 “검정을 윤곽으로도 썼고, 서예처럼 화가의 붓질자국을 드러내는 용도로도 썼다”(폭스, 67쪽). 이를테면 <베르트 모리조 여류화가 초상화>(1872) 화면은 거의 검정색이다. 모자도, 윗도리도 검정색인 미녀를 그려냈다.

서양미술사에서 일대 변모가 분명했지만 인상파시절의 검정색 사용은 그래도 제한적이었다고 해야 옳다. 검정색의 화폭 전면적 사용의 화가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현대작가 술라지(Pierre Soulages, 1919- )는 검정색으로 화면을 도배했다. 동양 수묵화를 오히려 압도한다. 나이 예순부터 펼쳐온 화풍이라 했다. 지금도 작업 중인가는 확인 못했지만 올해 우리 나이로 104세. 세계 고령 화가 최상위에 든다. 그 사이 세계 3대 미술관 하나라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미술관에서 생존 작가 최초의 초대전(2001), 이어 파리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퐁피두(2009) 그리고 루브르(2019).

술라지는 검정을 색채이자 동시에 색채 아님이라 여긴다. 빛이 검정에 반사되면 거기에 변용이 일어난다. “나의 그림그리기 매체는 단지 검정색만이 아니고 검정색에서 반사되는 빛”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이런 성질의 검정을 일러 ‘우트르누아르(Outrenoir)’라고 이름도 붙였다. 이 불어를 굳이 옮기면 영어는 “Beyond black”, 우리말은 “검정 너머”가 된다. 그림의 검정색 표변에 줄을 그어 빛을 반사하게 해서 검정색이 어둠에서 나와 눈처럼 밝게 빛나는 색채가 생겨나게 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술라지 나름의 사유가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지하로 들어가서 동굴의 절대 검정 속에서 살았다. 거기서도 검정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검정에 반사된 빛이 어떤 정감을 불러일으켰듯 술라지도 그렇게 그림을 그리려 했다. 검정은 단색이 아니었다. 빛이 없는 색채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다.

나름으로 오래 궁구(窮究)했을 술라지의 검정색 명상은 우리 시인의 시심(詩心)을 만나면 바로 정체가 드러난다. 천양희(千良姬, 1942- )의 <그 사람의 손을 보면>도 우트르누아르를 말함이었다.(밑줄은 필자의 것)

 

“구두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 문 끝을 보면/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후략)

 

 

검은 장막인데 산수라고 화제를 붙여

술라지는 자신의 그림을 전시장 벽면 대신에 전시 공간 중간에 매달아 놓기를 고집했다. 벽체에 걸면 그림은 하나의 창이 되지만, 공간 중간에 매달면 그건 하나의 벽채로 변모한다. 창은 밖을 바라보는 장치임에 견주어 벽채는 우리 내면을 바라보게 한다. 자신의 그림을 창 대신 그런 벽채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림을 육안(肉眼)이 아니라 심안(心眼)의 대상으로 보란 뜻이었다.

그리고 술라지 그림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단지 사이즈와 제작 연도만 표시했을 뿐이다.

견주어 양규준은 화제(畫題)가 있다. 개별 작품에 붙인 것이 아니라 한 시기의 작품군에 대한 일괄 명명이다. 검은 산수가 바로 그 화제.

화제를 구체화한 모티브를 굳이 가려 말하면 깊은 밤의 무논이라 했다. 왜 무논인가?

