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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Korean 아티스트 인터뷰 정영한 by 임윤옥(a.k.a. 독수리)_An Interview with Chung, Young-Han by LIMYUNOK (a.k.a. Aquila)

An Interview with Chung, Young-Han by LIMYUNOK (a.k.a. Aquila)

아티스트 인터뷰 정영한 by 임윤옥(a.k.a. 독수리)

 

동시대적 삶에 관계한 아트 프로젝트를 기반에 둔 전시기획을 지향하는 3인의 독립큐레이터로 구성된 임윤옥이 우리시대 신화에 대한 문답을 스스로 고안하고 작품으로 풀어오고 있는 아티스트 정영한을 만난 것은 일종의 충돌사고와도 같았다. 진보적이며 실험적인 프로젝트 전시기획그룹과 10년 넘도록 한 가지 문제를 집요하게 회화적 방식으로 제시하는 고집 센 화가의 사이의 긴장은 인터뷰 내내 예상치 못한 기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어쩌면 임윤옥의 역동성도 정영한의 서정성도 결국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던 오늘날의 단편과도 같았기에 우리의 인터뷰는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흥미로운 일탈이었다.

 

자타공인 열심히 그리는화가라고 알려져 있다. 이 소문의 진실을 먼저 짚고 넘어가려는데, 정영한에게 그리기란 무엇일까?

열심히 그리는 화가라는 점에 관해서 스스로 동의한다. 그런데 타인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몰랐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동반한다고 보는데, 하나는 어떤 행위가 어떤 바라는 미치지 못하였을 때 즉 목적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하나는 목표달성과 상관없이 그 행위에 미쳐 있을 때 가능한 것 즉 열정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경우는 전자에 가깝다. 나는 나의 그리기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열심히 그리지 않으면 불안하다. 때문에 내가 열심히 그린다는 사실이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언제부터 그렇게 그리는데 열중하였는지 궁금해진다.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처음 그때를 기억하는가?

유년시절 막연하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시점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학창시절에 다른 과목보다 미술이 좋았고 그리는 데 있어서는 또래의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스스로 착각했던 때도 있었다. 사실상 진로가 정해진 것은 미술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겠지만 평생 동안 아티스트로 살아가리라 생각한 것은 1996년 첫 개인전 때였다. 당시, 내 이름만으로 또 나의 그림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을 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와 견주는 모습은 마치 사방에 거울이 놓인 방에서 벌거벗은 나의 몸을 보는 경험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어디 한 번 그려보자라고 생각한 것. 객기 어린 집념이 지금까지 붓을 놓지 못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기에 대해 이렇게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그림을 그리고 발표해왔다. 첫 개인전 이후로 지금까지 일년에 한 번 개인전을 가지고자 목표했다는 것을 알기에 지난 해 전해지지 않은 전시 소식이 더욱 궁금해진다.

! 안타깝게도 지난 해는 개인전을 가지지 못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거취를 옮긴 지 올해로 5년 째인데 부산에서는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이다. 부산에서의 개인전은 5년 전부터 계획하고 바라던 일이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번번히 차질이 생겼다. 결국 지난 해는 놓쳤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부산이 가진 도시환경은 내가 20년 동안 지내왔던 서울과는 매우 다르다. 곳곳의 바다가 만들어내는 절경과 휴가철 인파에서 형성된 특수한 여름 바캉스문화는 우리나라 어느 도시와도 구분되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도시 부산에서 그 계절을 시작하는 즈음에 오픈 하는 이 번 전시가 걱정 반 기대 반, 긍정적 의미로 신경이 많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번에 전시되는 작품이야기를 해 달라. ‘우리시대 신화’, 그리고

‘Beyond the Myth’. 이 시리즈는 우리시대 신화를 디지털 편집방식을 도입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컴퓨터를 캔버스 삼아 기존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차용하여 편집하고 프린트한 작품이다. ‘회화-사진-디지털 편집-사진 프린트가 순차적으로 적용되는 프로세스를 가진다. 물론 메인 작품은 우리시대 신화이다. 2005년 이후로 계속 되고 있는 우리시대 신화시리즈는 사실 몇 차례 자체적 변화가 있었다. 배경으로서의 바다와 오브제로서의 꽃이 일관적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이 밖에 신문, 조각상, 그리고 앤디 워홀, 마릴린 몬로, 스티브 잡스 같은 시대의 아이콘 등이 우리시대 신화라는 이름을 공유했다. 롤랑 바르트의 저작 <현대의 신화>와 함께 나의 작품의 맥락을 읽어주었던 비평가들의 언급에서와 같이 우리시대 신화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나는 우리시대 신화를 통해 오늘날의 이미지에 대해 묻고 답하며 또는 다른 형식으로 제시하는 페인팅 플레이의 방식을 지향한다. 지난 세기 롤랑 바르트의 저작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듯 나의 작품 역시 구조적 변화와 해석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면서 동시대 문화와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즐거워 보이는데, 작품에 영향을 주었거나 좋아하는 미술가는 누구인지 있는지 궁금하다.

로만 오팔카, 볼프강 라이프, 그리고 이우환이다. 나는 이러한 질문에 망설임 없이 이 세 사람을 언급하는데, 모두 나와 개인적 친분이 없고 미술 이외에는 특별한 공통분모가 없기에 인터뷰어들이 의아해 한다. 이것은 철저하게 나의 취향 문제인 듯 하다. 폴란드 출신 화가 로만 오팔카. 나는 그의 작품이 가진 본질에 대한 집념과 도덕주의적 신념,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는 연속적 작업방식을 좋아한다. 나의 그리기에 대한 집착과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분석적 접근방법 또한 이러한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볼프강 라이프! 그의 색채표현과 설치방법은 감탄을 자아낸다. 연애를 하다 보면 그냥 좋은 상대가 있듯, 절제된 형식에 초월적 사고를 반영하는 볼프강 라이프의 실험적 작품은 일단 좋다는 그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우환 (선생님). 언젠가 나의 에세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항상 동시대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술가로서 그의 태도를 존경한다.

 

취향이 꽤 사의적, 개념적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혹시 우리시대 신화속에 설치된 알려지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는가? 관객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재미 같은 것에 대한 힌트를 달라.

글쎄. 이미 작품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 생각이다. 나는 나의 작품이 어떤 관점에도 심지어 작가인 나의 것에서도 멀리 떨어져 독립되어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그저 예쁜 꽃 그림으로 보아줄지라도 사실은 상관없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작품의 기법적인 측면을 들어 극사실회화의 계보에서 읽어주거나, 또는 비현실적 구성에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우리시대 신화는 다양한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그런 소통구조를 지향하기에 모두 가능한 해석이지만 어느 특정 관점을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나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일방적인 해석의 무게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