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5-26 artist statement_정영한_2012 작가노트
작가노트. 

<우리時代 神話>. 2005년부터 근작에 이르는 일련의 시리즈에 고유명사처럼 붙여지는 작품의 제목이다. 신화라는 거창한 이름의 실상은 결국 허구 즉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이처럼 신화의 구조가 대상에 사실적 이야기를 부여하여 현실의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있듯이 <우리時代 神話>에서 ‘신화’는 현대문명의 특성과 시각적 현상을 독자적 언어로 풀어내려는 의도로 그 개념을 설정할 수 있다. 고도로 문명화된 지금, 현대인들이 지향하고 찾아야 하는 것들 즉 우리시대 상정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시대적 상징으로서의 신화를 반추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時代 神話>의 함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時代 神話>는 그 자체로 서사구조를 획득한다. 작품을 그리면서 스토리텔링을 구상한 적은 없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려진 이미지들이 자연의 실재가 아닌 허상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통해 자연을 만끽하고 개개인의 사소한 기억들을 대입시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우리時代 神話>의 서사구조는 계획된 것이라기보다는 유연함을 가지고 획득되는 성질을 가진다. 마치 가상의 존재를 빚어 신화를 창조하는 것처럼 허구세계로 만들어진 이미지로서의 풍경과 자연의 실재들은 우리시대의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하는 것이다. 
나의 작업은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 그리고 보여진다는 것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비단 <우리時代 神話> 뿐만 아니라 이전의 작업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우리시대가 갖고 있는 시대적 특성과 현대인들의 시대정신을 회화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현재의 과제로 삼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완벽한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리허설을 거치는 것처럼 나는 늘 나의 작품의 부분과 부분 그리고 전체를 되새기고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회화가 아닌 시각 매체 예를 들어 영화, 사진, 광고, 잡지, 그리고 인터넷 등 일상생활 속에 접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얻은 시각적인 자극을 손으로 그린 그림의 형태로 전이시킨다. 
이러한 작업의 특성 때문인지, 관객들은 나의 작품들이 일견 사진처럼 보인다는 평과 함께 종종 극사실회화와 기법에 관한 질문들을 내어 놓는다. 먼저, 일반적으로 말하는 극사실회화가 사진이라는 매체가 갖는 특성을 극복하거나 추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극사실회화의 매력, 소위 눈속임 기법(trompe-lóeil)과 같은 것을 나의 작업과 연결시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정교한 극사실주의적 수법에 의한 회화라 할지라도, 사진이 해내는 것과 같은 방식에 있어서 피사체와 꼭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사진과 회화는 전혀 다른 매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둘 중 어느 것이 실재의 재현에 더 근접한가의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사진이 회화의 기록적인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림은 진품의 대용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러한 회화의 기능 역시 오늘날에는 향수어린 것이 되어버렸다. 기계적 과정을 통해 회화가 복제 가능한 오늘날에 와서 그림이 가지는 의미는 더 이상 그림과 그려진 대상 주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회화의 이미지 역시 정보의 일종이며 모든 정보와 마찬가지로 시각이미지로 이용될 때 그 의미는 수정되거나 완전히 변질된 것으로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복제가 어떤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 시키는데 실패하고 성공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진을 이미지를 그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나의 작업은 단순한 차용과 베끼기의 문제를 벗어나게 되며, 실재처럼 가공된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 새로운 의미가 생성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기법적인 측면에 있어서 나의 경우는 사진과 흡사하게 또는 사진 이상으로 잘 그리려는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작업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붓질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고자한다. 붓질(brush stroke)은 흔히 회화에서 작가의 개성을 읽을 수 있는 매우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화면에서 의도적으로 붓 자국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감정의 절제와 관조자의 시선을 함께 담아내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스로 나의 작업을 설명할 때, 이미지의 형상을 ‘그려낸다’라기 보다는 ‘화면에 프린트 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것은 오늘날과 같은 기술복제시대에서 손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회화 즉 그리고 그려낸다는 가장 전통적인 매체와 방법을 선택하였지만 오늘날 회화가 지니는 의미는 과거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결국 그림을 그리는 주체로서 창작자 즉 조작을 가하는 화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행위를 통해 원본의 부재와 이미지의 가상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듯 나의 작업에서 붓질의 흔적은 지우는 것은 단순히 사진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통해 재현적인 일루전의 획득하고자하는 목적과는 차이점이 있다. 