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사과풍경_박영택(미술비평, 경기대교수)
사과풍경

한 알의 과일은 그 자체로 완벽한, 단일하고 고립된 하나의 세계를 갖추고 있다. 그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형태와 갖가지 색채는 신비하고 오묘하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시간의 변화와 계절의 추이를 고스란히 자기 몸의 형상과 색상으로 간직하면서 생장하는 과일은 늘 보는 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자연의 조화를 강렬하게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삶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과일들은 식량과 미적 관조의 대상으로 늘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과일은 언제나 변함없이, 항구적으로 등장하는 미술의 소재가 되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과일이기 이전에 생명의 신비와 미적 대상으로서의 완벽한 모든 것을 동시에 던져준다. 우리가 과일 하나를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미 미를 체험하고 그 미를 간직하고자 하는 열망과 함께 그런 신비로움을 몸소 체득하고 경험하고 싶다는 의지로 번진다. 화가들이 과일을 그리는 이유의 하나가 그런 것일 것이다. 

임창열은 과일 중에서 미술과 가장 친근한 대상인 사과를 그렸다. 사과는 단독으로 혹은 두 개, 세 개, 네 개 또는 여러 개가 일정한 용기에 담겨있거나 바닥에 놓여있다. 새빨간 사과에서 녹색이 감도는 사과, 노랑과 녹색, 붉은빛이 섞여있는 사과들이다. 사과 하나에도 무수한 색채의 스펙트럼이 번진다. 그 사과들은 투명한 유리컵이나 대바구니, 뚝배기, 나무용기 혹은 여러 접시 등에 담겨있거나 놓여있다. 다른 정물적 대상들도 간혹 눈에 띄지만 대부분 흰색 천이 놓여진 바닥과 특정 그릇 안에 담긴 사과에 집중해서 그려나갔다. 정면성과 부감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사과들의 몸은 다양한 상황성을 드러내고 외부환경과의 연관과 조화 속에서 빛난다. 그래서 사과들이 이뤄 만든 하나의 풍경이다. 그 사과들은 가능한 본래의 상태를 고스란히 증거하듯이 그려졌다. 별다른 가감이나 드라마가 섞여있거나 과도하게 예쁘게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담담하고 진실하게 그려졌다는 생각이다. 나로서는 오히려 이런 식의 덜 꾸밈이 담백하고 좋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과를 보았는지 안다. 근자에 부쩍 사과그림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기막힌 솜씨로 눈의 착시와 환영을 극대화해서 그리거나 사진과 구분이 안갈 정도로 평면위에서 아른거리거나 다소 상투적인 구상화의 맥락에서 반복되고 있다. 반면 이 사과그림은 세련되거나 미끈하게 빠진 게 아니라 사과 그 자체로 육박시킨다. 사과 껍질의 느낌과 사과가 지닌 신맛과 당도가 입안에 감돌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사과는 그 자체로 질량적이고 물리적인 실체로서 다가온다. 사과밭 바닥에 가득하니 뿌려진 사과들은 그런 느낌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미적 대상과 미술의 일정한 틀로 거두어들이기 이전의 생생한 날것으로서의 사과 그 자체다.

