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9-10-22 혜림 한정선 작가노트_야생(野生)의 사고(思考)
야생(野生)의 사고(思考):두 번째 이야기
untamed thoughts

내 그림에서, 늑대는 저항정신이며, 삶을 성찰하는 눈동자이다. 늑대는 자본주의 세계의 일상성에 길들어 신성(神性)과 신화(神話)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남루한 순간들을 응시한다. 

'야생의 사고'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에게 빌려왔다. 야생의 사고란 야만인의 사고도 아니고 미개인의 사고도 아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재배종화 되거나 가축화 된 사고와도 다른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의 사고다. 어느 무엇에 묶이지 않고 인간 근원을 여는 신화 속으로, 문명과 야만의 구조 안과 밖으로, 또는 여러 방향으로 지평을 넓혀 새롭게 보는 열린 사고이다. 야생의 사고는 비시간적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제도와 규범과 조건들에 스스로 묶이고, 갇히고, 강제 당하고, 그에 맞는 사람으로 제작되어진다. 그것은 아주 친절하고 내밀한 배려여서 사람들은 그것을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이 조건들은 인간의 삶이 미치는 모든 영역과 모든 관계에서 사회적 집단 무의식과 개개인의 의식으로 전체주의처럼 뿌리내리고 스며들어 우리의 성(性)과 정신과 일상을 관리한다. 정신의 야생성, 노마드(nomad)적 사유와 함께 위반의 세계를 넘나드는 사람의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은 인간 조건들의 금기라는 분재용 가위에 절단되고 눌리고 비틀린다. 그 틀을 벗어나면 비정상적이라는 이상한 인물로 규정되고 배제되고 소외된다. 끊임없이 과잉 생산되는 온갖 사물들의 정글에 둘러싸여 사는 현대인은 그 조건들이 가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길들여지고 무뎌져 사유하지 않는다. 삶에 쫓겨 한 방향으로 몰려다니는 물고기 떼 같은 일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천적으로 지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존귀함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존엄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그것을 어디서 되찾아 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내면의 호소보다는 빈말에 귀를 기울이고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며 체면과 위세의 옷을 입고 혼불의 일렁임을 마냥 소비한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생활에 쫓겨 자신의 장미꽃이 흩어지는지도 모른다. 베일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는 배반감에 소름을 치며 거꾸로 머리를 박고 선 식물처럼 붉은 가시를 내민다. 그러나 금세 체념하고 자유와 존엄이 없는 소모품이 된 일상을 당연시 여긴다. “어쩔 수 없어. 삶이 원래 다 그런 거야.”라고. 저항할 힘이 소진된 무력감에 시달릴 뿐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거대하고 폭 넓고 아주 미세하게 자리하고 있어, 어느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대적할 수 없으므로 막연한 상대에 대한 적의감과 피로감은 자신에게로 향한다. 쟝 보드리야르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의 피부 속으로 박힌 내 손톱 같은 피로감이다. 가축화된 현대인. 이 세상 사물들을 비싼 값에 사고팔고 옮겨주는 일을 하면서 주인이 주는 마른 짚을 받아먹고 달가워하는 당나귀나 다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동굴에 갇혀 벽에 비친 그림자들만 보는 게 아니다. 어느 찰나, 별안간 25시 너머에서 찬란한 빛을 끌고 오기도 한다. 

늑대 다섯 마리가 비좁은 우리 안을 달리듯 빠른 걸음으로 맴도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서울대공원 늑대 우리에서였다. 늑대들은 대체로 메말랐으며, 털이 부스스하니 윤기가 없었고, 허벅지에는 이빨에 물린 깊은 상처가 있었다. 맴돌기를 멈추지 않는 늑대들은 매우 신경질적이었다. 맨 앞선 늑대는 뒤 따르는 무리들과 몸이 살짝만 닿아도 으르렁거렸고, 자기 말을 어기는 녀석을 철망 구석으로 몰아 물어뜯었다. 좁은 우리에 갇혀 조울증을 앓는 것처럼 보이던 늑대들은 내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울타리를 맴돌았다.

나는 왜 늑대를 그리게 되었을까. 

내가 늑대와 만나게 된 것은 교사직을 잃고 모가지가 꺾인 듯한 20대 때의 내 상황이었다. 초록빛으로 싱싱해야 할 청년시절, 꽤 긴 시간, 잎이 노랗게 뜬 식물처럼 시들병을 앓았다. 그 무렵 ‘시튼의 동물기’를 읽다 늑대에 홀렸다. 늑대들의 조직생활, 동료애, 의협심,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등. 늑대들의 행동양식은 우리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냥꾼에게 쫓기다 동료들과 짝을 총에 잃고 다시 마을로 되돌아가 사냥꾼에게 복수하는, 늑대의 분노에 찬 얼굴과 푸른 눈동자가 자꾸 머릿속에 그려졌다. 고요한 밤이면 내 옆에서 짐승의 숨소리가 들렸다. 
 
세월이 흘러, 나는 벼랑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위축되고 쪼그라들어 싸우지도 못하는 비굴하고 남루한 모습. 그때 수치심과 분노에 찬 늑대의 눈동자와 또 다시 마주했다. 여간해선 말문을 잘 열지 않게 된 내가 이따금 우우 늑대 울음소리를 냈다. 나한테서 짐승 비린내가 나고 쉭쉭 맹수의 거친 숨소리가 났다. 방 안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었다. 환청이었다. 의사는 이명(耳鳴)이라고 했다. 꼬리를 내리고 털과 발톱을 깎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한 가축화 된 인간, 바로 나였다. 늑대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내 안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천둥과 먹구름을 헤치고 나온 헤르메스의 사냥, 인식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놓았던 붓을 들었다. 
- 해림 한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