 

“여느 때처럼 심야에 (안성)들녘을 배회하기도 하며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모내기가 끝난 들녘이지만 아직 무논에 투영된 반영은 선명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대상의 내면을 온전히 담은 주변 나무, 산의 반영이 허연 물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호수가 된 무논이 거울처럼 주변 잔빛을 비춰 내면으로 젖어들어 까만 반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제 마음이 거기에 있듯 일체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가로줄에 멜로디를 그려가며 작업을 구상하고, 읽혀진 리듬을 연주하며 작업할 때... 물길을 트고 막는 치수작업을 통해 공간을 팽창시켜나가는 제 작업입니다. 이것들의 강약을 반복된 붓질로 지워낼 때면 많은 생각이 왔다 사라지곤 해 오롯이 사색의 장(場)인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컨대 철수나 영희, 순이 같은 친구들 이야기, 부모님, 가족, 친지들의 애틋한 마음, 그리고 때로는 역사속의 위인들을 떠올리며 그 질곡된 삶의 순간을 공유하며 감정이 울컥하기도 했습니다.”(2022,6.7 안성작업장에서 보내온 이메일 편지)

 

화폭의 그림 이미지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검은 색상의 직사각형 조형이 화면을 조직하고 있다. 바로 무논이다. 확장하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그 네모 땅이다. 네모꼴 무논 사이로 흰색의 물길이 번지고 있다. 논들이 온통 천수답 시절을 기억하는 다랑이 논, 곧 계단식 논이 아니더라도 고도차를 따라 물은 논에서 논으로 흘러내린다. 그래서 산수화다.

 

 

고국산천 그리움이

화가는 2018년 말의 개인전을 마치고 가족이 있는 뉴질랜드로 갔다. 얼마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경기도 안성시 외곽에 어렵사리 마련해두었던 다가구주택을 작업실로 삼아 통인화랑 개인전을 준비해왔다.

왜 뉴질랜드인가. 양규준은 나이 마흔을 갓 넘긴 1997년에 거기로 떠났다. 새로운 미술환경의 만남, 아울러 가족복지도 증진하려던 출향(出鄕)이었다. 미술실기과정도 다녔고(2002) 미술석사공부도 마쳤다(2007). 그 남국 친환경의 ‘신세계’에서 계속 그림 작업에 매달렸다. 새로운 그림환경이 고갱의 타히티행(行)일수도 있었다.

그런데 양규준의 정체성 인식은 갈수록 “인간 도처에 청산이 있다 하되, 고국산천 그리움이 그칠 줄이 있으랴”였다. 그림 작업용 잠정 귀국이었다. 15년 만이었다. 영은창작 스튜디오 레지던시에 든 것도 그 일환이었다.

고국에서 새삼 정체성을 확인했다. 시서화를 높이 치는 우리 전통에선 화가의 좋은 글도 당연하다하겠는데 양규준이 바로 그랬다. 나와 편지를 주고받는 문우(文友)가 된 까닭이었다. 거기서 <저녁마을>이 노래한다.

 

“나지막한 서산 너머 노을이 지면/ 새 무리 보금자리 찾아 부산히 날고/ 풀벌레 소리 잦아드는 신록의 산 녘/ 뿌연 연무 밥 내음 나는 저녁마을// 아이들 쉰 소리 동네 빈터 떠나고/ 느티나무 까만 고목 정적 깃든 숲/ 푸드득〜 부엉이 빈 날개짓 소리/ 하얀 고요함, 자연의 숭고함이여!”

 

양규준의 그림스타일은 이미 짐작했듯, 심의⦁ 화의를 중시하는 문인화풍이다. 소동파가 “그림

속에 시가 있고(畵中詩), 시 속에 그림이 있다(詩中畵)” 했듯, 시리즈 “검은 산수”는 바로 그의 시심이기도 했다.

 

“한 겨울 아침/ 흰 창호지 문에 비친/ 격자 문살/ 까만 문고리 그림자/ 주변은 아직 어둠 희미하고/ 온기를 더해가는 구들장// 사각의 창호지 문/ 은은한 빛을 품어내고 있었다/ 젖은 종이 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그 변주곡!/ 번짐, 확산 그리고 소멸/ 그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찰나의 미학이었다!/ 농부가 밭을 고랑을 내어/ 두렁을 일구듯/ 유년 시절 한 기억들이/ 무념의 마음 일으켜/ 아득하고 먼 까만 공간에/ 한 획을 그시고 있네.”

