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일상의 화가_미술비평가 강정호

일상의 화가 

   

I

 

  누구나 아는 의사, 아는 변호사 한 명 쯤은 있다. 그러나 아는 화가는 참 드물다. 아는 연예인 보다 더 드물다. TV 드라마를 봐도 그렇다. 피아니스트도 등장하고, 디자이너도 등장하고, 심지어 가구제작자도 등장하지만 화가의 모습은 보기 어렵다. 그만큼 화가는 우리의 일상에 희소한 존재다. 

  이러한 현실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길거리 곳곳에 미술 학원이 즐비하고, 대형 마트나 백화점의 문화 센터에는 항시 미술 강좌가 개설되어 있고, 예술계 고등학교, 미술 대학교가 이렇게 많은데,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는 화가는 만나기 힘들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미술대학 졸업생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일까? 

  누구나 ‘아는 화가’가 한 명 쯤 있을 수 있는 일상. 나는 이것이 한 사회의 문화의 질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조각가’, ‘아는 설치미술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예술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환대받으며 생계를 꾸릴 수 있는 환경, 예술 작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풍족해서, 누구나 작품 몇 점 정도는 소장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삶. 나는 이런 환경과 삶이 가능한 사회가 괜찮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을 거쳐 정치경제적으로 독립한 시민이 주권자가 되었던 사회는 대부분 ‘아는 화가’ 한 명 쯤은 있는 일상이 보편적이었다. 화가들이 왕이나 귀족에 봉사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기네 삶의 광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을 때, 그 사회의 시각문화는 거듭났다.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흐 등 유래 없는 회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시대의 화가들은 모두 시민의 삶을 그렸던 시민 출신의 화가였다. 그들은 ‘고귀한 사람들’의 녹을 먹는 궁정화가도 아니었고, ‘환쟁이’ 소리를 듣는 날품팔이 기술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의사나 변호사와 다름없는 당당한 직업의식을 지닌 시민이었고, 당대의 일상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II

 

  나는 화가 유정훈의 삶과 작업에서 우리 사회에 여전히 희소한 ‘아는 화가’의 모습을 본다. 그는 서울 목동의 한 주택가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 매일 ‘출근’해서 그림을 그린다. 누구한테 의뢰 받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삶에서 느끼는 바를 얽매임 없이 그린다. 그의 작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호응과 수요는 들쭉날쭉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림을 계속 그린다. 그리고 ‘화가’는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앞서 예로 들었던 시민 화가들은 그와 같은 확고한 직업의식을 가졌었고, 그들은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건 아니건, 팔리건 팔리지 않던 매일 아침 팔레트들 들고 캔버스 앞에 섰다. 그래서 적게는 수 백 점, 많게는 수 천 점에 이르는 그 화가들의 작품에는 당시의 일상이 섬세하게 기록되었다. 

  유정훈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수요가 있건 없건 꾸준하게 제작되어 이미 상당량에 이른 그의 그림에는 이 사회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그가 경험하는 일상이 스스럼없이 반영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는 팝 아트적인 왁자지껄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적인 진솔함이 배어난다. 빨강, 파랑, 노랑과 같은 선명한 원색을 바탕으로 하고, 분홍, 자주, 보라, 연두와 같이 호감도 높은 혼합색을 곁들이는 그의 화폭은 눈코입을 달고 있는 익명적인 형상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다양한 모습와 표정을 취하고 있지만 모두 우리의 삶에서 접하게 되는 인물들로 와 닿는다. 만화 캐릭터처럼 엉뚱하고 귀여운 모습이어서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은 그 형상들은 외곽선이 또렷하고 모서리에 하얀 빛 점이 새겨져 있어 유리 인형처럼 영롱하다. 발랄한 몸짓으로 화폭을 여백 없이 메운 그 형상들로 인해 유정훈의 그림은 매번 유쾌하고 해맑게 돋아난다. 

