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공간확장(space expansion)_색채가 정신이 되어 내면으로 스며들다

공간확장(space expansion)

색채가 정신이 되어 내면으로 스며들다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인간들은 몸짓, 형상, 언어, 문자, 색채 등을 상징적으로 이용하여 소통을 하여 왔다. 나는 이러한 소통의 방법으로 은유적인 아이콘을 이용하여 예술을 표현함으로서 그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과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색채는 인간 마음의 정서이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몰입한 후 색채의 질감 속에서 자유롭고 역동적인 몸짓으로 드러낸 곡선과 파편화된 점선, 그리고 기하학적인 형태는 나의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익숙했던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희망과 새로움을 찾는 열정적인 나의 삶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여백은 비움이며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안식처이다. 무채색의 여백은 무념무상, 단조로움 그 자체가 명상처럼 다가온다. 반면에 무채색의 여백 위에 단색을 두 번, 세 번 반복적으로 덧칠하는 과정에서 정신의 평온함을 얻게 된다. 그 후 여백 위에서 표현되는 기하형태와 선들은 다분히 의도적인 동시에 우연적이다. 그 선들을 통해서 명상과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과정은 나의 희노애락을 삭여낸다. 나는 어느새 마음의 쾌적함과 해방감을 느낀다.

 

 캔버스는 내 마음의 공간이다. 내 마음의 공간인 캔버스 속 두 개의 기하형태는 기쁨과 슬픔, 격정과 절제와 같은 상반된 두 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단색의 여백은 맑음과 텅 빈 자유로움이고 뻗쳐나가는 쾌적한 직선과 곡선은 몸짓의 자유로움이다.단색으로 포화된 캔버스 위에 단조로운 기하학적 형태를 배치하여 절제 있는 명상적 화면을 드러내었다. 결국 비우고 채움으로써 내 마음 속에서 자유로움에 이른다.  

 

 예술가는 어떠한 대상을 통하여 의미부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렇기에 나의 의도를 담아 어떠한 행위를 시도하거나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직관과 심안을 만나 재구성하여 기존과의 차이를 완성시킬 때 무의미하던 것들이 생명력을 얻고 의미를 형성해나간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다. 

 

- 임봉재 작업노트

사유의 순환_원은 점이며 점은 원형이다

사유의 순환

 

원은 점이며 점은 원형이다.

 

예로부터 태양은 인간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농경사회였던 시대상을 고려해보면 태양을 향한 숭배와 두려움은 그리 놀랍지 않다. 하지만 태양이 그토록 존경받고 신성시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태양이 가진 ‘원’의 모양 때문이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고 정제된 것이 없던 시절, 완전무결한 원의 모양은 인간들에게 일종의 안도감과 안심을 심어주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찾은 유일한 안정감인 원은 인간에게 정신적 의지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원’의 존재는 인간의 집단 무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안정감과 더불어 ‘순환성’을 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원에는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다. 출발점이 어디인지, 그렇다고 도착점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다는 것은 곧 시작과 끝이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철학자 노자는 이러한 원의 ‘순환성’을 수레바퀴에 빗대어 ‘원’과 원이 가진 ‘순환성’의 의미를 설명했다. 둥근 모양의 수레바퀴에는 고정된 차축이 있고 차축을 따라 바퀴테까지 연결된 바퀴살이 있다. 원형의 바퀴가 굴리면 차축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바퀴살의 운동이 눈에 들어온다. 이 규칙적인 바퀴살의 순환적 운동을 노자는 원이 만들어낸 삶의 ‘진리’라고 말했다. 원형의 수레가 한 바퀴 도는 순간, 바퀴의 위치는 앞을 향해 한 발짝 내딛었지만 동시에 바퀴의 모양은 처음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마치 변화를 토해내는 한편으로 불변의 모습을 유지하는 인간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다.

 

미술에서도 원을 바라보는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선이나 곡선을 무심히 흩뿌리거나 휘갈기는 것은 종종 혼돈과 우연성을 나타내왔다. 그에 반해 원의 이미지를 이용할 때는 질서와 필연성, 그리고 순환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우리들은 오래 전부터 직선과 곡선이 난무하는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남고 안정감을 찾기 위해 질서와 순환이 우리를 감싸주는 ‘원’의 세계를 지향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시간의 흐름에 맞춰 매 순간 변화하는 존재인 동시에 순환의 고리 속에서 돌고 돌며 영원히 불변하는 존재임에 우리는 원형의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우주공간속의 원형들도 태양과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지만 또 한편 태양은 나를 중심으로 순환한다. 그리고 나는 나를 은유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내고 공간과 시간을 넓혀간다

 

2017

임봉재 작업노트 

도심의 풍경_우연성에서 비롯된 운율적인 선과 색면의 하모니

도심의 풍경

 

우연성에서 비롯된 운율적인 선과 색면의 하모니

 

 작가는 작품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이며 화폭에 그 정신을 녹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가끔 나의 작업에 대해 되돌아본다. 어떤 계획을 세워 작업을 이렇게 저렇게 진행해 나가다 어느 순간 내 의식은 매몰된채 그림이 나를 그려나간다.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긋고 뿌리고 닦아내고 두드린다. 이 같은 행위는 신명이 난다. 때론 유희 속에서 우연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낀다. 

 이러한 작업을 위하여 정신의 스케치를 반복적으로 시도하다가 실행을 한다. 하지만 시행착오도 가끔 겪게 되고 또한 경험의 울타리에 의지하여 안주하다 보면 문득 나의 정신이 매몰되는 긴장감을 갖게 되고 그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의지와 사회를 향해 뭔가를 제시할 수 있는 사명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방황 속에서 정형화된 틀을 깨기 위해 고심하다가 나의 이번 작업에 있어서는“도시의 풍경”을 소재로 택해보았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네온 빛 현란한 도심의 환상과 욕망, 도심의 밤 풍경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외형적 형태보다 그 대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그 무엇을 끌어내기 위한 작업이다. 

 

 기법으로는 캔버스 위에 선을 긋고 면을 메우는 것을 벗어나 포멕스판 위에 율동적이고 힘찬 선을 파서 입체적이고 촉각적인 선을 드러냈으며, 평면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회화적 공간 확장으로 시도해 보았다. 이것을 바탕으로 감성을 시각화하기 위해 자유로운 몸짓과 손짓으로 드러난 운율적인 곡선과 직선, 선과 선사이의 작은 면을 오방색으로 메꾸어 균형과 악센트를 주고, 이들이  어우러져 교향악단의 아름다운 연주와 같은 색음을 느끼게 표현해보았다. 작품에 나타나는 색면과 자유분방한 선의 조화는 고독함 속에서도 생동감을 가져보고 시각적 감성을 느껴 자아를 회복하자는 의도이다.

 

 조심스럽게 머뭇머뭇 이어지는 점선이 겸손함이라면 과감하게 뻗쳐나가는 직선의 대담함, 모나지 않고 유연하게 모든 것을 포용해줄 것 같은 곡선, 여유로움이 스며있는 색면! 각각 뚜럿한 개성도 있지만 한 공간 속에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나의 작업과정이 이성의 경계를 초월한 감성적이고 충동적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행위는 기계적 삶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정신의 자유로움을 찾고 그 속에 반영된 자아의 참모습을 찾기 위하여 앞으로도 행위적이고 우연적 작업은 끊임없이 이어나갈 것이다.

 

- 임봉재 작업노트