 

화의를 그림 조형으로 구체화하는 방식, 곧 제작기법도 이어 적었다.

 

“물기가 건조된 다음 얼룩만이 남겨진 화면에서 이따금씩 수직으로 흘러내린 물줄기 들은 금방 바람에 날려 사라질듯 여리고 위태로워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술가가 과거를 되새김질하고, 그리워하며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임이 맞는 것 같아요.” (2022.6.7 안성작업장에서 보내온 이메일 편지)

 

 

완벽과 자유가

양규준의 <검은 산수>는 그림 장르 분류로 검정색 주조이니 단색화이고, 단색에다 선조(線條)마저 가로 세로 몇 가닥 줄이니 일러 미니멀리즘이라 하겠다. 가지런히 그은 선은 완벽을 구사하는데 차질이 없다.

완벽은 자칫 경직일 수 있다. 양규준은 완벽에 대체 또는 보완이 되는 자유도 구사 한다. 직사각형 무논 사이로 물이 흘러드는 광경은 자연속의 물 흐름처럼 자유롭다.

자유와 완벽은 먼저 서양미술이론에서 위대한 그림의 조건이라고 치부한 가치였다. 이를테면 뉴욕현대미술관을 이끌었던 평론가(Alfred Barr Jr., What is Modern Painting?, Museum of Modern Art, 1943)는 좋은 현대미술을 말해줄 세 기준을 꼽았다. 자유(freedom), 완벽(perfection) 그리고 진실(truth). 자유와 완벽이 어우러지는 사이에 아름다움의 진실이 드러난다는 말이었다.

완벽과 자유 둘은 표피적으로 상반 개념이다. 자유는 창의란 이름으로 완벽도 넘어서려 한다. 그러면서도 둘의 병치(竝置)가 가능함은 동양쪽 미학이 말한다. 이를테면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말이다.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면서 같이 존재합니다. 우주는 모순으로 존재합니다. 지구도 원심력과 구심력, 팽팽한 두 상극 때문에 우주공간에 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동양에서는 여백이 있습니다. 여백도 있고 모순을 수용하지요.”

말하자면 반대개념의 조화인데 노장사상이 말하는 “반대의 일치” 같은 것이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고 “빼어나게 교묘함이 어설픔과 닮았다” 했다. ‘교(巧)’와 ‘졸(拙)’의 반대개념 사이가 한길이란 말이었다.

이런 미학은 윤형근(尹亨根, 1928-2007) 단색화의 미학일 수도 있다. 작업광경을 직접 엿본 적도 있었지만, 그는 큰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물감을 묻힌 롤라로 칠하던 작업 방식이었다. 거기에 직사각형 조형이 기조였다. 그 다갈(茶褐)색조의 그림을 본 일본 안목은 원폭이 투하된 뒤에 히로시마에 내렸던, 죽음과 비탄의 검은 비 ‘흑우(黑雨)’를 연상한다 했다. 그런 사회적 무게의 느낌이기도 한 직사각형이 묘한 여운을 안겨주는 것은 직사각형을 만드는 기하학 선(線) 가장자리에 색조 번짐인 선염(渲染)으로 “풀어지는” 느낌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단호한 직선에 느긋한 번짐이 어우러지는 사이로 윤형근 그림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이었다.

 

 

여기 “반대 일치”의 미학이

양규준의 어둔 밤은 물길의 하얀빛으로 해서 그 밤은 새날을 예비도 암시한다. 그런 “검은 산수화”를 두고 내게 부제(副題)를 붙여보라면 ‘여명(黎明)’ 주제라 이름할 것이다.

묘하게도 이 낱말 자체가 이미 반대 일치의 뜻을 담고 있다. “검을 黎(여)에 밝을 明(명)!” 어둠과 빛의 교차고, 밤과 낮의 교차다.