대부분 사과만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는 화가의 근작은 몇 개의 사과들이 모여 이룬 자족적인 세계이자 격조 있는 정물화의 한 정형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정물화로서의 구성과 테크닉으로 이루어진 이 사과그림은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과그림이면서도 동시에 그 틀 내에서 어떻게 사과란 존재감이 밀도 있는 회화와 정밀한 관찰력에 의지해 새롭게 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편이다. 이 그림은 꾸밈이나 수식이 배제된 상태에서 대상 그 자체로 치밀하게 육박해 들어간다. 환영주의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창백한 환영이나 비범한 테크닉의 능란한 구사를 짐짓 누그러뜨린 자리에 그 대상과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일치시키고 엄정하게 그려나가는 체취가 묻어나는 그림이란 생각이다. 캔버스의 표면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이 사과는 무엇보다도 실재의 재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재현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생명의 특징, 본질 같은 것들을 정확하게 그려낸 것이다. 임창열식으로 해석된 사과란 것이다. 그는 주어진 대상을 조금의 가감도 없이 고스란히 화면 위로 불러들인다. 이 같은 제작행위는 사실주의적인 스타일과 관조적인 시선의 태도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법론은 작가 자신의 자연관을 충실하게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맑고 투명한 톤, 중후한 유화물감의 발림과 견고한 화면구성, 사과 자체가 지닌 충만한 생명감, 우아한 색조들이 어우러져 사실주의 그림에서 만날 수 있는 정서와 감각적 환영주의를 느끼게 해준다. 그가 그린 것들은 사과이기 이전에 자연/생명이고 그 자체에 깃든 어떤 완전함을 증거하고 싶은 바램이다. 자연과 생명현상에 보내는 이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이 임창열의 그림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다. 그는 자기 눈에 비친 자연의 완벽함,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화폭이라는 별도의 세계에 안착시키고자 한다. 아주 작은 사과 한 알에 충만한 우주가 스며들어 있고 완벽하고 조화로운 미의 세계가 들어와 숨쉬는 한편 자연의 신비와 인간이 영원히 추구하고 도달해야 할 절대적인 이념, 이상이 가득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화려하고 번성한 이념과 실험의 격랑 속에서도 기본적인 그림의 미덕은 유지하고 사실주의의 소중한 유산을 묵묵히 심화시켜 나가고 있는 이 작가의 행보가 더없이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사실주의의 전통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다. 그림은 부정할 수 없이 작가의 품성과 인성이 버무러져 나오는 것이다. 추상이든 구상이든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 한 알의 사과 그림 안에 깃들어 있는 작가가 과일/생명/자연을 보는 마음의 따스하고 부드럽고 여린 감성을 이렇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과만큼이나 또 한 개인의 눈과 안목을 만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본 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를 빌어 출현한, 한 작가가 사과를 보는 총제적인 시선과 마음의 결인 셈이다. 

- 박영택(미술비평, 경기대교수) 
임창렬 사과를 그리다_박영택(미술평론가)

임창렬 사과를 그리다
사과는 과일 중에서 미술과 가장 친근한 대상일 듯싶다. 서양에서 정물화란 장르가 독립적으로 등장하기 이전부터 사과는 매우 빈번하게 그려졌다. 다름 아니라 낙원에서의 추방이란 주제를 다룬 그림, 종교적 내용을 다룬 성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과는 뒤러나 크라나흐, 그 외 수많은 작가들의 붓끝을 통해 우리 머리 속 에덴의 이미지로 스며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파리스의 심판’을 다룬 그림에서도 사과는 탐스럽게 등장한다. 파리스는 결국 비너스에게 사과를 건네 그녀가 그녀가 세 여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임을 인정했고 결국 그 보답으로 지상 최고의 미녀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국 죽음과 트로이의 멸망을 초래한다. 사과가 그림의 결정적인 소재, 주제가 된 것은 인상주의에 이르러서다. 고갱과 세잔이 그린 사과는 전통미술과 결별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회화가 회화 자체의 구성적 원리와 조형적 측면에서 이해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었다. 한 알의 사과가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매개가 된 것이다. 이 사과는 이후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서양화의 수용과 함께 적극적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현실 속에서 가장 치늑ㄴ하고 진정한 의미의 길들여진 과일인 사과가 서양화란 장르를 습득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대상이 됨과 동시에 미술과 정물화에 관한 보편적인 관념을 형성하는 오브제가 되었음은 흥미롭다.

한국 구상화단에서 이루어지는 정물화의 영역은 사실 이 사과와 도자기의 재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나 단물이 흐르는 완전무결한 이 새빨간 구(球), 사과는 구상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일일 것이다. 손응성과 박득순, 도상봉, 김형근 그리고 구자승 등의 작가에서 보이는 정물화 양식과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아울러 대구 구상화가들인 윤병락과 이목을 등이 그리는 환영주의적 사과그림의 맥락과 근거리에 위치한 임창렬의 사과그림을 보았다. 몇 년 동안 사과만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는 화가의 근작은 탁자 위에 놓인 몇 개의 사과들이 모여 이룬 자족적인 세계이자 격조 있는 정물화의 한 전형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정물화로서의 구성과 테크닉으로 이루어진 이 사과그림은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과그림이면서도 동시에 그 틀 내에서 어떻게 사과란 존재감이 밀도 있는 회화와 정밀한 정밀한 관찰력에 의지해 새롭게 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편이다. 이 그림은 꾸밈이나 수식이 배제된 상태에서 대상 그 자체로 치밀하게 육박해 들어간다. 환영주의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창백한 환영이나 비범한 테크닉의 능란한 구사를 짐짓 누그러뜨린 자리에 그 대상과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일치시키고 엄정하게 그려나가는 채취가 묻어나는 그림이다.

