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관의 회화_막막한, 가볍는, 아득한, 그리운 강물_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 |
김대관의 회화 막막한, 가볍는, 아득한, 그리운 강물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강물을 쳐다보고 있으면 정신이 멍해질 때가 있다. 처음에는 강물과 함께 그 강물을 쳐다보고 있는 내가 같이 보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현듯 지워지고 강물만 보인다. 강물과 의식이 서로 분리돼 있다가 점차 강물이 의식 쪽으로 건너와 스며들고 차고 넘쳐 종래에는 의식을 온통 침범하고 잠식하는 탓이다. 이처럼 강물이 의식 쪽으로 범람할 수는 없어도 의식이 강물을 범람시키지는 못한다. 의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강물을 무미건조한 개념으로나 환원할 수 있을 뿐. 여하튼 이렇듯 의식이 강물로 범람할 때 강물은 흐르는 것도 같고 흐르지 않는 것도 같다. 그러나 분명 강물은 흐른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멈춰선 것도 같고 흐르는 것도 같다. 그러나 의식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느리기는 하지만 분명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강물도 흐르고 시간도 흐른다. 이렇듯 흐르는 성질을 공유한 탓에 강물은 시간의 유비가 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고 했다. 만물유전이다. 모든 존재는 항상적으로 변화한다. 변화한다는 것은 흐른다는 것. 이렇게 강물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존재도 흐른다. 흐르는 존재를 붙잡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가없고 덧없고 막막해진다.
김대관은 독일 힐레에서 유학할 때 곧잘 인근에 있는 강을 따라 산책하곤 했다. 그러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삭이고 키웠다. 고향에도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고향의 강이 범람하고, 이곳의 강이 범람해 그의 마음속에 또 다른 강이 흐르게 했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강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곧 향수를 의미했고, 그 시절로 회귀하는 시간(시간여행)을 의미했다. 그리고 작가는 흐르는 강물에 착안해 그 향수며 시간을 조형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기에 이르고 그 욕망을 작업으로 풀어낸다. 여기서 작가의 마음속에 흐르는 강은 다만 그 종류와 성분, 깊이와 폭이 다를 뿐 우리의 마음속에도 흐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흐르는 강물 한 줄기 쯤은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향수의 강, 시간의 강, 회한의 강, 그리고 망각의 강 등등. 그러므로 강을 소재로 한 작가의 주제와 작업은 작가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마음속에 범람하면서 공감을 얻고 보편성을 얻는다.
그러나 말이 쉽지 마음속에 흐르는 강을 조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마음도 그렇거니와 강 역시 정해진 형태가 없다. 얼핏 색이 있는 것 같지만 천만화의 스펙트럼을 아우르고 있어서 어떤 결정적인 색채로 환원하거나 한정할 수가 없다. 형태도 비결정적이고 색채도 비결정적이다. 형태나 색채가 자연현상(예컨대 빛의 강도나 대기의 조건)에 연동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마음과도 연동돼 있다면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마음의 프리즘을 통해본 형태와 색채는 결국 질료를 품으면서 이행해서는 문제며 감각의 문제며 암시의 문제다. 이렇듯 감각이며 암시적인 강을 어떻게 붙잡을 수가 있는가.
여기서 작가는 유리회화를 생각한다. 물이 그렇듯, 빛을 투과하는, 그래서 투명한 성질을 갖는 유리판 위에 채색이 얹힌다면 마음속에 흐르는 강물을 표현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물을 투명하게 하는 것도 물의 질료 속으로 투과하는 하는 것도 빛이다. 비록 질료는 다르지만 유리 역시 마찬가지다. 빛이 매개 가 되어져서 물과 유리를 상동하게 한다. 빛이 없으면 그 상동한 성질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물을 암시하기 위해서 빛도 같이 암시되어야 한다. 유리회화를 통해서 물물의 질료를 감각하게 하고, 동시에 빛 빛의 질감을 암시하는 것.
