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4-01-04 The fairy 작가노트 2023

예전 나의 작업은 ‘꽃과 정원’이었다.

생명과 존재에 대한 생각들이 내 작품의 중요한 주제였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현대인들의 소외와 고독감을 형상화하여 태생을 뒤바꿔버린 동물성 꽃으로 

표현하였다. 작품 속 꽃들은 그만의 독특한 존재방식으로 표현되어지다가 그 주변의 나무와 꽃 그리고 풀들의 형상으로 확장되어 ‘정원’이 되었다. 

‘정원’에는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존재하며 각자 그들의 언어로 그들을 찾아온 우리에게 휴식과 위로의 말을 전한다. 우리가 숲을 찾고 정원을 찾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게 하여 오래전 임금님의 위로받던 ‘정원(비원)’이 그려졌다. 

그런데 그 식물들의 위로언어를 전달하는 다른 차원에 속하는 생명의 매체가 있었으니

그것이 ‘치유요정’으로 형상화 된다.

구체적 형상을 가진 ‘치유요정’은 우리를 안아주고 토닥여주며 힘든 삶을 이끌어준다.

그림에 반복해서 나타난 금색의 보름달 같은 형상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과 소망’이다.

‘치유요정’은 고단한 우리를 위로하며 꿈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이로운 존재’인 것이다

2020-06-22 김양희 작가의 작가노트

나의  의식의 흐름은 식물이 가지는 생존 본능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느꼈던 꽃이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
꽃은 분명 오래도록 그아름다움을 간직하고싶을 터인데 현실은 얼마지나지않아 너무도 추하게 사그라진다
스스로는 찰나의 아름다움보다는 자신이 오래도록  존재하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운명을 거스르며 수동적이지 않고 스스로 먹이를 쟁취하고  생각할수있는 동물성 꽃을 만들어낸것이다 
거기서 시작된 나의 존재의 집착 obsession 은 다양한 형태의 욕망을 실현하는꽃으로 표현되었다  
수술 암술은 그의 언어 호흡을 추상적인 선으로 표현하게된다


나무

아주 예전에  숲으로 갔을 때 나무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의 속삭임 흥얼거림 흐느낌   그들만의 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청각에 인지되지 않아서일뿐 분명한 그들의 생존언어는 숲을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 
나무들의 언어는 욕망보다는 존재라는 단어로 표현하고싶다
간절함 보다는 잔잔함과 푸근함으로 느껴지는
2015년 이탈리아 전시에 갔을 때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나무의 언어를 사운드로 표현한 installation 작품을 보고 나와 같은 생각임에 놀랐던 기억이있다

숲 정원 그리고 비원

그런 나무와 꽃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고 현악3중주를 만들고 교향곡을 만든다 
귓가에 자분자분 속삭이다  휘몰아 치듯이 큰소리로 노래한다
식물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들 그곳이 우리가 위로받는 정원인 것이다
꽃은 노래하고 나무는 연주하고

비원  아니 후원  

외국의 근사한 정원들은 한결같이 잘 정돈되고 키를 맞춘 정원사의 작품인정렬된 정원이다
그런데 우리의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이 정원은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 모두 그존재를 하나하나 인정하고 사랑스럽게 보여주는 그런 정원이다
500년된 임금님의 정원이 그러한 것이다 

어찌보면  자유로우나 자유롭지못한  임금님이  참 자유롭게 존재하는 식물들을 보며 그와 같이 있는  연못과 바위 정자들과 어우러진 모습들에서 마음의고단함과 슬픔고통을 위로를 받은 것이다
도도한 연못을 바라보는 정자와 그옆의 커다란 노란 은행나무  
단풍인듯 꽃의향연인듯 그들의 즐거운 축제를 바라보며  위로와함께 삶의이유와 행복을 느낀다

내가 느낀 그 꽃과나무의 언어를 정원의 위로로 해석해보았다
2018-01-10 작가노트-꽃들의 고향(故鄕), 달(月) – 화성(花星)

 

꽃들의 고향(故鄕), 달(月) – 화성(花星)

 

  햇빛을 받아야 살아가는 꽃들이 달빛 속에서 신명이 났다.  그들의 품새가 태양광 아래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현실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듯 보인다. 생산을 위한 경쟁도 생존을 위한 집착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여유로운 모습이다.  그렇다, 그들은 지금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달빛을 즐기고 그 풍취를 만끽하면서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더운 열기도 시끄러운 소음도 잦아든 까만 밤이기에 달빛의 부드러운 포옹이 더욱 그리워진 것일까, 꽃들의 축제는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흥겨워진다.

 

  달님은 꽃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냥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대상이라면 바로 꽃들이 그리워하는 ‘이상향(理想鄕, Paradise)일런지도 모른다.  고요한 호수의 수면 위에서 부서지는 창백한 달빛 조각들보다 더 수많고 더 애절(哀切)한 ‘꽃들의 염원(念願)들’이 까만 밤하늘에 초롱초롱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인다.  저 멀리에 있는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鄕愁, Nostalgia) 때문에 꽃들은 이 깊은 밤에도 저토록 열정적으로 월광축제(月光祝祭)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인류(人類)에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픈 미련이 있듯이, 화류(花類)에게도 이와 흡사한 선험적(先驗的) 본능(本能)이 있는 것 같다.  달빛 아래에서라면 비록 자양분이라는 실리(實利)가 없어도 서로가 함께 하기에 저렇듯 흥에 겨워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꽃들의 타고난 풍류(風流)인 듯 싶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일까 달님도 벌써 밤하늘 저 높은 곳에 올라 교교히 그 매력을 사정없이 대지(大地)를 향해 쏟아붓고 있다.  아! 달님은 꽃들의 별, 바로 화성(花星)인 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이 고요한 호숫가에서 느껴지는 처연(悽然)하면서도 몽환적인 감정이, 해맑고 경쾌한 리듬 속에서 승화되고,  마지막에는 격정적인 열정을 원숙한 절제로 토해내는 ‘월광(月光) SONATA’의 피아노 선율이 이미 우리 주위를 휘감으며 밤의 향내와 더불어 은은히 울려펴지고 있다.


2018-06-15 치유정원(Healing Garden) 작가노트
치유정원(Healing Garden)



나의 의식의 흐름은 식물이 가지는 생존 본능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느꼈던 꽃이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

꽃은 분명 오래도록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을 터인데

현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도 추하게 사그라진다.

스스로는 찰나의 아름다움보다는 자신이 오래도록 존재하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나는 운명을 거스르며 수동적이지 않고 스스로 먹이를 쟁취하는

생각할 수 있는 동물성 꽃을 만들어 낸 것이다.

거기서 시작된 나의 존재에 대한 집착은 다양한 형태의 욕망을 실현하는

꽃으로 그려지고

수술과 암술을 통해 꽃의 언어 호흡을 추상적인 선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나무

아주 예전에 숲으로 갔을 때 나무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의 속삭임, 흥얼거림 그리고 흐느낌

그들만의 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청각에 인지되지 않아서일 뿐

분명한 그들의 생존 언어는 숲을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

나무들의 언어는 욕망보다는 존재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간절함보다는 잔잔함과 푸근함으로 느껴지는...



숲, 정원 그리고 비원

나무와 꽃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고 현악 3중주를 만들고 교향곡을 만든다.

귓가에 자분자분 속삭이다 휘몰아치듯이 큰소리로 노래한다.

꽃은 노래하고 나무는 연주하고

단풍인 듯 꽃의 향연인 듯

그들의 즐거운 축제를 바라보며 위로와 함께 삶의 이유와 행복을 느낀다.

- 김양희 작가노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