연장으로 양규준의 검은 산수는 내가 좋아하는 영국 문필가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의 명시를 새삼 기억나게 했다. 빛이 있기 전에 어둠이 있었다. 어둠의 밤은 빛의 낮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하루가 시작된다. 하루는 영원과 영원 사이에서 사람이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시간단위라는 것.

보라 푸르른 새날이 밝아오누나(So here hath been dawning another blue day)/ 그대 생각하여라/ 이 하루를 헛되이 보낼 것인가// 영원에서부터/ 이 새날은 태어나서/ 영원 속으로/ 밤이 되면 다시 돌아가리니...

여기에 적힌 묘한 시어(詩語) 원어는 “blue day”다. “푸르른 새날”이라 옮겨진 것 은 ‘파란’을 곧잘 ‘푸르른(green)’에 포함시키는 대표적 우리말 혼용 사례다(여기는 그 혼용의 까닭을 말할 자리가 아니다).

이제 ‘블루’의 파란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눈이 파란빛에 더 민감해질 때는 다소 어둑해질 무렵이다. 파란물체는 어둑한 환경에서 비교적 밝게 보인다. 물리적으로 그럴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특출한 색이다. “파랑보다 영혼에 더 내밀하게 접근하는 색은 없다... 파랑은 전형적인 천상(天上)의 색이다”(폭스, 190쪽).

그래서 알 것 같았다. 색면(色面)주의 화가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가 1971년에 텍사스 휴스턴의 ‘로스코예배실’을 위해 제작한 그림 트립틱(triptychs: 삼면으로 이루어진 회화 또는 부조)은 단색의 암청색으로 도배를 했다(Rothko Chapel: An Oasis for Reflection, Rizzoli, 2021) 암청색은 영어로 “Mid-night blue” 곧 “한밤중 파랑”이다. 이 또한 밤과 낮의 경계를 말함이지 싶었다.

 

 

양규준의 미학은

“한밤중 파랑”처럼 양규준은 밤과 낮의 교차인 여명이다. 그의 검은 색은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幽玄(유현)’이란 낱말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다. 幽(유)도 玄(현)도 각각 ‘검다,’ ‘깊다’는 뜻이니, 유현은 “검고 검다”에 “깊고 깊다”이다.

검정은 다른 색 못지않게 아름답고 다채롭다. 단색화의 가장 큰 미덕은 어둠처럼 상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빈틈을 채울 수 있도록 한다.

양규준의 미학이 아직도 마음에 닿지 않으면 프랑스 시인 발레리의 시학(詩學) “미의 부정이다”를 기억해도 좋겠다. 왜 미는 부정인가. 그건 말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를 말로서 표현해야 한다는 것. 즉 “표현할 수 없음”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미는 부정이라고 발레리는 생각한다.”(『P. 발레리: 해변의 묘지』, 김현 옮김, 1973).

발레리의 시학은 이 나라 현대회화사상 최장수를 기록했던 김병기(金秉騏, 1916- 2022)화백의 미학이기도 했다. 이 틀에서 도쿄에서 이상(李箱, 1920-1937)의 죽음과도 마주친 적이 있었던 김병기는 과대평가되었다고 평단 일각에서 말하는 이상 시의 난해성도 줄 곧 변호해왔다.

변호의 말인즉 “모르겠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가. 이해했 다 하면 그건 이미 기성(旣成)이 되고 만다. 예술은 아는게 아니다. 납득하고 느낌이 예술이 아닌가.”

 

 

파도 소리 바람에 실려 희미한 의식 깨우고

푸드득 산비둘기 날갯짓 가끔 정적을 깬다

주변은 온통 검은 원시의 숲 고립무원 고도

폴 고갱, 앙리 루소의 자연경이 이러했을까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기억의 단편들

나는 생각하는 작은 존재 아, 한 그루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