강물의 형태도 그렇지만 특히 색채는 자연현상에 연동돼 있다고 했다. 맑은 날에 강물은 파랗게 보이고 더 맑은 날에는 아예 옥색으로 보인다. 그 옆에 숲을 끼고 있을 때 강물은 연녹색으로 보이다가도 녹색과 때론 짙은 녹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수면 위에 노을이 드리워질 때면 강물은 물의 색깔 위로 빛의 색깔을 밀어 올린다. 노란 색에서 주황색과 빨강색 사이에 위치하는 색채 스펙트럼을 온통 아우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날이 어둑해지면 파란 색은 군청색으로 짙어지다가 점차 어둠 속에 묻힌다. 어떤 색의 경우이건 색채의 이면에 투명한 깊이를 간직하고 있고, 어떤 특징의 색채로 환원되거나 한정되지는 않는, 몇 가지 색채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는, 그저 색채라기보다는 색채의 기미, 색채의 느낌에 가까운 어떤 비전을 열어 보인다.
이렇게 해서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색채의 종류와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연유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된다. 결국 작가의 작업에서 이런 색채의 기미, 색채의 느낌 자체가 물의 기미며 빛의 느낌에 연동된 것을 재현하는 것이 핵심이라 관련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작업이 제작되는 과정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대략적인 과정을 보면, 우선 유리판에다가 유리착색안료를 칠한다. 이때 가녀린 라인 테이프로 화면의 일정부분을 가려 안료가 묻지 않게 한대테이프는 이후 때 내거나, 아마도 소성과정에서 불에 타 없어지는 특수 테이프를 사용할 듯.) 이 상태로 620도까지 서서히 온도를 높여가며 가마에 구워낸다. 그리고 재차 색을 덧칠하고 구워내기를 수차례(대개는 여섯 차례 이상)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표면에 은근하면서도 투명한 질감의 색채가 착색된 유리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착색된 두 장의 유리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나의 화면으로 중첩시키는데, 같은 계열의 색채가 착색된 유리판을 중첩시킨다. 이틀테면 좀 더 짙은 청색과 좀 더 옅은 청색이 착색된 유리판을 중첩시켜 같은 색조를 유지하면서도 라인 테이프로 처리한 빈 부분이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그리고 그 빈 라인 위에 대개는 대비되는 보색의 점들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여기서 안료가 착색된 유리판은 수면을 암시하며, 라인으로 처리된 부분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시각적 현상으로 인해 수면의 방향혹은 평형과 유속(물이 흐르는 느낌)을 암시한다. 더불어 수면에 던져진 빛의 편린들을 암시하며, 이는 점점이 찍힌 점(광점)들에 의해 강조된다. 이렇게 해서 물이 흐르는 느낌과 함께 수면에서 난반사되는 빛의 산란효과를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작업이 제작되는 과정을 무슨 도해라도 하듯 역추적하고 재구성해봤지만, 작가의 작업은 기계적인 과정이나 느낌과는 분명 거리가 멀다. 이를테면 같은 계열의 색조가 중첩된 화면이 특정의 색채로 환원할 수는 없는,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깊이감이 느껴지는 색감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역시 중첩된 화면으로 인해 라인으로 처리된 부분이 서로 겹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면서 다양한 선의 변주를 만들어낸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서 투명하면서도 깊은 물의 질감을 만들어내고, 물의 표면에서 물과 희롱하는 빛의 기미를 자아낸다. 그 질감과 기미에 힘입어 정적이고 서정적인 느낌과 함께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계기에 이른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작가의 유리회화 중엔 수직성을 강조한 경우가 많지 않지만, 대개는 옆으로 긴 화면으로써 수평을 강조한 경우가 많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옆으로 흐르는 물의 성질을 따른 것이며(여기에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그래서 수직으로 흐른다는 자연과학적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옆으로 펼쳐진 자연의 생리를 따른 것이다. 이처럼 옆으로a) 확정된 수평의 풍경은 수직의 풍경에 비해 쉽게 풍경에 동화되게 만든다에 반해 수직의 풍경은 흔히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으로 숭고를 자아낸다.