나는 작업과정에서 매질의 표층을 매끄럽게 하면서 동시에 형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선마저도 허물어 버림으로써 덧칠과 중첩으로 구분될 수 있는 중심과 주변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 결과 대상과 배경을 구분하는 요소들이 제거되어 마치 동시에 전사된 것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회화에서 캔버스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작가에 대한 정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캔버스로부터 오는 외부 정보를 제거하면 투사된 이미지의 정보가 훨씬 강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동시대의 현실을 명료하고 복합적인 의미로 보여주는 것’은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의 작업의 근본적인 취지이다. 다만 과거에는 도시풍경을 주로 그렸기 때문에 대상들을 좀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차갑고 냉철하게 그려야했다. 이는 곧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도식적인 화면을 구축하기에 이르렀고 그에 따라 메마르고 건조한 인상이 강했다. 반면 근작 <우리時代 神話>와 같이 바다풍경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느낌과 함께 화면에서 서로 다른 대상들이 만나는 감각적인 충돌로 인해 회화적 상상력을 고취시켜 객관적인 의미의 즐거움을 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또 견고하고 딱딱한 빌딩 숲이나 숨 막히는 도로의 광경과는 대조적으로 <우리時代 神話>의 바다와 자연풍경들은 유연하고 유기적이며 친숙한 대상들이기에 정확한 재현성보다는 자유로운 이미지의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연적 실재로서의 가상성 즉 보드리야르의 설명을 빌리자면 시뮬라크르(simulacre)의 개념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유로운 이미지의 변형을 위해 작품 속에서 돌발적으로 삽입된 꽃이나 신문, 오래된 석상과 같은 정물들은 배경이 되는 바다풍경과 무관한 서로 다른 이미지의 층위를 나타낸다. 이러한 이미지의 층위는 화면에 일종의 레이어(layer)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그려진 대상들 하나하나가 각각의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레이어 구조는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화면에서의 이미지 창과 관련된다. 물론 디지털이미지의 편집과 변형을 위해 작업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이미지 창과는 엄격히 구분되지만, 현대시각매체를 통한 이미지 보기의 방식을 회화라는 고유의 시각매체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작업은 화면을 층위구조로 표현함으로써 실제의 풍경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實在)가 된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실재 이미지보다 체험하는 자연을 제시하는 것으로, 화면을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 공간으로 보이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풍경과 꽃 등 여타의 대상들과의 무관함 역시 의도된 무관함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늘날 이미지 보기 방식에 있어서의 비순차적(hypertext)인 보기 방식과 관련한 계산된 표현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나의 작업에서 이러한 무관한 이미지의 연관 관계를 읽어내려다 실패하고 간편하게 초현실주의(surrealism)적 잣대를 들이대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이미지의 층위는 회화를 정형화되고 객관적인 시각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각적 유희로 이미지를 탈출시키고자하는 목적을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나의 작업은 이렇듯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되기 충분하지만 관객들이 던지는 질문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소재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아마도 직관적으로 볼 때 나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인식되는 것이 바다풍경, 꽃, 신문과 같은 소재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가운데 바다풍경은 가장 많은 관심과 질문을 받아왔다. 나에게 있어서 바다를 그리는 특별한 이유, 예를 들면 향수 또는 사연과 같은 것들은 없다. 사실 물과 바다는 지금까지의 작품제작에서 늘 다루어졌던 소재이기에 스스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작품에는 일종의 패턴처럼 표현되는 배경이 존재하는데, 과거에는 도시풍경을 백그라운드로 표현했었다면 지금은 바다를 선택해서 쓰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도시와 문명에 대비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명력과 시대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時代 神話> 이전의 작품에서도 바다가 그려진 경우가 있는데, 그 때에는 아주 작은 부분으로 그려졌다. 예를 들면, 상자처럼 만들어진 화면의 부분이나 디스크의 표면, 모니터의 화면에 묘사됨으로써 바다가 가지는 상징성을 강화시켰는데, 도시를 사는 현대인들의 건조한 삶의 환경에 대비되는 수분, 물기를 머금은 자연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따라서 문명과 자연, 도시의 이미지를 통해 <現代-21世紀 風景>시리즈를 만들어 냈다면, 최근 <우리時代 神話>시리즈에서는 기존의 작품에서 부분적으로 존재했던 물과 바다의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보다 확대된 시각적 존재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자연주의(naturalism)의 속성과는 엄격히 다르다. 비록 잘 그려진 바다의 풍경위에 사진처럼 전사된 꽃 이미지나 흩날리는 꽃잎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낭만적인 시각경험의 첫인상을 남기게 되지만, 이러한 황홀한 시각경험 이후에 던져지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질문들이야말로 나의 작품으로부터 유발되는 본질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의 풍경이미지 위에 돌발적으로 삽입된 꽃의 이미지는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 것인가? 왜 꽃인가? 어째서 바다인가? …
