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0-09-03 임근우 작가 에세이, 작가노트
2020 임근우작가에세이.작가노트

‘작가는 고향의 양분을 먹고 산다’
임근우 (화가, 강원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고인돌에서 발굴한 유토피아

초등학교 시절, 걸어서 3시간이 넘는 거리에 지석묘가 있었다. 고무신을 신고 고인돌이 있는 곳 까지 걸어가곤 했는데, 개석(蓋石) 위에 올라가 엎드려 보기도 하고 그 속에 들어가 누워보기도 하고 옆을 보듬어 끌어안기도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수천 년 전 이 땅에서 숨 쉬었던 고대 인류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고대 인류와 대화를 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종이에 크레용으로 고대 인류의 숨결이 묻어난 고인돌의 질감을 표현하곤 했다. 문득, ‘내가 존재하기 전의 시간과 공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는가?’ 에 대해 끈질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존재하는 답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성장하여 미술대학 시절의 나는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벽 한 면 가득히 흰 모조지를 붙이고,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태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소하지만 부끄러워 일기장에 조차 쓰지 못한 이야기들을 깨알 같이 써 내려갔다. 
어느새 흰 종이는 검게 변했고 진짜 ‘임근우’ 만 남게 되었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에 품은 의문과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가 들어 있었다. 우주의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동경하였고, 그토록 궁금해 했던 과거 시간의 수수께끼가 발굴현장의 고고학으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70년대 TV 일기예보 뉴스에서 김동완 통보관이 매직펜으로 삐뚤삐뚤 그리던 내일의 날씨기상도가 미래를 알려주는 과학적인 ‘미래예측도’였다는 것도 그때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 그리고 있는 ‘Cosmos-고고학적 기상도’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요즘 나의 그림은 도원경(桃源境) 속에 푹 빠져 있다. 복숭아꽃을 머리에 피운 <말+젖소+기린>의 이상형동물이 고고학적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부유하며 꿈꾸는 ‘이 시대의 행복기상도’이다. 그래서인지 유토피아 기상도를 그리는 나는 항상 즐겁다. 배달민족(?)답게 심산유곡(深山幽谷) 어디든 복숭아꽃 배달이 가능하다. 그것을 모두에게 배달하고 싶다.


신매리 발굴현장에서 만난 푸른 녹 

1985년 여름 춘천시 서면 신매리 가는 통통배를 같이 타게 된 인연이 올해로 벌써 35년이 되었다. 십수년 전 고고학자 지건길관장님께서 국립중앙박물관장 퇴임 후 쓰신 회고록 한권을 보내주셨는데 나와 첫 만남의 사진 한 장도 실려 있었다. 서른살 가까스로 된 청년 임근우와 마흔 초반의 발굴단장과의 첫 만남사진이었다. 당시 화가지망생이었던 나는 인류의 근원과 미래의 시공에 대한 물음이 가득했던 청년이었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계기가 있었다. 발굴기사가 난 조간신문을 본 후 곧장 춘성군 서면 신매리 행 통통배를 탔을 때 지건길 발굴단장님을 처음 만나게 되면서 부터였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으로서 춘천 중도, 신매리 등 의암호 주변지역에 분포한 청동기유적발굴단장의 책무를 맡고 계셨다. 지단장님의 안내로 미공개 발굴현장까지 볼 수 있었다. 특히 고인돌의 덮개돌을 수동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덮개돌이 들어올려지자 수천년간 정지되어 있던 시간의 푸른 녹이 나의 눈을 멀게 하였다.
이때 내가 그려야할 작품의 주제를 찾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90년 제1회 개인전에 중도, 신매리, 천전리 등 춘천의 선사유적을 주제로 첫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청동기와 구석기’의 합작품

청동기 지석묘가 전공이신 고고학자 지건길관장님으로부터 임근우의 ‘고고학적 기상도’작품이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문화인류학적 상상력과 현장예술고고학으로 작품을 더하게 한 분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장이신 구석기고고학자 배기동관장님이다. 배관장님은 연천군 전곡리구석기유적을 발굴하여 세계적 선사유적으로 알리신 분이다. 90년대 초 나는 유적보존의 대중화를 위하여 구석기축제를 함께 개최하기도하였다. 나는 90년대 초반까지 고인돌의 덮개돌을 화면 위에 공중부양 시키는 무중력 구도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 무렵 배관장님과의 만남으로 근본적인 큰 변화를 갖게 되었다. 춘천 고인돌의 거석문화가 전곡리의 주먹도끼와 합성되면서 태곳적 인류의 숨소리를 작품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 작품에 중도식토기와 춘천 고인돌, 그리고 전곡리 타제석기를 일기기상도로 표현하여 ‘Cosmos-고고학적 기상도’ 작품이 융합적으로 제작되었다.
‘대상’ 수상 소식도 전곡리 발굴현장에서 구석기축제를 진행하고 있을 무렵에 접하고는 많은 고고학자들과 축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그해 여름 강원일보창간50주년기념 초대개인전에 중도를 비롯한 춘천의 고대문화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했던 것이 벌써 25년 전의 일이 되었다.




“작가는 고향의 양분을 먹고 산다”


‘작가는 고향의 양분을 먹고 산다’.
이 말은 내가 지금까지 예술지론으로 삼고 있는 화두이다.
그동안 나는 내 고향의 과거를 양분으로 작품을 하였다.
과거는 미래에 보낼 유토피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아직도 그릴게 많다.



내 삶을 ‘F=ma'로 풀어본다.
나에게 질량(m)은 현재다.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지금 이 열정이 그것이다.
가속도(a)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과 미래의 꿈을 향한 속도다.
이 둘이 만나 예술적 에너지(F)가 생성되는 것이다.
매 시간 새로운 창조물과 마주하는 것이 진짜 삶이다.


작가가 가진 F(힘)은 마이너스가 존재하지 않는 속도에서 어떠한 변동도 플러스가 되기에 
오늘도 고향이 있는 한 그릴게 한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