캔버스의 표면에 유화물감으로 그려 올려진 이 사과는 무엇보다도 실재의 재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재현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 생명의 특징, 본질 같은 것들을 정확하게 그려낸 것이다. 임창렬식으로 해석된 사과란 것이다. 그는 주어진 대상을 조금의 가감도 없이 고스란히 화면 위로 불러들인다. 이같은 제작 행위는 사실주의적인 스타일과 관조적인 시선의 태도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법론은 작가 자신의 자연관을 충실하게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맑고 투명한 톤, 중후한 유화물감의 발림과 견고한 화면구성, 사과 자체가 지닌 충만한 생명감, 우아한 색조들이 어우러져 사실주의 그림에서 만날 수 있는 정서와 감각적 환영주의를 느끼게 해준다. 그가 그린 것들은 사과이기 이전에 자연/생명이고 그 자체로 완결될 세계를 보여준다. 자기 앞에 존재하는 자연을 눈에 비치는 모습 그대로 화면 위에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무엇보다도 그 자체에 깃든 어떤 완전함으로 증거하고 싶은 바램이다. 자연과 생명현상에 보내는 이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이 임창렬의 그림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다. 
그는 자기 눈에 비친 자연의 완벽함,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화폭이라는 별도의 세계에 안착시키고자 한다. 아주 작은 사과 한 알에 충만한 우주가 스며들어 있고 완벽하고 조화로운 미의 세계가 들어와 숨쉬는 한편 자연의 신비와 인간이 영원히 추구하고 도달해야 할 절대적인 이념, 이상이 가득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화려하고 번성한 이념과 실험의 격랑 속에서도 기본적인 그림의 미덕을 유지하고 사실주의의 소중한 유산을 묵묵히 심화시켜 나가고 있는 이 작가의 행보가 더없이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 박영택(미술비평, 경기대교수) 2007년

자연과 생명-박영택

>>자연과 생명
한 알의 과일은 그 자체로 완벽한, 단일하고 고립된 하나의 세계를 갖추고 있다. 그 시간의 변화와 계절의 추이를 고스란히 자기 몸의 형상과 색상으로 간직하면서 생장하는 과일은 늘 보는 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자연의 조화를 강렬하게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임창열은 과일 중에서 미술과 가장 친근한 대상인 사과를 그렸다. 사과 하나에도 무수한 색채의 스펙트럼이 번진다. 그가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는 자연,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이 작가만의 자연체험, 자연에 대한 사유와 믿음을 보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그의 그림은 정교하고 아름답다. 사실주의적인 스타일과 관조적인 시선의 태도를 드러내는 그림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론은 작가 자신의 자연관을 충실하게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그가 그린 것들은 과일, 풍경, 꽃이기 이전에 자연/생명이고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를 보여준다. 자기 앞에 존재하는 자연을 눈에 비치는 모습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무엇보다 그 자체에 깃든 어떤 완전함을 증거하고 싶은 바램이다. 자연과 생명현상에 보내는 이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이 임창렬 그림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다. 그는 자기 눈에 비친 자연의 완벽함,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화폭이라는 별도의 세계에 안착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또다른 자연이고 생명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그림이란 마치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자의 체험을 닮았다. 그것을 연상시켜 주는 것이다. 다시 자신의 육체, 손을 통해 모방된 자연은 원래의 자연을 추억하고 그 자연을 되새기면서 이를 다시 한번 상기는 일종의 의식을 닮았다.
그의 작품에 사실주의란 바로 그같은 믿음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가 그린 접시 위에 놓인 사과 몇 개, 흰색 화병에 가득한 꽃과 모과, 산과 바다 풍경들은 단순한 그림의 대상, 소재이기 이전에 경이롭고 숭고한 자연, 생명현상이란 절대적 존재로 다가온다.
- 박영택(미술비평, 경기대교수) 2015년

임창열,정물의 내면에서 승화시킨 섬세한 필치가 우주와 자연으로 비상
임창열,정물의 내면에서 승화시킨 섬세한 필치가 우주와 자연으로 비상


자연의 내적 생명을 그리는 임창열의 작품세계를 논한다
사과를 그리는 작가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서양화가 임창열의 <자연과 생명>전시회가 지난 11월 26일부터 12월 17일까지 남산 자락에 위치한 갤러리 U.H.M에서 열리고 있다.

