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2-01 작가노트-그림은 ‘삶’(살아남) 이다
그림은 ‘삶’(살아남) 이다.


올해 초부터 내 작업실은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거대한 쇼핑몰의 창고동에 자리잡았다.
지하엔 이마트가 있고 윗층엔 구내식당과 찜질방이 있으며 바로 옆동엔 백화점과 CGV가 있고 넓은 엘리베이터와 사철 더운 온수가 콸콸 나오는 깨끗한 화장실에 천장높은 복도,게다가 화물차가 7층까지 올라와서 작업실 바로 근처에서 작품운송을 할수있는 매머드급 현대식건물.. 이라고 위로하고 싶지만, 어쨌든 나는 버젓이 엘리베이터에<창고>라고 써놓은 층에서 내려야한다.

복도가 넓고 길어서 한쪽 끝에서보면 정신병동에 온듯 현기증이 나지만 이마저도 저녁 여덟시에 불이꺼져 밤에 작업실에 오게되면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와야 차갑게 닫혀있는 작업실철문을 만나게 된다.
임사체험자들의 많은 경우가 공통적으로 느꼈다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는’그 비슷한 종류의 감정선을 느낀후에야 당도할수있는 작업실앞에서 이물감 드는 철문을 열고 불을켜면 말과 꽃과 나무들이 환하게 피어나 나를 반기는 나만의 세계가 그때부터 열린다.
긴 터널을 빠져 나가다 다시 돌아와서 삶을 다시 찾았다는 임사체험자들과 달리 내 경우엔 죽음처럼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와야만 나만의 세계를 만나지만 어쨌거나 둘다 ‘살아남’을 중히 여기게 될것은 자명하다. 

나름 안정된 학원사업가와 예술가의 길을 두고 오랜시간 지속되던 갈등은 가족에게도 전이되었고 오년전 내가 학원을 완전히 정리하자 그것은 여러측면에서 나를 고립시켰다.
나의 외로움은 더욱 나를 작업속으로 빠트렸고 고통은 내그림에 더욱 질긴 숨을 불어넣었으며 번민의 사자가 나를 엄습하면 나는 그를 불러 그림속으로 끌고간뒤 탈진할때까지 맞고 때렸다.

십남매의 막내였던 어릴적, 시골서의 나의 유년기는 행복했다.
다섯살 무렵부터 학교가기 전까지 망토를 입던 소년검객이었고 온종일 물고기를 잡으며 냇가에서 살았으며 동지들과 수시로 논뜰에서 어른들이 쌓아놓은 볏집성을 공격하여 장한 불로 축제를 벌였다. 
뒷산 동굴과 냇가옆 움막과 근처 논밭에 소유한 다수의 비밀아지트에 매일 친구들을 초대했고
내가 이름지어준 별들이 있었고 장마철 수많은 전리품을 만들어준 냇가 가운데 조그만 수풀섬의 주인이었으며 비온뒤의 풀냄새와 해지는 저녁놀을 사랑했고 그 노을속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등판에 업혀서 바라보는 풍경을 더욱 사랑했다.
그땐 꿈도 십팔번이 있어서 이슬 영롱한 포도밭 사이로 커튼처럼 쏟아지는 햇빛들 속을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속장면은 지금도 담배 안주로 가끔 애용한다.

소년검객이었던 나의 검법은 강한 스트록(stroke)의 붓질로 살아나고
내가 이름지었던 별들은 <나무의 춤>의 꽃으로 피어나며
핑크색 말그림 <곡신>에서는 아버지 등에 업혀 바라보던 노을을 찾는다.

근작들의 주제인 ‘곡신’(谷神)은 이처럼 자연과 대지의 노래요 
치유와 생명의 에너지로 나를 살려내는 작업이다.

삶은 ‘살아감’ 이면서 ‘살아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