그리고 작가는 이 일련의 유리회화와 함께 캔버스 그림을 시도한다. 다만 매체가 달라졌을 뿐, 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마찬가지로 자연 속에 흐르는 강물이며, 내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이다. 그 제작과정을 보면, 짙은 색을 먼저 칠하고 점차 밝은 색을 덧칠하는 수순을 밟는데, 안료를 덧칠할 때는 지극히 묽은 안료를 수십 차례 중첩시켜 그 이면의 짙은 색이 은근히 배어 나오도록 조절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묽은 안료를 덧칠할 때 일부 안료의 알갱이가 화면에 남겨진 채 굳어지면서 그 위로 붓질이 지나갈 때 생긴 자국이 여실해진다는 점이다. 화면을 가로지르며 옆으로 연장된 이 자국은 유리회화에서 라인테이프로 처리한 선에 해당하며, 그 선의 느낌곧 및 혹은 빛줄기의 느낌을 캔버스 그림의 생리에 맞게 구현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수십 차례에 걸쳐 묽은 안료를 덧바른 화면에서 이면의 색채와 표면의 색채가 하나의 갤혹은 층위로 중첩되고, 특정의 색채로 한정되지가 않는 풍부한 색채의 스펙트럼을 아우르게 되고, 이로써 마치 색채가 화면의 이면으로부터 배어 나온 듯 은근한 느낌과 함께 어떤 내적 울림을 자아낸다. 내적 울림? 그것은 자연 속에 흐르는 강물보다는 마음속에 흐르는 강물, 가시적인 강물보다는 비가시적인 강물, 질료적인 강물보다는 관념적인 강물의 생리를 더 닮았다. 그래서 캔버스 그림은 유리회화에 비해 더 관념적이고 더 추상적으로 보인다. 사실상 모노톤의 화면이 미니멀리즘의 한 변주처럼 보이고,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 내적 울림을 자아내는 서정적인 느낌이 후기미니멀리즘의 가능성을 예시하고 있다.
김대관의 작업은 흐르는 강물에 착상된 것이다. 강물은 우선 작가의 고향에 흘렀었다. 실제와는 상관없이 모든 고향에는 원지 강이 흘렀던 것 같고, 강이 흐를 때 고향은 더 고향다운 것 같고, 고향에 흐르는 강은 왠지 과거형으로 기술될 때 더 격적인 것 같다. 그리고 강물은 작가가 서있는 지금여기에도 흐르고, 작가의 마음속에도 흐른다. 모든 강물은 한줄기로 연결돼 있다. 원래 고향에 흐르던 강이 지금여기 위로 차고 넘치고, 마침내 내 마음속에마저 범람한 것. 이렇게 범람된 강물은 그 원천이 고향이란 점에서 모든 강물은 결국 그리움인 것. 그래서 강물을 그린다 는 것은 곧 그리움을 그리는 것.
작가는 유례가 없는 유리회화를 통해서 이처럼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가 고향으로 표상된, 그리고 일종의 원형의식에 연동된이 투사된 강물을 그린다. 그 그림이 막막한, 가없는, 아득한 감정에 빠져들게 만든다. 강물 앞에 선다는 것, 그것은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은 그 그리운 강물 앞에 서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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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관의 작업은 흐르는 강물에 착상된 것이다 | |
김대관의 작업은 흐르는 강물에 착상된 것이다. 강물은 우선 작가의 고향에 흘렀었다. 실제와는 상관없이 모든 고향에는 왠지 강이 흘렀던 것같고, 강이 흐를 때 고향은 더 고향다운 것 같고, 고향에 흐르는 강은 왠지 과거형으로 기술될 때에 더 적격인 것 같다. 그리고 강물은 작가가서있는 지금 여기에도 흐르고, 작가의 마음 속에도 흐른다. 모든 강물은 한줄기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 고향에 흐르던 강이 지금 여기 위로 차고 넘치고, 마침내, 내 마음 속에 마저 범람한 것. 이렇게 범람된 강물은 그 원천이 고향이란 점에서 모든 강물은 결국 그리움인 것. 그래서 강물을 그린다는 것은 곧 그리움을 그린다는 것.
Kim got the idea of his works from flowing river. River ran through his home. Regardless of whether it really ran, a river runthrough every home. Every countryside home is more homelike when a river runs through it, and one always thinks about theriver that ran through one’s home on reminiscing about it. A river is running both on the ground where the artist stands and inhis mind. All rivers converge into one. The river that ran through home flows and finally overflows in the artist’s mind. That a riveris always connected to the image of home in this artist’s consciousness finally leads to our recognition that all rivers signify hislonging for his old home. Therefore, drawing a river means expressing his longing for his original being with this artist.Notes :A Vast, Endless River Running through Our Reminiscent Mind by Kho Chung Hwan, Art Crit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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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riticis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