이제 70이 넘은 나이에 회고전을 열 때가 되었지만 임 작가는 이를 미룬 채 갤러리 UHM의 초대에 응했다. 이는 아직 그림을 더 그리겠다는 의지를 주위에 선포하는 것이고, 다음은 작품에 내재된 세계관의 변화를 시도해 보다 자연 철학적이며 기독교적 세계관이 응축된 작품을 만들겠다는 열망을 내비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임창열은 학창시절, 작고한 원로화가 변시지의 수제자로 화필의 기본을 익힌 이후 사실화에 뚜렷한 소질을 보여 왔다. 천부적인 자질 위에 본인의 인품이 더하여져 사물의 겉모습 뿐 아니라 내면의 세계도 꼼꼼히 관찰해 생명 그 자체를 화폭에 표현하고 있다.

소장 작가시절 현대화랑을 비롯한 여러 화랑에서 그의 그림을 주목하는 등 필명을 높일 기회가 있었으나, 한 때 병약하여 오랜 기간 시골에서 휴양했던 관계로 은둔의 작가가 돼 있으니 아쉬운 일이다.

건강이 회복돼 10여 년 전 부터 화단에 다시 이름을 알리며 전시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그와 비슷한 소재의 그림을 그리는 젊은 작가들이 지금은 잊혀져가는 것에 비해 끝 모르게 정진하고 있으니 임 창열의 작업의 끝은 무엇으로 귀착하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사물의 허상 뿐 아니라 내재된 영혼 즉 진여를 함께 그리고 있으니 그의 작품세계는 결코 스러지지 않고 아름다운 귀결이 있을 것만 같다.

자연에의 경외심마저 느끼게 하는 흡인력 지녀

누가 기자인 내게 한국의 현대화가 3명을 꼽으라 한다면 변시지를 그 중 한명으로 꼽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필법과 색감으로 한국을 그려온 서양화가이기 때문이다.

임창열을 가장 잘 아는 그의 스승 변시지는 임창열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임창열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인간됨의 미와 화면의 아름다움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는 평범한 정물의 내면에서 승화시킨 섬세한 필치가 우주와 자연으로의 비상하는 시도는 또 다른 변신이요, 대담한 자아 발전과 철학의 앙금으로 앞에 나타났다.

작가의 순수한 성격이 소박함으로 그림에 간직돼 있음에 탄복하며, 모든 사람들이 화려함에 눈을 돌리지만 임 작가는 조용하면서 사물과 자연의 고귀함을 표현하는데 온 정열을 다하고 있음을 본다. Utrillo가 파리 거리의 벽에 한없이 애정을 갖고 그림을 그려온 집념처럼,  임창열은 한국적인 것의 정물과 자연에 끝간데 모를 애정을 쏟고 붓을 든다. 항상 기쁨과 감격에 충만한 작가의 작업정신은 또 다른 창조를 통해, 작품 앞에 선 우리에게 자연에의 경외심마저 느끼게 하는 흡인력을 지닌다"


임 창열의 인간됨의 아름다움이 화면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됐다고 그의 스승은 말하고 있다.

그림은 작가의 세계관과 정신세계의 표현이다. 사물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작품세계가 표현되어지듯이, 임 창열은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과 그 안에 깃든 생명을 섬세한 필치로 화폭에 옮겨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는 스케치하러 야외에 나가고 자전거 타고 자연을 보러가는 외에는 가급적 외출을 하지 않는다. 넓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인 정물들, 사과, 배, 꽃 등과 그 것을 담는 소쿠리나 항아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작가의 일부가 돼버린 정물들을 관조하고 그 안에 내재돼 있는 생명을 읽으며 소박한 마음으로 화폭에 담고 있다. 신이 창조한 자연의 일부를 온 정열과 정성으로 그의 손에 담아 재창조하고 있음에 그는 항상 기쁨으로 충만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생명현상의 완전함을 증거하고자 하는 종교적 신념 같은 것

미술평론가이며 경기대학교 교수인 박영택은 임창열의 제자다. 어린 시절 임창열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스승을 잘 알 수밖에 없는 박 영택 교수가 이 전시회에 부쳐 임 창열의 작품을 평론했다.