나의 작품을 세밀히 관찰해보면 사실적으로 그려진 바다의 표면이 너무나도 인위적으로 평면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일정한 패턴과 색감의 차이, 조금씩 커지는 주름들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마치 친숙한 바다의 물결처럼 보이지만 겹겹의 주름들은 그리는 과정을 통한 시간의 누적, 기법적 특성으로 인한 시대적 요소, 그리고 가공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 ‘조작된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은 결국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오늘날 이미지보기의 현실과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기제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대상을 조작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듯이, 나의 작품에서 바다의 모습은 회화적 매체로 편집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실제의 자연을 통해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현실이 갖고 있는 색채와 우연한 형태보다도 인공적인 색채와 형태가 적절히 조합되어 출력되어진 사진이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본 대자연의 과잉된 시각적 가상체험에 압도당하기도 감동받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환경 속에서 오늘날의 관객들이 나의 작품 속에 그려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바다와 자연 이미지를 통해 잠재된 자연의 실재감을 복원하고 그것이 주는 쾌감을 획득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나는 바다의 형태나 색채를 캔버스에 구현할 때 실제의 바다를 보고 베껴 그리거나 자연의 색과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구조와 등장하는 소재, 표현하려는 감성에 조화를 이루는 색감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한다. 또한 실재감을 부여하기위해 명료한 명암대비나 극단적인 원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 또한 색이 갖는 상징성에 지나치게 몰입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관객들이 회화의 개념을 중성화 시키고 관조적인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우리時代 神話>에 표현된 바다색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작품에 그려지는 소재들은 모두 회화적 편집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소재를 선택하는데 있어 그것이 가진 고유성에 대한 흥미나 외형적 특성은 나에게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는다. 또한 굳이 희소성이 있는 것들을 선택하고자 애쓰지 않는데 소재가 특별하다고 해서 작품이 좋아 보인다거나 특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의 경우에는 친숙한 소재들을 작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더욱 의미를 둔다. 작품을 통해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회화가 줄 수 있는 커다란 시각적인 즐거움이다. 또한 작품 감상을 통해 의도적으로 구성된 소재 즉 회화적 장치에 의해 여러 가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작가의 내면과의 만남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넘어서는 여운을 남기도 한다. 
그동안의 <우리時代 神話>는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거대한 꽃, 이상하게 일그러진 꽃, 흩날리는 꽃잎 등의 이미지들을 그려왔는데, 2010년 이후부터 최근 작품들은 ‘타임’이나 ‘르 몽드’와 같은 신문의 부분이 거대한 꽃 이미지를 대신하고 있다. 기존 모티브였던 꽃이 디지털 이미지로 체험하는 자연 즉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관념을 신화와 같은 의미로 해석한 것이라면, 신문은 복제된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해내는 인쇄매체 속에 박제되어 있는 시간과 현대인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편집된 텍스트와 사진이미지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성을 부여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회화를 생산하는 또는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과 흡사하다고 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나의 작품이 특별한 장르로 한정되기보다는 다양한 현대회화의 한 유형으로 독립시켜 보여 질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적인 기법으로 현실의 풍경들을 재현하는 또는 사진처럼 보이기 위해 일차적 재현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고 익숙한 대상임을 인식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그려내는 것이며, 그것이 비록 회화로 만들어진 가공의 이미지지만 누구나 알아차릴 만큼 허술하게 만들어진 그림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위한 과정을 통해 현대회화가 갖는 허구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화면에 무관한 이미지를 등장시키면서 이미지의 층위를 만들어내는 나의 작업은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익숙하지만 낯설게 다가오는 풍경을 통해 평온함과 긴장감 등 미묘한 감각을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신문을 소재로 한 최근의 작업은 학습에 의해 고정화된 사물의 제한된 잠재성을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로 신문이라는 인쇄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주목해 과거에 작업한 이미지들을 일종의 패턴처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이것 또한 동시대의 시각환경을 환기시키고자하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객관적인 사실과 정확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신문이라는 매체가 예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제기능을 상실한 채 작가의 개인적인 방식에 의해 기사의 내용이 조작된 이미지로서의 실재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사소한 장치 하나하나가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적 회화가 갖는 시각적 유희를 발견하고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내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