  하지만 그의 화폭은 마냥 가볍게 들썩이지는 않는다. 유정훈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동심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생기 넘치는 표면 아래 이별, 죽음, 우울, 고독과 같은 삶의 그늘이 스며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유정훈은 그것을 별도의 방법으로 나타내지 않고, 다른 형상들과 마찬가지로 밝고 영롱한 캐릭터의 형상으로 나타낸다. 그들의 표정은 슬프고 아프지만 그런 감정으로 전체 화폭의 활기를 깨뜨리지 않는다. 그 결과 유정훈의 그림에는 삶의 그늘을 보듬고 나아가는 담담한 긍정성이 배어난다. 그의 그림은 생에 들뜬 아이처럼 짓궂으면서도 생을 관조하는 현자처럼 사려 깊다. 

     

 

III

 

  나는 유정훈의 그림이 스펙터클한 감상을 요구하는 작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상을 함께하는 이웃들의 소박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상의 맥락을 편안하게 이어받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전시가 그의 화폭에 담긴 섬세한 생활감정과 흥미로운 공명(共鳴)을 이룰 것이라 기대한다. 

  나는 유정훈의 그림에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던 수평적인 시민의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은 엄숙하지도 난해하지도 않고, 심각하지도 처절하지도 않다. 유정훈의 그림에 어떤 ‘주의’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반(反)권위주의’일 것이다. 그의 화폭 위에 등장하는 수많은 형상들은 아무런 위계나 경중(輕重)없이  해저의 생물들처럼 자신들을 이끌어가는 삶의 흐름에 동등하게 몸을 맡기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특별한 형상이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산책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일상의 평온한 서사(敍事)가 들려온다. 그러한 서사를 화폭에 담기 위해서 화가가 자신의 캔버스를 펼쳐야하는 곳은 미술대학의 연구실이나, 국가나 기업의 지원을 받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유정훈의 작업실과 같은 삶의 한복판일 것이다.    

  ‘스타 작가’나 ‘대학교수’와 같은 우러러 보는 직함을 달지 않고서라도, ‘저는 화가입니다. 그림 그리는 게 제 일입니다’ 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사회는 아직 요원한 것일까? 하지만 서구에서도 시민 사회의 성립과 시민 화가의 등장 사이에는 오랜 세월의 골이 패어 있다. 주변에 ‘아는 화가’ 한 명 쯤 있는 일상은 먹고 사는 일 뿐만 아니라 삶을 보고 느끼는 일 조차도 자치(自治)적으로 마련하고자 하는 시민의 문화적 자각이 뒤따를 때, 비로소 성립한다. ‘스타 작가’나 ‘대학교수’와 같은 극소수의 인물들만이 예술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일상 속에 충만히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우리네 삶과 무관하게 ‘이름이 높은’ 화가를 우대하기보다는, 우리네 삶을 공유하는 ‘아는 화가’를 소중히 여기고 살뜰히 챙기는 생활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유정훈의 삶과 작업에서 그와 같은 ‘아는 화가’의 실현을 본다. 19세기 중후반에 등장했던 서구의 시민 화가들은 작품의 형식과 내용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당대의 ‘이름 높은’ 화가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나는 일상 속에 소박하게 머물며 일상의 결을 진솔하게 그리고자 하는 유정훈의 삶과 작업에서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흐와 같은 시민 화가들의 자취를 본다. 이번 전시에서 유정훈의 작품을 대면할 관객들에게도 그의 그림이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게 될 현대 미술의 양상 보다는, 그의 그림 속에 깊게 배어 있는 ‘아는 화가’의 존재를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유정훈의 그림의 가치 또한 제도와 시장이 폐쇄적으로 마련해 놓은 ‘주목도’나 ‘세련미’를 척도로 가늠하기 보다는, 시민 사회에 적합한 시각 문화를 형성하는데 얼마만큼 기여했느냐를 척도로 해서 가늠하고 싶다.        

          

 

- 미술비평 〡 강정호

  

개인적이고 살아 있는 것을 그린다는 것에 대하여

화가라면, 누구나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할 무렵에는 평범한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충만해 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붙이는 까닭은 그가 의도적으로 어떤 작품을 그리겠다는 확신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소설가가 작품 속 등장인물에 이름을 붙여 이야기를 전개하듯이 화가는 작품에 이름을 붙이고, 그 작품들이 모이는 공간에 테마를 부여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이렇듯 좀 더 만족할 만한 그림을 향한 화가의 의지는 작품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갖가지 기호로 압축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가끔씩, 혹은 일정 단계를 지나면 그런 보편적인 방식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찾아온다. 이런 그림을 두 번 다시 그리고 싶지 않다, 이건 내가 정말로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다, 라는 회의감에 빠진다. 이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신의 이름은 널리 알릴 수 있되 시지각(視知覺)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에 확신이 들지 않을 것 같아서 붓을 멈추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화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성공 공식의 궤적 아래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미술()’의 냉엄한 벽에 부닥칠 때이다. 비록 겉으로는 미술계의 동향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작가라도 어떤 커다란 덩어리처럼 이물감이 느껴지는 불합리 앞에서는 씁쓸한 고독을 맛보게 된다.