"임창열은 과일 중에도 미술과 가장 친근한 대상인 사과를 그렸다. 사과 하나에도 무수한 색채의 스펙트럼이 번진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이 작가만의 자연체험, 자연에 대한 사유와 믿음을 보는 것이다.시각적으로 그의 그림은 정교하고 아름답다. 사실주의적 스타일과 관조적인 시선의 태도를 드러내는 그림이다.

그가 그린 것들은 과일, 꽃, 풍경이기 전에 자연/생명이고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를 보여준다. 자기 앞에 존재하는 자연을 눈에 비치는 모습 그대로 화면위에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무엇보다 그 자체에 깃든 어떤 완전함을 증거하고 싶은 바램이다. 자연과 생명현상에 보내는 이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이 임창열 그림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다. 그에게 그림이란 마치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자의 체험을 닮았다.

자신의 손을 통해 모방된 자연은 원래의 자연을 추억하고 그 자연을 되새기면서 이를 다시 한번 상기하는 일종의 의식을 닮은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자연이고 생명이다" 라고 말하며 임 창열 작품에 깃든 종교의식 같은 것을 들추어 분석하고 있다. 빛으로 상징되는 작가의 종교적 순수함이 밝고 꾸밈없는 작품으로 표현되어 우리 앞에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임창열은 건강이 회복된 후 다시 활발한 작품 작업을 시작해 2007년 토포하우스갤러리 초대전, 2008년 통인옥션갤러리 초대전, 베이징아트페어참가, 2009년 홍콩아트페어 참가, 박영덕갤러리 기획전 한국현대미술제 참가, 뉴욕아트페어 참가(유태인계 미술관에서 작품 구입), 2010년 현대백화점 초대 2인전, 선화랑 개관 33주년기념전 초대, 2011년 현대백화점 목동점 초대, 2012년 케레스타백화점 갤러리 초대 등 꾸준한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토오쿄, 베이징의 미술관과 우리은행 본점, 국가정보원 등에 소장돼 있다.

한편 임창열은 근대 한국화 10대가의 하나인 묵로 이용우의 사위로 그의 부인 이상이는 묵로 선생의 큰 딸이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U.H.M 갤러리(02-6677-5767, www.galleryuhm.com)는 용산구 두텁바위로 60길49 대원정사 4층에 위치해 있다. 도로에서 눈에 잘 띄지 않아 자칫 지나칠 수 있기에 길 안내를 조금 상세히 한다면, 시청 방향에서 올 경우 남산도서관 다음 정류장, 후암약수터 앞에서 내리면 된다.

남산을 순환하는 402번과 405번 일반버스가 갤러리 앞을 지나간다.
남산의 풍광과 어울려 갤러리는 넓고 쾌적하며, 갤러리와 맞닿아서 고급 한정식 집 ‘품’이 있고 인근에 독일문화원이 있다. 12월 17일까지 전시가 계속된다.

출처 : 서울문화투데이(http://www.sctoday.co.kr)
작품세계_임창열은 시간과 빛을 담는다
임창열은 시간과 빛을 담는다

그가 추구하는 시간과 빛은 시간의 영원성과 결코 굴절되지 않는 빛으로서의 이상(이데아)이다.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영겁을 넘어 태초와 종말의 시간을 아우른다. 
낡은 성경은 영원한 말씀(로고스).
사과와 순백의 꽃은 시간적으로 역기능이다.

작품배경에 희미하게 감추어져 있는 한자 문(門)은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온 우주를 조성했던 창조주의 강한 능력을 드러낸다. 동양적 사고에서의 문(門)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며 더 나아가 그 시작을 위한 꿈을 그린다. 임창열은 자신의 작품에서 이 문을 통해 온 우주의 시작과 그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창조자의 능력을 마음껏 강조한다. 결국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연 창조주에 의해 이 세상의 문은 다시 닫히겠지만, 그 문은 다시금 새로운 시작을 여는 생명의 문이 될 것이다.
임창열은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유혹 앞에 여자가 문을 가로막고 있고 사랑과 생명을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금빛 찬란한 태초의 뱀은 여전히 존재한다.
숙명적 한계 속에 갇혀있는 인간의 시간과 빛을 초월하고픈 의지를 표출한다. 그 뜨거운 열망으로 이 작업을 한다.

잠언(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시간의 관찰 : 내게서 시간을 가져간 해(年)들이 내것이 아니고 아마 오고 싶어하는 해들도 내것이 아니지 이 순간이 내것 나는 그것을 주목한다.
해들과 영원을 만들어주는 그것이 내것(Andreas Gryphius) 1616-1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