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조우>시리즈

이영애의 <조우> 연작에는 누에고치 혹은 실타래같은 형상이 덩그라니 한 개 놓여있거나, 혹은 두 개, 서너 개 얽혀 있다. 어찌보면 그 형상은 생명을 잉태하고 품어주는 아기주머니나 요람, 엄마품처럼 정적이면서 포근하기도 하고, 일렁이는 파도나 응축된 스프링처럼 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기도 한다.

 

그 둥그렇게 말린 형상들은 보는 사람을 그림 속으로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집들을 부수고 들어 올리듯이 작가의 붓이 만들어낸 작지만 큰 원형의 파동은 보는 이의 마음을 조각내고 끌어들인다.

 

그 연작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치고 산산조각나버린 내 발가벗은 모습, 혹은 나와 인연을 주고 또 받은 사람들, 아니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내가 그 그림 속 하나의 실타래인지, 그 그림이 나인지 몽롱해진다.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고유의 실타래들은 내가 우연히 스쳐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꽃 같기도, 첫눈 같기도 하다. 작가의 그림은 정지되어 있지만 시간은 그 안에 내밀하게 응집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아침과 마주치고 다른 인연과 조우하면서, 때로는 환희에 빠지고 때로는 절망하는가? 어찌보면 이영애 작가의 붓이 캔버스를 만나 깊고 아름다운 궤적을 남기는 것 자체가 붓과 캔버스의 숙명적이고도 우연한 조우다.

 

그녀가 존재를 형상화한 고작 한꺼풀처럼 보이는 실타래같은 형상들은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 있다. 피부 한 겹 뒤집어쓰고 사는 우리 영육, 우리네 삶과 닮았다. 상처받고 연약해보여도 넘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작가가 구현해낸 형상들은 가쁜 숨이어도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힘이고 희망이다. 

 

작가 이영애의 작품에서 온전히 감동을 받는데 더 이상의 서술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문득 시인 이성복의 <편지 5> 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린다.

 

"이젠 되도록 편지 안 드리겠습니다. 눈 없는 겨울 어린 나무 곁에서 가쁜 숨소리를 받으며"

경계 넘어 어떤 공간
경계 넘어 어떤 공간

미술은 시각적인 표현 도구들을 이용해 자신을 드러낸, 평면 혹은 입체 작품으로 세상과 공감하는 예술의 한 형태이다. 거기에는 형식과 내용이 있으며 삶을 살아낸 작가자신의 모습이 일상의 기록과 비틀기를 통해 오롯이 그 그릇에 담겨야 한다. 자신을 둘러 싼 주변의 사물과 그것이 만들어 낸 세계의 질서를 작가는 낯설게 표현함으로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확장시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꼼꼼한 관찰력으로 세상을 읽어 내고 자신만의 손맛과 감성으로 빗어 낸 작품은 어느 한곳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찾아내 위치해야 한다.

여기 이영애 작가가 있다. 미술이라는 틀 안에 들어 온 것은 30여 년 전이지만 최근 집중적으로 몰입해 동서양 회화의 벽을 넘나들고 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캔버스에서 한지로 자신의 생각의 흐름을 가두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작업하고 있다.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뚜벅뚜벅 가는 길을 잠깐 되돌아보자.

이영애는 점 선 면이라는 미술이 갖는 최소 단위를 가지고 인간과 세상 그 내면의 깨달음을 찾고자 한다고 말한다. 일견 광야와 같이 넓고 깊은 주제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한 점 한 점 집적된 원의 세계는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하나의 원으로 환치 된 사람 혹은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 대립과 갈등이 아닌 서로 어울려 이룬 조화가 따뜻하다.

작가는 최근 작업에서 두 가지의 형식을 병행하고 있다. 물질성이 강조된 캔버스 작업과 즉흥적 행위의 신체성이 두드러진 종이 작업이 그것이다. 캔버스 작업은 준비된 혼합재료를 일정한 패턴의 도상 위에 끊임없이 칠하기를 반복해 일정한 두께를 형성한다. 울퉁불퉁한 표면을 고운 사포로 갈아 내 미묘한 변화를 유도해 낸다. 캔버스 위에 구축된 혼합재료의 두께는 살아온 세월이며 오랜 시간 고밀도 반복된 노동을 통해 만들어 진 긴 호흡은 작가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또 다른 작업은 주로 한지를 이용한 종이위에 먹 작업이다. 한국화의 지필묵 전통을 실험적으로 확장해, 순간 모필의 기세를 화면 위에 펼치고 먹이 번지고 남은 발묵의 흔적으로 내면을 기록한다. 큰 점을 찍어 만든 원은 반복의 몸짓을 더해 화면을 채워 나가고 팽팽한 긴장감의 여백과 만나 또 하나의 질서를 만든다.

결국 동서양의 회화 재료와 기법을 차용하고 혼성해 만든 형상은 자신만의 언어로 심플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원과 원이 만나 기호화 한 화면에서 고요 속의 외침이 들리고 그것이 작가의 정체성으로 읽힌다. 칠하고 갈아 낸 평면과 일획의 붓이 빚어 낸 울림은 작가의 소중한 예술적 성취이고 그 사적 시선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미술가 이인

이영애 작가 작품세계
점, 선, 면이라는 미술이 갖는 최소단위를 가지고 인간과 세상, 그 내면의 깨달음을 찾고자 한다.

넓고 깊은 주제이지만 모나고 각진 심상을 한 점 한 점 집적된 원이라는 세계로 환치되어 대립과 갈등이 서로 어울려 하나로 연결되는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며 조화롭고 따뜻하길 기원한다.

최근 작업은 두 가지 형식을 병행한다.

캔버스 작업은 준비된 혼합재료를 일정한 패턴의 도상 위에 끊임없이 칠하기를 반복해 일정한 두께를 형성한다. 긴 호흡이 필요한 고밀도의 반복된 노동이다.

또 다른 작업은 주로 한지를 이용한 종이 위에 먹 작업이다. 순간 모필의 기세로 먹이 번지고 남은 발묵의 흔적으로 큰 점을 찍어 만든 원은 반복을 더한다. 원과 원이 만나 기호화한 화면을 통해 그림을 통한 공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