 

내가 만나본 유정훈도 그러한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가급적 세상과 거리감을 두고, 남들이 한 번쯤 흘깃거리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하고자 입을 앙다문 듯 보였다. 그렇기에 그가 거둔 미학적 성과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흑백의 결합선이 화면을 자유로이 오가는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친 세상사를 구성하는 갖가지 삶의 기호들은 정형적이지 않아서 눈에 쏙 들어온다. 일견 유희적으로 다가오는 그의 그림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새겨 넣고,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성을 고민하고, 이성과 감성을 교차시키고, 모두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고독한 군중의 소외감을 차분히 아로새기는 지혜로움을 담고 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노라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철 지난 유행가의 가사가 어지간한 사변(思辨)보다 더욱 더 절실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유정훈이 취한 화가로서의 태도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은 그가 그리기라는, 화가로서의 본분에 고도의 집중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화가라는 업()이 무한히 가변적인 인간의 한 유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화가가 잉태한 예술작품이 인간이라는 변화무쌍한 요소와 지구 위에 굳건히 고정된 자연을 조합시키는 흔치 않은 가치를 지닌다는 자부심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만 겐지가 소설가의 재능은 다른 세계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상을 위해서라는 둥 인간을 위해서라는 둥 떠드는 소설가에게 등을 돌렸듯이 우리 시대 작가들의 갈지 자 행보가 영 마뜩치 않다는 속내를 부러 속이지 않는 그에게서 근래 맛볼 수 없었던 청량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유정훈은 오늘도 개인적이고 살아 있는’(에밀 졸라)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그에게 모든 그림은 오로지 그를 위해 존재한다. 흑과 백의 선의 경계로 캔버스를 구성하고, 삶의 희로애락의 경계를 진실함으로 재현하고, 일상과 세상의 경계가 그렇게 거창한 것만은 아니라는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그에게 작품이란 결국 화가의 정신과 육체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분비물이다. 그렇기에 너무도 소중하고, 또 그렇기에 짐짓 무거운 척할 필요가 없다는 겸손함을 잊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이, 미술계의 모든 것이 지금의 억지스러움을 벗어 던져야 한다고 소리 없이 읊조리는 건 이 때문이다.

 

그의 작업실을 나서기 전, 나는 유정훈이 마음을 다해 그린 드로잉이 스치고 간 자리에 남은 이미지는 결국 화가의 손이 기억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발가벗겨진 모습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속에서는 웃음도 눈물도 결국 매 한가지라는 걸,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세상과 좀처럼 타협할 줄 모르는 유정훈의 그림은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리하여 내 그림이라고 떳떳하게 말하기 힘든 그림이 왕왕 보이는 시절에 여전히 그림 속에 답이 있다고 믿는 우직스러운 화가가 생존해 있다는 안도감을 안겨준다. 정보를 통한 이성적 인식의 전달이 느낌이라는 정서의 파동을 능가하는 이때, 유정훈의 그림은 무의미하고 무감동적인 것이 오히려 높은 가치를 지니는 현대미술의 현실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물론 유정훈이 선택한 삶의 방식은 대부분의 화가들이 닿고자 하는 목적지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멀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숙한 공간에서 아무런 고통과 고민 없이 길을 찾는 것보다, 낯선 공간에서 두려움을 안고 어딘가를 헤맬 때 세상과 실제적으로 만난다는 선()을 잊지 말기 바란다. 나는 유정훈이 언젠가 길을 잃고 곤경에 처할 때, 급기야 더 이상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 에밀 졸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이 명제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려 하지 말고, 그저 단호하게 당신의 속성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두려운가? 당신은 힘들여서 죽은 언어로 더듬거리며 말하려 노력할 것인가?”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noon)>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