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EWS
2018-01-16 Korean 조은정 전시 리뷰
 조 은정 평론가 

안재홍, Looking at Myself
우림갤러리, 2009. 12. 2-12. 8

공간에서 이루어진 선의 반복은 조각을 괴체로부터 ‘마음가는대로’ 표현 가능한 예술로 바꾸어 놓았다. 안재홍의 인체는 이러한 드로잉적 심상의 표현이다. 사람 형태의 무수한 선들은 나무처럼도 보이는데 그 안에 가는 선으로 둘둘말려져 형상을 이룬 인체는 견고하면서도 무게감을 상실한, 부조이며 환조이며, 괴체이며 드로잉이다. 재료와 형태에서 ‘과정’의 이 조각들은 나무에서 숲으로 변하는 사람사는 원리에 대한 작가의 관찰 일기로 보인다. 


   
  
  

2018-01-16 Korean 이선영 전시 모니터링
안재홍 전 | (2009. 12.2--12.8, 우림갤러리)


안재홍은 다양한 굵기를 가지는 금속선들을 구부리거나 압축하여 인간의 형상을 만든다. 5회 개인전인 ‘looking at myself’(전시부제)는 예술의 영원한 주제 중의 하나인 자아성찰의 문제를 다룬다. 1층 전시장과 윈도우 갤러리에 서 있는 수많은 군상들이 바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안으로 웅크린 형상들은 내향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 작품에 사용된 금속선들은 고물상에서 수집된 구리선들이라고 한다. 피복을 벗기고 재활용하기 위해 뭉쳐진 동선들은 좀 더 굵은 선인 동 파이프와 조합되어 인간의 형상으로 재탄생한다. 물질과 에너지가 이동하는 통로인 선이나 관의 이미지는 생명의 이미지와 연결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해부학적으로는 핏줄과 힘줄이 되고, 실루엣을 통해 몸의 표정을 만드는 힘찬 외곽선이 된다. 얽히고설킨 금속다발은 사람이나 나무, 숲의 이미지로 전이된다. 발 없이 바닥에 고정된 다리는 대지에 뿌리 내리기 위해 한 곳에 자리한 유기체의 운명을 예시한다. 그러나 그 내부의 또 다른 형상은 바닥으로부터 자유롭다. 정착과 유목 사이에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없다. 

금속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것은 로봇 같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의 흐름이 만든 자연스러운 형상이다. 그것은 구축적 인공성 보다는 자연적인 흐름이 살아 있는 특이한 ‘금속 조각’이다. 정확한 자리를 잡기 위해 무수히 그려진 선들이 3차원 상에 구현되기 위해 익숙하게 행해지는 드로잉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선으로 이루어진 안재홍의 조각은 회화적이다. 그것은 공중에 그려진 드로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각의 기념비적 스케일과 결합되어 멋진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전시장에는 비슷한 시각 상을 가지는 작품들로 인해 정지된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내재적 운동감이 있다. 그것들은 군집을 이루고 서있으며,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듯하고,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 거대한 형상 안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형상은 자아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 즉 타자를 가리킨다. 웅크리고 있는 각자에 똬리 틀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한 개체에 하나씩 자리한다. 그러나 각자의 경계는 가변적이다. 그들은 대부분 잔뜩 움츠러들어 있어 목이 안보일 정도다. 외곽선이 단단히 둘러쳐진 것에 비하면 내부의 밀도는 빈약하다. 

이 빈 공간에 또 다른 자아가 있는데, 이 형상들은 좀 더 가는 금속선들이 압축된 고밀도의 상태이다. 내부의 타자가 가지는 밀도는 매우 높아 쓰러지고 있는 측면 상에서 중력에 먼저 반응한다. 타자들은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유령 같은 실루엣 안에 여럿의 타자를 품고 있는 것도 있다. 다소 어둑하게 연출한 전시장에서 선적인 조각은 공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을 만들며, 배회하는 관객의 그림자와 뒤섞인다. 안재홍의 작품에서 동일자와 타자의 관계는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정된다. 구별되는 차이들이 또 다른 공간 위에서 서로 스며들고 간섭하는 것이다. 안재홍은 육중한 덩어리를 가지는 인간 존재와 조각을 미세한 차이의 체계로 변형시킨다. 인간임으로서, 조각임으로서 전제되는 자명한 어떤 형태와 의미를 벗어나 선과 선, 기표와 기표 사이의 공간적 틈을 부각시킨다. 틈과 균열은 숨겨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배치되어 새로운 실체로 변모한다.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수많은 미끄러지는 선들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이미 그리고 항상 과정 중의 존재로 나타나면서, 무의식과 타자의 현존을 드러낸다. 그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3차원 입상들임에도 불구하고, 몸과 의식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인간의 불안정한 조건을 표현하고 있다. 명확한 고정점을 가지지 못한 선의 흐름은 살아있는 생명의 속성이다. 인간의 주요한 소통 수단인 언어 역시 가변적이다. 말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은 말하는 주체를 소외시킨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한 주체의 노력은 계속되지만, 실재는 끝없이 미끄러진다. 현대 언어학과 심리학이 예시하듯이 실체와 의미는 주체가 발견하기만 하면 될 선험적인 무엇이 아니라, 차이들의 구조로 이루어진 기표의 운동에 의해 생성되기 때문이다. 안재홍의 작품에서 층층이 드러나는 괴리된 실체는 메꾸어지지 않는 차이들을 표현하며, 이는 ‘주체와 유기체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된 타자’(라깡)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출전-2009 경기문화 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


   
   
  

   
 
 
 
 
 
 
 
 
 
 
 
 
 


 

2018-01-16 Korean 고충환 전시리뷰
2회 고충환 평론가


안재홍전 9.26 - 10.5 갤러리사간

굵고 가는 구리선을 뭉쳐 만든, 잔뜩 웅크린 포즈를 한 인간 군상이 저마다의 소외와 사념에 빠져 있다. 표면의 푸른 녹이 존재에 덮씌워진 시간의 덮개를 드러내고, 실타래와도 같이 엉킨 덩어리가 몸의 물질성을 말해준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것에서는 자기 반성적인 시각이 읽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